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9. 기말 시즌-19- >
퍽! 퍽!
그것은 일방적인 폭행이었다.
아무리 여자가 남자에 비해 힘이 달린다곤 하나, 또 나름 체육인인 태영의 덩치가 정란에 비해 훨씬 크다곤 해도 잔매에 버틸 장사는 없었다.
"억, 그, 그만. 잘못했어."
"니가 오랜만에 맞는 말도 하는구나? 처맞는 말."
퍽! 퍽!
정란의 발길질은 멈추지 않았다. 사람을 제법 때려 본 경험자답게 맞아도 티나지 않을 곳만 골라 팼다.
‘흐, 흑! 존나게 패다가 나중엔 안아주겠지? 분명 그럴 거야.’
태영은 끝까지 헛된 희망을 놓지 않았다.
사랑을 야동으로 배운 그는, 지독하리만큼 괴롭히다가도 결국엔 남자에게 몸을 주는 여자들을 떠올렸다. 정란도 분명 그와 같을 거라 믿었다. 마지막 피날레 장면을 떠올린 그의 바지춤이 좀 더 부풀었다. 그 모습을 본 정란이 눈이 뒤집혔다.
"이 변태 새끼가 끝까지!"
정란은 갑자기 가랑이 사이를 걷어찼다. 자신을 향해 음욕을 드러낸 태영이 너무나 소름 돋았기 때문이었다.
뻑!
"억!"
정통으로 급소를 밟힌 태영은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눈앞이 새하얘지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다. 태영이 갑자기 바닥에 고꾸라지자 정란도 그제야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야."
마치 절을 하는 것처럼 바닥으로 머리를 처박은 태영.
"뭐야. 너 왜 그러는데?"
"거, 거기가···."
태영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할 만큼 엄청난 데미지를 입은 상태였다.
"거기? 아파?"
태영이 가까스로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의 급소는 제대로 맞으면 허리도 못 펼 만큼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는다. 태영은 이러다 죽는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커흑, 1, 119 좀···."
"119? 구급차를 불러달라고?"
"어, 어!"
"아씨, 남자 새끼가 그것 좀 맞았다고 진짜 이럴 거야?"
말은 그리 했지만, 정란도 덜컥 겁이 났다. 정당방위를 주장하기엔 너무나 일방적인 폭행이었다. 게다가 여자 화장실이면 모를까, 공용으로 쓰이는 곳에서 태영이 들어온 것을 가지고 귀책을 물을 수도 없었다.
만에 하나 구급차를 부르고 연유를 따지게 되면 화장실에서 벌어진 사태에 대해 도훈이나 정희가 무척 실망할 것 같았다. 이를 떠올린 정란은 자신이 수습해 보기로 결심했다.
"야, 장난치지 말고 일어나."
정란이 쪼그려 앉아 태영을 부축하려고 했지만, 태영은 당장 허리를 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 안 돼 하, 하지마!"
태영이 한사코 부축을 거부했다.
"대체 어쩌자는 건데? 바닥 더럽다고."
"···두, 두들겨줘."
"응?"
"어, 엉덩이."
"엉덩이를 두들기라고?"
"어."
정란은 순간 언젠가 유튜브에서 봤던 영상을 떠올렸다. 남자가 급소를 맞았을 때 엉덩이를 두들겨 주면 진정된다는 내용이었다. 정란은 내키지 않았지만, 구급차를 부를 순 없었으므로 태영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팡팡!
정란이 엉덩이를 때리자 확실한 차도가 보였다.
태영이 겨우 자세를 가다듬으며 진정된 것이었다.
"이렇게 하면 돼?"
"어, 어. 조금만 더 약하게."
팡팡팡!
화장실 바닥에 엎드린 남자와 그 뒤에서 쪼그려 앉아 엉덩이를 때려대는 여자의 모습은 무척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어차피 급소의 충격은 시간이 지나면 차차 나아졌기 때문에 태영은 점점 고통이 완화되는 것을 느꼈다.
팡팡!
"계속 때려줘?"
"으, 응. 훨씬 좋아지고 있어."
하지만 태영은 정란의 손길이 좋았기에 조금만 더 즐기기로 했다. 둘밖에 없는 음습한 공간에서 엉덩이를 맞고 있으니 기분이 야릇했다.
‘이, 이게 스팽킹이란 건가?’
태영은 엉덩이를 쳐들며 마치 더 때려달라듯 들이밀었다. 한참을 두들기던 정란은 태영의 행동에서 수상함을 느꼈다.
‘한참 때린 것 같은데 계속하는 게 맞는 건가?’
잠시 두들기는 걸 멈추고 가만 놔둬 보니, 신이 난 태영이 혼자서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어 대는 것이었다. 몰래 고개를 내밀어 보니 맞고 있는 표정 또한 가관이었다.
‘이, 이 새끼. 즐기고 있잖아?’
정란이 다시 빡 돌았다.
"야이, 개새끼야! 너 다 나았지? 이제 멀쩡하지?"
"아, 아냐!"
"이게 씨, 어디서 거짓말을!"
열이 받은 정란이 다시 손찌검을 하려고 하자 태영이 벌떡 일어나 구석으로 도망쳤다.
"그, 그만 때려."
"뭐?"
"아프다고. 진짜!"
"······."
"거긴 남자 급소란 말이야. 안 아프겠냐? 지금도 아릿아릿해."
몇 대 더 쥐어박을까 하던 정란이 한숨을 내쉬며 손을 거두었다. 방금전 그 난리를 겪었는데 또다시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게 누가 좆같은 소리 하래? 누가 누굴 좋아한다는 거야?"
"아니었어?"
"절대 아니지! 한 번만 더 그딴 소리 지껄여봐!"
태영은 그쯤에서 살짝 위화함을 느꼈지만 속으로 또다시 행복회로를 돌리기 시작했다.
‘아니긴 무슨···. 속마음을 들키니까 발끈한 거겠지. 은근히 부끄러움이 많구나. 방금전에도 나 죽을 까봐 놀라 엉덩이 두들겨 준 주제에. 암튼 계속 물어보면 싫어할 거 같으니 그냥 넘어가자.’
태영이 내뇌망상으로 정신승리를 하는데 정란이 말했다.
"얼른 나가."
"나가라고?"
"그래. 같이 나가면 오해받으니까."
"근데 너무 아파서 못 걷겠어."
"못 걷는다니?"
"진짜로 아프단 말이야. 여자들은 절대 이런 기분 모를걸?"
"알게 뭐야? 그딴 거."
정란은 툴툴거렸으나 태영의 상태가 조금은 걱정되었다. 이성을 잃은 상태로 너무 심하게 급소를 밟아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만약 치명적인 부상이라면 병원비를 물어줘야 할지도 몰랐다.
"야. 너 들어가서 상태 확인하고 가."
"응?"
"나한테 맞아서 고자됐다는 그딴 소리 하지 말고 얼른 보고 오라고. 멀쩡한지."
"아, 알았어."
태영이 어기적거리며 화장실 칸막이로 들어갔다. 생각외로 충격이 컸기 때문에 그 역시 약간의 불안감을 갖고 있었다.
"어때 상태는?"
"아, 아직."
"아씨, 뭐가 그렇게 굼떠? 내가 꺼내줘?"
정란의 도발에 태영이 또 다시 흥분했다.
‘역시! 이럴 줄 알았다니까? 은근슬쩍 자기도 보고 싶어 하는 거 봐.’
태영은 당장이라도 그렇게 해달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정말로 보여줬다간 대물이 아닌 걸 들키게 될까 봐 거절했다.
"아니야. 괜찮아. 내가 알아서 할게."
‘내가 물건을 꺼내는 건 무조건 섹스하기 직전뿐이야. 괜히 미리 보여줬다 실망하면 안 되니까.’
그는 설수지 때를 떠올렸다. 대물이 아니었던 그는 도훈의 물건을 도촬 해 자신의 것으로 위장하려 했다. 하지만 결국엔 들통나 모든 걸 망치고 말았다. 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할 순 없었다.
지퍼를 내리고 팬티에서 물건을 끄집어낸 태영은 요모조모를 살폈다. 다행히 외관상 크게 이상은 없어 보였다.
"확인했어?"
"어. 일단은 괜찮아 보이네."
"분명 니입으로 말했다? 나중에 딴소리 하기 없기다?"
"응."
태영이 화장실 칸막이 안에서 헛된 희망에 부풀어 있는데 밖에서 정란이 소리쳤다.
"나 먼저 나갈테니 니가 나중에 나와."
"응."
***
정란이 한바탕 난리를 피우고 화장실에서 나왔을 땐 도훈이 화장실로 향하는 중이었다. 입구에서 교차한 두 사람은 뻘쭘한 표정으로 마주쳤다.
"응? 다시 멀쩡해졌네? 태영이는?"
"아···. 큰 거 보나 봐요. 화장실 안에 있어요."
안에서 벌인 일이 민망했던 정란이 도망치듯 도훈을 스쳐지나갔다. 도훈은 의구심을 가지고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공용이라 그런지 화장실 입구가 하나였다. 들어가자마자 좌변기용 칸막이가 보이고, 통로를 따라 돌아가면 소변기가 설치된 식이었다.
‘태영이가 저기 있나 보구나.’
도훈이 넌지시 말을 걸려고 하는데 발걸음 소리를 들은 태영이 안에서 말했다.
"왜 다시 들어왔어? 야, 나 그나저나 다시 보니까 불알이 살짝 비뚤어 진 거 같아."
?!
도훈은 황당한 대꾸에 어안이 벙벙했다.
‘무슨 미친 소리야? 갑자기 불알이 왜 나와?’
[주인님을 정란양으로 착각한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더 어이없잖아. 얘네들 서로 그런 얘기하는 사이였어?’
도훈이 대답없이 헛기침을 하는 데 태영이 계속 말했다.
"왜 대답이 없어. 불알이 살짝 비뚤어 진 거 같다니까? 혹시 잘못 된 건 아니겠지?"
"······."
"내가 이런 소리까진 안 하려고 했는데 나 고자 되면 니가 책임지는 거다?"
"······."
"물론 거긴 멀쩡해. 아주 멀쩡하거든? 근데 불알만 살짝 다쳤을 수도 있어. 그니까 고자라기보단 불임에 가까운···."
"···태영아 형이다."
"······."
"정란이 아니고 도훈이라고."
"우악!"
태영이 문을 밀치고 튀어나왔다.
귀밑까지 빨개진 그가 도훈을 향해 사과했다.
"혀, 형 죄송해요. 정란인 줄 알고."
"그런 것 같더라. 빨리 대답해 줄 걸 나도 당황해서 말을 못 했네. 미안."
"아, 쪽팔려."
태영은 더 심한 소리를 안한 것을 다행이라고 여겼다. 도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럴 수도 있지. 근데 너네 벌써 그렇고 그런 사이였냐? 불알이라느니 책임지라느니 대체 무슨 소린데?"
도훈의 물음에 태영이 겸연쩍어 하며 뒤통수를 긁었다.
"아, 저 그게···."
태영은 어떻게 말할까 하다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정란이가 저 좋아하는 거 같아요."
"진짜?"
"긴가민가했는데 확실해요."
"음."
"근데 얘가 살짝 취향이 뭐랄까···. 약간 Sm 쪽이랄까."
"응? 그게 무슨 소리야?"
"극 S라고 혹시 아세요? 아니면 펨돔."
도훈은 알아들었지만 모르는 척 했다.
"아니 그게 뭔데?"
"여기서 설명하긴 좀 그렇고, 아무튼 정란이가 그런 쪽이더라고요."
"그래? 의외네."
"저랑은 천상연분이에요."
"태영이 너랑?"
"네. 마치 자석의 N극과 S극 같은? 궁합이 좋다는 얘기죠."
도훈은 한자석에서 N극과 S극은 결코 만날수 없는 사이아니냐고 묻고 싶었지만 기대에 부푼 태영을 실망시키고 싶지않아 모르척 넘어갔다.
"무슨 소린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잘되고 있는 거네?"
"그렇죠."
도훈이 소변기 앞에 서서 소변을 보는데 태영이 떠나질 않고 옆에서 계속 조잘댔다.
"근데 저만 잘되려니까 좀 죄송스럽네요. 형, 정희 어떻게 생각해요?"
"정희? 괜찮지."
"사실 정란이가 예쁜만큼 정희도 예쁘잖아요."
"그렇지 둘이 쌍둥이니까."
"저야 잘 되고 있으니 형만 괜찮으시면 정희랑 잘 되게 도와드리려고요."
태영이 그런 말을 꺼낸 것은 다름이 아니었다.
이 바닥에서 도훈은 최상위 포식자. 가만히 있어도 위협적인 존재감을 내뿜는 사내였다. 거의 넘어왔다고 믿고 있지만, 혹시라도 관계가 정립되지 않는 사이에 정란이 도훈을 보고 흔들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도훈은 남자인 자신이 봐도 매력적이었고,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건 학과에서의 인기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태영은 도훈의 존재가 불안했고, 앞으로 남은 조모임 동안 어떻게든 그를 정란의 관심사에서 지워야겠다고 결심했다. 이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정희를 도훈에게 이어주는 것이었다.
‘정희랑 도훈이 형을 엮어버리자. 둘이 잘되면 정란이도 도훈이 형에게 미련을 갖지 않을 테니까. 설마 자매끼리 남자 한명을 두고 추하게 엉겨 붙진 않을 거 아니야?’
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다만 태영이만 모를 뿐.
"됐어 인마. 뭘 또 도와? 난 관심없다."
도훈이 한발 빼자 태영이 더욱 열을 올렸다.
"정희가 어때서요? 그렇게 참하고 예쁜애가 솔직히 얼마나 있다고. 제가 오늘 보니 형이랑 잘 어울리는 거 같아서 하는 말이에요."
"아니. 뭐 정희가 안 좋다는 건 아닌데···."
"그러니까요. 제가 도와드릴께요. 적극적으로."
"근데 원래 내가 너 밀어주기로 한 거 아니었냐?"
본래 두 사람의 당초 계획은 태영과 정희가 잘되도록 도훈이 밀어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일이 꼬이고 꼬이다 보니 이젠 반대로 태영이 도훈을 정희와 엮고 있는 것이었다.
"사람 사는 일이 어디 계획대로 되는 경우가 있던가요? 전 어차피 이상형을 만났으니, 이젠 후배가 선배를 밀어드려야죠. 하하!"
도훈은 어이가 없었지만 미션 순서를 떠올리며 잘됐거니 싶었다. 처음에는 정희에게 관심을 보이는 태영이를 걱정했는데 어느새 전화위복이 되어 태영이 큐피트를 자처하고 있었다.
'손해볼건 없겠구나.'
"근데 어떻게 밀어주겠다는 건데?"
"2차 가야죠."
"2차?"
"애들 술 빨리마셔서 살짝 헤롱헤롱 하잖아요. 여기서 좀 만 더 먹이면 어케 되지않을까요?"
도훈은 참으로 순진하다고 생각했다.
마음도 없는데 술에 취해 넘어가는 경우는 절대 없다.
설사 인사불성이 되어 어찌어찌 관계를 맺게 되었다고 해도 그것은 강간이나 매한가지다.
물론 도훈의 성격상 강제로 덮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미션이나 업적을 수행할때 화대를 주거나 심신미약 상태로 만들면 업적으로 인정도 안됐거니와 그렇게까지 추하게 여자를 따먹고 싶지 않았다.
다만 장소를 바꿔 좀 더 호감도를 끌어올려야할 필요를 느꼈다.
정희의 호감도가 충분히 오른 상태기 때문에 스킬이나 아이템을 쓰기에도 최적의 조건이 되어 있었다.
본격적인 공략이 시작된 것이다.
"2차는 어디로 가려고?"
도훈이 관심을 보이며 물었다.
< 819. 기말 시즌-19-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