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810화 (778/2,000)

< 792. 빻은 얼굴도 할 수 있어.-42- >

‘와, 얼굴은 빻았는데 몸 하나는 진짜 끝내주네.’

‘쩐다 진짜. 예전에 다녔던 헬스장 트레이너보다 더 좋은 것 같아.’

‘몸 보니까 그 기둥이가 맞네. 근데 얼굴이 어쩌다 저렇게 망가진 거지? 자세히 보니까 그때 얼굴이 조금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세 여자는 도훈을 보고 저마다 다른 생각을 품었다.

한편 도훈은 자신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끈적하게 변한 것을 느꼈다.

‘이건 마치 내가 희주를 보는 시선같군.’

[과후배 양희주요?]

‘응. 걔가 딱 그렇잖아. 몸짱에 얼꽝. 솔직히 얼굴은 진짜 못 봐줄 정돈데 몸매가 너무 예술이라 꼴리긴 꼴리더라고. 어쩌면 텐프로 아가씨들도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그럼 주인님 얼굴에 저거 씌우면 되겠네요.]

‘저거라니?’

[주인님 등 뒤에 말입니다.]

도훈이 무심코 고개를 돌리자 방금 맥주를 사면서 딸려온 비닐봉지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야이 씨. 봉다리를 얼굴에 왜 씌워?’

[왜요? 주인님이 희주양 놀릴 때 자주 하던 말이잖습니까.]

‘인마. 그거야 농담으로 한 말이지. 질식해 죽일 것도 아니고. 그리고 희주도 자꾸 보니까 점점 괜찮아 보이긴 하더라. 정이 들어서 그런가?’

[그보다는 마법의 정액 탓일 겁니다. 피부도 좋아지고 점점 얼굴도 예뻐지고 있는 중이니까요.]

‘그러네. 희주 자주 봐서 미인 만들어 줘야 하는데.’

"자자, 어쨌든 여름이도 나왔으니 다 같이 한 잔 더 할까?"

장미가 다시 페이스를 끌어 올렸다. 그녀는 어떻게 해서든 나머지 두 사람을 보내버릴 생각이었기 때문에 틈만 나면 건배를 외치는 중이었다.

도훈과 여름, 그리고 장미 본인은 맥주 정도로는 어림도 없었지만 윤솔은 점점 페이스를 따라가기 버거웠다.

그녀가 맥주 두 모금에 살짝 취했는지 바닥에 앉은 채로 침대에 등을 기댔다.

"언니 괜찮아?"

"응, 괜찮아. 근데 살짝 어지럽네."

술을 마신 윤솔은 열이 나는지 이마에 땀을 흘렸다. 여름이 걱정하는 척하며 이마의 땀을 대신 훔쳤다.

"어유, 열나는 것 봐. 힘들면 좀 누워."

"누우라니?"

"여기 침대 있잖아."

여름이 침대를 가리켰다.

사실 그녀 역시 장미와 똑같은 마음이었다.

특히 도훈이 가장 호감을 보이는 윤솔을 보낼 수 있다면, 장미와의 대결은 손쉽게 이길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가슴 큰 윤솔 언니만 없다면 흑두인 장미 누나 쯤이야 식은 죽 먹기지. 가슴을 유난히 보는 정우라면 흑두를 좋아할 리 없잖아?’

하지만 윤솔은 취기가 올라오는 와중에도 아직 정신은 말짱했다. 자꾸 건배를 제안하는 장미나, 힘들면 침대에서 자라는 여름의 의도가 불순한 데 있음을 눈치챘다.

‘이것들 자꾸 나를 먼저 보내려고 하네? 나 먼저 재우고 자기들끼리 놀려는 거 모를 줄 알고?’

윤솔은 도훈에 대한 욕심보다, 두 사람의 행동이 더 괘씸했다. 어려서부터 명석한 두뇌와 뛰어난 미모 때문에 주변의 시기를 받는 데 익숙한 만큼, 그런 기미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예민하게 반응하는 윤솔이었다.

"뭘 벌써 자니? 이제 시작인데."

윤솔은 자세를 바로 앉더니 받쳐 입고 있던 블라우스 윗단추를 하나 풀었다. 워낙에 글래머였기에, 윗단추를 하나 푸는 것만으로 상의가 좌우로 터질 듯이 벌어졌다.

"휴, 이제 좀 낫네. 이게 너무 갑갑했거든."

윤솔마저 물러서지 않는 의지를 보이자 장미가 생각했다.

‘계속 목만 축이면서 깔짝거려서는 절대 끝이 안 나겠어. 어떻게든 술을 강제로 먹이는 방법을 찾아야 해.’

아이디어를 떠올린 장미가 제안했다.

"우리 근데 이 속도론 여기 있는 술 다 못 비우겠다."

"그럼요?"

"게임 하나 할래? 벌주를 만들어서도 비우든가 해야지."

"재밌겠다."

"뭐 재밌는 게임 아는 거 있어요?"

"왕게임 어때?"

"에이, 그건 너무 식상한데."

"남자도 하나뿐이라. 뭐 참신한 거 없나?"

그때 윤솔이 도훈에게 물었다.

"야. 너 대학생이랬지?"

"네."

"그럼 학교에서 애들이랑 하는 술 게임 뭐 재밌는 거 없어?"

"술 게임이요?"

"그래 MT 같은거 가서 하는 게임 있잖아."

"음, 그게."

도훈은 평소 술자리를 즐기거나 하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막상 떠오르는 게임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

"훈민정음 게임 어때요?"

"훈민정음 게임이 뭔데?"

"자음 앞글자만 따서 제시어를 내는 건데요, 가령 제가 기역이응 하고 말하면 ‘가위’하고 정답을 내는 거예요."

"아하, 이해했어."

"난 잘 모르겠는데?"

다들 설명을 알아듣는데 원체 감이 느린 여름만 헷갈렸다.

"여름아 그러니까 글자에 자음이 들어있잖아. 그거 첫머리만 내는 거야."

"뭔 소린 지 당최."

"말로 설명하는 것 보다 일단 한 번 연습게임 해보자."

"네."

"정우 네가 제시해봐."

내용을 들으니 고학력자인 윤솔에게 유리한 게임이었다.

장미는 눈치가 있었기에 곧바로 이 게임에서 제일 불리한 사람이 여름이란 걸 파악했다. 한명이라도 먼저 보낼 수 있다면 뭐든 상관없을 것 같았다.

도훈이 제시어를 말했다.

"디귿, 비읍."

"담배."

"도보."

"대···. 대방?"

"대방이 뭐야?"

"왜 있잖아."

"국어사전에 나온 단어만 해야지."

"아씨, 몰라."

"자자, 연습 끝. 그럼 다음부턴 걸리면 무조건 이거 원샷하기다?"

장미가 말을 마치자마자 커다란 글라스에 소주와 맥주를 말았다. 소주가 반 이상 들었기에 딱 봐도 만만치 않은 양이었다.

"어우, 이걸 어떻게 한 번에 마셔? 못 마시는 사람 배려도 해줘야지."

윤솔이 반발하자 장미가 대안을 제시했다.

"당연히 안 마셔도 돼. 대신 벌주가 싫으면 벌칙으로 때우면 되지."

"벌칙요?"

"벌칙은, 그거 어때? 하나씩 벗는 거."

"벗는다고요?"

"그치. 뭐든 상관없으니까 몸에 걸친 걸 하나씩 벗는 거야. 재밌을 거 같지 않아?"

장미의 제안에 다들 머리를 굴렸다.

도훈의 입장에선 아쉬울 게 없었다. 그는 설사 걸리더라도 술을 마시면 그만이었다. 알콜 면역이 된 상태였기 때문에 물배만 채우는 것이나 마찬가지.

장미 역시 일부러 곤혹스러운 벌칙을 제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술을 먹이는 게 목적이었다. 설마하니 처음 보는 남자 앞에서 옷을 홀라당 벗진 못 할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윤솔은 나름 계산을 했다.

이 게임은 무조건 자신에게 유리한 게임이었다.

평소 생활을 봤을 때 여름이나 장미의 어휘력이 그렇게 뛰어난 편이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게임만 잘하면 술을 마실 일도 벌칙을 걸릴 일도 없었다.

여름은 조금 불만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게임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빼는 것은 너무 자존심이 상했다. 말려드는 기분이 들었지만, 쪽팔리기 싫어 입을 꾹 다물었다.

"자 그럼 한다? 제시어는 누가 먼저?"

"여름이가 제일 못하니까 먼저 하는 걸로 해요."

"뭐래. 나 잘해."

"어차피 돌아가면서 하는 거니까 먼저 해."

도훈은 게임이 미숙한 여름을 배려했다.

훈민정음 게임은 먼저 한 사람이 가장 유리할 수밖에 없다. 자신이 생각한 자음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름이 한참 생각하다 바닥에 깔린 안주를 보고 말했다.

"과자."

"과자? 그니까 기역, 지읏?"

"근데 다음은 누가 해?"

"고도리 방향으로 해요. 막힌 사람이 당첨."

여름의 다음 차례는 윤솔이었다.

윤솔은 곧바로 이어갔다.

"거지."

그 다음 차례인 도훈이 바로 받았다.

"감전."

"감주!"

미리 대비한 듯 장미가 곧바로 받아쳤다.

금세 자기 차례가 돌아온 여름이 한참을 망설였다.

"아씨, 왜 이렇게 빨라?"

"원래 빠르게 도는 거야."

"이거 대답 못하면 벌주 마시기다?"

"아, 아니야. 아직 생각할 시간을···."

"5, 4, 3···."

"왜 그렇게 숫자를 빨리 새? 잠깐만···. 고, 고자!"

"고자?"

"맞잖아, 기역 지읏."

"오케이 인정. 다음은 윤솔 누나."

게임은 순조롭게 이어졌다.

첫 번째 벌칙은 결국 장미가 걸렸다.

"아씨, 모르겠다. 그냥 마실게."

술이 강한 장미는 소주가 반이 든 벌주를 한 번에 들이켰다.

"오오!"

"역시 장미 언니는 술이 세다니까."

"끄아, 생각보다 약한데? 다시 한 잔 말게."

벌주를 싹 비운 장미는 폭탄주 비율이 안 맞다면서 소주의 비율을 더 올렸다. 글라스의 2/3가 소주가 채워졌다. 말이 폭탄주지 거의 소주에 맥주 거품을 얹는 수준이었다.

"와, 이건 좀 심한데."

"왜? 쫄리면 벌칙하던가."

"누가 쫄린데?"

"장미 언니부터 시작."

장미가 제시어를 냈다.

"부자."

"반지."

"부조."

"바지."

순번이 돌고 돌아 다시 여름의 차례가 되었다.

여름은 도저히 생각이 안 나는지 한참을 끙끙댔다.

"뭐야, 모르면 마셔."

"그래. 술 한 잔 해야지."

"아씨 몰라, 봊이!"

"흡!"

"아니 그건 좀."

"저런 거 해도 돼?"

도훈이 말했다.

"국어사전에는 있을걸요. 비속어지만."

"오케이 인정."

하지만 결국 여름은 세 번을 넘기지 못했다.

장미가 벌주를 내밀자 여름이 거부했다.

"원샷은 도저히 못 하겠어. 이거 순 소주잖아."

"그럼? 벗을 거야?"

"까짓거 벗으면 되지."

가운만 걸친 여름이 당차게 말했다.

"진짜로 벗는다고?"

"꼭 겉에서부터 벗을 건 없잖아?"

여름은 손을 등 뒤로 돌려 브래지어를 풀어냈다.

"자, 됐지?"

"어우, 여름이 화끈한데?"

얇은 가운에 노브라가 된 여름은, 가운 밖으로 꼭지가 툭 튀어나왔다. 도훈은 심히 만족스러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최고다, 이 게임! 윤솔도 한 번 벗겨 먹어야겠는데.’

도훈이 꾀를 냈다.

"근데 이거 계속 같은 방향으로 돌면 조금 불공평할 것 같은데 한 번씩 반대로 돌까요?"

"그것도 좋지."

본래 순서는 윤솔 다음에 도훈.

하지만 반대로 바뀌면 도훈 다음에 윤솔이었다.

도훈은 일부러 다음번 게임을 졌다.

"정우 걸렸다."

술이 물처럼 느껴지니 소주가 2/3가 들어있어도 아무 상관 없었다. 도훈이 벌주를 한 방에 들이키자 술 좀 마신다는 다른 여자들도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와, 저걸 한 방에?"

"정우 술 엄청 쌔네."

"너도 남다른 재주가 있구나."

도훈의 화통한 모습에 다들 한 마디씩 거들었다.

도훈은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말했다.

"이거 완전 맹물이네요. 벌주가 이걸로 되겠어요? 간에 기별도 안 가는구만."

호기롭게 외친 그는 이번엔 글라스에 소주를 모두 들이부었다. 폭탄주가 아니라 순도 100%짜리 소주였다.

"뭐야? 맥주 안 말아?"

"벌주가 이 정도는 되야죠."

"오키, 콜. 난 상관없어."

벌주를 만든 도훈이 곧바로 제시어를 말했다.

"이번엔 반대로 도는 거죠? 그럼, 땅콩."

"땅콩?"

"아니 이러면···."

도훈이 훈민정음 게임의 맹점을 깨달았다.

끝말잇기 게임처럼 제시어를 낸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다음번 상대를 곧바로 죽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니 이런 법도 있어? 쌍디귿에 키읔이라니."

윤솔이 반발했지만 소용없었다. 다들 그녀가 먼저 가길 바라는 눈치였기 때문이다. 특히 그녀가 술이 약한 걸 알고 있는 장미나 여름은 한 명이라도 빨리 쓰러지길 바라는 입장이었다.

‘소주 글라스 잔이면 솔이 언니 바로 쓰러지겠는데?’

‘기둥이가 열일하는 구나. 잘했어.’

다들 암묵적으로 도훈을 지지하자 윤솔도 버티기를 포기했다.

"흥, 두고 봐. 다음은 바로 너야."

윤솔은 으름장을 놓더니 글라스 잔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 주량에 이걸 마셨다간 동탁처럼 응급실에 실려 갈 각이었다.

"으으. 벌칙으로 해도 되지?"

"그러시던가요."

윤솔은 오피스 룩 차림이었기에 흰색 블라우스에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둘 중 뭐가 벗겨져도 상관없다고 도훈이 생각하는 데 윤솔이 갑자기 치마 속으로 손을 넣더니 신고 있던 스타킹을 끌어 내렸다. 밴드 스타킹 한쪽을 벗어 던진 윤솔이 뭉쳐진 스타킹을 도훈의 얼굴을 향해 던졌다.

"됐냐?"

"뭐야, 이거 반칙 아니에요?"

"왜? 입고 있던 거 벗었는데?"

"아니 그래도 이건."

하지만 규칙상으론 아무 문제가 없었다. 도훈이 약은 수를 쓰자 윤솔도 똑같이 맞받아친 것이었다.

"그럼 두 쪽 다 벗어야죠."

"왜 날 벗기지 못해 안달이야? 내가 알아서 할 거거든. 암튼 다음은 나지? 바로 간다. 리본, 리을 비읍."

"리을···."

이번엔 도훈이 당했다.

윤솔이 도훈처럼 노답 제시어로 받아친 것이다.

‘이렇게 나오시겠다 이거지? 하지만 한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어. 난 지금 술이 물이랑 똑같다는 사실이지.’

도훈은 벌주를 마시고는 몇 차례 더 윤솔과 공방을 거듭했다.

하지만 결국엔 도훈은 여전히 멀쩡하고 윤솔은 양쪽 스타킹과 걸치고 나온 장신구를 모두 탈착하고 말았다. 이제 남은 것은 블라우스와 치마뿐.

도훈이 윤솔을 보며 말했다.

"이제 어쩔 수 없이 마셔야겠네요."

"치잇. 내가 마실 줄 알고?"

"그럼 벗으시던가요."

"그래, 솔아 나처럼 화끈하게 상의 탈의 해."

장미가 옆에서 못된 시누이처럼 부추겼다.

그녀는 윤솔이 접대를 나갈 적에도 노출을 꺼린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만큼 고고한 여자였고,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이 술을 마셔야 할 것이란 걸 알고 던진 말이었다.

"하라면 내가 못 벗을 줄 알고?"

하지만 윤솔도 나름 계획이 있었다.

그녀는 갑자기 바닥에서 일어서더니 치마 속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잠시 후 그녀의 치마 밑으로 조그만 팬티가 한 장이 딸려 나왔다.

"헉!"

"팬티를?"

"이야, 언니도 참."

팬티를 훌렁 벗어버린 윤솔은 침대로 집어 던지더니 모두에게 말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더 화끈하게 룰을 바꿔볼까?"

< 792. 빻은 얼굴도 할 수 있어.-42-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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