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826화 (794/2,000)

< 808. 기말 시즌-8- >

***

"정말로 괜찮을까?"

떨리는 여성의 목소리.

연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여성의 손을 꼭 잡고 대답했다.

"괜찮다니까 그래. 이 시간에 여길 누가 온다고?"

"그래도···. 경비 아저씨들이 순찰하러 돌아다닐 수도 있는 거잖아."

여대생은 건물 입구에서 여전히 머뭇거렸다.

수업이 모두 끝난 강의동은 어딘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였다.

학생들이 하교한 야간 학교가 공포영화의 주 배경이 되는 것은 다름이 아니다. 널찍한 공간에 텅 빈 강의실이 주는 느낌은 어딘가 삭막하고 오싹한 기분마저 든다.

하지만 이미 성욕의 포로가 된 남자친구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만 믿어. 이 시간엔 절대 순찰 안 돌아. 내가 1학년 때 여기 과방에서 술 먹고 놀았는데 저녁 10시 넘어서나 돌더라."

남자친구는 끊임없이 여자친구를 설득했다.

이들은 가난한 연인이었다.

모텔비는 없고, 차도 없는 어린 연인들.

섹스는 하고 싶고, 장소는 마땅치 않았다.

겨우 생각해 낸 곳은 불 꺼진 강의동.

가끔 교수나 학생들이 밤늦게까지 남아있는 경우가 있어, 밤 10시가 넘어서야 폐쇄되는 강의동은 불타는 연인들의 섹스 장소로 이용되기에 충분했다.

소위 개와 늑대의 시간.

멀리서 다가오는 짐승이 개인지 늑대인지 구분이 잘 안 되는 해질녘 무렵. 그 시간은 텅 빈 강의실이 모텔로 변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한 번 가보자. 은근히 이런 곳이 스릴 넘친단 말이야."

모텔비조차 없는 변변찮은 남자친구가 끝내 여자친구를 설득했다. 순전히 스릴 때문이라고. 콘돔을 안 쓰는 것도 2500원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노콘이 더 느낌이 좋기 때문이라면서.

건물로 진입한 두 사람은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장소를 물색했다. 화장실은 왠지 비위생적이고, 과방은 개인 소지품 때문에 잠긴 곳이 많았다.

그들은 함참을 빙글빙글 돌았다. 시간이 갈수록 발기는 더욱 단단해졌고,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처럼 치솟았다.

"저 강의실 어때?"

"강의실은 좀··· 그렇지 않아?"

"왜? 더 짜릿하지. 낮에는 수업 듣던 곳에서 밤에는 광란의 파티가 벌어진다는 것이 재밌지 않아."

"으으, 넌 진짜 변태야."

"여기까지 따라온 너는 어떻고?"

강의실 온 남학생이 뒷문을 잡아당겼다.

***

달그락-

신나게 수지의 후장을 따고 있던 도훈은 순간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잠가 놓은 강의실 뒷문에서 소리가 들려온 것이었다. 누군가 문을 여는 시도를 하고 있었다.

도훈과 수지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작을 중지했다.

"······."

"오, 오빠."

수지가 겁먹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밖에 누가···."

"쉿-. 조용히 해봐."

동작을 멈춘 도훈이 고개를 돌려 귀를 기울였다.

긴장감 때문에 잘못 들었을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였다.

달그락-!

그러나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다시 한번 문을 여는 소리가 났다. 이어 문 반대편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상하다. 누가 문을 잠가 놓은 거 같은데?"

"거봐. 내가 여긴 아니라고 했잖아!"

"아니야. 원래 강의실은 거의 열려 있단 말이야. 여길 왜 잠구겠어? 훔쳐갈 것도 없는데."

도훈과 수지가 말없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너무 행위에 집중하고 있었고, 설마 밤늦은 시간 강의실을 찾아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방심이면서 불찰이었다.

스릴을 즐긴다면서, 너무 무방비했다.

‘로, 로시! 이건···.’

[이번엔 진짜 좆된 거 같은데요 주인님?]

‘야이씨, 이게 그렇게 태연하게 말할 일이냐? 경고라도 날렸어야 할 거 아니야? 대체 뭐한 거야?’

[제 눈이 밖에 달린 것도 아니고 어떻게 압니까? 어장 관리중인 여자였음 충돌경보라도 알렸겠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들인걸요. 인기척도 거의 없었습니다.]

‘이, 이제 어쩌지?’

[문을 잠갔으니 되돌아가지 않을까요? 열쇠 같은 걸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요.]

로시의 말에 안심하던 도훈은 갑자기 뭔가에 생각이 미치곤 화들짝 놀랐다.

‘가만, 내가 앞문도 잠갔었나?’

[···네?]

‘오우, 쉣!’

그때 밖에서 남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가 뒷문을 잠가놓고 나갔나 봐. 앞문은 열려 있지 않을까?"

"그냥 다른 데 가자, 응? 괜히 찝찝하단 말이야."

"이렇게 흥분해 놓고, 참을 수 있겠어?"

"아, 아! 하지마 바보야. 나 갈아입을 팬티도 없···. 흐아앙."

"이봐, 완전 질척거리고 있잖아? 나보다 더 꼴렸으면서."

"···니, 니가 만지니까. 하, 아앙···."

도훈은 두 사람이 나누는 밀어만 가지고도 상황을 완벽히 파악했다.

‘젠장. 발정 난년놈들이 우리 말고 또 있었네!’

[그러게 제가 조심하라지 않으셨습니까? 스릴은 무슨.]

‘난들 이렇게 될 줄 알았냐? 그나저나 이거 빼도 박도못하고 생겼는데 어쩜 좋지?’

[일단 그거부터 빼고 말씀을···.]

‘아차.’

도훈은 수지의 뒷구멍에서 물건을 뽑아냈다. 이미 대물은 긴장으로 바짝 쪼그라들어 있었다. 도훈이 밖에 발걸음 소릴 들으며 속삭였다.

"수지야. 짐 챙겨서 뛸 준비해."

"···네, 네?"

"재들이 앞문으로 들어오면 우린 뒷문 열고 무작정 뛰는 거야. 내 말 이해했지?"

"무, 무슨! 설마 안 잠근 거예요?"

"그런 거 같아. 기억이 안나는 걸 보면. 아마도."

알몸인 수지는 완전 울상이 되었지만,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수지가 허겁지겁 벗어놓은 옷가지를 집어 들었다. 도훈 역시 옷가지를 챙겨 들고 살금살금 뒷문으로 이동했다.

철컥-

두 사람이 당도한 순간 앞문이 천천히 열리더니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봤지? 앞은 안 잠겨 있다니까. 가만 이게 무슨 냄새···."

그 사이 몰래 뒷문을 딴 도훈이 수지에게 소리쳤다.

"튀어!"

수지와 도훈의 알몸 질주가 시작되었다.

앞문을 연 커플이 강의실로 들어오는 사이, 뒷문을 딴 도훈과 수지가 냅다 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간 것이다.

투다다다다다다다!

"어어어!?"

아직 강의실에 들어오기 직전이던 여자가 갑자기 뛰쳐나온 알몸의 남녀에 경악했다. 순간 귀신이 튀어났고 착각할 정도로 재빠른 움직임이었다. 특히 알몸으로 뛰는 두 남녀의 모습이 너무나 선정적이라 차마 제대로 쳐다볼 수조차 없었다.

"오, 오빠 저, 저!"

"아니 안에서 누가 뭘 한 것··· 응?"

"보, 복도!"

"왜? 무슨 일인데?"

남자가 급히 머리를 내밀었지만, 이미 수지와 도훈은 저만치 멀리 달아난 뒤였다. 젖가슴을 출렁이며 알몸으로 달리는 수지도 수지도 수지지만, 커다란 대물을 풍차처럼 뱅글 돌리며 도약하는 도훈의 모습 또한 압권이었다.

마치 외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나체로 뛰어가는 모습에 두 남녀가 할 말을 잃고 서로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

"다 갈아입었어?"

"···네."

화장실 칸막이에서 나온 수지가 민망한 얼굴로 대답했다.

알몸으로 복도를 질주하던 두 사람은 모퉁이 돌자마자 등장한 화장실로 급히 뛰어들었다. 그리곤 허겁지겁 옷부터 입기 시작했다.

어찌나 놀랐는지 수지는 여전히 숨을 헐떡이는 중이었다.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도훈도 섹스하다가 빤스런 한 경우가 처음이기 때문에 경황이 없었다. 신발을 두고 온 걸 나중에야 깨달았다.

수지가 화장실 타일 바닥에 맨발로 선 도훈을 보고 말했다.

"오빠, 신발은."

"몰라. 놔두고 왔나 봐. 그냥 버려야지 뭐."

"어떻게···."

"너 근데 진짜 잘 뛰더라. 상당한데?"

"오빠도 엄청 빠르던데요?"

"근데 은근 짜릿하지 않았니?"

"뭐가요?"

"스트리킹. 거의 50M는 벗고 달린 거 같은데."

방금 전 기억이 떠오르자 수지가 민망함에 얼굴을 붉혔다.

"···몰라요. 그 사람들 다 봤을 텐데."

"봤다고 해도 뒷모습이지. 너 왜 그 얘기 못들었어?"

"뭐가요?"

"여탕에 불나면 몸을 가릴게 아니라 얼굴을 가리고 뛰쳐 나온 다고."

"몰라요. 창피해 죽겠어요. 일단 나가요. 괜히 또 들키기 전에."

두 사람은 도둑처럼 조심조심 사방을 살피며 건물을 빠져나갔다. 강의실에서 맞닥뜨린 커플은, 자기들도 민망했던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가까스로 차에 오른 도훈은 곧바로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맨발에 밟는 엑셀과 브레이크의 감촉이 낯설었다.

"도서관 돌아가 봐야 하지?"

수지는 여전히 긴장이 풀리지 않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숨을 쌔근거렸다. 그러다 문득 섹스하다 도망친 스스로가 너무 웃기고 창피했던지 끝내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푸하-. 민망해서 더 공부도 못 하겠어요."

"너무 걱정 안해도 될 거야. 우리 절대 안 들켰어."

"그래도 홀딱 벗은 걸 다 들켜버린걸요. 창피해 죽겠어요."

"왜? 너 사람들 앞에서 벗는 거 좋아했잖아."

"이게 그거랑 같아요?"

"은근 짜릿했지 그래도?"

"몰라요. 암튼 평생 흑역사거리 하나 생겼네요. 이건 절대 어디 가서 얘기하면 안 돼요?"

"나도 같이 벗었는데 누구에게 얘길 하겠어."

도서관에 도착한 도훈이 말했다.

"짐 챙겨 나올래? 집까지 데려다줄게. 그리고 내 가방도 좀 부탁해."

"아, 오빠 맨발이시지."

급하게 도망치느라 신발을 두고 나온 도훈은 다시 도서관을 들어갈 수 없었다. 수지가 도훈 대신 짐을 챙겨 나오는 동안 도훈은 혼자 차에서 기다렸다. 방금 전 일을 떠올리자 허탈함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다행히 아무 일도 없이 끝났기 때문에 해프닝으로 남을 수 있었다.

‘하-. 그나저나 이게 무슨 꼴이람. 하필 발정 난 커플을 딱 마주치다니. 이건 상상도 못했다.’

[그 사람들 입장에선 주인님도 마찬가지겠죠. 자기들도 응큼한 생각으로 몰래 들어왔는데, 앞에서 먼저 온 커플이 있는 셈이니까요.]

‘그 명당 스킬이란게 있었으면 이럴 일 없었겠지?’

[그렇죠. 명당 스킬은 섹스에 적합한 장소를 자동으로 섭외해 주니까요.]

‘아무래도 그 처녀 보살인가 뭔가 빨리 공략해야 할까 봐.’

도훈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잠시 후 수지가 짐을 챙겨 나왔다. 수지를 집으로 바래다주는 데 어느새 많이 진정된 수지가 도훈에게 물었다.

"근데 생각해보니까 오빠 못 싸지 않았어요?"

"응?"

"아니 아까 급하게 도망치는 바람에요."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스릴도 좋지만, 다음엔 안전한 곳에서 해요. 그땐 제가 꼭 빼 드릴게요."

"말만으로도 고마워."

"저 오빠···."

"응?"

"이젠 우린 무슨 사이인 거예요?"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도훈이 차분한 목소리로 수지를 설득했다.

"수지야."

"네."

"내 상식으로는 말이야···."

결국 도훈이 생각한 건 손절이 아닌, 상식개변이었다.

상식개변이 끝난 수지는 어느새, 썸을 타는 사이끼린 얼마든지 섹스를 해도 된다는 개방적인 사고를 품게 되었다.

"···그렇구나. 썸타는 사이."

"응. 지금은 서로를 알아가는 게 더 좋을 것 같아."

"가끔 데이트도 하고요?"

"물론이지. 근데 기말 끝날 때까진 좀 바쁠 것 같아."

"그건 저도 마찬가지예요. 아버지가 학점 엄청 신경 쓰시거든요. 로스쿨 때문에···."

"아, 아버님이 법조계에 계신다고 했지?"

"네."

"멋있다. 가족이 다 법조인이라니."

"아니에요. 어쨌든 저도 법대를 온 이상 준비는 해야 하니까."

"그럼 나중에 곤란한 일 생기면 수지 너한테 부탁하면 되겠네?"

도훈이 넌지시 찔렀다.

"곤란한 일이라뇨?"

"왜 살면서 한 번쯤 송사에 휘말릴 수 있는 거잖아. 아니면 법률적으로 자문을 받아야 할 일도 있을 거고."

"호호, 제가 공부 열심히 해서 합격하면 오빠 전속 변호사 해드릴게요."

"말만 들어도 든든하네."

"뭘요. 오빠랑 나 사이에."

"네비 보니까 집에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이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돼?"

"아니요. 저 이쯤에서 내려 주세요."

"아직 남은 것 같은데?"

"아···. 부모님께서 남자친구 사귀는 걸 별로 안 좋아하세요. 특히 아버지가."

"아···. 이해했어. 괜히 오해살 수도 있겠구나."

"네. 이건 제가 차근히 설득해 볼게요."

"그래. 아직은 썸타는 사이니까."

"오늘 바래다줘서 고마워요, 오빠. 다시 만나게 돼서 너무 기뻐요."

"나도 마찬가지야."

"그럼···."

쪽!

수지가 수줍게 도훈의 입술에 키스하더니 도망치듯 차에서 내렸다. 앞뒤로 다 내주고서도 여전히 도훈 앞에선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수지였다.

도훈은 손을 흔들며 멀어지는 수지를 배웅했다.

***

‘그나저나 오늘부터 공부하려고 했는데···. 집에서라도 좀 해볼까.’

수지를 바래다주고 집으로 돌아온 도훈은 오랜만에 컴퓨터 책상 앞에 앉았다. 별도의 책상이 없었기 때문에 컴퓨터 모니터를 벽에 붙이고, 키보드를 치워야 교재를 펼 공간이 나왔다.

공부에 집중하려고 했지만, 늘 도서관에서 하던 공부가 집에서 쉽게 될 리 없었다. 게다가 원체 느려진 머리는 받아들이는 속도가 더뎠다.

"아으! 이 빡대가리. 로시, 생각난 김에 그 약 좀 줘봐."

[약이라뇨?]

‘똑똑해져라 열매 있잖아.’

[아, 네. 근데 당장은 효과가 없는 건 아시죠?]

‘그래도 미리미리 먹어놔야 할 거 아니야. 5개월씩 걸린다며.’

[네. 몇 개나 준비해 드릴까요?]

‘어차피 소화시키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 미리 먹어둘 필욘 없겠지. 한 개만 줘.’

잠시 후 열매가 전송되어 왔다.

대추크기의 조그만 열매였다.

도훈이 한입에 삼켰으나 별 다른 반응이 없었다.

‘뭐야. 이거 정말 효과 있는 거 맞아?’

[맞습니다. 지능 지수가 현재의 97에서 5개월 뒤 107로 증가할 겁니다. 현재로선 큰 변화를 느끼시지 못한 게 당연하고요.]

‘알겠어. 그나저나 공부도 안되는데 잠깐 검색 좀 해볼까?’

[무슨 검색요?]

‘지리산 처녀보살인가 뭔가 말이야. 그렇게 유명하다면 인터넷에 뭐라도 단서가 나올 것 같아서.’

도훈이 컴퓨터를 켰다.

< 808. 기말 시즌-8-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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