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5. 기말 시즌-5- >
사실 300이 주어졌을 때만 해도 지능이 이렇게 발목을 잡을 것은 예상 못 했다.
185, 18, 97.
키는 원체 작았으므로 180 이상은 꼭 넘고 싶었다.
키에 대해선 한이 맺힌 전생이었으니까.
그리고 대물.
좆이 작아 전 부인이 바람났다고 확신하던 나는, 기왕이면 물건도 크고 싶었다. 한남 소추에서 훈남 대물로 거듭난 그 순간의 감격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하지만 아이큐는 조금도 아쉽지 않았다.
공부라면 원 없이 했었고, 머리 하나는 타고났다는 칭찬을 귀가 닳도록 듣고 살았다.
또 살아보니 머리가 좋은 것과 부자가 되어 잘 사는 것은 큰 상관관계가 없었다. 학교 다니면서 나보다 공부 못한 친구들이 나중에 훨씬 성공하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당장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 가수. 심지어 유튜버나 BJ들만 봐도 공부 재능과 하등 상관없는 재능으로 충분히 잘먹고 잘사는 세상이다.
그래서 미련없이 아이큐를 버렸다.
어차피 300을 재분배 해야 했기에 나머지 두 개를 맞추고 나면 남은 것이 100이 안될 수 밖에 없었다.
‘흐음. 2,000포인트에 10씩이라고?’
[네. 주인님도 항상 느려터진 두뇌 회전 속도에 불만이 있지 않으셨습니까?]
‘지금 포인트가 얼마나 모였지?’
[상당합니다. 저번 빻은 얼굴 미션에 받은 것만 만 포인트가 넘으니까요.]
처음 ‘똑똑해져라머리머리’ 열매에 이야기를 들을 때는 미션당 포인트가 500에서 1,000포인트 주어지던 하수 시절이다.
그때는 겨우 아이큐 10을 올리기 위해서 거금 2,000포인트를 투자하는 것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중수에 이른 지금은 2,000포인트 정돈 어지간한 미션 착수금 수준.
막말로 빻은 얼굴같은 미션 하나만 성공해도 아이큐 50을 올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럼 147.
무려 상위 0.1프로 안에 들어가는 수치다.
바보도 천재가 될 수있다.
‘2,000 포인트에 10씩 오르는 거 맞지? 그럼 10,000 포인트 때려 박으면 50씩 올릴 수 있는 거고.’
[아, 제가 상세한 설명을 빠뜨렸군요.]
‘뭐야? 또 내가 모르는 게 있어? 설마 레벨업 시스템처럼 가격이 막 두배 씩 뛰고 그러는 거야 이것도?’
[아닙니다. 2,000 포인트당 10씩 오르는 것은 유효합니다. 다만 스펙을 올려주는 열매는 체내에 완벽히 흡수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시간이 필요하다?’
[말 그대로입니다. 효과가 즉각 적용되지 않고 서서히 체내에서 흡수되는 식이거든요.]
‘그럼 열매를 먹자마자 아이큐가 바로 오르는 건 아니란 말이네?’
[네. 통상 열매의 효과가 온전히 적용되는 데 5개월 가량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뭐라고!"
나는 도서관에 있다는 사실도 까먹고 혼자 흥분해 소리치고 말았다. 갑자기 사람들 이목이 쏠리자 민망한 마음에 벌떡 일어서 죄송하다고 말한 뒤 도서관 밖으로 나갔다. 괜히 혼잣말을 한 게 창피해 핸드폰 통화를 하는 척 꾸미기까지 했다.
"아씨, 쪽 팔리게. 다시 설명해봐."
[열매류는 근원 스펙을 올려줄 수 있는 아이템입니다. 지능 열매뿐만 아니라 키, 다른 것이든 마찬가지죠. 쉽게 생각하시면 열매 하나 먹었다고 곧바로 10cm씩 자라는 것은 남들이 보기에도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키가 자라는 것처럼 천천히 진행된다는 뜻이야?’
[5개월 만에 10cm가 크는 것도 이례적인 성장이죠. 지능 역시 마찬가집니다.]
‘아니 이건 그럼···. 가만 내가 10,000포인트로 열매 5개를 사서 한 번에 먹었다고 쳐보자고. 그럼 50이 오르는데 걸리는 시간은···.’
[역시 소화율에 제한이 있기 때문에 25개월 가량이 걸리게 됩니다.]
‘2년이 넘게 걸려?’
[네.]
‘그럼 지금 먹어도 4학년 돼서 임용칠 타이밍이네?’
[그렇게 되겠네요.]
‘하-. 이건 무슨 아이큐 10 올리는데 반년가까이 기다려야 하다니. 일단 알았어. 어쨌든 확실한 건 이번 기말시험 볼때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소리군.’
[그렇죠.]
‘이럴 거면 일찍 일찍 말해줬어야지. 그럼 개강할 때 미리 먹어뒀을 거 아냐?’
[그땐 사고 싶어도 포인트가 없었던 때니까요. 주인님도 구매의사를 보이지 않으셨고요.]
‘참나.’
도서관 밖에서 한창 로시와 옥신각신하고 있는데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도훈 오빠?"
***
"설수지?"
"도훈 오빠 맞네요. 멀리서 보고 긴가민가 했는데."
도훈에게 말을 건 여학생은 일전 소개팅으로 인연을 맺은 법대생 설수지.
도훈처럼 기말고사를 일찍 준비하던 그녀는 먼저 도서관에 와 공부를 하던 중 열람실에서 크게 소리치던 도훈을 우연히 목격하게 되었다. 혹시나 해서 뒤따라왔더니 아니나다를까 도훈이 맞았다.
오랜만에 본 반가움도 잠시, 수지가 토라진 표정으로 말했다.
"···저한테 할 얘기 있지 않으세요?"
"그, 그렇지?"
"휴게실에서 잠깐 커피 한 잔 해요."
수지는 대답도 듣지 않고 열람실 밖에 설치된 자판기로 이동했다. 혹시나 아는 사람을 만날까 사범대 도서관을 피했던 도훈은 결국 이곳에서 법대생 설수지를 맞딱뜨린 것이다.
‘젠장. 오늘 공부는 물 건너갔네.’
커피를 뽑아 놓고 간이 테이블에 앉은 두 사람은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빠 저한테 좀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미안."
도훈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소개팅에서 원나잇까지’ 미션을 마친 뒤, 먹튀하듯 연락을 끊어 버린 것이다.
간간이 메시지를 날리던 수지는 언젠가부터 대답 없는 도훈을 포기했는지 연락을 중단했고 그렇게 인연이 자연스럽게 끝나는 줄만 알았다.
‘젠장. 재수도 없지. 하필 여기서 수지를 만나냐.’
[여자가 늘다 보니 이제 사범대 아니어도 여자들과 부대 끼는 상황이 연출되는 군요.]
‘수지가 모범생이란 걸 알고 있었는데···. 내가 철저하지 못했네.’
"솔직히 저 실망했어요. 그래도 언니가 소개시켜 준 사람이라서 믿고 있었는데."
도훈은 미안한 마음에 한숨만 푹 내쉴 뿐이었다.
그녀와 다리를 놓아준 사람은 다름아닌 성수.
물론 나중에 사정을 알고보니 흑막을 가장한 나예림의 음모(?)때문이었지만, 어쨌든 외부로 보이는 모양새는 지인이 소개시켜 준 여자를, 원나잇으로 따먹고 연락 두절한 상황이었다. 지탄을 피하기 어려웠다.
‘아니 근데, 소개팅 한 번 했다고 꼭 사귀어야 되는 법은 없지 않나?’
[그럴거면 애초에 건드리지 마셨어야죠.]
‘남녀가 눈맞으면 한번 잘 수도 있지. 뭘 요즘같은 세상에.’
[설수지양은 그게 아니었을지도.]
‘아니 막말로, 수지가 막 순진무구한 여자애도 아니잖아? SNS에선 완전히 노출증 환자 수준이더만.’
[그렇다고 해서 여자의 순정을 짓밟아선 안 됩니다.]
한껏 서운함을 드러낸 수지가 도훈에게 물었다.
"오빤 요새 뭐하고 사셨어요?"
"나? 뭐 그냥···."
도훈은 수지와의 소개팅 이후로도 위업과 미션을 위해 여자들을 따먹고 다닌 기억밖에 없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했다간 더 실망할까 봐 적당히 둘러댔다.
"···그냥 뭐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하고."
"그때 그 언니랑 다시 만나는 거 아니죠?"
"누구?"
"있잖아요. 저 협박했던 여자."
"아아, 아니. 그때가 마지막이었어."
"전 제 연락 씹으시길래 그 여자한테 간 줄 알았잖아요."
"그런 거 아니라니까."
‘흐음. 수지가 아직까지 나에게 미련이 있는 모양인데.’
[그래 보이는 군요.]
‘이럼 곤란한데.’
[더 인연을 유지할 필요가 없으시면 손절 하시면 그만이지 않습니까? 수단이 없는 것도 아니고요.]
도훈에겐 인연의 실을 끊을 수 있는 가위가 있었다.
하지만 도훈은 인간적인 미안함과 더불어 전마누라 사건을 위해선 법조인 가문이라는 수지의 배경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에 쉽게 끊어내질 못했다.
‘일단 정보창부터 띄워봐. 어떤 상태인지 봐야겠어.’
[네, 수지양의 정보창을 띄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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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설수지 (비처녀, 22세 3개월)
나이 : 22 #처녀빗치 #교회녀 #개과천선
호감도 : 87/100
개방성 : S(조건부)
성감대 : 후장, 회음부, 등판 전체
*애무 포인트 : 애널 섹스에 환장합니다.
성욕지수 : 극단적으로 높음.
공략팁
*위 대상을 공략하여 '소개팅에서 원나잇까지'위업을 달성하였습니다.
*위 대상은 당신에게 처녀를 바쳤습니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려서부터 엘리트 교육을 받았습니다.
-교양과 기품 넘치는 습관이나 행동 탓에 그녀는 무척 사랑스러운 여대생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녀에겐 남모를 비밀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모태신앙으로 믿게 된 교회에서 교회 오빠 한명과 비밀리에 교제하였습니다.
-그녀와 사귄 교회 오빠는 무척 독실하고 품행이 단정한 학생이었지만, 실상은 애널섹스를 밝히는 지독한 변태였습니다.
-그녀는 첫사랑에게 조교를 받아 처녀를 훼손시키지 않고 후장만 뚫리는 기형적인 성행위를 즐겨왔습니다.
-하지만 독실한 신자였던 교회 오빠는 아프리카로 선교 활동을 떠나며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녀는 다른 남자를 만나지 못하고 부족한 성욕을 채우기 위해 인스타에서 노출을 즐겨왔습니다.
-하지만 당신을 만난 이후로 그녀는 바뀌었습니다.
-그녀는 SNS를 모두 탈퇴하고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며 살고 있습니다.
-그녀는 당신에게 더 가까이 다가서고 싶지만,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그릇된 행동 때문에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추천 멘트 : "나도 네 생각 많이 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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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의 정보창을 읽은 도훈은 그녀가 SNS를 끊었다는 소식에 무척 놀랐다.
‘어랍쇼? 개과천선이라니.’
[설명대로네요. 더 이상 노출을 즐기지 않나 봅니다.]
‘그랬구나. 하긴 나예림에게 그런 협박까지 당했으니 많이 놀랐을지도. 신분이 노출되는 두려움도 있을 거고.’
[어쩌면 주인님 때문일지도 모르죠.]
‘나? 나는 왜?’
[수지양이 노출증을 즐기게 된 이유는 그녀의 첫 남친이었던 교회 오빠라는 사람의 후장조교 때문이었습니다. 시작부터 왜곡된 성욕으로 꼬인 그녀는 익명으로 노출을 즐기며 아쉬운 성욕을 달래왔죠.]
‘그렇지. 근데 수지가 바뀐게 왜 내 탓이야?’
[주인님이 그녀의 아쉬웠던 부분을 채워주셨으니까요.]
‘아!’
[주인님에게 순정을 바친 후 수지양은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않게 된 것이죠.]
‘내가 그녀를 구제한 셈인가?’
[구제라기 보다는···. 뭐, 치유라고 해두죠.]
‘그나저나 그래서 잘 연락을 못 했나보구나. 내가 자기 과거 때문에 찝찝해 하는 줄 알고.’
[아무래도 신경 쓰일 수밖에요. 노출증 환자이자 유명한 섹스타인 과거를 들키게 되었으니 당연히 움츠러들지 않겠습니까?]
‘난 사실 다른 미션하느라 바빠서 그런건데.’
[아무튼, 이제 어쩌시겠습니까? 인연의 붉은 실 가위를 꺼낼까요?]
‘잠깐만. 생각 좀 하고.’
수지의 진심을 알게 된 도훈은 도의적인 책임감을 느꼈다.
후장을 먼저 뚫렸다고 한들, 어쨌든 처녀를 빼앗은 건 그였다. 그런 여자가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착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데 정 없이 내치기가 영 껄끄러웠다.
‘수지가 나쁜 애는 아닌데. 그냥 첫 남자를 잘못 만났을 뿐.’
[물론 나쁜 사람은 아니죠. 하지만 이렇게 학교에서 마주치는 여자들이 많아지게 되면 언젠가 곤란한 상황에 처할 겁니다.]
‘알아. 그래서 고민하는 거잖아.’
사실 도훈은 로시에게 밝히지 못한 또다른 고민도 있었다.
그것은 바로 수지가 법조인 가문의 딸이라는 사실.
현재 2심이 진행 중인 전 마누라의 복수를 위해서라면 그녀의 조력이 필요할지도 몰랐다. 최소한 가까이 두고 지내면 손해는 안 볼 사람이었다. 그러나 로시에게 그 얘기를 했다간 당장 그만두라고 할 게 뻔했으므로 도훈이 말을 둘러댔다.
‘내치자니 너무 미안해서 안 되겠다.’
[네?]
‘아니, 소개팅으로 만나서 따먹기까지 해놓고 잘라내자니 너무 먹튀 같잖아.’
[주인님이 언제부터 그런 걸 따지셨다고···.]
‘그래도 이건 좀 심하지. 지금 돌아서면 내가 자기 과거 때문에 멀리한다고 마음 상할 거 아니야.’
[주인님, 인연의 붉은 실 가위는 과거의 기억을 흐릿하게 만들어 줍니다. 물론 과거에 그녀가 SNS로 노출을 했고, 그로 인해 협박을 받았으며, 주인님과 소개팅을 했다는 기억은 남겠지만 아주 오래전 일처럼 희미하게 떠오를 뿐입니다. 걱정하실 필욘 없습니다.]
로시가 거듭 설득했지만 꿍꿍이가 있는 도훈은 애둘러 거부했다.
‘물론 네 말이 맞을지도 몰라. 그냥 잘라내면 깔끔하겠지. 그래도 인간적인 미안함이 남을 거야. 사람들은 그걸 죄책감이라고 부르지.’
[말도 안 돼. 다른 사람도 아닌 주인놈이요?]
‘뭐인마? 방금 일부러 그랬냐?’
[아, 실수입니다.]
‘아니 다른 것도 아니고 처녀를 받쳤잖아. 그에 대한 책임은 어느 정도 져야지.’
[책임을 지다니, 어쩌시려고요?]
‘뭐 꼭 책임진다는 게 사귄다는 의미는 아니잖아?’
결심을 굳힌 도훈이 수지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정보창 멘트에서 추천한 그대로였다.
"수지야."
"네?"
"실은··· 나도 네 생각 많이 나더라."
< 805. 기말 시즌-5-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