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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801화 (769/2,000)

< 783. 빻은 얼굴도 할 수 있어.-33- >

***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

이제껏 수많은 위기를 돌파해 왔지만, 이 정도로 최악은 처음이다.

구면인 로즈의 눈치를 봐야 한다. 혹시라도 그녀가 나의 정체를 알아차리면 오늘 미션은 그대로 종료다.

내 파트너인 윤솔은 못생긴 나를 지독스럽게 혐오하고 있다. 어떻게든 쫓아내려고 안달 난 모습이다.

현성은 당장 자신의 파트너조차 감당이 힘들어 보인다.

윤솔 정도까진 아니지만, 그쪽 상대 역시 예쁜 얼굴만 믿고 안하무인처럼 행동하는 중이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조동탁.

믿었던 동탁이 이렇게 나를 뒤통수 칠 줄 몰랐다.

이래서 사람은 함부로 믿는게 아니랬는데, 같은 호빠 선수인 현성의 인성을 보고 동탁도 비슷한 부류라고 생각했던 게 내 착각이었다.

이제는 단언할 수 있다.

호빠 선수는 쓰레기다.

아니, 일부 호빠 선수는 괜찮은 녀석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쓰레기가 확실하다.

윤솔이 나에게 했던 얘기가 옳다.

사내자식이 사지 멀쩡하면 어디 가서 노가다라도 뛰어야 한다. 여자 앞에서 딸랑이처럼 콩고물 떨어지는 것만 기다리는 것은 남자로서 할 짓이 아니다.

이건 그냥 기생충이다.

그 기생충의 우두머리가 나에게 리모컨을 잡고 물었다.

"정우야. 너 18번 뭐냐. 형이 눌러줄게."

간사하게 웃고 있는 저 녀석은 나를 엿먹이기 위해 혈안이 된 놈이다. 그러고 보니 이제 알겠다. 놈이 나를 싫어하는 이유를.

‘개새끼. 동류라고 느꼈구나.’

[네? 동류라뇨?]

‘쉽게 말하면 동족 혐오 같은 거지.’

[동족 혐오라고요? 잘 이해가 안 됩니다.]

‘놈은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놈이야. 어려서부터 잘생긴 얼굴로 여자들 실컷 따먹고 다니다가, 나중엔 그걸 직업 삼아 호빠 선수로 대성한 그야말로 인간쓰레기지.’

[정보창 설명대로라면 그렇죠.]

‘놈이 본능적으로 나를 알아본 거야.’

[본능적으로요?]

‘그렇지. 왠지 나도 첨 보는 순간 뭔가 찝찝했거든. 괜히 신경 쓰이더라고. 이제 알겠어. 놈이 나를 의식하고 있다는 걸.’

[그러니까 주인님 말은, 동탁이 주인님에게 라이벌 의식을 느껴 견제한다는 소립니까?]

‘그거지. 사실 이 바닥이 그렇잖아. 나보다 잘난 놈의 존재는 나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거든. 놈은 나에게 뭔가를 본 거야. 아마도 오랜 선수 생활 끝에 얻은 직관 같은 거겠지. 얼굴이 빻았는데도 내 실체를 깨달았달까? 하긴 놈이 잔재주만 가지고 이 바닥에서 이

렇게 오래 롱런 할 순 없었을 테지.’

[그럼요?]

‘쉽게 말해 싹수 있는 신인들 사다리를 걷어 차버린 거야. 초장에 밟아서 싹을 틔우지도 못하도록. 그리고 결코 자신을 넘볼 수 없는 쭉정이들만 주변에 남겨둔 거지. 그러니 몇 년이 지나도록 계속 가게 간판을 유지하고 있는 거야. 경쟁자가 애초에 발을 붙이지

못하니까.’

[오호, 그런 추리가.]

‘그리고 왜 놈이 여태껏 큰물로 안 나가고 이런 작은 곳에 남아 있는지도 알 것 같아.’

[그건 왜요?]

‘저 쫌생이 같은 놈의 그릇이 그것밖에 안 되거든.’

[아.]

‘큰물로 가면 당연히 자기보다 잘난 놈들이 많겠지. 거기서 살아남으려면 치열하게 경쟁해야 할 테고. 워낙에 인원도 많으니까 사다리 걷어차기도 불가능.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도태되지나 않으면 다행이랄까.’

[허어, 설마 그렇다면.]

‘그래. 놈은 그냥 이 바닥의 왕처럼 군림하고 싶었던 거야. 용 꼬리가 되느니 뱀 머리로 말이지. 이렇게 싹수부터 잘근잘근 밟아 대면서 후배들 앞길을 여태껏 틀어막은 거지.’

[주인님 추론대로라면 참으로 쪼잔한 인간이군요.]

‘한마디로 양아치야. 뼛속 깊은 쓰레기. 저 새낀 호빠 선수의 수치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빅엿을 먹어야겠어.’

[주인님의 심정 십분 이해합니다. 하지만 미션을 생각하셔야 합니다. 빻은 얼굴도 할 수 있어 미션을 성공시키는 것과 조동탁을 엿 먹이는 것은 서로 배치됩니다. 둘 다 취할 수는 없습니다.]

로시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다.

지금 조동탁을 짓밟기 위해선 스킬이고 아이템이고 모두 개방해야 한다. 빻은 얼굴의 이정우로는 한계가 뚜렷하니까.

하지만 그렇게 되면 오늘 미션 클리어는 끝이다.

더구나 그에게 미운털이 박히게 되면 앞으로의 호빠 알바마저 장담할 수 없게 된다.

여기서 내 편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은 현성과 최마담뿐. 하지만 현성은 영향력이 미미하고, 최마담은 곧 떠날 사람이다.

반면 저 능구렁이 같은 놈은 이곳에서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실세다. 그의 눈 밖에 나는 순간 이번 미션은 완전히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

‘하, 씨발. 이걸 대체 어떻게 풀어낸다.’

도무지 답이 없는 상황.

나의 답답한 마음을 꿰뚫어 보았는지 동탁이 한 번 더 도발했다.

"뭐해? 파트너가 노래 듣고 싶다잖아. 선수라면 바로 튀어나와야지."

"나 그거 듣고 싶어."

뜬금없이 현성의 옆에 앉아있던 여자가 입을 열었다.

"어떤?"

"그, 왜 발라드 있잖아요. 되게 좋아하는 가순데."

"발라드? 제목만 말해봐."

"제목이 기억이 갑자기 기억이 안 나네. 아아, 그거요. 미안하다사랑한다 주제가"

"미안하다사랑한다?"

"응응. 거기 소간지 진짜 멋있잖어."

"여름이 네가 그 노랠 네가 어떻게 알아? 드라마를 봤을 나이가 아닌데?"

"그 가수 팬이라 찾다가 알았어요. 암튼 얼른 그 노래."

여름이라 불린 현성의 파트너가 애처럼 칭얼댔다.

귀여운 얼굴로 어리광을 부리는 모습마저 깜찍한 아이였다.

문제는 그것이 나를 점점 옥죄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씨, 하필 골라도 부르기 어려운 곡을.’

"윤솔 언니. 나 그거 부탁해도 되지?"

"응. 그렇게 해. 뭐해요? 신청곡 나왔잖아. 얼른 불러줘."

윤솔이 재촉하자 마이크를 잡기도 전에 동탁이 재빨리 신청곡을 눌렀다. 나보다 로시가 더 당황했다.

[주인님, 아이템 없이는 완전 음치지 않습니까? 심각할 정도로요.]

‘그러게. 아씨, 이번엔 진짜 개 쪽 당할 것 같은데.’

[아아, 그냥 지금이라도 아이템을.]

‘안 돼. 쓰는 순간 끝이야. 동탁이 하나 이기자고 미션을 포기할 순 없어!’

결국 전주가 시작되었고, 나는 마이크를 붙잡아야 했다.

이젠 죽이 되든 밥이 되는 부르는 수밖에 없다.

"어느새···."

***

도훈이 첫 음절을 때는 순간 좌중이 빵 터졌다.

"푸하하하, 저게 뭐야!"

"뭐냐 이건?"

"저, 정우야."

"실화야? 완전 깬다 진짜."

결국 몇 소절 지나기도 전에 동탁이 반주를 강제로 중지시켰다. 도저히 눈뜨고는 못 봐줄 수준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우리 신입이 너무 긴장해서 그런 거니 양해좀. 헤헤."

"와, 나 이렇게 노래 못하는 사람 처음 봤어."

"무슨 고음 불가인 줄."

"아하하하, 너무 웃기다. 오빠. 고생했어. 내 잔 한잔 받아요."

귀밑까지 빨개진 도훈을 향해 현성의 파트너인 여름이 불쑥 잔을 내밀었다.

‘최악이다.’

[제가 다 창피했습니다, 주인님.]

‘그냥 죽어야 할지도.’

[주인님, 어서 자살을!]

"뭐해요, 키 큰 오빠. 나 팔 떨어져."

"으, 응?"

혼이 빠진 도훈이 정신을 차려보니 여름이 자신에게 술을 권하고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나 오빠처럼 노래 못하는 사람 태어나서 처음 봤어. 배꼽 빠지게 웃었네. 나 큰 웃음 줬으니까 한 잔 드릴게요."

[아니, 이게 또 이렇게 됩니까?]

‘그러게. 뭔진 모르겠지만 일단 웃기는 덴 성공했다는 말인 것 같네.’

엉망진창인 노래가 끝난 뒤 여름이 너무 신이 나 도훈을 환대하자 도훈을 쫓아내려던 윤솔 역시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하여간 쟤는 눈치도 없이.’

그 와중에 여름이 말했다.

"현성 오빠. 지금 윤솔 언니 옆자리 비었으니까 저리 가봐. 난 음치 오빠랑 얘기 좀 할게."

도훈의 노래를 기점으로 느닷없는 밀어내기가 시작되었다.

윤솔은 갑자기 파트너가 바뀌자 생각이 달라졌다.

‘가만, 여름이 알아서 폭탄 처리해 준다면 더 신경 안 써도 되겠는데?’

물론 현성 또한 윤솔의 마음에 썩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못  생긴 도훈과 비교하자 상대적으로 엄청 잘 생겨 보이는 효과가 있었다. 사실 그녀의 불만은 셋 중 제일 와꾸가 빻은 도훈이 자신의 옆에 앉은 것에 있었기 때문에, 불만이 해소되자 도훈을 내쫓으려는

생각을 바꾸게 된 것이다.

여름이 옆자리에 도훈을 앉혀놓고 관심을 보이자, 동탁이 살짝 약이 올랐다.

‘뭐야? 저 거지 같은 노래 실력을 보고도 안 쫓아내? 놈은 선수로서 자격 미달이라고! 노래를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장애 수준이구만! 안 되겠다. 확실히 비교할 수 있도록 내 실력을 보여줘야지.’

도훈이 쫓겨나지 못한 게 아니 꼬았던 동탁이 갑자기 마이크를 잡고 무대 가운데로 나갔다. 그의 장점 중 하나가 빼어난 노래에 있었다.

"자자, 살리고 살리고~. 다운된 분위기는 탁이가 살리고! 이번엔 제가 한 곡 뽑아보겠습니다."

동탁이 능청을 떨며 요란스런 소개를 시작하자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도훈은 그 순간 그의 의도를 깨달았다.

‘개새끼, 노래 잘해서 돋보이려고 하는 거구나. 처음부터 이럴 작정이었어.’

[운 좋게 겨우 받은 관심을 또다시 잃게 생겼군요.]

‘아니. 그럴 순 없지. 내가 나 혼자 죽을 것 같아?’

[네? 어쩌시려고요?]

‘동탁은 어차피 공략 대상도 아니야. 그러니 스킬이든 아이템이든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말씀이지.’

[아아, 동탁을 훼방 놓으시려는 거군요.]

‘그렇지. 저 새끼, 내가 좆되게 하고 만다.’

동탁의 부추김 때문에 창피를 당한 도훈은 어떻게든 그를 복수하려고 했다. 그사이 노래를 고른 동탁이 특유의 미성을 선보이며 노래를 시작했다.

"어느새 가려진-."

얄밉게도 그 곡은 방금전 눈앞에서 도훈이 창피를 당한 곡이었다.

‘이게 아주 나를 맥이려고 작정을 했네.’

도훈의 눈동자에 불똥이 튀었다.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었다. 굴욕을 선사한 뒤, 상대를 아예 묻어 버려고 굳이 똑같은 노래를 골랐다.

신청곡을 주문한 여름의 관심마저 빼앗가가려는 것이다.

도훈은 어떻게 복수할까 고민하다 불쑥 예전에 교생 실습 간 볼링장에서 썼던 방법을 떠올렸다.

‘로시, 그때 볼링장에서 썼던 그거 뭐지? 그, 왜 볼링공 구멍이랑 여자 구멍이랑 씽크시켜 가지고.’

[감각 전이 패치요?]

‘그래, 그거. 지금 당장 전송시켜.’

[감각 전이 패치로 뭘 어쩌시게요? 아이템을 사용하는 순간 해당 대상은 미션에서 제외되어 버립니다.]

‘알아 나도. 하지만 미션이랑 관계없으면 상관없잖아.’

[대체 누구를.]

‘조동탁.’

[아아, 그런 방법이.]

‘좆같은 새끼. 감히 나를 물 먹여? 내가 얼마나 옹졸한 사람인지 똑똑히 보여주마.’

도훈은 열창 중인 동탁을 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곧 감각 전이 패치가 전송되자 도훈은 자신이 앉은 소파와 소파 틈 사이에 몰래 패치를 붙였다. 그리고는 대상 위치를 동탁의 항문으로 설정했다.

[하, 항문을···.]

‘너 이 새끼 오늘 내 손에 후장한 번 털려봐라.’

도훈은 노래가 클라이막스로 향하기를 기다렸다.

"지금 올해의 첫 눈꽃을 바라보! 흡!"

한창 감정을 실어 절정으로 치달아가던 동탁을 노래가 뚝 끊겼다. 아니 끊긴 정도가 아니라, 동탁의 표정이 사색이 되며 갑자기 엉덩이를 틀어 막았다.

박자를 놓친 빈 반주만 하염없이 흘렀다.

"응?"

"탁이 오빠 왜 저래?"

"앙, 한창 듣기 좋았는데."

안색이 눈에 띄게 하얘진 동탁이 가까스로 호흡을 가다듬더니 다시 마이크를 붙잡았다.

그 순간 도훈이 소파 틈으로 손날을 세워 깊숙이 쑤셨다.

푸욱-!

그것은 마치 철사장을 수련하는 무술인의 것처럼 빠르고 경쾌한 동작. 소파 틈은 동탁의 항문과 감각전이가 된 상태였기 때문에, 동탁은 느닷없이 후장이 털리는 것 같은 충격을 받은 것이다.

처음보다 훨씬 깊숙이 들어간 도훈의 찌르기에 급기야 다리가 풀린 동탁이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흐억!"

"탁이 형!"

놀란 현성이 재빨리 다가가려 했으나 뭔가를 예감한 동탁이 급히 소리쳤다.

"오, 오지마."

"네? 형 괜찮으세요?"

"오지 말라고. 가, 갑자기 배탈이 나서 그런거니까."

도훈은 그 모습에 직감했다.

‘지렸구나. 똥쟁이 새끼.’

항문 파열에 가까운 공격에 동탁이 똥실금을 하고 만 것이었다. 현성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한 것은 동탁의 뒤가 축축했기 때문이리라. 도훈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짐짓 딴청을 피우며 물었다.

"형, 부축해 드릴까요?"

"아, 아니야. 발을 헛딛은 거야. 내가 일어 설게."

바지를 지린 동탁이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젖은 엉덩이쪽을 들킬까봐 굉장히 어색한 동작이었다.

동탁은 여전히 흘러나오는 반주를 재빨리 종료시킨 뒤 양해를 구했다.

"죄송합니다. 갑자기 배탈이 심하게 나서···. 화장실 좀."

몰래 룸을 빠져나가려는 동탁을 향해 도훈이 얄밉게 소리쳤다.

"형, 화장실은 룸 안에도 있는데."

"아, 아니."

당연히 바지를 갈아입어야 할 동탁에겐 아무 의미없는 소리였다. 그리고 이곳의 터주대감인 동탁이 그걸 모를 리가 없다.

"밖에서 보고 올게. 잠깐 놀고들 있어."

동탁은 뒤를 보이지 않기 위해 벽에 등진체 부자연스러운 동작으로 룸 밖을 빠져나갔다. 그 모습에 다들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 거리는데, 갑자기 여름이 도훈에게 물었다.

"근데 오빤 왜 아까부터 소파를 찌르고 있어?"

< 783. 빻은 얼굴도 할 수 있어.-33-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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