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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843화 (811/2,000)

< 825. 기말 시즌-25- >

태영은 정확히 초등학교 4학년 1학기부터 딸딸이를 시작했다. 남자들이 평균 중학생에 이르러서야 자위를 시작하는 것에 비하면 지나치게 조숙한 아이였다.

딸치는 시간을 아껴 공부에 매진했다면 서울대도 거뜬했을 거라며 호언장담하던 태영은, 8TB에 이르는 고용량 하드 3개에 노아의 방주를 구축한 이 시대 최고의 프로딸잡이였다.

그는 가마우지 폴더에 정렬된 세부장르(?)를 세심하게 훑었다.

"SM 폴더라···. 여기 있군."

야동의 양이 방대해지자 그는 도서관에서나 쓰는 십진분류체계를 응용해 야동을 카테고리화 시켰다. SM이란 폴더를 들어가자 세부사항이 또다시 펼쳐졌다.

태영은 그중 펨돔 항목을 클릭했다.

그 안에서 또 다시 동양과 서양이 나뉘고, 최종적으로 1:1과 그룹으로 분화되는 상세한 구분. 단순히 품번과 배우 이름만 외우는 수준이 아니다. 태영의 방주는 그 자체가 태영의 역사였고 인생의 족적이라 부를만했다.

고심 끝에 영상을 고른 태영은 방문이 잠겼는지 재차 확인했다. 일전에 스피커로 송출되는지도 모르고 헤드셋으로 귀를 막아놓고 딸치다 집에서 쫓겨난 이후로, 그는 딸칠 때 늘 만전을 기하는 편이었다.

당시 분노한 아버지가 본체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는데, 그때 만약 하드까지 박살 났더라면 그는 정말 인생의 일부를 잃어버린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그래, 오늘은 너로 정했다."

물티슈를 책상에 올린 태영이 지퍼를 내린 채 쓸쓸히 양물을 흔들었다. 한때는 곽티슈나 두루마리를 썼는데, 귀두에 들러붙은 이후론 자괴감이 들어 비용이 좀 들더라도 물티슈를 선호하는 편이었다.

-아앙, 아아앙, 아앙!

7.1채널 입체음향 헤드셋에서 헐떡이는 교성이 흘러나왔다.

영상뿐 아니라 소리마저 양보할 수 없었던 태영은, 메인보드 내장사운드가 아닌 고가의 사운드블라스터 장비까지 설치해서 눈과 귀까지 모두 만족시키고 있었다. 그가 왜 프로라고 불리는 지 알 수 있는 부분.

"허억, 허억, 그래, 이거야, 허억!"

탁탁탁!

태영의 손속을 매섭게 끌어 올렸다.

손은 눈보다 빠르다.

딸잡이 인생 10년 차에 접어든 태영의 테크닉은 과연 놀라웠다. 리드미컬한 손목 스냅과 성감대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손끝의 압력은 그를 순식간에 절정의 상태로 몰고 갔다.

탁타라닥탁! 탁탁!

이제 손은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빨라졌다.

그는 신인가, 신이 태영인가?

딸딸이의 신이 있다면 그의 이름은 태영이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는 혼연일체의 동작.

"으으으으!"

태영이 마침내 오르가즘에 도달하기 직전.

부르르르!

컴퓨터 책상 위에 올려던 휴대폰이 진동을 일으켰다.

"어읏, 깜짝이야!"

태영은 화들짝 놀라 야동을 중지시켰다. 모니터 화면은 징 박힌 가죽옷을 입은 외국 여자가 벌거벗은 남자를 여상 상위로 힘차게 내려찍는 장면에서 멈췄다.

"아씨, 하필 싸기 직전에···."

태영은 필시 방금 전 게임을 하던 동기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밤늦은 시간에도 구애받지 않고 전화할 놈들은 그놈들 뿐이었다.

"어?!"

발신인을 확인한 태영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전화를 건 사람은 다름 아닌, 정란이었던 것이다.

갑작스러운 전화에 태영이 황망히 움직였다. 그는 전화를 받으려다 말고, 황급히 물티슈를 꺼내 더렵혀진 손부터 빡빡 닦았다.

그녀와 통화를 하는데 딸치던 손으로 받는 것이 왠지 불경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두 손 공손히 전화를 받은 태영이 긴장된 음색으로 말했다.

"여···, 여보세요?"

-태영이 맞지?

"어, 어 나야. 무슨 일이야 이 시간에?"

조모임 때문에 연락처를 주고받긴 했지만, 두 사람이 실제로 통화를 한 것은 처음이었다. 어찌나 긴장했던지 방금 전까지 풀발기 되어 있던 그의 심볼이 급속도로 쪼그라들었다.

-톡 남겼길래. 바빠? 끊을까?

태영은 감동하고 말았다. 읽씹당했다고 생각했던 정란이, 먼저 전화를 걸어줄 줄이야! 태영은 황공스럽기 그지없는 마음에 허둥대며 대답했다.

"아, 아니! 너무 늦은 시간에 전화했길래···."

-뭐가 늦었다는 거야? 이제 겨우 11시 넘겼을 뿐인데.

태영이 컴퓨터에 떠오른 시간을 확인하니 11시가 조금 지나 있었다. 게이머인 태영에겐 초저녁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여자랑 통화 하기엔 야심한 시각인 건 틀림없었다.

특히 그 상대가 아직 사귀지도 않고 있는 썸녀라고 한다면.

태영은 통화에 집중하기 위해 컴퓨터를 강제 종료시키고 침대로 올랐다.

‘아아, 너무 갑작스러워서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침묵이 길어지는 것보다 뭐라도 입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태영은 아무 말이나 지껄였다.

"제, 제사는 잘 끝냈어?"

-어, 대충. 그냥 절만 올리고 내 방으로 올라온 참이야.

"아···."

-톡에 답장 못한 게 마음에 걸려서.

‘아앗···. 이런 츤데레 같으니라고···.’

사실 태영은 반쯤 포기 상태였다.

깨톡을 보낸 지 한참 동안 읽지도 않은 데다, 막상 읽어 놓고도 답장 하나 없는 태도에 불쑥 자신이 정란의 감정을 오해한 게 아닌가 하는 현실 자각을 했던것이다.

하지만 그런 서운한 감정은 정란의 한마디에 눈 녹듯 사라졌다. 태영은 기쁜 마음에 침대 위에서 펄쩍펄쩍 뛰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 역시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어!’

"하하, 신경 안 써도 되는데. 그냥 바빠서 그러려니 했거든."

-태영아.

정란이 갑자기 목소리를 착 깔았다.

태영은 정란이 뭔가 중요한 이야기를 할 거라는 생각에 침을 꿀꺽 삼키며 통화를 경청했다.

"으, 응. 말해."

-너 나 좋아하니?

"컥!"

정곡을 찔린 태영은 자기도 모르게 이상한 소릴 내고 말았다. 화통한 성격인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대놓고 물어볼 줄이야.

-대답해 줘.

"아, 아니 그러니까 나는···."

사실은 멋지게 고백하고 싶었다.

티격태격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받으며 미운 정 고운 정을 차곡차곡 쌓아가다, 결정적인 순간에 진심을 드러내며 감동을 안겨주고 싶었다.

한데 이렇게 노골적으로 물어오니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선수를 뺏긴 느낌이었다.

-맞지?

"으, 음···.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너무 갑작스러워서."

-그냥 솔직하게 대답해주면 돼.

‘츤데렌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통화 목소리가 나긋나긋할 줄이야.’

그녀의 목소리는 자신을 두들겨 팰 때와는 180도 달라져 있었다. 그를 멸시하거나 윽박지르지 않고, 수줍음 많은 여대생처럼 귀엽고 사랑스러운 목소리였다.

"응. 맞아. 나 너 좋아하는 거 같아."

-어쩐지···. 이제야 이해가 되네.

"뭐, 뭐가?"

-아니. 오늘 네 행동. 실은 좀 헛갈렸거든.

"정말?"

-그래서 장난치는 줄 알고 나도 모르게 심하게 대했던 것 같아. 난 사람 마음 가지고 노는 거 극혐이라.

"아, 아···. 장난치는 거 아니었어. 진심이야."

-하지만 우린 서로 안 지 얼마 안 됐잖아. 안 그래?

태영이 침을 꿀꺽 삼켰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러는 걸까?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보겠다?

미안하지만 넌 내 타입은 아니야?

태영이 바짝 긴장한 얼굴로 정란의 대답을 기다렸다.

1초가 1분처럼 느껴질 만큼 초조한 순간이었다.

-저, 미안한데···.

태영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미안하다는 말이 먼저 나올 땐 분명 완곡한 거절일 가능성이 높았다. 실망한 태영이 한숨을 푹 내쉬는데 정란이 말을 이었다.

-아직 내 감정이 헛갈리는 거 같아.

?!

예상과 다른 대답.

태영은 거기서 일말의 희망을 보았다.

-그래서 말인데 좀 더 확신이 필요한 것 같아.

"화, 확신이라니?"

정란이 목소리를 착 깔면서 물었다.

-네가 날 좋아한다는 확신 말이야.

"어, 어떻게? 내가 어떻게 하면 되니?"

-너 내가 시키는 대로 다 할 수 있어?

태영이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으, 응! 말만 해."

그는 이미 사랑의 포로가 되어 버렸다.

***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안내를 종료합니다.

네비게이션에서 안내 멘트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상가가 복잡하게 들어선 유흥가라 그런지 주변을 둘러봐도 희주가 말한 가게를 찾는게 쉽지 않았다.

‘전화를 해봐야 하나?’

비상깜빡이를 켜고 골목길 구석에 정차한 뒤 희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희주야, 난데 도착한 것 같아."

-오빠앙! 도착 했어요오?

희주가 평소답지 않게 코맹맹이 소리를 냈다.

‘뭐지? 술 많이 마셨나?’

아까는 톡으로 대화를 주고받았기 때문에 희주가 얼마나 취했는지 알지 못했다. 그때 옆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야, 희주. 남친 얼굴 한 번 보여주라.

-그래. 여기까지 왔는데 인사나 시켜줘. 우리한테 아직 안 보여 줬잖아.

클럽을 같이 가기로 했다는 친구들 목소리 같았다. 가만, 근데 남친이라니?

[남친한테 연락 와서 중간에 나가는 거라고 아까 말을 맞췄지 않습니까?]

‘아아, 그렇지.’

-안돼, 부담스러워 할꺼란 말이야.

-에이. 희주 너 그럴거야?

-맞아. 우리한테 한 번도 안 보여주고. 혹시 사이버 남친이니?

대화를 듣는데 희주가 공격받는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의도적으로 나 들으라고 핸드폰에 대고 말하는 지도 몰랐다. 잠자코 있는데 희주가 말했다.

-오빠, 친구들이 자꾸 오빠 소개시켜 달라고 성화네. 잠깐 올라올 수 있어?

"뭐? 갑자기 무슨 소리야. 내가 왜?"

-아니이~ 애들이 오빠 안 보여주면 나 안 보내겠다잖아아앙.

허, 참.

이게 무슨 꼴인지.

나는 정색하며 말했다.

"희주야. 난 네 남친도 아닐뿐더러 친구들이 오해하면 어떡하려고 그래?"

-잠깐만, 오빠.

잠시 친구들의 목소리가 잦아지더니 주변이 조용해 졌다.

아마도 통화를 위해 장소를 옮긴 것 같았다.

희주가 원래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미안해요, 오빠. 염치없지만 한 번만 제 남자친구 행세 해주시면 안될까요?

"아니, 내가 왜 그렇게까지 해야 돼?"

-그게 아니라···. 중간에 빠진다니까 친구들이 제 말을 안 믿어 주자잖아요.

"방금 나랑 통화한 거 들었을 거 아니야?"

-오빠···. 한 번만.

평소의 쿨한 희주가 아니었다.

이건 숫제 애원이었다.

아무래도 기분이 이상해 희주에게 연유를 물었다.

"솔직하게 말해. 진짜로 이유가 뭐야? 왜 나를 거기로 부르겠다는 건데?"

-말하면 들어주실 거에요?

"일단 들어보고."

-휴.

희주가 깊이 한숨을 내쉬더니 숨도 안 쉬고 속사포처럼 말했다.

-제 친구들이요, 사실 많이 예쁘거든요. 그래서 남자친구들도 다들 잘생겼고요. 저는 이제껏 남자 얼굴 많이 안 따지고 사겼는데, 얘들은 맨날 잘생긴 오빠랑만 사귀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요새 좀 예뻐지니까 애들이 저보고 좀 질투하더라고요. 근데 제가 성형 안 한 거 친구들이니까 잘 알잖아요. 그래서 그걸로 까지도 못하고, 갑자기 제 남자친구 얘기를 하는 거예요.

"무슨 소리야 그게?"

-여자들은 원래 그런게 있어요. 은근히 사람 무시하는 거. 얘들은 지금껏 절 자기보다 밑으로 봤거든요. 얼굴도 못 생겼는데 몸으로 남자 꼬신다고. 근데 제가 예뻐지고 나니까 그게 기분 나빴는지 갑자기 남자친구를 까는 거예요. 어떻게 생겼냐면서. 키는 크냐고.

대충 사정을 듣고 보니 희주가 자존심이 많이 상했던 모양이다.

-니가 예뻐져봐야 남자친구는 여전히 별로지 않냐는 식으로 말이에요. 그게 너무 기분 나빴어요. 그래서 제가 그랬거든요. 남친 잘생겼다고. 키도 크고 차도 있다고.

"설마 그게 나야?"

-죄송해요. 오빠 팔아서. 그럴 생각은 아니었어요. 그냥 욱하는 마음에. 근데 오빠. 애들 어차피 오늘 보고 말 사람들이에요. 오빠가 우리과라고도 얘기 안 했어요. 그냥 오늘 하루만, 아니 잠깐 여기 와서 남자친구인척 해 주시면 안 돼요?

듣고보니 사정이 딱했다.

무엇보다 희주를 깔본다는 친구들이 밉상이었다.

친구가 예뻐지면 기뻐하고 축하할 일이지, 자신과 대등한 위치에 올랐다고 괜히 심술을 부리는 모습이 몹시 얄미웠다.

물론 나도 예전엔 희주를 빻았다고 무시하긴 했다.

하지만 내가 예쁘게 만들어 준 희주를 남들이 무시하는 모습을 참을 수 없었다.

어쨌든 희주는 내 파트너니까.

"알았어. 딱 기다리고 있어. 금방 거기 찾아갈테니까."

-저, 정말요? 고마워요 오빠! 진짜 오빠 짱이에요.

"위치 어디야? 도착은 아까 했는데 아직도 못 찾고 있어."

-잠시만요. 혹시 거기 미스스톱 보이세요?

"편의점? 가만···. 아 저깄네."

-네, 그 건물 왼쪽 모퉁이에요. 호플할래라고.

"알았어. 지금 간다."

나는 차에서 내린 뒤 희주가 기다리는 호프집으로 향했다.

희주를 무시한 친구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고 싶었다.

‘로시, 타인에게 매력을 발산할 수 있는 아이템이 뭐가 있지?’

[매력이요? 왜요? 설마 희주양 친구들을 꼬시기라도 할 셈입니까?]

‘아니. 줘도 안 먹어 그런애들은. 그냥 배아프게 하려고 배아프게 하려면 내가 매력적으로 보여야 할 거 아니야.’

[지금도 충분히 매력적이신데요?]

‘아니. 이걸로 부족해. 지금보다 훨씬. 처음 보자마자 뺏고 싶어서 미칠 정도로. 희주가 부러워 죽고 싶은 정도로.’

[그 정도까지요? 너무 인심이 후하신 거 아닙니까?]

‘앞으로 희주에게 빻녀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게 될 거야. 이것들이 감히 누구 여잘 무시해?’

나는 간만에 불타올랐다.

< 825. 기말 시즌-25-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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