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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806화 (774/2,000)

< 788. 빻은 얼굴도 할 수 있어.-38- >

"진짜로 다 잘해?"

"그럼요."

윤솔이 피식 웃었다.

"풋. 어쩐다니? 나는 몸 좋은 애들보다 머리 좋은 애들이 더 좋던데. "

"머리도 나쁘진 않아요."

"검증 못할 줄 알고 막 던지는 구나?"

"원하시면 얼마든지 검증해 보셔도 돼요."

두 사람이 주거니 받거니 말을 섞는데 누군가 밖에서 룸을 두들겼다.

쿵쿵-!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그것은 허락을 구하는 물음이 아니었다.

대뜸 문을 연 웨이터가 사색이 된 표정으로 말했다.

"잠시만 선수들 좀 밖으로···."

"저희요?"

현성이 대꾸하자 그와 친분이 있던 웨이터가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마담 호출이야."

"호출이라뇨?"

"이게 무슨 경우야?"

웨이터는 그제야 경황이 없었다는 걸 깨닫고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죄송합니다. 갑자기 일이 생겨서···."

"저만요?"

"아니. 둘 다."

웨이터가 도훈 역시 가리켰다. 룸에서 손님과 놀고 있는데 선수를 호출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현성은 직감적으로 뭔가 사단이 났음을 예감했다. 그는 벌떡 일어나더니 장미를 비롯한 손님들에게 사과했다.

"누님들,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잠시 나갔다 와도 되겠습니까?"

"아니 이런 경우가 어딨어? 무슨 일인지는 설명은 해주고 선수를 데려가야지?"

윤솔이 버럭 짜증을 냈다.

호빠나 텐프로나 손님을 접대하는 일이긴 매한가지.

동종업계 종사자로서 지금의 사태가 굉장히 경우 없고, 결례에 해당한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러게. 이 가겐 돈은 돈 대로 받고 중간에 선수는 다 빼가나 보네?"

장미 역시 윤솔을 거들었다.

그녀는 이곳을 추천한 장본인이기 때문에 일정부분 책임감을 느꼈다. 결국 곤란해진 웨이터가 이유를 밝혔다.

"저, 다름이 아니라 동탁 형님이 갑자기 쓰러지셔서."

"쓰러져요?"

"가만, 그게 무슨 소리야? 멀쩡하던 동탁 형님이 왜 쓰러지는데?"

다들 황당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

양해를 구하고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은 웨이터에게 짤막한 사정을 들었다.

"아까 화장실에서 발견됐데."

"화장실에서요?"

"어, 의식 잃은 채로."

"세상에! 설마 무슨 심장마비 그런 건 아니죠?"

평소 동탁과 친분이 깊던 현성이 걱정하며 물었다. 둘을 마담에게 데려가던 웨이터가 잠시 걸음을 멈추더니 목소리를 낮춰 대답했다.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 암튼 화장실 문을 여는데 동탁 형님이 타일 바닥에 기절해 있었다더라고."

"혹시 뇌진탕?"

"아니. 그건 아닌 것 같고."

웨이터가 머쓱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게 아님 멀쩡한 사람이 갑자기 왜 졸도를 해요?"

"그래서 너희들 호출한 거야. 방금 전 엠뷸런스 왔다 갔거든."

"엠뷸런스가 왔다고요? 그런데 왜 우린 전혀 몰랐지?"

"당연히 룸 안에 있으니 아무것도 안 들릴 수밖에. 방음이 워낙 좋아야 말이지. 아까 진짜 난리도 아니었는데."

"많이 심각한가요?"

"자세한 건 나도 몰라. 구급대원 한 명이 마지막에 같이 있던 사람을 찾아달래서 너희들 부른 거야."

"맞아요. 저희랑 같이 있다가 화장실 간다고 나갔거든요."

"와, 근데 진짜 장난 아니었어."

"그 정도인가요?"

"실려 갈 때 슬쩍 보니까 바지를 완전히 지렸더라고."

"지, 지려요? 뭐를요?"

잠자코 듣고 있던 도훈은 웃음이 터질 뻔한 걸 가까스로 참았다.

"똥이지 뭐겠어. 괄약근이 풀린 사람처럼."

"아!"

"이쪽이야. 아까 출동했던 119대원분 한 분이 뭐 좀 물어볼거야."

웨이터가 데려간 곳은 비어있는 룸이었다.

문은 반쯤 열려있고, 주황색 구급대원 옷을 입은 남자와 최마담과 마주 앉아 있었다. 웨이터가 두 사람을 구급대원에게 소개했다.

"데려왔습니다. 동탁 형님이 쓰러지기 전까지 같이 있던 선···. 직원들입니다."

웨이터는 하마터면 선수라고 말할 뻔하다 급히 말을 바꿨다. 출동한 대원이 도훈과 현성을 보며 인사하더니 곧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두 분께 몇 가지만 여쭙겠습니다."

"네."

"저기요, 우선 동탁 형님은 무사한가요?"

동탁의 안위가 걱정된 현성이 구급대원의 말을 끊었다.

"저희도 막 현장에 도착해 환자분을 이송 중인 상태입니다. 자세한 건 응급실에 가서 봐야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혹시 심장마비나 뇌졸중 같은···."

"아뇨. 그런 징후는 없었습니다. 바이탈 수치는 안정적이었거든요."

"현성아, 일단 앉아봐. 대원분께서 몇 가지 물어보시려고 남으셨어."

최마담이 안절부절못하는 현성을 진정시켰다.

하지만 본인도 상당히 놀랐는지 연신 물을 들이 키고 있었다. 자신이 임시로 맡아 운영하던 가게에서 사람이 쓰러졌으니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도훈과 현성이 착석하자 구급대원이 물었다.

"두 분이 환자분하고 마지막까지 함께 계셨다고 들었습니다."

"네. 저희랑 같이 있었습니다."

"한 20분 전인가? 배가 아프다며 화장실 간다고 나갔어요."

"환자분이 배가 아프다고 말했다고요?"

대원이 펜을 들고 두 사람의 진술을 받아 적었다.

본래는 문진표처럼 생긴 양식인데, 동탁이 기절했기 때문에 3자가 대신 기록하는 모양이었다.

"그 부분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그러니까 한참 노래를 하던 중이었는데···."

현성이 룸 안에서 본 대로 소상히 설명했다.

도훈은 어차피 그의 고통이 실제가 아니란 걸 알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처럼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잠자코 듣기만 했다.

‘나참. 이게 엠뷸런스까지 부를 일이냐? 이 새벽에?’

[건장한 20대 청년이 화장실에서 졸도한 채 발견됐으니 당연히 놀라서 신고했겠죠.]

‘그거 환상통이라며? 그럼 실제로 다친 데는 없는 거 아냐?’

[물론 그렇긴 한데, 사람은 꼭 실제로 다쳐야지만 고통을 느끼는 게 아닙니다. 착각이라도 그것을 현실로 인식하는 순간 고통이 똑같이 느껴지거든요.]

‘하여간 엄살쟁이 같으니라고. 후장 좀 털렸다고 기절해 버릴 줄이야.’

[괜히 일만 복잡해졌군요.]

‘지명한 선수가 응급실에 실려갔으니,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구급대원이 질문에는 대부분 현성이 대답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담은 구석으로 도훈을 따로 불렀다.

"많이 놀랬겠구나."

정작 놀란 건 본인 같지만, 마담은 도훈을 걱정했다. 내막을 모두 알고 있는 도훈으로선 기가 찰 따름이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대답했다.

"네. 분명 멀쩡했던 형님이 갑자기 쓰러지셨다니."

"그러게. 별일이 다 있네. 그 방에선 별다른 징후가 없었니?"

"손님들이랑 잘 놀고 있었어요. 노래 부르다가 배가 아프다며 화장실 가기 전까지는요. 그나저나 이제 손님들은 어떻게 하죠?"

"손님들···. 그 아가씨들 동탁이 지명이었지?"

"네."

마담은 그제야 손님을 챙겼다.

"하-. 이걸 어쩐다. 손님을 초대한 호스트가 실려 나갔으니."

"다른 선수로 대체해 볼까요?"

마담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동탁의 지명 손님은 다름 아닌 업소 아가씨들.

동탁의 개인 손님들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그가 없는 이상 더 이상 가게에 있을 필요가 없을 거라고 판단했다.

"아니야. 이건 환불해 줘야겠어."

"환불이라고요?"

"어쩔 수 없잖아. 동탁이 손님들인데 동탁이 없어졌으니. 지금은 매상 따질 때가 아닌 것 같아."

이번 손님은 사이즈가 컸다.

방도 특실로 잡았고, 세팅된 양주 역시 100만원이 훌쩍 넘는 차림이었다. 가게 입장에선 중간에 캔슬을 한다면 상당한 손실을 입은 셈. 하지만 최마담은 그렇게 해주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내 가게도 아니고, 언니 가게야. 분명 언니라면 나처럼 했을 거야.’

장사를 하다 보면 때론 뻔히 손해가 나는 상황에서도 이미지 관리를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최마담은 지금이 그런 경우라고 판단했다.

최마담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럴 때가 아니다. 어차피 현성이 혼자 있어도 될 것 같으니까 정우 넌 나랑 같이 가자."

"어딜요?"

"손님들한테 죄송하다고 직접 말해야지. 비용은 받지 않을 테니 돌아가 달라고."

"아!"

‘아니, 이러면 완전 나가린데?’

[주인님의 소소한 복수가 어마어마한 나비효과를 일으켰군요.]

‘제길. 적당히 할걸. 이거 잘못하면 열심히 차린 밥상 다 엎어지게 생겼네.’

도훈이 실망하는 표정을 짓자 이를 오해한 최마담이 말했다.

"걱정 마. 선수들 TC는 다른 매상에서 챙겨 줄 테니까. 너희도 고생했는데 설마 그거 때 먹겠니. 어차피 손해 본 거."

"아뇨, 그런 뜻은 아니라."

"이럴 게 아니라. 일단 룸으로 가자."

최마담이 도훈을 데리고 룸으로 향했다.

***

도훈과 현성이 나가는 바람에 룸에 셋만 남게 된 여자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하, 진짜 별일이 다 있네. 나갈 땐 멀쩡해 보이더니."

"언니는 그 오빠 잘 알지 않아요?"

"누구? 나?"

"네. 장미 언니랑은 잘 아는 사이잖아요. 평소에도 그렇게 건강이 안 좋았나요?"

"전혀 아니야. 갑자기 쓰러질 사람처럼은 안 보였는데."

장미는 동탁과 예전에 2차를 나간 적도 있었다.

나이에 비해 시원찮다고 느끼긴 했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졸도를 할 정도로 건강이 나빠 보이진 않았다.

"보나 마나 무리했겠지. 막말로 우리나 얘네나 맨날 과음하고 날 밤 세는데, 몸이 멀쩡하겠어? 보니까 여기서 나이도 제일 많아 보이더만."

"나이가 문제니? 자기 관리 문제지."

괜히 나이를 디스하는 것 같은 기분에 장미가 변명했다.

"그나저나 우리 이제 어떡해요? 모처럼 호빠 놀러 왔는데 룸에 선수가 없네."

"그러게. 이거 환불 요구 해야 하는 거 아냐?"

"나가자는 거야?"

"어쩔 수 없잖아요. 같이 놀던 선수가 응급실 실려 간 마당에···. 더 놀 기분도 안 나고."

난처한 상황이었다.

모르는 사이면 모를까 뻔히 아는 사람이 같이 있다가 응급실에 실려 갔는데 계속 술 먹고 논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았다.

장미는 생각했다.

‘하긴 뭐, 두 사람은 몰라도 난 상관없지. 어차피 기둥이한테 에프터 약속 받았으니까.’

셋 중에선 여름이 속으로 가장 아쉬워했다.

‘아, 짜증 나. 기분 좀 내보려고 왔는데, 난데 없이 이게 뭐람. 그 정운가 뭔가 하는 애도 짜증이고.’

윤솔 역시 찝찝한 건 마찬가지였다.

‘흠. 정우 번호나 받아서 나중에 따로 볼까? 은근히 대화가 통할 것 같은데 말이야.’

세 여자가 각기 생각에 잠겨 있는데 룸을 노크하고 최마담과 정우가 들어왔다. 최마담은 말없이 앉아 있는 손님들을 향해 먼저 머리를 숙이고 양해를 구했다.

"죄송해요. 갑자기 이런 일이 벌어져서."

연배가 있어 보이는 최마담이 먼저 고개 숙여 사과하자 세 사람도 더는 따질 수 없었다.

"아니에요. 그래도 사람이 쓰러졌다는데···."

"오늘 드신 건 계산 안 하셔도 돼요. 저희가 죄송해서."

"흠. 그래도 양주 깐 게 있는데."

"어쩔 수 없죠. 정 그러시면 다음에 다시 한 번 놀러와 주세요. 다른 아가씨들한테 잘 소개 시켜주시고요."

"죄송합니다."

도훈도 사과를 표했다.

선수 대표 자격으로 사과를 건네는 것이었다.

"차 가지고 오셨죠? 대리 불러 드릴까요?"

"전 술 안 마셨어요. 알아서 갈게요."

"네. 아무쪼록 죄송하게 됐어요."

"괜찮아요.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사장님이 왜 사과하세요."

"그래도 저희 업장이니···."

나름 화기애애하게 마무리가 되자 최마담이 도훈에게 말했다.

"정우 네가 손님들 주차장까지 배웅해드리렴."

"네, 사장님."

본래 가는 손님을 끝까지 배웅하는 게 관례였기 때문에 최마담은 정우에게 에스코트를 맡기고 물러났다.

주차장으로 향하던 중 장미가 기회를 틈타 도훈에게 접근했다.

"번호 줘."

"번호요?"

"아까 나랑 약속했잖아. 나중에 소원 들어주기로."

"아."

도훈은 어처구니없이 중단된 미션이 아쉬웠지만, 그렇다고 약속을 무를 순 없었다.

‘젠장. 이럴 줄 알았음 그냥 정체 까고 속 시원하게 놀 것을 그랬네.’

[그러게 말입니다. 너무 낙담 마십시오. 미션 전체를 실패한 것은 아니니까요.]

‘그건 알지. 다만 난 오늘 밤 어떻게든 끝내버리려고 했단 말이야. 윤솔이랑 여름. 그리고 최마담까지 딱 세명 아다리 맞았는데.’

[어차피 현성군에 동탁군까지 있어서 여의치 않았습니다. 어제처럼 룸에서 하기엔 말이죠.]

‘나도 룸을 생각한 건 아니었어. 처음부터 에프터를 노린 거지.’

로시와 속으로 대화를 나누던 도훈은 순간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가만? 잘하면 아직 기회 남아 있는 거 아냐?’

[네? 다들 집에 가는 마당에 무슨 기회요?]

‘보라고. 생각보다 일찍 나오긴 했지만, 어쨌든 1차 끝나고 이동하는 상황이랑 비슷하잖아.’

[아아···. 그렇군요. 남자는 주인님 혼자 남았고요.]

‘내가 왜 이 생각을 못 했지? 역사가 꼭 룸에서 이뤄지란 법은 없는데.’

[정말 끝까지 해보시려고요?]

‘방해자도 없겠다. 어쩌면 지금이 기회야.’

"누나. 번호는 2차 가서 줄게요."

"2차? 무슨 2차? 너랑 나랑 둘이?"

"아뇨. 그 2차 말고요."

도훈이 갑자기 제안했다.

"저, 누님들."

"왜?"

"이렇게 헤어지기 섭섭하시죠?"

"뭔 소리야 갑자기?"

"섭섭은 무슨."

"사실 가게 분위기가 그래서 말씀 못 드렸는데, 너무 죄송해서요. 이대로 헤어지긴 아쉬운데 어디가서 가볍게 맥주나 한잔 더 하고 가실래요?"

< 788. 빻은 얼굴도 할 수 있어.-38-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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