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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835화 (803/2,000)

< 817. 기말 시즌-17- >

"응. 진심인데?"

"난 지금껏 네가 누굴 만나든 신경 쓰지 않았어. 그건 네가 동생이기 이전에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인격체로서 존중했기 때문이야."

"말 돌리지 말고 결론부터 말해. 하고 싶은 얘기가 뭔데?"

"도훈이 오빠 가지고 놀지 마."

"뭐?"

"알고 보면 불쌍한 사람이야."

정희의 말에 정란이 콧방귀를 꼈다.

"불쌍한 사람? 언니, 오빠에 대해 잘 알아?"

"잘 알진 못해. 하지만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설마 지금 질투하는 거야?"

"뭐, 뭐?"

"맞지?"

"아니야."

"맞잖아?"

"대체 무슨 소리야?"

"내가 바본 줄 알아? 언니가 언제부터 내 연애에 관심 가졌다고? 아니지. 내 연애가 아니라 남자에게 한 번도 관심 보인 적 없었지. 그런데 유독 도훈 오빠한테만 그러네?"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정곡을 찔린 정희가 우물쭈물하자 정란이 쐐기를 박았다.

"상관없어. 언니 같은 쑥맥은 절대로 나 못 이기니까."

"···뭐?"

"내가 언니랑 똑같이 생겼다고 남자한테 똑같은 취급 받을 거 같아?"

"너 지금 말 다 했니?"

질투로 얼룩진 두 자매가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평소 언니 말을 고분고분 듣던 정란이었지만, 남자 문제가 걸리자 모처럼 눈을 치켜뜬 것이었다.

"아니. 아직 안 끝났어. 난 적어도 언니보단 솔직한 사람이야. 뭐? 불쌍한 사람? 가지고 놀지 마? 내가 가지고 노는 거 보기 싫으면 한 번 언니가 뺏어 보던가? 속으론 마음 있으면서 그런 식으로 훼방 놓는 건 잘하는 일이야? 차라리 좋아한다고 말을 하던가?"

"야, 너 진짜!"

정희는 동생에게만큼은 엄한 언니였다.

평소 조용조용한 성격이지만 쌍둥이로 타고난 기질 자체는 동생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정란이 불량한 기질을 필요 이상으로 드러내는 타입이라면, 정희는 안으로 갈무리하고 응축했다가 폭발시키는 타입이었다.

일진까지 했던 정란이 정희에게 꼼짝 못 했던 이유 역시 바로 그런 기질 때문이었다.

"이게 오냐오냐하니까 언니한테 확!"

그때 계단에서 도훈과 태영이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손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던 정희는 겨우 흥분을 가라앉히더니 두 사람의 머리가 보이기 시작하자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너 집에 가서 봐."

"맘대로 해. 난 오늘 집에 안 들어갈 거니까."

"이게 씨!"

그때 눈치 없는 태영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밑에서 귀가 간질간질하던데 나 없는 사이에 설마 뒷담화 깐 거 아니지?"

"뭐래? 이 병신이?"

"······."

정란이 곧바로 면박을 주는 바람에 태영이 머쓱해졌다. 동생이 험한 말을 하면 항상 저지시키던 정희마저 입술을 꾹 다물 뿐이었다. 도훈은 태영과 달리 곧바로 어색해진 기류를 눈치챘다.

‘뭐지? 둘이 싸우기라도 한 것처럼?’

[누가요? 쌍둥이 자매가요?]

‘왠지 한바탕 한 분위기 같지 않아? 표정보니까.’

[정란이 언니한테 꾸중을 들었을 까요?]

‘글쎄? 아무튼 둘 사이에 뭔가 있는 건 맞는 거 같아.’

"맥주는 곧 가지고 올 거야. 인당 한 잔씩 시켰어."

"참, 오빠 술 잘 마셔요?"

정란이 갑자기 귀여운 표정을 지으며 도훈에게 물었다.

"뭐···. 잘 마시는 편은 아니지만 적당히 어울릴 정도는 되지."

"그렇구나. 저도 잘 못 해요. 호호. 술이 원체 약해서."

정란이 대놓고 꼬리를 치는 모습을 보며 태영이 속으로 생각했다.

‘후후. 이제 와 질투심 유발하려고 해도 끄떡없다고. 난 너의 진심을 알고 있거든.’

"···약하긴. 일주일에 서너 번은 취해서 집에 오면서."

조용히 앉아있던 정희가 뜬금없이 내뱉는 말에 다들 놀라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정란 역시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무, 무슨 소리야 언니? 그런 농담 하면 진짠 줄 알잖아."

"농담 아닌데? 왜? 내 말 틀려? 너 술 잘 마시잖아. 술자리도 좋아하고."

"······."

정희가 정란을 째려보았다.

‘도훈 오빠한테 꼬리치기만 해? 내가 가만 안 있을 테니까.’

정란 역시 정희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진짜 나랑 한번 해보자는 거지?’

두 사람의 눈에선 레이저가 쏘아지는 것 같았다. 원체 성격이 더러운 정란은 그렇다 치더라도, 늘 조용하던 정희가 갑자기 180도 태도가 싹 바꾼 모습은 충격적이다 싶을 정도였다.

"어어, 뭐야? 설마 두 사람 싸우는 거 아니지?"

"우리가 싸우긴 왜 싸워?"

"싸우기는 무슨."

조모임 분위기가 다소 껄끄러워진 그때 점원이 생맥주를 들고 올라왔다. 술이 등장하자 태영이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건배를 제의했다.

"자자, 어쨌든 술 왔으니까 한 잔씩 하면서 기분 풀자 우리. 원래 조모임하다 보면 의견 충돌이 있을수도 있지."

태영이 생맥잔을 들자 도훈이 호응했고, 정란과 정희 자매도 잔을 두들겼다.

"자, 성공적인 조 발표를 위하여!"

태영이 건배사를 외치고 목을 축였다. 그는 남자다운 모습을 보이기 위해 고개를 뒤로 젖히고 꿀꺽꿀꺽 들이켰다. 술 마시는 것만큼은 도훈에게 절대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흐흐. 이게 바로 상남자의 목넘김이지!’

태영이 기분 좋게 잔의 1/3을 비우고 탁 내려놓는데, 여전히 술잔을 놓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정란과 정희 자매였다. 두 사람은 남자들이 이미 술잔을 내려놓는 와중에도 서로를 쳐다보며 계속 술을 들이켰다.

술을 잘 마신다는 알려진 정란은 그렇다 쳐도, 정란 못지 않게 시원하게 들이키는 정희는 완전히 충격적이었다.

"어어, 장난 아니네. 이걸 원샷 때려?"

"우리 반주로 마시는 거 아니었어?"

두 남자가 은근히 만류하는 가운데도 두 사람은 서로에게 지지 않겠다는 결기를 드러내며 결코 멈추지않았다. 결국 숨이 찬 정란이 절반 넘게 마신 술잔을 내려놓자, 그제야 정희가 술잔을 내렸다.

"와, 정희 완전 술 잘마시네."

"그러게. 안 마신다고 그렇게 빼더니, 안 시켜 줬으면 섭섭했을 뻔,"

"캬-. 오랜만에 먹으니 왠지 잘 들어가네요."

동생을 술로 이긴 정희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두 사람은 쌍둥이였기 때문에 주량 역시 정확히 똑같았다. 정란이 잘하는 것은 정희라고 못 할 게 없었다.

이제껏 할 수 있지만 하지 않았을 뿐.

정란의 분해하는 모습을 보며 도훈이 생각했다.

‘이상한데? 쟤 둘이 갑자기 왜 저러지?’

[마음의 소리를 들려 드릴까요?]

‘응. 확인해 볼 필요가 있겠어. 두 사람 사이가 뭔가 틀어진 느낌인데.’

도훈은 정란과 정희를 번갈아 쳐다보며 속마음을 읽었다.

먼저 정란이 생각이었다.

<나랑 진짜 끝까지 해보자 이거지? 이런다고 날 막을 수 있을 것 같아?

도훈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에 어리둥절하며 이번엔 정희의 생각을 읽었다.

나보고 빼앗아보라고 했겠다? 내가 왜 너보다 먼저 태어났는지, 어째서 형만한 아우는 없다는 말이 있는지 오늘 똑똑히 느끼게 해줄게. 이게 감히 누구 앞에서 까불어?>

도훈은 두 사람의 생각을 읽었지만,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도무지 파악할 수 없었다.

다만, 태영과 1층에 내려간 사이 두 사람 사이에 서로 간 말다툼이 있었고 정희가 태도를 180도 바꾼 이유가 동생과 모종의 경쟁을 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파악했을 뿐이었다.

‘흐음. 대체 뭔 일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저렇게 술을 빨리 마셨다간 오늘 밤 뭔 일 터지겠는데?’

[주인님에겐 좋은 일인가요?]

‘후훗-. 나야 뭐 나쁠 건 없지. 취하면 누구나 실수하길 마련이니까.’

과연 도훈의 예상대로 술자리는 반주 정로 끝날 분위기가 아니었다. 순식간에 생맥 500cc를 비워버린 쌍둥이 자매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술을 추가로 주문했다.

주량을 소주 2병 정도로 밝혔던 정란은 빠른 속도로 술이 들어가자 금세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도훈과 태영이 만류해 보았지만 한 번 불붙은 두 자매의 경쟁을 쉽게 꺼지질 않았다.

도훈이 태영에게 조용히 말했다.

"왜 저러냐 쟤들?"

"그러게요? 정란이는 그렇다쳐도 정희는 진짜 의왼데."

"말려야 하는 거 아닐까?"

"제가 한 번 나서 볼게요."

그냥 놔두면 계속 술만 퍼마실 분위기 였기 때문에 태영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이미 두 자매는 시작부터 생맥 2잔을 연거푸 비우고, 그것도 부족했던지 소주까지 폭탄으로 말아서 원샷을 때리는 상황이었다.

"자자, 둘만 계속 마시지 말고 우리 속도 조절 좀 하자."

"뭐야? 저리 치워."

"아니 그러지 말고. 같이 좋자고 마시는 건데 다 같이 짠하면 좋잖아."

도훈도 합류했다.

"그래. 너희들만 마시지 말고 같이 마시자."

그제야 슬슬 한계를 느낀 두 자매가 경쟁을 멈추었다.

그러나 이미 시작부터 빠른 속도로 들이켠 술 때문에 둘 다 멀쩡한 상태는 아니었다. 이미 취기가 돈 듯 빨개진 두 볼이 볼 터치를 한 것처럼 새빨겠다.

"둘 다 진짜 잘 마신다, 근데. 정희는 술 못 마시는 줄 알았는데."

"그으래요? 제가 그런 이미지였나요?"

술에 취한 정희는 살짝 말투가 늘어져 있었다. 흐트러진 자세로 보아 이미 취기가 올라온 것 같았다. 도훈이 웃으며 말했다.

"아니 뭐. 공부만 열심히 하는 범생인 줄 알았지."

"제가요? 저언혀 아닌데?"

술에 취한 정희가 테이블 위에 올라간 도훈의 손등 위로 손을 포갰다.

"오빤 제가 정말 범생이 같아요?"

"저, 정희야. 많이 취했니?"

"아닌데?"

정희와 똑같이 취한 정란 역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그녀는 기우뚱 몸을 휘청이다 태영의 어깨에 기댔다. 태영은 옳거니 하고 슬쩍 어깨를 감쌌다.

"졸리면 좀 기대도 돼."

"뭐래 미친 새끼가? 손 저리 안 치워?"

정란이 갑자기 버럭하며 쌍욕을 퍼붓자 태영이 움찔 놀랐다. 하지만 그 또한 정란의 츤데레같은 모습이라고 생각하자 자기도 모르게 천천히 발기가 이루어졌다.

‘아아, 저 상콤한 년. 욕도 찰지게 하는 거 봐.’

"에이씨. 맥주를 너무 마셨나. 나 화장실 좀."

정란이 휘청거리며 화장실로 가자 태영이 일어나 부축하려 했다. 그러나 또 다시 쌍욕을 듣고 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민망해진 태영이 머쓱해 하며 말했다.

"어휴, 성격 진짜."

"정란이도 많이 마셨나 보다."

도훈의 말에 정희가 손가락을 세워 좌우로 까딱였다.

평소 그녀의 모습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시건방진 태도였다.

"노노. 전혀요. 쟤는 원래 저래요."

"응?"

"무슨 소리야?"

"정란이 쟤 걸핏하면 욕지껄이잖아요. 하여간 저 싸가지."

"저, 정희 진짜 취했구나. 그래도 동생인데."

"아니? 하나도 안 취했는데에?"

정희는 취한게 분명했지만, 끝까지 아니라고 우겼다.

왠지 그 모습이 우스웠으므로 도훈과 태영은 서로를 보며 민망하게 웃을 뿐이었다.

정희가 살짝 헤롱대는 사이 도훈이 태영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야. 어떻게 할 거야. 얘들 완전히 꽐라되기 직전인데? 이게 니 작전이야?"

"아니에요. 저도 이렇게 얘들이 막 달릴지 몰랐어요. 아니 정란이는 그렇다 치고 정희는 완전 술 취하니까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아요."

‘술 마시기 전부터 달랐어 인마.’

두 사람이 속삭이는 모습을 본 정희가 갑자기 눈을 부릅 뜨더니 소리쳤다.

"뭐야, 지금 두 사람 내 흉보는 거야?"

"아, 아니야."

"정란이 혼자 화장실 보내는 게 걱정 되서. 네가 가보는 게 좋지 않을까?"

정란은 그 말을 듣자마자 손가락을 휘저었다.

"됐어요. 지 알아서 하겠지."

"아니 그래도. 많이 비틀거리던데."

"아, 몰라몰라몰라."

정희가 취해서 제정신이 아니라고 본 도훈이 태영에게 말했다.

"야. 니가 좀 갖다와봐."

"제가요?"

"여기 남녀 공용이잖아. 살짝 가서 토하는지만 보고와. 상태 안좋으면 애들 집에 보내야 할 것 같으니까."

"아···. 네, 형."

태영이 화장실에 다녀온다는 핑계로 사라지자 도훈이 테이블에 이마를 박고 쓰러진 정희를 깨웠다.

"일어나, 아가씨. 여기서 잠들면 안 돼."

어깨를 툭툭 두들기는데 정희가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자는 줄 알았죠오!"

"으, 응?"

"안 잤지롱!"

‘와, 취하니까 완전 웃기네.’

[정말 의외로군요. 참한 정희양에게 저런 모습을 있을 줄이야.]

‘아니야. 충분히 가능해. 어차피 쌍둥이란 동전의 양면 같은 거잖아. 오히려 동생과 정반대라는 게 이상하긴 했어.’

[그게 무슨 소리죠?]

‘성격이 암만 다르다고 해도 비슷한 구석이 많을 거란 말이야. 술만 봐도 그렇잖아. 맨날 술 마시고 다니는 정란이나 거의 안 마시는 정희나 주량 똑같은 거 봐.’

[술이야 타고나는 거니 그렇겠죠.]

‘아니 내 말은 몸이 똑같다는 소리야.’

[몸이요?]

‘정란이 얘가 발랑 까진 거 알지? 남자도 많이 만나고, 섹스 경험도 적지 않고.’

[네. 그게 왜?]

‘정희라고 별반 다를 거 같아?’

[정희양은 시스템창에서 보시는 것처럼 숫처년데요?]

‘그렇지. 아직 경험은 없지. 하지만 성욕은 비슷하지 않을까?’

[네?]

‘어차피 성욕이란 분비되는 호르몬 따라가는 거거든. 정신이 몸을 지배하는 게 아니고, 몸이 정신까지 집어삼키는 거라고.’

[아, 아니 설마.]

‘그래. 정희도 따지고 보면 정란이랑 똑같은 몸뚱이란 말이야. 그저 자제하고 살았을 뿐이지 사실은 정란이 처럼 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거지.’

[아, 세상에.]

도훈이 로시와 그런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술에 취한 정희가 물었다.

"오빠. 나 어떻게 생각해?"

< 817. 기말 시즌-17-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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