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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834화 (802/2,000)

< 816. 기말 시즌-16- >

‘헉!’

‘엇?’

민망한 곳에 발이 닿자 두 사람이 화들짝 놀라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하필 여름이라 샌들을 신고 있던 정란이 맨발인 상태로 태영의 그곳을 눌러버린 것이다.

태영은 숨을 멎을 것 같은 충격에 낯빛이 더욱 새빨개졌다. 아까 전 뺨을 맞아 탱탱 부어있던 얼굴이 또다시 터질 것처럼 변하자 도훈이 물었다.

"야, 너 홍조증 다시 오는데?"

"아, 아! 이게 진짜 시도 때도 없이···."

태영은 혹시라도 남들이 눈치챌까 정란의 발을 치우려 했지만, 정란은 재밌는 장난감을 발견한 개구쟁이처럼 끝끝내 발을 치우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당황해하는 태영을 향해 입매를 비틀었다.

‘어쭈, 꼴에 남자라고 부끄러워하는 거야?’

정란이 발가락을 꼼지락거리자 태영은 전기충격을 받은 개구리 마냥 사지를 비틀었다.

"허윽!"

"뭔데? 너 왜 그래?"

"아, 아니 그게···."

"참, 오빠 발표할 PPT를 프레지 형식으로 구성해 보는 건 어떨까요?"

"프레지라고?"

조 발표에 대해서 묻는 정희에게 도훈이 정신이 팔린 사이 정란은 계속 태영을 괴롭혔다.

‘찐따 주제에 잠깐 어울려줬다고 감히 나한테 까불어? 어디 한번 당해봐라.’

정란이 계속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태영을 자극하자 태영의 물건이 점점 부풀었다. 일일삼딸을 삼시새끼처럼 챙기는 태영으로선, 낯선 여자의 맨발은 너무도 큰 자극이었다. 특히 그 대상이 자신을 업신여기는 정란이었기에 더 짜릿했다.

‘미친! 꼴린 거 뻔히 알 면서··. 가, 가만? 설마 일부러 저러는 건가?’

태영은 급기야 혼란에 빠졌다. 정란이 자신을 괴롭히는 게 어쩌면 자신에게 관심이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을 해버린 것이다.

‘맞아. 관심도 없는 남자 잦이에 왜 발을 대겠어? 이거 어쩌면···.’

프로 딸잡이인 태영은 야동의 다양한 파트를 섭렵했다. 한때 SM이라 불리는 분야에 심취한 적이 있었는데, 여자가 남자를 가혹하게 다루는 펨돔 성향물이 불쑥 떠올랐다.

펨돔이란 여성을 뜻하는 Femlae과 지배적인 성향의 Dominant의 합성어로, 주로 가죽옷을 입고 채찍을 든 여성이 남자를 때리거나 괴롭히는 내용이 주가 되는 야동이었다.

‘마, 맞아. 첨 봤을 때부터 나한테 엄청 막대하고 그랬잖아. 욕도 서슴없이 하고. 설마 그게···.’

펨돔 영상의 남자들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여자에게 당하는 내용이 많이 나왔다.

하이힐로 남자의 관자놀이를 짓밟는 것은 물론, 발가벗겨 기둥에 묶은 다음 채찍으로 때리거나 뜨거운 촛농을 몸에 떨어뜨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럴 때마다 남자들은 잔뜩 발기한 체 여성의 괴롭힘을 즐겼다. 때려야 흥분하는 여자야, 맞아야 발기되는 남자

의 조합. 태영 역시 정란에게 유사 풋잡을 당하는 상황 앞에 잔뜩 발기한 상태였다.

‘억, 설마 처음부터 내가 타겟이었던 거야? 그런 거야?’

태영은 드디어 모든 걸 깨달았다.

도훈과 밀어달라는 말은 미끼였을 뿐, 사실상 정란이 노리던 사람은 바로 자신이었단 사실을.

그녀는 잘생기고 멋진 도훈보다, 상대적으로 못난 자신에게 강한 지배욕과 성욕을 느끼는 것이었다. 보통 펨돔물에선 예쁜 여자가 못난 남자를 괴롭히는 경우가 훨씬 많았으니까.

사랑을 야동으로 배운 태영에게는 당연한 귀결이었다.

‘하, 하아···. 더, 더 세게.’

태영의 표정이 요상하게 변하자 장난을 치던 정란은 오싹함을 느꼈다.

‘뭐, 뭔데 미친 변태 새끼? 왜 저런 표정을 짓고 지랄이야?’

정란이 깜짝 놀라 발을 다시 거두는 데 태영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정란은 그 모습에 더욱 소름이 돋았다.

‘와, 저 또라이 새끼. 나중에 존나 패버려야지.’

태영의 기대와 달리 정란은 결코 변태가 아니었다.

우연히 발이 거기 닿았고, 닿은 김에 확 밟아버린 것 뿐이었다. 오히려 태영을 전혀 남자로 생각하지 않았기에 성기에 닿은 것조차 괘념치 않을 수 있었고, 그로 인해 태영만 오해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아하, 이게 프레지구나."

"괜찮죠? PPT보다 훨씬 직관적이고."

"응. 괜찮아 보이네. 몇 번 본 적 있어. 근데 만들기 어렵지 않을까?"

"같이 만들면 되죠. 제가 도와드릴게요."

태영과 정란이 테이블 밑에서 음탕한 장난을 치는 사이, 도훈과 정희는 폰을 보며 PPT 양식에 대해서 논의했다. 그 사이 테이블에 음식이 세팅되었고, 네 사람은 저녁 식사를 시작했다.

"여기 음식 괜찮다."

"그러게, 맥주 당기지 않아?"

"맥주?"

"맛있겠당."

미리 말을 맞췄던 태영과 정란이 서로 맞장구를 치며 주고 받자 정희가 포크를 내려놓으며 고개를 단호히 가로저었다.

"술은 절대 안 돼."

"왜?"

"밥 먹고 과제 다시 해야 하니까."

정란이 두 볼을 부풀며 불평했다. 삐친 표정마저 심각하게 귀여웠다.

"언닌 진짜. 누가 제대로 마시제? 그냥 반주 삼아 한 잔씩만 마시자는 거지."

"그래. 반주 좋네. 원래 프랑스에선 식사할 때 와인같은 거 옆에 따라놓고 먹잖아. 안 그래요 도훈이형?"

태영이 어제 미리 말을 맞춘 도훈의 도움을 요청했다.

태영과 정란에 도훈까지 가세하면 3 vs 1.

아무리 빡빡한 총무라도 다수결로 밀어붙이면 별수 없다고 생각했다.

도훈이 사인을 받고 거들었다.

"그래. 뭐, 맥주 한 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정희 혹시 술 못 마셔서 그러니?"

"아니 그건 아니지만···. 밥값에 술값까지 더하면."

총무인 정희는 비용을 걱정하고 있었다.

"술은 내가 사도 돼."

"도훈이 형이요?"

"와, 오빠 짱 멋있다."

"오빠가 왜요?"

"그래도 조모임 처음 하는데 술 한잔 살 수 있는 거잖아. 내가 제일 선배기도 하고."

태영이 눈치 빠르게 거들었다.

"맞아. 원래 조원끼리 친목도 다지고 그래야 친해져서 더 모임도 잘되는 거야."

"나도 찬성."

"아이, 참···."

혼자만 반대한 정란도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외치니 고집을 꺾을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도훈이 술값을 혼자 계산하겠다고 나서자 괜스레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가 한쪽 눈이 안 보인다는 사실을 알고 난 이후로, 되도록 부담을 주기 싫은 것이었다.

"알았어요. 딱 한 잔 씩이에요? 대신 오빠가 쏘지 말고 회비로 하는 걸로"

"아싸!"

"그래. 회비로 하자."

"굳이? 내가 쏴도 되는데."

"아니에요. 계산은 확실히 해야죠."

"내가 주문하고 올게."

"같이 가자. 담배도 태울 겸."

태영과 도훈이 주문을 핑계로 1층으로 내려갔다. 생맥주 500cc 넉 잔을 주문한 두 사람은, 흡연실이 별도로 없어 가게 밖으로 나갔다.

"계획대로 잘 되는 거 맞지?"

도훈이 담배를 태우며 넌지시 물었다.

"네?"

"아니. 술 좀 들어가면 정희 꼬실 수 있겠냐고. 네가 밀어 달래서 호응해 준 거잖아. 나 사실 술 별로 안 좋아하는데."

"아···. 네. 뭐."

태영이 우물쭈물하다 도훈에게 물었다.

"형."

"응?"

"형은 솔직히 둘 중에 누가 더 마음에 드세요?"

도훈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무슨 뜻으로 묻는 거야? 너 정희랑 잘되고 싶어서 나한테 밀어 달라는 거 아니었어?"

"아니 그냥···. 계속 보니까 정란이도 생각보다 괜찮은 것 같아서요."

"응? 갑자기 정란이를?"

"솔직히 둘 다 똑같이 생겼잖아요. 외모론 따질 수가 없죠."

"물론 그렇긴 한데···."

"형이 혹시나 관심 있나 해서요. 정란이한테."

"있으면?"

"이, 있으세요?"

"아니. 난 딱히."

도훈은 오락가락하는 태영을 보고 생각했다.

‘뭐야? 왜 저렇게 줏대가 없담?’

[정란양에게 뭔가 매력을 느낀 걸까요?]

‘그 일진 같은 애한테? 나야 뭐 태영이가 정란이한테 관심을 가져주면 고맙지. 우선 1순위 공략은 정희니까. 근데 왜 갑자기 변심했는지 궁금하네.’

"너 정란이랑 아까 뭔 일 있었어?"

도훈의 물음에 태영이 당황하며 대답을 주춤했다.

"아, 아뇨. 무슨 일은."

"그게 아니라 아까 식사 주문하고 왔을 때 얼굴 빨개져 있었잖아."

"으, 음···."

태영이 망설이다 도훈에게 솔직히 말했다.

"형, 이 얘긴 어디 가서 절대 말하지 마세요."

"응. 말해봐. 뭔 일인데?"

"정란이가 저한테 관심 있는 거 같아요."

"진짜?"

도훈은 어이가 없었지만 잠자코 고개만 끄덕였다.

"실은 아까···. 아, 암튼 저한테 막 호감을 표시하더라고요."

"근데 너한테 왜 그렇게 막말하는 거야? 좀 심하던데. 옆에서 봐도."

"아마 나름의 표현 방법인 것 같아요. 왜, 어렸을 때 남자애들 보면 좋아하는 애 고무줄 끊고 괴롭히는 애들 있잖아요."

"정란이가 그런 스타일이라고?"

"네. 확실해요."

‘뭔 소리야 대체?’

[태영군이 뭔가 사인을 오해한 게 아닐까요?]

‘이 자식은 눈치가 빠른 것 같으면서도 가끔 병신같은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많아서···. 저번에 설수지한테도 그렇고.’

[이쯤 되면 말려야 하는 거 아닐지.]

‘일단 놔둬. 내 입장에선 태영이 정희에게 관심을 갖는 것보다는 훨씬 좋은 상황이니까. 사실 밀어달라고 했을 때 되게 난감했거든. 괜히 또 중간에 내가 채가는 거 같아서.’

[그러다 태영군이 정란양과 정말로 잘되면요? 어차피 쌍둥이 언니를 공략한 다음엔 정란양 차례인데요? 결국엔 순서의 문제일 뿐입니다.]

‘정란이? 풉-. 걔는 별로 걱정 안 되는데.’

[오호, 언제든지 취할 수 있다는 자신감인가요?]

‘아니 그보다 뭐. 절대 안될거라는 예감이랄까.’

"그럼 정희랑 밀어주지 마?"

"네. 안 그러셔도 될 것 같아요."

"근데 너 걔 감당할 수 있겠냐? 성격 보통 아닌 것 같던데."

태영이 도훈을 쳐다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형. 제 취향을 20년 만에 제대로 깨달은 것 같아요."

"네 취향이 뭔데?"

"탱커요."

"탱커?"

"왜, RPG게임에서 보면 맨 앞열에서 처맞는 포지션 있잖아요. 고기 방패 같은."

"응. 그러니까 네가 왜 탱커야?"

"아무튼 확실해요."

"뭔 소린 줄은 모르겠지만, 잘 해봐. 내가 간간이 서포트 해줄게."

"안 도와주셔도 될 것 같아요. 저흰 이미 통했거든요."

도훈은 태영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굳이 파헤치지도 않았다. 왠지 혼자 김칫국을 들이키는 분위기라 그대로 두는 편이 정희의 공략에 더 유리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흐음. 뭔지 모르지만, 알아서 한다니까.’

[태영군만 괜히 새 되는 거 아닐까요?]

‘새가 되건 뭐가 되건 다 깨지면서 크는 거지. 어쨌든 본인이 열심히 한다는데 응원해 주는 수밖에’

도훈과 태영이 생맥을 주문하고 밖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이.

2층에선 정란과 정희 자매가 두 사람을 두고 얘기를 나누었다.

"으, 담배충. 진짜, 도훈 오빠는 다 좋은데 담배를 너무 많이 피우는 거 같아."

"정란아. 없는 사람 뒤에서 흉보는 거 아니야."

"언니는 무슨. 없는 데선 대통령도 욕하는데."

"그래도 좀···."

사실 정란은 일부러 정희를 떠보기 위해 도훈을 흉본 것이었다. 그녀가 만났던 남자들은 대부분 담배를 폈기 때문에 딱히 흡연자라고 싫어하진 않았다.

‘응? 뭔가 반응이 수상한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찔러보던 정란은 정희가 도훈을 변호하는 듯한 느낌이 기분이 쌔 했다. 이제껏 남자들을 쉽게 갈아탈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의 월등한 외모 덕분.

하지만 일란성 쌍둥이인 정희는 자신과 똑 닮았기 때문에 유일한 경쟁력이 상쇄되는 측면이 있었다. 정란이 살짝 조바심을 느끼며 물었다.

"언니 설마 도훈 오빠한테 관심 있어?"

"···으, 응? 내가? 아니?"

정란은 정희의 태도에 위화감을 느꼈다. 20년을 함께 살아온 쌍둥이로서 그녀가 허둥댄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은 것이다. 평소의 정희라면 훨씬 담담하고, 무신경한 대답을 했어야 맞았다.

‘하-. 맞네. 수녀같은 언니가 이럴 줄이야.’

정란이 무엇보다 놀란 이유는 언니인 정희가 남자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부류였기 때문이었다. 학창시절부터 수많은 남자에게 고백을 받을 때도 일절 대꾸도 없던 언니였기에 지금의 상황은 몹시 충격적으로 느껴졌다.

하필 자매가 동시에 한 남자에게 호감을 갖게 되다니.

‘아씨, 하필 언니랑···.’

조바심을 느낀 정란은 정희에게 선언하듯 말했다.

"난 관심 있어."

"응? 란이 네가?"

"응."

"너 엊그제 헤어졌다지 않았어?"

"그게 뭐?"

"아니 그래도 헤어진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왜? 언니는 관심 없다며."

"그렇지."

"그러니까 내가 도훈 오빠 찜해도 상관없는 거지?"

"아니 내 말은···."

"상관없어. 내가 무슨 양다리를 걸친다는 것도 아니고. 헤어지고 누구 만나는 데 남의 눈치 봐야 해?"

"흠. 그건 아닌데."

정란의 말은 틀린 소리가 아니었다.

더구나 도훈에게 관심이 없다고 말한 정희의 입장에선 더 따질 이유도 없었다. 정란은 예전부터 정희가 남자들과 쉽게 사귀었다가 금방 실증내고 헤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 부분은 아무리 언니라도 사생활이기 때문에 딱히 터치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정란의 고백을 들은 정희는 괜히 마음이 무거워졌다.

‘정란이가 하필 도훈 오빠를···.’

정란의 사생활이 문란하다는 사실은 언니인 정희가 누구보다  잘 알았다. 학창시절 우연히 서랍에서 피임약을 발견하고도 모른 체했던 적도 있었다.

그래도 동생이니까.

흠결이 있는 동생이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범주라고 생각했다. 누군가 동생을 흉보면 언제든 맞서 싸울 수 있는 끈끈한 자매였다.

하지만 정란이 도훈에게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왠지 모르게 착잡함을 금할 수 없었다. 도훈이 한쪽 눈을 실명한 시각장애인이란 사실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그런 도훈을 동생이 씹다 버린 껌처럼 가지고 놀다 버린다고 생각하자 괜히 욱하는 마음이 들었다.

"너 그거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 816. 기말 시즌-16-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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