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817화 (785/2,000)

< 799. 빻은 얼굴도 할 수 있어.-49- >

도훈의 입장에선 어차피 마지막 미션 대상으로 점찍은 상대였기 때문에 텐프로 셋과 헤어지자마자 최마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최마담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뭐지? 연락하라고 해놓고 씹는 건가?’

도훈이 잠시 길에 서서 담배를 태우고 있는데 최마담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이제 깼니? 미안. 잠시 점집에 있느라.

"점집이요?"

-응. 가끔 심심하면 놀러오는 데거든. 안 바쁘면 이쪽으로 잠시 올래?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은데. 아니면 내가 가도 좋고.

일요일 오후라 딱히 할 일이 없었던 도훈은 자기가 가겠노라고 대답했다.

-그럼 위치 남겨 줄 테니까, 이쪽으로 와서 전화 줘.

담배를 비벼 끈 도훈은 차를 몰고 최마담이 알려 준 점집으로 갔다. 외곽이 위치한 그곳은 차를 몰고 40분은 달려야 나왔다. 오래된 주택가 골목이었는데, 곳곳에 점집을 드러내는 표시인 대나무 솟대가 세워져 있었다.

‘별 희한한 취미가 있네. 느닷없이 점집이라니.’

[그럴 수도 있죠. 사주나 관상 좋아하는 사람도 제법 많지 않습니까?]

도훈이 네비를 따라 알려준 목적지에 도착하자 평범한 가정집이 나왔다. 커다란 명패에는 간판처럼 독특한 상호가 적혀 있었다.

<지리산 처녀보살

‘지리산 처녀 보살이라고? 저게 무슨 해괴한 조합이람?’

지리산은 삼도에 걸쳐있는 남부지방의 대표적인 명산이다. 도훈은 점을 치는 사람이 전라도 쪽 출신인가 생각했다.

‘보통은 계룡산 같은 곳을 최고로 치던데, 게다가 처녀 보살이라니.’

[그건 왜요?]

‘저래놓고 보통 40대 아줌마 같은 여자가 나온단 말이지. 처녀인지 줌마인지 알게 뭐람?’

[혹시 전생에서도 점을 자주 보셨습니까?]

‘전혀. 난 괴력난신에 대해선 전혀 믿지 않았거든.’

[지금은요?]

‘믿어야지 별수 있나. 내가 그 증거인데.’

도훈은 가게 앞 도로에 차를 주차 시킨 후 최마담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 도착했어요."

-왔니? 아직 더 걸릴 것 같은데 잠깐 들어와 기다릴래?

"들어오라고요?"

-응. 지금 보살님 지금 부적 쓰고 계시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 부적만 받아서 가면 돼.

"알겠어요."

딱히 구미가 당기는 건 아니었지만 차에서 계속 차에서 기다리기 뭐했던 도훈은 지리산 처녀보살 집으로 들어갔다. 외관은 일반 단독 주택같은 모습이었지만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내부의 인테리어가 확실히 독특했다.

벽면에는 달마도니 팔괘니 희귀한 문양과 그림들이 잔뜩 가득 걸려있었고, 집안에서 구석구석에 미미하게 향냄새가 풍겨 나왔다. 최마담은 응접실처럼 보이는 거실 소파에 혼자 앉아있었다.

"왔니? 이쪽에 앉아."

도훈은 머쓱해하며 옆자리에 앉았다. 이동 중에 빻은 얼굴로 바꿔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최마담은 의심하지 않았다.

"혹시 점 보는 게 취미세요?"

"나?"

"네. 전 이런 곳 처음 와보거든요."

"사실 드나든지 얼마 안됐어."

"그래요?"

"실은 나 스폰 해주는 사장님 단골 가게라서 몇 번 따라온 게 전부거든."

"사장님이라면···."

"중소기업 운영하시는 분이셔. 그 양반이 엄청 용하다고 하더라고. 자기가 사업 할 때마다 점을 쳤는데 귀신같이 맞추더라나? 잘은 모르지만 이 분야에선 나름 유명한 분이래."

"그렇군요. 근데 어디 그 분은 어디 계세요?"

"안방에서 부적 쓰고 있어. 같이 있으면 부정 탄다면서 나가 있으래서."

"아하."

"사실 나도 점만 보고 대충 갈랬는데 최근에 마구니가 들러 붙는 다면서 부적을 쓰고 가라는 거야. 그래서 계속 기다리는 중이야."

"왠지 상술 아닐까요?"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래도 지갑에 부적하나 넣어 가지고 다니면 왠지 든든하잖니."

"그걸로 심신이 안정을 느낀다면 돈값은 하겠네요."

"그나저나 온 김에 너도 한 번 점이나 한번 보다 갈래?"

"제가요?"

"응. 평소 사주 같은 거 궁금하지 않았어? 관상이나 손금도 좋고. 이 분 정말 용한게 안다루는 분야가 없어."

"괜찮아요. 굳이."

도훈은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곧바로 거절했다.

최마담은 몇 번 더 권하다 결국 포기했다.

"하긴, 나도 첨엔 너처럼 싫다고 했어. 괜히 안 좋은 소리 들으면 기분 나쁠까 봐."

"그러니까요."

"아무튼, 그건 그렇고 어젠 왜 말도 없이 갔니?"

별 내색 없던 최마담이 갑자기 본론으로 들어갔다. 도훈은 미리 준비한 답변을 늘어놓았다.

"어제 그 아가씨들 중에 술을 안 마신 손님이 있었거든요. 배웅하러 나갔는데 갑자기 저보고 어디사냐고 물으시더라고요."

"그래서?"

"가는 길이면 집까지 태워주신다고 해서."

"그래서 인사도 없이 쪼르르 먼저 간 거야? 택시비는 나도 줄 수 있는데."

최마담은 몹시 섭섭해했다.

가면 간다고 말이라도 했다면 이렇게 서운하진 않았을 것이다.

"죄송해요. 저도 경황이 없어서 약속이 있는걸 깜빡해버렸어요. 119대원이 호출해서 물어보고 그러다 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참 동탁이 형은 좀 어때요?"

도훈이 자연스레 화제를 돌렸다.

"괜찮은 거 같아. 통화하니까 그러더라. 구급차 부를 정도는 아니었는데, 괜히 쪽팔리게 됐다면서. 혹시 몰라 전체적으로  검진까지 했는데 큰 이상 없었데."

"그렇구나. 아마 피로 누적인가 봐요. 평소에도 술을 많이 드시니까 늘 피곤해 하시잖아요."

"그렇겠지. 너도 평소에 건강관리 잘해. 젊다고 막 굴리다간 훅 간다 진짜."

"네."

도훈의 대답을 들은 최마담은 조금 찝찝한 구석이 있었지만 굳이 파고들지 않았다. 어쨌든 표면적으로나마 사과를 하는 모습에서 지난 일은 묻어두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이렇게라도 다시 봐서 다행이야. 너 다신 못 보나 했는데."

"다신요? 왜요?"

"언니 오늘부터 다시 출근해. 난 잠시만 가게 맡고 있던 거잖아. 너도 주말에만 나온다며 당분간은."

"아, 그럼 어제가 마지막 날이셨구나."

"그러니까 너랑 술 한잔 마시려고 했지. 단둘이서."

최마담이 깊이 패인 상의를 일부러 숙이며 도훈에게 몸을 기울였다. 노골적인 섹스 어필에 도훈이 주춤 물러났다.

"근데 저랑은 왜요?"

"몰라서 묻니?"

최마담은 옆에 앉아있는 도훈의 허벅지를 노골적으로 더듬었다.

"은근 눈치가 없네. 내가 너 마음에 들어하는 거 몰랐어?"

"사장님께서요?"

"그냥 누나라고 불러. 난 경원이야. 최경원. 이름 좀 촌스럽지?"

"아니에요."

"업소 출근할 땐 유리라는 가명을 썼어."

"혹시 지금도···."

도훈이 조심스럽게 말꼬릴 흘렸다.

지금도 업소를 뛰냐고 묻기엔 경원의 나이가 다소 많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새벽에 어울이던 20대 후반의 장미만 해도 노익장 취급을 받는 세계다. 30대 중반에 다다른 최마담이라면 현역이라 부르기엔 다소 무리가 있었다.

"아니. 예전엔 그랬다는 거지. 난 요샌 그냥 놀아. 백조랄까? 아까 말한 스폰이 원체 짱짱해서 딱히 일 안 해도 충분히 먹고 살만 하거든. 까놓고 말하면 첩질하고 사는 중이지."

"아···."

"왜? 실체를 알고 나니 별로야?"

"아, 아뇨. 뭐 그냥···."

"솔직히 이쪽 일 오래하다 나이 차면 별 볼 일 없어져. 잘 풀리면 정마담 언니처럼 사장님 소리 듣는 거고, 안되면 그냥 모아놓은 돈으로 가게 열거나 나처럼 스폰 하나 물어서 기생하는 수밖에."

"그렇군요."

"너도 이 일 얼마나 할지 모르지만, 너무 깊이 빠지지지 마. 돈 많이 번다고 해도 남는 거 얼마 없다. 쉽게 번만큼 씀씀이만 커져버리니까."

"명심하겠습니다."

"풉-."

최마담이 갑자기 입을 가리고 웃었다.

나이답지 않게 귀여운 모습이었다.

"왜 그러세요?"

"아니. 듣는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넌 참 이런 일이랑은 안 어울리게 생겼는데."

"그렇긴 하죠."

"하긴 또 모르지. 남다른 재주가 있을지도?"

최마담은 도훈의 사타구니를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남의 가게만 아니라면 당장이라도 덮칠 기세였다. 도훈 역시 미션의 마지막 퍼즐을 완성해야 했기에 잠자코 받아주었다.

그때 안방 문이 열리며 누군가 걸어나왔다.

"부적 다 썼···. 누구니 넌?"

한복을 입은 젊은 여자가 도훈을 보고 물었다.

***

다짜고짜 반말을 찍 내뱉는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저보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생김새를 보니 내 예상보다 훨씬 어린 여자였다. 거기다 사극에 나오는 배우들처럼 단아하고 곱상한 얼굴에 살짝 놀랐다. 긴 생머리를 단정하게 뒤로 묶은 머리와 수수한 색의 한복의 조화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헐, 저렇게 예쁜 여자가 무당이라니.’

[예쁘면 무당하면 안되나요?]

‘그게 아니라 그냥 평범하게 다른 일 해도 잘먹고 잘살겠다는 말이었어.’

여자는 한참 나를 쳐다보더니 갑자기 눈을 커다랗게 뜨고 노한 표정을 지었다.

"어디 신들린 놈이 함부로 이런 곳을 넘나드느냐! 썩 물럿거라!!"

"예?"

곱상한 무녀는 갑자기 분노조절 장애가 걸린 사람 빼액 소리쳤다. 전조도 없이 급변한 분위기에 주변 공기가 싸하게 얼어붙었다. 옆에 앉은 최마담도 어리둥절하며 물었다.

"보살님. 갑자기 왜···."

"이 집에서 썩 꺼지라고! 당장!"

처녀 보살은 들고 있던 부적을 내던지더니 나왔던 방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잠시 후 그녀는 알록달록 여러색이 섞인 오방기와 구슬이 달린 물건을 들고 오더니 미친년처럼 흔들어 댔다.

"썩 물러가지 못할까!"

정신없이 방울을 흔들어 대며 깃발을 펄럭이는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미, 미친년인가?’

[주인님. 일단은 피하시는 게 좋겠는데요.]

"보, 보살님. 복채는···."

"꺼져! 얼른 꺼지라고!"

도저히 말이 통할 상태가 아니었다. 최마담은 바닥에 떨어진 부적을 집어 들더니 꾸벅 고개를 숙이고 나를 데리고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뒤를 돌아보는데, 어느새 보살이 조롱박 한가득 소금을 퍼와 마당에 잔뜩 뿌려대고 있었다. 그녀가 나를 똑바로 보며 소리

쳤다.

"다신 오지 마라!"

쾅!

현관문이 잠기는 소리가 났다.

황당한 사태에 최마담이 놀란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많이 놀랬니?"

"왜 저러는 거예요?"

"모르겠어. 가끔 신 내릴 때 정신을 놓긴 하는데, 저런 모습은 진짜 처음 봤어. 아직도 심장이 두근거리네."

"거 참. 제가 점 보겠다고 한 것도 아닌데."

최마담이 나를 위로했다.

"원래 이런 쪽이랑 안 맞는 사람이 있다더라고. 근데 왜 갑자기 너보고 신들렸다고 했을까?"

"그냥 뭐 아무 말이나 한 거겠죠."

하지만 속으로는 제법 놀랐다.

‘제법 영험한 데가 있는 무당이구나.’

[그러게요. 아마도 주인님의 몸에 신의 권능이 깃든 걸 눈치챈 모양입니다.]

‘신기해. 저번에 템플스테이 갔을 때 만난 스님도 그러더니.’

[본래 수양을 깊이 닦은 사람 중에선 플레이어의 기운을 눈치채는 경우가 있긴 합니다.]

‘암튼 뭐, 다시 볼 일은 없으니까.’

띠링-

갑자기 머릿속에 효과음이 들렸다.

아무래도 그냥 스쳐 갈 인연은 아닌 모양이다.

[주인님 미션 알림이···.]

‘젠장. 한 번을 넘어가는 법이 없네.’

예상대로였다.

새로운 장소, 새로운 여자. 처음보는 직업.

조건이 충족되었는지 미션이 생성된 것이다.

‘무슨 말도 안 되는···.’

[미션 내용을 확인하시겠습니까?]

‘일단 띄워 봐. 일어보고 판단하게.’

[넵.]

-처녀 보살을 공략하라.

*신기가 있는 처녀 보살을 공략하는 미션입니다.

*성공 보상으로 '역학' 스킬이 주어집니다.

*제한 조건으로 미션 수행 장소가 ‘점집’으로 고정됩니다.

*제시된 시간을 초과하면 자동으로 미션이 소거됩니다.

*남은 시간 : 1 Month

내용을 보니 평범한 미션이었다.

다만 ‘역학’이라는 스킬이 궁금했다.

‘미션 보상으로 주어지는 스킬 설명은?’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역학(3Lv)

-역학 스킬은 모두 다섯 가지의 세부 스킬로 구성됩니다.

-사주, 명리, 관상, 손금, 풍수

-세부스킬 설명

사주 : 상대와의 속궁합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명리 : 그날의 운세를 점칩니다.

관상 : 상대의 바람기를 예측합니다.

손금 : 지금까지의 남자 경험을 알려줍니다.

풍수 : 상대가 좋아하는 최적의 장소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재사용대기 5시간. (각각의 세부 스킬은 1회로 취급)

-다음 스킬레벨을 올리기 위해선 400포인트 필요합니다.

-다음 스킬레벨에 도달하면 역학의 정확도가 상승합니다.

-다음 스킬레벨에 도달하면 재사용 대기시간이 10% 감소합니다.

엄청난 길이의 설명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우아, 이게 모두 하나의 스킬이라고?’

[역학 스킬은 다섯 가지의 세부 스킬을 하나의 이름으로 묶은 것입니다. 하나하나만 놓고 보면 시시한 스킬일 수 있지만, 한가지 스킬에 다양한 변형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고급스킬에 들어갑니다.]

‘이거 좀 탐나는데?’

[하지만 상대가 상대인 만큼 신중을 기하시기 바랍니다.]

‘무당녀? 왜?’

[주인님을 부정한 존재로 인식하는 데 한 달 내로 꼬실 수 있겠습니까?]

‘하긴···. 그것도 문제구나.’

[어쩌면 최마담에게 부적을 써준 것도 주인님을 경계하는 차원이었을수도 있습니다.]

‘가만. 그럼 아까 그 마구니라는 사람이···.’

[바로 주인님이란 소리죠.]

‘이게 진짜 보자보자 하니까.’

[이름처럼 처녀보살은 처녀이기에 신기를 유지할 수 있을 겁니다. 과연 상대가 호락호락 공략을 당하겠습니까?]

‘그런 소리 들으니까 더 승부욕이 생기는데? 일단 받아.’

[알겠습니다. 미션을 수락합니다.]

"많이 놀랬나 보구나. 계속 말도 없고. 어디 조용한 데서 쉬었다 갈까?"

최마담이 말했다.

< 799. 빻은 얼굴도 할 수 있어.-49- > 끝

ⓒ 성난불기둥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