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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839화 (807/2,000)

< 821. 기말 시즌-21- >

정란의 마음을 오해한 태영은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방금 또 야한 말 했어. 귀에 좆 박았냐니···. 다른 것도 아니고 굳이 좆을 언급한 이유가 뭐지? 이건 그린 라이트가 확실해. 나한테 슬쩍 시그널을 흘리는 거라고.’

무식하면 용감하다 했던가?

정란의 짜증을 자기 편의로 해석한 태영은 상기된 표정으로 정란을 바라보았다. 정란은 갑자기 오싹하는 마음에 움찔 뒤로 물러섰다.

"뭐, 뭐야. 씨발. 또 그 눈!"

"내가 뭘?"

"눈 얼른 안 깔어? 길거리에서 오지게 처맞고 싶냐?"

"말 또 못되게 한다."

"그니까 그딴 눈으로 사람 쳐다보지 말라고!"

정란이 진저리쳤지만 이미 태영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한술 더 뜨며 정란에게 물었다.

"근데 그게 가능하긴 한가?"

"뭐가?"

"귀에다 박는···."

"야이, 미친 새끼야! 확 그냥!"

정란은 자기도 모르게 손찌검을 하려다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며 동작을 멈추었다. 괜히 사랑 싸움하는 커플로 오해받는다면 그 치욕을 감당 못 할 것 같았다. 무엇보다 두들겨 맞는 태영의 태도가 어딘가 께름칙했다.

‘저 새끼 저거 일부러 저러는 거 아냐?’

아까부터 맞을 때마다 왠지 기뻐하는 느낌.

이해할 수 없지만, 맞고 싶어 환장한 사람 같이 굴고 있었다.

막상 때리면 자기가 지는 싸움처럼 느껴졌다. 때리고도 지는 기분은 죽기보다 싫었다.

정란은 슬그머니 시선을 내리더니 태영의 바지춤을 훔쳐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미, 미친! 또 섰어?’

참으로 오뚜기 같은 녀석이었다. 넘어져도 벌떡벌떡 일어나는 게 하루 내내 발기 중은 아닌지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

-하루종일도 할 수 있어!

라고 태영의 심볼이 말하는 듯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변태 새끼가 확실해. 맞을 때마다 흥분하는 그런 종류의.’

그런 생각이 들자 정란은 도무지 태영을 때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정란이 막상 위협만 하고 행동으로 넘어가지 못하자 태영은 더욱 과감해졌다. 그녀의 달라진 점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했다.

‘호오. 이제 폭력성이 줄어드는군. 나의 남성성에 드디어 굴복하는 것인가, 암컷. 더 박력있게 나가야지.’

"역시 나 같은 대물은 불가능하겠지? 거긴 너무 비좁으니까 말이야."

"개소리 좀 작작해. 미쳤니? 사람들 다 지나가는 데 그딴 소리 계속 지껄일 거야?"

"니가 먼저 한 말이잖아?"

"뭐러고?"

"내가 말한 게 아니라, 니가 먼저 꺼냈다고."

"어휴, 진짜. 내가 말을 말지."

정란이 태영을 무시하며 빠르게 앞서나가자 태영이 쏜살같이 따라붙었다.

"같이 가."

"꺼져!"

‘좋으면서 내숭은.’

"네가 뭐라고 해도 난 같이 갈 거야."

"혹시 스토커세요?"

"스토커 해달란 소리야?"

"절대! 넌 무슨 말이 안 통하니!"

"원하면 언제든 말해. 네 부탁이면 뭐든 들어 줄 수 있으니까."

"됐어! 그딴 거 필요 없으니까 그냥 제발 꺼지시라고요!"

정란이 또 성큼성큼 앞으로 걸었지만, 태영은 끈질기게 따라 붙었다. 태영을 따돌리기 위해 빨리 걷느라 도훈과 정희와의 거리는 멀찌감치 벌어지고 있었다.

‘아씨, 짜증나. 도훈 오빠도 아니고 하필 이런 새끼랑 엮여가지고. 재수 옴 붙었네 진짜.’

참다못한 정란이 걸음을 뚝 멈췄다.

백번을 고쳐 생각해도 자신이 도망칠 이유가 없었다. 특히 남자에게 한 번도 휘둘린 적이 없던 그녀였기에, 지금의 회피가 몹시 자존심 상했다. 지은 죄도 없는데 먼저 피해야 할 당위를 못 찾은 것이다.

허겁지겁 보폭을 맞춰 걷던 태영도 일제히 멈추었다.

정란이 태영을 훽 돌아보며 말했다.

"야. 너 솔직히 말해. 나랑 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지?"

"······!"

태영은 마침내 올 것이 왔구나 생각했다.

역시 야동이 옳았다.

실컷 얻어맞은 대가는 천국으로 이르는 길이었다.

태영이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란이 묘하게 웃더니 가까이 다가왔다.

태영은 숨이 막힐 것 같은 기분에 호흡을 가쁘게 내쉬었다.

"왜, 왜 그래?"

"왜? 막상 가까이 가니까 싫어?"

"아니, 아무리 그래도 여기선 좀···."

"무슨 상관인데? 마음이 가장 중요하지."

‘여, 역시!’

예상대로 정란은 사랑에 눈먼 여자였다. 사랑에 미치면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드는 불나방이었다. 뜨거운 열정을 품었지만, 냉정으로 치장한 바게트 같은 여자였다.

겉은 딱딱하지만 속은 촉촉하기 그지없는.

"아아···. 민망한데 진짜."

"어서 가까이 와보라니까?"

정란이 적당한 지점에서 거리를 두고 멈추더니 태영에게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태영은 긴장한 표정으로 한 걸음씩 걸어갔다.

‘아, 키스하려는 거구나!’

태영은 키스의 3법칙을 떠올렸다.

1. 최대한 입술을 근접한다.

2. 절대 끝까지 다가가진 않는다.

3. 상대가 다가오면 그때 입술을···.

"그렇지. 좀 더 가까이."

태영이 침을 꿀꺽 삼키며 한 걸음씩 다가갔다.

바로 눈앞에 선녀처럼 예쁜 정란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오, 신이시여. 드디어 저에게 퀸카를 주시나이까!’

실패는 무수히 많았다.

짝사랑으로 끝난 것만 몇 차롄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늘 서둘렀고, 무시당했고, 상처받았다.

그러나 그 모든 시련은 바로 지금을 위한 것이었다.

바로 지금.

눈앞에 정란의 얼굴이 다가오는 지금.

"눈 감아."

"누, 눈을···."

‘그렇지. 하도 오랜만이라 깜빡해버렸어. 키스할 땐 눈을···.’

태영이 눈을 감았다.

길거리에서 키스라니.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이 아닌가?

심장이 터질 것처럼 박동했다.

아니, 지금 터져버려도 여한이 없었다.

첫 조모임에서 키스면 다음 진도는 일사천리였다.

그의 머릿속이 온통 살색의 향연으로 채워졌다.

두근.

두근.

두근.

태영이 길거리 한복판에 눈을 감고 입술을 쭉 내미는데.

바로 앞에선 분노로 얼룩진 어여쁜 여대생이 혼신의 일격으로 니킥을 날리고 있었다. 무방비 상태인 태영의 가랑이 사이를 향해.

"죽어!!!"

"···응?"

뻐억!

하늘이 두 쪽 나도 살아날 구멍이 있지만, 불알이 두 쪽 난다면 어떨까? 그 결과를 태영이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흐어엉!"

태영은 한순간에 길바닥에 쓰러졌다.

아득해지는 그의 귓가로 정란의 목소리가 흐릿하게 들렸다.

"···개새끼가 오냐오냐하니까 진짜! 내가 너 까불지 말랬지? 한 번만 더 지랄 떨어봐. 확 그냥!"

건장한 청년이 길거리 한복판에서 쓰러지자 무신경하게 걷던 이들도 웅성거리며 몰려들었다. 정란은 그들을 향해 훽 쏘아보며 소리쳤다.

"뭘 봐요? 가던 길이나 가요! 이 새끼가 나한테 껄떡대서 그런 거니까."

"아···."

"역시."

"더 패버려. 그런 놈은."

사람들은 피해자인 태영을 손가락질했다.

쯧쯧거리며 "요새가 어떤 시대라고···. 꼴 좋다." 하는 어르신도 있었다. 정란은 태영이 아직 의식이 있다는 걸 확인하고는 한 번 더 경고했다.

"명심해. 봐주는 건 이번뿐이니까. 다음엔 진짜로 깨뜨려버린다."

정란은 그 말만 남기고 훽 돌아섰다.

니킥에 힘을 절반만 실은 것을 다행으로 알라면서.

***

[어쩌시려고요?]

‘성욕을 자극하는 가장 좋은 아이템을 써야지.’

[그렇다면···.]

‘아니 담배는 좀 그렇고. 몸에 좋은 크림 어때?’

[몸에 좋은 크림을요? 어디다 바르시게요.]

‘다 방법이 있지.’

도훈은 몰래 뒷주머니로 아이템을 전송시킨 다음 손바닥에 듬뿍 펴 발랐다. 일반적인 로션과 달리 빠르게 몸으로 흡수되는 크림은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도훈은 천천히 어깨를 부딪히더니 불쑥 손을 잡았다. 정희가 깜짝 놀라 도훈을 쳐다보자 말없이 씩 웃을 뿐이었다.

‘아···. 오빠가 내 손을···. 민망한 데 빼고 싶지 않아.’

사실 취한 김에 먼저 손을 붙잡은 사람은 정희였다. 둘 사이에 이미 손까지는 암묵적으로 허용되고 있던 것이다.

정희도 용기를 내 도훈의 손을 꼬옥 잡았다.

바로 그때.

찌릿-

"아, 아아!"

조용히 걷고 있던 정란이 갑자기 이상한 소릴 터뜨렸다.

갑자기 움찔 아랫배를 부여잡더니 걸음을 뚝 멈추었다.

"왜 그래?"

도훈이 아무것도 모르는 척 물었다.

"아, 아니 그게 갑자기···."

"민망해서 그래? 애들 저 앞에 가고 있어. 괜찮아."

"그게 아니라요···."

정희는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당황하고 말았다.

남자 손을 잡은 것은 초등학교 음악 시간에 강강술래 놀이를 할 때 이후론 처음이었다. 사춘기 이후로 비슷한 또래 남자들과는 말도 잘 섞지 않았다. 최소한 사적인 대화는 전혀 없었다.

그런 정희였으니 오늘 겨우 친해진 도훈이 곧바로 스킨십을 시도한 것은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아직은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손을 잡는 것은 무척이나 용기를 낸 행동이었다.

‘뭐, 뭐였지 방금? 막 간질간질하면서도···. 뭔가···.’

몸에 좋은 크림은 닿는 부위 전체를 성감대로 탈바꿈시킨다. 단순히 손을 잡았지만, 사실상 가슴을 꽉 잡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손바닥을 슬슬 문지르는 것은 클리토리스를 비벼대는 것에 필적하는 자극을 선사했다.

생전 그런 것과 의도적으로 담을 쌓아온 정희였기에, 방금 전의 충격이 비명을 내지를 만큼 대단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이, 이럴 수가 단순히 손만 잡았을 뿐인데···.’

정희는 지금 자신의 몸 상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우연히 돌리던 TV채널에서 야한 장면이 나왔을 때 자기도 모르게 민망해지던 바로 그 느낌.

그 느낌을 10배쯤 증폭시킨 자극이 밑을 살살 간지럽히고 있었다.

정희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한 번만 더 확인해 보고 싶었다.

"죄송해요. 순간 발목을 접질러가지고."

"그랬어? 조심해. 가끔 보도 블럭이 울통불퉁한 곳이 많아."

"네."

"애들 이제 보이지도 않는다. 얼른 따라 가자."

"···네."

도훈이 다시 자연스레 손을 잡았다.

커다란 그의 손바닥이 정희의 조그만 손 전체를 꽉 감싸쥐었다.

‘흐읏!’

정희의 안에서 뭔가가 터졌다.

터진 곳은 바로 그녀의 팬티 속이었다.

주륵-

생전 처음 느끼는 강렬한 자극에 정희가 자기도 모르게 애액을 주륵 흘렸다. 요의를 느끼지 않았으니, 흘러나온 것이 무엇인지는 안 봐도 뻔했다.

‘세, 세상에 내가 왜 이러지?’

당연히 이유를 모를 수 밖에 없었다.

단순히 손만 잡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상 밑을 다 내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도훈이 자극을 높이기 위해 교묘하게 손가락을 문질렀다.

"넌 참 손이 곱구나."

"아, 아앙···. 오, 오빠."

"고생 하나도 안하고 자랐나봐."

도훈이 계속 뭐라고 지껄였지만, 정희는 아무말도 들리지 않았다. 그녀의 몸은 이미 달궈지고 있었다. 브라 안에 곤두선 젖꼭지가 쓸리는 느낌이 났다. 두 팔에 닭살이 돋을 만큼 예민한 감각에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아··· 오, 오빠 손 좀···."

이대로 있다간 길바닥에 주저 앉은 판이었다.

다리가 후들거려 걸음을 내딛을 수 조차 없었다.

도훈은 여전히 아무것도 눈치 못 챈 것처럼 정희를 향해 물었다.

"손 좀 뭐? 더 꽉 잡아 달라고?"

도훈이 힘을 주어 손을 잡았다. 압력이 강해질수록 자극은 거세졌다. 정희의 입에서 신음이 쏟아지기 직전이었다. 거대한 둑이 무너지고 홍수가 터질 뻔한 바로 그때.

앞서가던 태영이 도훈을 향해 어기적 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척 봐도 상태가 심상찮았다. 정희는 하늘이 주신 기회라고 여기며 다급히 손을 빼냈다.

"오, 오빠 앞에 태영이."

도훈도 갑작스러운 태영의 등장에 손을 놓을 수 밖에 없었다.

‘쳇, 저 자식은 왜 이 타이밍에 등장해서는···.’

"태영아? 너 어디 아파?"

도훈을 손길을 뿌리친 정희가 놀란 표정으로 태영에게 물었다. 태영은 막 포경수술을 끝낸 중2처럼 걸음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한 상태였다.

"혀, 형!"

태영이 울것같은 표정으로 도훈의 이름을 불렀다.

"어, 태영아. 무슨 일이야?"

"저 그게···."

태영은 금방이라도 닭똥같은 눈물을 쏟아낼 것처럼 목소리가 젖어있었다. 도훈은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태영과 함께 앞서가던 정란이 보이지 않았다.

"정란이는? 왜 너 혼자야?"

"머, 먼저···."

"응? 너 놔두고 먼저 갔다고? 아니 이게 진짜."

정희가 불같이 화를 내며 핸드폰을 들었다.

사실 그녀의 행동은 약간의 오버액션이었는데, 이렇게 해서라도 민망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심정이었다.

"제가 찾아 볼게요."

정희가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며 앞으로 뛰어갔다.

둘만 남게되자 도훈이 태영에게 사정을 물었다.

"뭐야? 정란이랑 무슨 일 있었어?"

"아, 아니에요."

하지만 누가 봐도 거짓말이었다.

길바닥이라도 구른 것처럼 옷은 더렵혀져 있었다. 특히 어기적거리며 걷는 폼이 소중한 곳을 다친 모습이었다.

"여기 나밖에 없으니까 솔직히 말해봐. 무슨 일인데 그래?"

도훈이 태영을 구슬렸다. 표정을 보아하니 억울한 일을 당한 모양인데, 자존심 때문에 말을 못 하는 모양이었다.

"그게 실은···."

"어."

"정란이가···."

"정란이가 뭐?"

태영은 말을 잇지 못하고 한참을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형, 츤데레라는 말 혹시 알아요?"

"츤데레? 뭐, 대충은."

츤데레란 일본 애니메이션에 단골처럼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로 평소엔 틱틱거리지만(츤츤), 이따금 살살 녹을 만큼 잘해주는(데레데레) 이중 인격적인 여성성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정란이 걔가 순도 100% 츤데레였잖아요. 참나."

도훈이 얼빠진 얼굴로 태영을 쳐다보았다.

‘이건 또 뭔 개소리야?’

< 821. 기말 시즌-21-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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