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5. 빻은 얼굴도 할 수 있어.-35- >
장미도 한참 어린 여름이 되바라지게 들이받자 살짝 흥분하고 말았다. 가게를 옮기고 나선 되도록 자중하는 편이었지만, 그녀 역시 한 성깔 하는걸로 유명했다. 애초에 험한 유흥업계에서 오랜 기간 버텨온 이들의 악다구니가 평범할 리가 없었다.
"하-. 이 계집애 말하는 것 좀 봐? 아주 한 대 치겠다?"
"언니가 먼저 시비 털었잖아! 왜 멀쩡히 있는 남의 파트너를 탐내는데?"
"탐내? 누구를? 내가 정우를? 난 그저 처음부터 파트너가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한 것뿐이지. 안 그래? 내 말 틀렸어? 게다가 네 말대로 하면 원래 네 파트너는 솔이 옆에 앉아있는 현성이라는 애겠지."
논리적인 반박에 말문이 막힌 여름이 씩씩거리자 잠자코 두 사람의 다툼을 보고 있던 윤솔이 나섰다. 더 두고 보다간 큰 싸움으로 번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왜들 그래? 이게 싸울 일이야? 다 같이 재밌자고 온 거 아냐?"
"아니 언니가 먼저!"
"여름이 얘가 자꾸!"
"그만 좀 하래두? 진짜 눈 뜨고 못 봐주겠네."
두 사람이 동시에 상대를 힐난하자 윤솔이 특유의 시니컬한 표정으로 말을 끊었다.
윤솔은 평소에도 인텔리 출신이라는 배경 때문에 가게에서 발언권이 상당한 편이었다. 그것은 나이보다는 학벌이 주는 위압감 같은 것이었는데 일자무식으로 실업계 고등학교 중퇴한 로즈나, 아이돌을 한다며 학업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여름 둘 모두 그녀를 어려워했다.
외국인 바이어들을 만나도 유창히 영어로 대화를 나누고, 무슨 소린지도 모를 금융용어나 정치문제에 대해서도 자신있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모습을 보다 보면 절로 존경심이 샘 솟는 것이다.
따라서 실제 나이나 경력은 로즈가 훨씬 위였지만, 뭔가 중요한 결정을 내리거나 할 때는 윤솔의 발언력이 훨씬 세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런 윤솔이 역정을 내자 나머지 둘도 더 이상 다투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내가 볼 땐 이건 누구의 잘못도 아냐. 그러니 서로 비난하고 헐뜯을 필요 없어."
"그럼?"
"이게 누구 잘못인데요?"
"처음에 탁이란 사람이 파트너를 지멋대로 앉혀서 시작된 거라고."
"그렇네."
"인정."
"그래놓고 자긴 배 아프다고 도망이나 치고 말이야."
"저기 도망친 게 아니라···."
현성이 끼어들자 윤솔이 단박에 말을 끊었다.
"혹시 동탁씨 변호인이세요?"
"아, 아뇨."
"그럼 시키지도 않은 대변 마시죠?"
어찌나 냉소적인지 보던 사람이 무안해질 지경이었다. 동탁과 친분 때문에 그를 도와주려던 현성은 머쓱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아무튼 이제라도 교통 정리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
"교통정리라면?"
"초이스를 다시 하는 거지."
"아···."
윤솔이 제시한 해결책은 명쾌하고 논리적이었다.
호빠에 놀러 온 손님이라면 응당 하는 것.
바로 초이스를 하자는 것.
"어떻게? 마담 불러 다시 초이스 넣어달라고 해?"
"난 그냥 이대로도 좋은데."
두 사람의 말을 들은 윤솔이 다시 내용을 정리했다.
"아니. 처음부터 다시 하자는 말이 아니야. 지명으로 불러놓고 초이스 바꾸는 것도 민폐잖아. 그래도 기왕이면 셋 중에 서로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골라 놀자는 거지. 그게 서로에게 좋지 않겠어? 어차피 취향도 제각각 같은데."
윤솔은 그 말을 내뱉으며 은근슬쩍 도훈과 여름을 힐끔 쳐다보았다. 마치 여름을 향해 어떻게 저런 애를 마음에 들어 할 수가 있냐고 비웃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 태도가 여름을 자극하고 말았다.
여름은 원래부터 한 고집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주변에서 하지 말라고 말리면 오히려 더해버리는 편이었다.
이른바 청개구리과로 좋게 말해 소신이 뚜렷하고, 나쁘게 말하면 고집불통이었다.
여름이 윤솔을 보며 생각했다.
‘내가 마음에 든다는 데 지가 뭔 상관인데?’
본래 여름은 도훈에게 딱히 큰 관심까지는 없었다.
그저 그녀의 취향이 얼굴보다는 몸매에 있었고, 선수 셋 중에 도훈이 가장 피티컬이 뛰어났기에 상대적으로 그에게 관심을 둔 것뿐이었다.
그러나 장미가 과거의 기억 때문에 도훈에게 유독 관심을 보이자 도훈에 대한 집착이 좀 더 심해졌으며, 그런 와중에 윤솔이 도훈을 무시하는 듯한 반응을 보이자 반발심 때문에라도 그를 곁에 두고 싶어진 것이었다.
사실 윤솔과 여름은 단둘만 있을 땐 대화가 거의 없을 정도로 서로의 성향이 정반대였다. 물과 기름같은 두 사람 사이에 장미라는 연결고리가 없었다면, 결코 호빠를 함께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지금 다시 고르라는 거지? 나는 정우."
여름이 단박에 정우를 선택하자 이번엔 장미가 반발했다.
"근데 왜 너 먼저 고르는데?"
"왜요? 고르래서 골랐는데."
"아니 그걸 왜 너부터 하냐고. 나도 정우 고를 건데?"
"뭐라고요? 하-. 진짜."
장미 또한 도훈에 욕심을 냈다. 배탈이 났다며 사라진 파트너보다 도훈 쪽이 훨씬 호감이 갔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녀는 오늘 밤 제대로 한 번 욕구를 해소하고 싶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동탁은 제외대상이었다. 그의 잠자리 테크닉은 이미 겪어서 알고 있었기 때
문에 결코 자신을 만족시키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남는 현성과 도훈 중에서 골라야 하는데, 아무리 봐도 체격이 작은 현성보다는 도훈 쪽이 훨씬 잘하게(?) 생긴 편이었다.
게다가 도훈의 덩치가 우연히 만났던 기둥과 흡사한 것도 그녀의 기대감을 끌어 올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흔히 맛있는 메뉴를 먹고 나면, 다른 가게 가서도 그 메뉴를 시키는 것처럼 정우라는 전혀 다른 생김새의 선수에게서 대물 절륜남인 기둥의 모습을 기대
한 것이었다.
두 사람이 또 붙을 기미가 보이자 윤솔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진짜 답도 안 나오네. 둘이 가위바위보라도 할래 그럼?"
"가위바위보?"
"계속 옥신각신 할 바에야 한 방에 결정하라고."
"그래도 그건 너무 운이잖아."
"맞아요. 차라리 정우한테 고르라고 해요."
"정우보고?"
이야기가 점점 이상하게 흘러갔다.
손님으로 온 아가씨들이 이제는 반대로 선수에게 픽을 당하는 상황까지 온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가 손님인데···."
"아니야. 듣고 보니까 일리가 있네. 그 편이 제일 깔끔할 것 같고. 아예 룸 스타일로 신고식 한 번 씩 올리던지."
"신고식?"
"응. 그러면 정우도 선택이 쉬울 거 아니야."
신고식이란 건 업소녀들이 처음 픽이 되고 나서 지명해준 손님에게 감사 인사를 올리는 의식이었다. 특히 신고식을 화끈하게 할경우 그 자리에서 팁을 받기도 했기 때문에 업소녀들은 저마다 독특한 신고식 세레모니를 가지고 있었다.
대체로 이 신고식을 통해 그 방의 수위가 결정된다고 봐도 무방했다.
윤솔이 꺼낸 다소 엉뚱한 중재안에 장미가 주춤했다.
‘신고식이라고? 우리가 돈주고 놀러 와놓고 접대까지 해야 해?’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오버였다.
장미가 반대하는 기색을 보이자 여름이 대번에 치고 나갔다.
"왜요? 신고식으로 가면 자신 없으세요?"
"뭐라고?"
장미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여름이 그녀의 자존심을 건드렸기 때문이었다.
‘이게 가게에서 에이스 대접 좀 해주니까, 이제 아주 막 나가는 구나? 새파랗게 어린년이 싸가지 없게 대드는 것좀 봐라?’
여름은 현재 가게 최고의 매상을 올리는 에이스.
반면 장미는 예상대로 보통 수준의 인기였다.
아무래도 전성기가 훌쩍 지난 부분도 있고, 장미를 데려 온 마담 역시 그녀에게 기대한 부분이 매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 역시 여자였고, 한 때는 자신도 빛나던 시절이 있었기에 여름의 태도가 몹시 고까웠다.
‘얼굴 좀 반반하다고 주변에서 오냐오냐 받아주니까 아주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는구만? 저런 못 된 버릇은 초장에 잡아버려야지.’
"해. 신고식. 못 할 게 뭐야?"
당당히 응수하는 장미의 모습에 여름이 속으로 피식 웃었다.
‘흥. 이런 말 하기 좀 그렇지만, 솔직히 장미 언니 나이면 퇴물이지. 정우가 바보도 아니고, 나를 둘고 자길 택할 거라고 믿는 건가?’
여름은 늘 인기가 많았기 때문에 자신감이 넘쳤다.
나이도 그렇고, 외모도 그렇고 어느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의 대결이 성사되자 윤솔도 재밌는 구경거리가 생겼다며 좋아했다. 그녀는 심판처럼 두 사람을 나란히 무대 앞에 세웠다.
"정우. 여기 보이지?"
"네."
"지금부터 장미언니랑 여름이가 너한테 신고식을 올릴 거야. 신고식이 끝나면 둘 중 한 사람은 무조건 골라야 돼. 알겠니?"
"아, 네. 알겠습니다."
도훈의 입장에선 조금도 손해볼 게 없었기 때문에 잠자코 대답했다.
‘이게 무슨 일이람?’
[그러게요. 자기들끼리 치고박더니 결국 주인님을 두고 경쟁이 붙고 말았군요. 차라리 주인님에겐 잘된 일 아닙니까?]
‘당연히 잘된 일이지.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몸값을 올려주니 말이야.’
[뭐 어쨌든 결론은 정해져있겠군요. 공략을 위해선 장미양보단 여름 양을 골라야 하니까 말입니다.]
‘그건 두고 봐야 할 일이지.’
[네? 왜요? 장미양은 어차피 이번 공략에선 제외된 상탠데도요?]
‘그게 아니라, 가만 보니까 여름이란 아이가 굉장히 자존심이 세 보여서 말이야. 저런 스타일은 살살 긁어댈수록 오기가 붙어서 더 적극적이 되거든.’
[그러니까 고의적으로 역선택을 하실 수도 있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지. 상처받은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달려들 것 같단 말이지.’
[과연 주인님의 생각대로 되는지 지켜보겠습니다.]
‘나야 뭐 이제 굿이나 보고 떡이나 치면 되는 거야.’
[그나저나 조동탁군은 무사할까요? 항문이 찢어지지나 않았으면 다행일 텐데요.]
‘넵 둬. 그런 새낀 한 번 당해 봐야지. 아마 한동안 출근은 엄두도 못 낼 걸?’
두 사람이 준비가 끝나자 심판겸 사회를 맡은 윤솔이 말했다.
"자 그럼 누구부터 할까?"
***
"끄으윽."
고급스럽게 꾸며진 화장실 안.
구석 칸막이 안에서 한 남자의 애처러운 신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엉덩이를 깐 상태로 바지를 내리고, 만취한 사람처럼 좌변기에 얼굴을 처박은 그는 바로 오빠호빠 부동의 에이스, 조동탁이었다.
"흐흐윽. 이게 대체."
굴욕도 이런 굴욕이 없었다.
갑작스러운 배탈로 바지에 똥을 지린것도 모자라, 누구에게 도움도 요청하지 못하고 변기를 붙잡고 쓰러진 자신이 그렇게 서러울 수 없었다.
"흐억, 흐억.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지?"
겨우 고통에서 해방된 동탁이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다행히 룸에서 나온지 20분이 조금 안된 시점이었다.
‘이대로 주저앉아 있을 순 없어. 룸으로 다시 돌아가야 해.’
그는 변기를 붙잡고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다리에 힘이 모두 풀려있었기 때문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다리가 후들후들했다.
‘빌어먹을. 천하의 조동탁이 이게 무슨 꼴이람.’
팬티는 이미 지려있었다. 바지까지 흘러내린 똥물이 값비싼 슬랙스 팬츠를 오염시켰다. 도훈을 엿 먹이기 위해 평소보다 훨씬 꾸미고 나온 말끔한 차림이 엉망이 되어 버렸다.
‘이대로 주저앉을 것 같아? 나 조동탁이야!’
뱀머리에 만족할지언정 그는 프로였다.
프로가 지명손님을 놔두고 주저 앉을 순 없는 일이었다.
‘이딴 배탈 정도로 내가 쓰러질 것 같아?’
항문이 찢어진 것처럼 따끔거렸지만, 그는 의지를 불태웠다. 진정한 프로가 어떤 것인지 꼭 보여주고 말겠다는 각오였다. 그는 대기실에 있던 후배 한명에게 전화를 걸었다.
"민섭이냐?"
-네, 형님. 무슨 일로.
"자세한 건 알필요 없고, 그 24시간 아이롱 가게 있지."
-네, 르바도 호텔요?
"어. 거기가서 내가 전에 맡겨둔 정장 좀 챙겨다 주라."
-알겠습니다. 형님. 룸으로 바로 가져다 드릴까요?
"아니. 화장실."
-화, 화장실이요?
"급하니까 더 묻지 말고 후딱 다녀와."
-넵!
후배에게 옷가지를 부탁한 동탁은 똥지린 팬티와 바지, 그리고 셔츠까지 모두 벗어 화장실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그리고 휴지를 풀어 몸에 묻은 오물도 모두 제거했다. 갓난 아기도 아니고, 어른이 되어 몸에 묻은 잔변을 제거할 땐 이루 말할 수 없는 자괴감이
밀려왔다.
‘씨발. 대체 뭘 먹었다고 이런 배탈이 난 거야? 내장 탈출하는 줄.’
처음엔 장이 꼬였다고 생각했다. 사람 팔뚝 같은 게 대장을 파고드는 기분이었으니, 당연히 그런 착각을 느낄만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말짱해졌다. 그래서 동탁은 갑작스러운 배탈 정도도 여겼다.
‘하긴 옛날에도 한 번 장염 걸려서 고생한 적 있었지. 그때랑 비슷한 건가 보다. 좀 심하게 오긴 왔지만.’
설마 도훈이 아이템을 이용해 그에게 농간을 부린 것은 꿈에도 모르는 동탁이었다. 잠시 후 남자 화장실로 세탁물을 가져온 후배가 들어왔다.
"탁이 행님. 계십니까? 탁이 행님!"
"동네방네 소문 다 낼래? 여기다."
"예, 행님. 정장 찾아왔습니다."
"수고했어. 여기 칸막이 위로 던져."
"던지라고요?"
"그래. 위로 던져 내가 받을 테니까."
"넵."
후배는 옷을 칸막이 위 열린 틈으로 조심스러게 건네면서 물었다.
"행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별일 아니야. 옷이 좀 찢어져서 그래."
"네, 행님."
그러나 칸막이 너머로 흘러나오는 똥냄새가 심상치 않았다. 누가 봐도 뭔가 단단히 일이 벌어진걸 예감할 수 있었다. 동탁도 그걸 의식했는지 단단히 당부했다.
"민섭아. 너 다른 사람한테는 말하지 마라."
"알겠습니다 행님. 입에 꽉 자물쇠 채우겠습니다."
"그래. 내가 너 신경쓰고 있는 거 알지?"
"항상 감사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행님."
"그래. 가봐."
"네."
후배를 밖으로 내보낸 동탁이 다시 옷을 갈아입었다. 그의 눈이 알 수 없는 분노로 가득찼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똑똑히 보여주지!’
< 785. 빻은 얼굴도 할 수 있어.-35-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