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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819화 (787/2,000)

< 801. 기말 시즌-1- >

"많지. 얼굴은 무슨 선녀님처럼 예쁘다는데, 점을 귀신같이 잘 맞춘다는 거야."

"그래요?"

"아마 대대로 무당 집안이라 더라고. 아마 아버지가 전국구로 유명했던 박수무당일걸?"

"아···. 그런것도 유전이 되나 보네요?"

"그건 나야 모르지. 암튼 그 집안은 확실히 대대로 유명했다고 해.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 토정 이지함 선생의 후계라는 말도 있고."

[플레이업니다.]

‘뭐?’

[조선 시대 토정 이지함은 유명한 플레이어였습니다.]

‘헐, 대체 위인 중 플레이어가 아닌 사람을 찾기가 어렵네. 이지함이 토정비결을 쓴 그 사람 말이지?’

[네. 사주 중 생년월일과 육십갑자를 이용해 한 해 동안의 운을 점치는 일종의 도참서라고 할 수 있죠.]

‘가만. 플레이어의 후손이 플레이어를 물려받기도 하나?’

[그렇진 않습니다. 그게 가능했다면 주인님 같은 플레이어는 종마로서 사육당했을 테니까요.]

‘종마라니 무슨 말을 해도···.’

[아무튼 소문이 정말 사실이라면 공교로운 인연이군요. 플레이어의 후손을 공략하는 미션이라.]

"신기하네요. 근데 그렇게 유명하면 복채도 비싸지 않을까요?"

"아닐걸?"

"네?"

택시기사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지리산 처녀 보살이 지금처럼 유명해진 건 사람에 따라 복채를 가려 받기 때문이라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가난한 사람에겐 조금만, 넉넉한 사람에겐 많이. 한마디로 점치러 온 사람 경제 수준에 맞게 복채를 받는 걸로 유명하지."

갑자기 도훈은 의문이 들었다.

"만약에 부자가 가난한 척 속일 수도 있는 거잖아요. 복채 덜 내려고."

"그러니까 용하다는 거야."

"네?"

"겉모습이 아무리 남루해도 부자를 알아채고, 또 가난을 아무리 숨기려 해도 귀신같이 알아맞히더란 말이지. 그것만 봐도 얼마나 용한지 알 수 있지."

‘헐. 저게 정말로 가능한 이야기야? 혹시 정말로 플레이어의 피를 이어 받았나?’

[살짝 의심스럽긴 하네요.]

"자네가 한 번 맞춰보게. 내가 가난해 보이는가, 아니면 부자 같은가?"

택시기사가 뜬금없이 질문을 던졌다.

도훈이 황당함에 말을 잇지 못하자, 택시기사가 계속 말했다.

"봐. 쉽지 않지? 개인택시나 모는 걸 보면 부자일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저런 질문을 던진걸 보면 어쩌면 부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잖아?"

택시기사의 말장난에 도훈이 살짝 약이 올랐다.

‘흥. 내가 맞추라면 못 맞출 줄 알고? 로시 마음의 소리.’

도훈이 스킬을 발휘하자 택시기사의 속마음이 들려왔다.

<흐흐. 내가 3년전에 로또 1등 당첨되고도 주변에 부자인 걸 숨기려고 택시 운전을 계속 하는 걸 꿈에도 모르겠지?

"제가 맞추면요?"

속마음을 읽은 도훈이 받아치자 택시기사가 배짱을 튕겼다.

"맞추면 택시비는 안 받겠네."

"정말이죠?"

<크크크. 절대 못 맞출걸?

택시기사는 평소에도 내기를 즐기는 타입이었다.

도훈은 기사의 관상을 보는 것처럼 꼼꼼히 살피더니 말했다.

"인중이 넓고 콧등이 낮은 걸로 보아 초년에 고생좀 하셨겠네요."

"오잉? 자네 관상도 볼 줄 아는가?"

도훈은 대꾸하지 않고 계속 씨부렸다.

"헌데, 특이하네요. 윗입술이 얇은 데 반해 아랫입술이 도톰한 것이 말년 운이 제법 있는 편이세요. 특히 인중이 길면서 아랫입술이 두꺼우면 보통 재물복을 의미하거든요."

"오오, 계속 해보게."

[주인님, 관상도 볼 줄 아십니까?]

‘그냥 막 지껄이는 거야. 그럴듯해?’

[역시 사기꾼!]

"혹시 올해로 춘추가 어찌 되십니까?"

"60년 개띠."

"무술년에 이 팔자면···. 어디 보자."

도훈이 뭔가를 계산하는 것처럼 손가락을 하나씩 접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손가락을 세 개 쯤 접었을 때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어엇! 최근에 크게 재물운이 들어오셨겠는데요? 혹시 로또 되셨어요?"

"어엇! 마, 말도 안돼!"

"맞죠? 부자시네! 기사 아저씨 돈도 많으신 것 같은데 왜 택시 운전 계속하세요?"

도훈이 속마음을 훤히 읽고 관상을 본 것처럼 꾸미자 택시 기사가 흥분해 대꾸했다.

"아, 아니 그게 평생 해온 일이기도 하고 괜히 주변에 소문 날까봐···. 근데 어찌 그리 용한가? 혹시 점집을 찾아가려는 게···."

도훈이 뻔뻔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아래 태양이 두 개 일 순 없으니까요."

"오오! 혹시 이게 말로만 듣던?"

"네. 도장 깨러 갑니다. 여기 유명한 보살님이 있다는 걸 저도 들었거든요."

"세상에!"

'정확히는 아다깨러 가는거지만.'

도훈의 허풍에 택시 기사는 껌뻑 속아 넘어갔다.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한 택시 기사는 요금을 준다는 도훈의 제안을 한사코 거절했다.

"약조했던 데로 요금은 받지 않겠네. 근데 정말 용하구만. 혹시 이름이라도 알려줄 수 있는가? 자식 놈이 하나 있는데 나중에 한 번···."

"다물."

"다물?"

"네. 다물 이도훈 도사라고 합니다."

"오오. 나중에 꼭 찾아봄세."

"아무튼 감사했습니다."

공짜로 택시를 타고 온 도훈을 향해 로시가 말했다.

[와, 정말 사기가 경지에 이르셨군요. 어떻게 무임 승차를 다 하십니까?]

‘왜? 정말로 돈 많은 양반이잖아. 그것 좀 못 번다고 큰일 날 것도 아니고.’

[근데 다물이 뭡니까?]

‘대물이라고 하려다가 너무 창피하더라고. 그래서 다물.’

[그냥 입을 다무시는게.]

‘닥쳐.’

도훈은 주차 시킨 장소로 이동하며 계속 로시와 말했다.

‘근데 갑자기 그런 의문이 드네?’

[어떤?]

‘만약 처녀 보살이 능력자라면 어떻게 되는 거야?’

[플레이어라면요?]

‘응. 플레이어끼린 서로 모르게 되어 있잖아. 근데 모르고 만났는데 정말로 플레이어면?’

[흐음. 우연히 만난 것으로 제재를 받진 않습니다만. 나중에 랭커가 되면 접선도 가능하니까요. 하지만 정말로 처녀 보살이 플레이어일까요? 아까도 말했지만 플레이어의 특성은 유전되지 않습니다.]

‘아니 내가 방금 보니까 몇 가지 능력만 활용할 수 있으면 얼마든지 점을 볼 수 있겠더라고.’

[그렇죠. 속마음을 훤히 읽을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이번 미션에 걸린 역학 스킬로 봐선, 점괘를 보는 것도 능력으로 어느정도 커버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렇긴 합니다만···. 만약 플레이어라면 미션과 별개로 업적 달성도 가능합니다.]

‘업적? 진짜? 설마 플레이어를 따먹는 업적도 있어?’

[네. 물론 조건부긴 합니다만, 플레이어를 공략하는 업적이 존재합니다.]

‘디스플레이에 띄워봐.’

[넵.]

78. 플레이어끼리 그러는 거 아니야. (이성의 플레이어를 공략시 달성)

-당신은 이제 동종업계까지 탐하시는군요.

-업적보상 : 플레이어 탐지(패시브 스킬)-또 다른 플레이어와 조우 시 상대의 능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랜만에 등장한 업적에 도훈이 흥분했다.

‘오! 잘하면 미션박고 업적까지?’

[아직은 모릅니다. 처녀 보살이 플레이어라는 건 주인님의 추정일 뿐이니까요.]

‘어쨌든 미션 달성은 확실한 거잖아. 근데 탐지 스킬은 또 뭐야? 정보창으로 볼 수 있는 거 아니었어?’

[주인님의 정보창 스킬은 평범한 인간에게만 통하는 스킬입니다. 플레이어나 혹은 Pk단에겐 무용지물이죠. 상대의 스킬을 안다는 것은 또 다른 말로 상대의 강점과 약점을 모두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니까요.]

도훈은 갑자기 뭔가에 생각이 미쳤다.

‘잠깐. 혹시 저 스킬 플레이어뿐만 아니라 PK단의 능력도 탐지할 수 있는 거야?’

[맞습니다.]

‘헐, 그럼 대박이잖아?’

[물론 그렇긴 한데 일반적으로 플레이끼리 조우할 확률은 높은 편이 아닙니다. 게다가 여성 플레이어를 만날 기회에, 그 여성이 주인님에게 공략당할 가능성까지 고려하면 위 위업은 굉장히 난이도가 높은 편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내가 여자를 만났는데 공략을 못 하다니?’

[만약 처녀보살이 정말로 플레이어라면 주인님의 스킬을 무효화 시키거나, 반격할 수 있는 수단도 있다는 말이죠. 인간 대 인간의 대결이 아닙니다. 플레이어 대 플레이어니까요.]

‘아아···. 듣고보니 장난 아닌데?’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처녀 보살이 정말로 플레이어라면 주인님은 미션마저 달성이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일석이조가 아니라 일거양실(一擧兩失)이 될 수도 있다는 거죠.]

‘흐음.’

도훈은 고민하는 표정으로 차가 주차된 담벼락 너머를 응시했다. 그곳은 지리산 처녀보살이라는 명패가 걸린 아담한 주택이었다.

‘온 김에 확인해 볼까?’

[누굴요? 지리산 처녀 보살요? 아까 소금 뿌리고 쫓아냈는데 만나나 주겠습니까?]

‘하긴. 지금은 무리겠구나. 얼굴이 원상태로 돌아오면 다시 가봐야 겠다.’

[차라리 그편이 낫겠습니다.]

미션 완료까지의 기간은 넉넉히 남아있었다.

도훈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장기간의 미션을 소화해 낸 만큼 휴식이 필요했던 도훈은 남은 일요일 오후를 푹 잤다.

***

"기말고사는 5지 선다형으로 모두 객관식입니다."

"과목 특성상 논술 평가로 하겠어요."

"기존의 레포트 제출한 거랑 마지막 과제물로 대체 되는 거 아시죠?"

이번 주는 들어간 수업마다 기말고사에 대한 예고로 한참이었다. 아직 2주 가량 남았지만, 서서히 기말 시즌이 도래하는 것이 느껴졌다.

"형은 좋겠어요."

함께 수업 마치고 나온 태영이 말했다.

"뭐가?"

"공부 엄청 잘하시잖아요."

"인마. 열심히 하니까 성적이 나오는 거지."

태영을 말을 듣자 슬쩍 걱정이 들었다.

최근 미션 수행으로 밖으로 쏘다닌 결과 복습을 철저히 못 한 것이다. 중간까지 성적을 잘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남들이 노는 동안 쉬지 않고 공부했기 때문인데 그것을 충실히 못 했다고 생각하자 가슴이 답답했다.

‘안되겠다. 오늘부터라도 도서관 끊어야지. 뭐하면 현자타임이라도 써서 머리 팽팽 돌아가게 만들면 되지.’

도훈이 기말고사를 걱정하는데 태영이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

"참, 오늘 보기로 했죠, 저희?"

"누굴?"

"왜, 그 조 발표로 기말 대체한다던 교양 과목요. 쌍둥이."

"아아, 쌍둥이!"

금토일 내리 호빠를 출근하느라 깜빡 잊고 있었다.

쌍둥이 자매를 만나기로 한 날이 바로 오늘이라는 사실을.

‘휴, 태영이 아니었음 까먹을 뻔 했네.’

[정신 차리셔야 합니다. 쌍둥이 신의 축복은 실패하면 저주로 바뀔 수 있으니까요.]

쌍둥이 신은 축복이라는 이름 아래 미션이 실패할 경우 강력한 저주를 하나 걸어두었다.

그것은 바로 쌍좆의 저주.

영원한 건 아니지만, 무려 3달간 좆이 두 개가 되는 패널티가 걸린 신의 도전 과제다.

‘좆병신이 될 수 없지. 과제의 제한 조건이 언니 먼저 동생 다음, 그리고 자매덮밥까진가?’

[네, 맞습니다. 성공할 경우 아이템 복제기가 들어오고요.]

‘오케이. 그나저나 쌍둥이 언니를 연기했던 정란이 어떻게 나올지 기대되는군.’

"어, 그러고 보니까 점심 먹고 바로 조모임 가야 할 것 같은데요? 오전에 단톡방 보니 점심 시간에 잠깐 보자던데."

"그래? 그럼 후딱 먹어야 겠네."

나는 태영과 함께 학식으로 빠르게 점심을 해치웠다.

짜여진 시간표상 주어진 점심시간은 2시간 남짓.

점심을 30분 만에 후다닥 때우고 약속 장소인 교내 까페로 이동했다.

"저기 있네요."

"누구? 쌍둥이 안 보이는데?"

"아, 형 모르시겠구나. 저희 조원 모두 다섯이에요. 저기 저 남자애도 우리조 거든요."

태영이 처음보는 남학생에게 다가가더니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그때 같은 조···."

"오셨네요. 저기 죄송한 말씀부터 드리려고."

같은 조원이라는 남학생이 굳은 표정으로 태영에게 말했다.

"저 영장 나왔어요."

"네? 구속 영장요?"

"···예? 아, 아니 입영 통지서요."

"아아, 죄송합니다. 제가 미필이라."

"원래 해병대 가려고 지원서 내놨는데 덜컥 붙어버렸네요."

"어? 근데 1학기는 마치시고 가는 거 아니에요?"

"날짜가 좀 애매해요. 기말 직전에 훈련소 입소해야 하거든요."

"아니 그럼···."

"학생처에 문의했더니 이제와 중도 휴학은 힘들다네요. 그래서 교수님들한테 사정을 말했더니 이런 경우엔 중간고사 성적에 준해 기말 학점을 주신다더라고요."

"그럼 저희 조발표는요?"

"그래서 죄송하다는 말씀 드리려고요. 아무래도 참여를 못 할 것 같아서···."

"네?!"

황당한 소리였다.

5명씩 강제로 배정된 조에서 어처구니 없는 이탈자가 생겼다. 하지만 군대를 끌려간다고 하는 사람을 붙잡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내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이건 어쩔 수 없네요."

"도훈이형. 그럼 저희조는 4명이서 다 해야 하는데?"

태영은 그것이 불만인 듯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입을 하나라도 줄이면 더 많이 먹을 수 있는 것처럼, 어려운 일을 할 땐 손 하나가 아쉬운 법이다. 나는 좋은 말로 태영을 타일렀다.

"인마. 다른 것도 아니고 군대 간다잖아. 기말 전에 입영이면 남은 날짜가 10일 남짓밖에 안 남았는데 학점하고 상관도 없는 조 발표 준비나 하다 가야겠냐? 입장바꿔서 생각해봐."

태영은 설득을 당했는지 선배 앞이라고 대꾸를 못 한 거지 입을 꾹 다물었다. 어쨌든 본인도 불가피한 사안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나의 말에 해병대에 입대하기로 한 청년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본의 아니게 제가 민폐를 끼치게 됐네요."

"괜찮아요. 어떻게든 남은 조원끼리 해봐야죠."

"감사합니다. 사실 그 말씀 드리려고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죄송한데 나머지 조원들한테도 사정 좀 전해주세요. 전 이만 가볼 데가 있어서."

"네?"

입영을 앞둔 청년은 기다렸다는 듯이 옆자리에 조용히 앉아있던 여자친구의 손을 잡더니 까페를 나가버렸다. 심지어 여친이 예뻤다.

"와, 씨. 그 새 단톡방도 나가버렸네."

왠지 패배한 느낌의 태영이 폰을 쳐다보며 말했다.

< 801. 기말 시즌-1-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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