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0. 빻은 얼굴도 할 수 있어.-30- >
***
장미현.
속칭 로즈라 불리던 그녀는 한 달 전 일하던 가게를 옮겼다. 호빠 선수들이 자유롭게 소속을 옮기듯, 업소녀들도 업주에게 빚진 경우만 아니라면 일터를 이동하는 것은 자유였다.
미현이 가게 옮긴 이유는 단순했다.
텐프로.
흔히, 상위 10% 안에 드는 업소녀만 엄선한다는 가게에서 새끼마담 스카웃 제의가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어떻게든 잘 될 거야라는 식으로 미래를 낙관하지 않았다. 업소녀로서는 황혼기에 접어든 29살이라는 나이도 걸림돌이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아이비나 재스민과 헤어지는 것은 아쉬운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계속 쩜오 취급을 받은 가게에서 허송세월할 순 없었다.
그녀는 과감히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새로 이적한 업소에선 그녀의 근성을 눈여겨봤다. 솔직히 외모나 나이로는 결코 텐프로 급에 미치지 못했지만, 흑장미라고 불렸던 그녀의 화류계 명성에 기대보는 것이었다.
홀이 많을수록, 또 관리하는 여자들이 많을수록 마담 혼자 전체를 관리하기는 힘에 부친다. 그럴 때 중간 관리자 격으로 활약하는 것이 새끼 마담이며, 이들은 소위 플레잉코치처럼 현장과 관리직을 오가며 소속 아가씨들을 관리한다.
미현은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를 성실히 수행했고, 진짜 텐프로 들만 모인 지금의 가게에서도 부족한 외모를 극복하고 빠르게 자릴 잡을 수 있었다.
"장미 언니, 오늘 가는 가게, 진짜로 괜찮은 거지?"
새로운 예명 장미로 불린 미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내가 아무 데나 가는 사람이니?"
그녀는 업소를 이적하며 평소 쓰던 로즈라는 예명을 버리고 이름의 앞글자를 딴 장미라는 새 예명을 쓰고 있었다. 아무래도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말처럼, 되도록 과거의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근데 거기 정빠도 아니라면서요?"
장미에게 질문한 동생은 요새 가게에서 가장 핫한 한여름.
이름도 계절 따라 간다고, 여름이 깊어질수록 물이 오르기 시작한 미모는 아이돌 뺨칠 만큼 수려했다. 그녀는 과거 아이돌 연습생 생을 하다 가세가 기우는 바람에 이쪽 업계로 뛰어들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하지만 도리어 전화위복이 되었을까?
타고난 사주에 도화살이 끼었다는 여름은, 화류계 생활에 금세 적응했다. 곧 가게 최고 에이스로 거듭난 그녀를 현 텐프로 업소 마담이 눈여겨보다 영입해 온 것이었다.
뉴페이스 효과 덕인지, 지난 3개월 동안 업소 매출 탑을 다툴 정도로 잘나가게 된 여름은,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장미를 친언니처럼 잘 따르는 편이었다.
미현이 맏언니답게 처신을 잘한 덕이다.
"정빠가 아니면 왜?"
"선수 상태는 정빠가 훨 낫지 않아? 디빠(정빠가 아닌 일반적인 수준의 호빠를 일컫는 말)는 물관리가 전혀 안 되잖아."
"쯧쯧. 여름아. 왜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니?"
"내가 뭘?"
"우리가 호빠 가는 이유가 뭐야?"
"그야 잘생긴 애들하고 술이나 마시면서 스트레스 풀러 가는 거지."
"그치. 근데 정빠 선수는 와꾸는 괜찮아도 되게 잰 척한단 말이지. 조금만 삔또 상해도 바로 마담한테 쪼르르 일러바치기나 하고."
"아, 그건 별론데."
"그럴 바에야 디빠에서 에이스 지명해서 내키는 데로 노는 게 훨씬 낫지 않아?"
장미의 관록에 설득당한 여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지. 참, 거기 언니 아는 선수 하나 있다며? 이름이 뭐랬더라?"
"동탁이 오빠?"
"이름이 동탁이야?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그때 화장실을 다녀온 또 다른 멤버 윤솔이 대답했다.
"삼국지에 나오는 이름이잖아. 나중에 여포에게 배신당해 죽은."
일찍 일을 마친 윤솔은 거추장스러운 써클랜즈를 빼고 조그만 금테 안경을 착용한 상태였다. 이지적인 매력이 특징인 그녀는 실제로도 외국 명문대를 다니다 휴학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캐나다에서 자란 그녀는, 한국말보다 영어로 말하는 것을 편히 여기는 인텔리였다.
지적인 모습뿐 아니라, 마른 몸에 E컵에 이르는 폭탄 같은 가슴 또한 매력 포인트. 타고난 바디라인에 특유의 지적인 이미지까지 더해진 그녀는, 주로 정부 고위 관료나 사업가들 사이에서 특히 인기가 좋았다.
어떤 화제를 올려도 막힘없이 대화에 어울렸으며, 특유의 씨니컬한 태도 역시 수컷들의 정복욕을 자극하는 맛이 있었다.
학벌부터 외모까지 모든 것을 갖춘 여자가 도도하게 앉아 술을 마시고 앉아있으니 어떻게든 자빠뜨려 보려고 기를 쓰는 것이다.
하지만 쉽게 2차를 나가지 않는 윤솔은, 어지간한 상대가 아니면 콧방귀도 안 뀌는 시건방진 태도로 유명했다. 못생긴 여자가 그랬다면 응당 철퇴는 맞았겠지만, 원체 예뻤던 그녀는 그 오만한 태도마저 세일즈 포인트로 활용했다.
어떤 면에서는 업소 매출 탑을 다투는 여름보다도, 훨씬 다루기 까다롭다고 정평이 난 여자가 윤솔이었다.
"윤솔인 왜 안경 썼어?"
"우리가 손님으로 가는데 꾸미기 귀찮아서요. 오늘따라 눈도 뻑뻑하고. 저 술 안 마실테니 제 차로 가도 되죠?"
"왜 술을 안 마셔요, 언니?"
셋 중 막내인 여름이 물었다.
"난 선수들 먹이는 게 더 재밌거든."
"호호. 난 그래도 같이 마실 거야."
장미가 좌중을 정리했다.
"그럼 이렇게 해. 일단 윤솔이 차로 갔다가, 혹시나 술 마시게 되면 대리 부르는 걸로."
"그렇게 하죠."
세 사람은 윤솔의 외제차를 타고 가게로 향했다. 동그라미 4개가 그려진 외제차는 이제 겨우 24살이 윤솔이 몰기엔 굉장히 비싼차였다. 업소 출입구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면, 어디 돈 많은 재벌가 자녀라고 오해할 정도 였다.
신이 난 여름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아, 재밌으면 좋겠다."
"참 오늘은 초이스 안 할 거니 그렇게 알고들 있어."
"초이스를 안 하다뇨?"
"그러게? 난 초이스 때가 제일 재밌던데."
"탁이 오빠가 우리 간다니까 가게에서 제일 괜찮은 선수들로 섭외해 놓겠데. 오빠가 뽑은 애들이면 믿어도 되지 않을까?"
"근데 그분이랑은 어떻게 아시는 사이에요? 설마 사귀는 사이?"
여름의 물음에 장미가 어깨를 으쓱했다.
"예전에 가게 놀라 가서 친해졌어. 되게 사람 괜찮아. 조그만 가게에 있긴 아까울 정도로."
"잘생겼어요?"
"응. 외모만 봐선 특급이지."
그때 운전에 집중하던 윤솔이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평소에도 시니컬한 미소로 유명한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어째 들어보니 외모에 비해 그건 영 시원찮은가 보네?"
정곡을 찔린 장미가 움찔했다.
"뭐 나보다도 오빠니까. 힘이 딸리긴 하더라."
"언니보다요? 언니 올해 스물 일곱 아니에요?"
장미는 가게를 옮기며 나이도 실제보다 2살 내렸다.
안 그래도 20대 초중반이 즐비한 가게에 본 나이를 밝혔다간 비교를 당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덕에 장미는 올해 스물 아홉인 동탁과는 실제론 동갑이었으나 동생인척 연기하고 있었다.
"응, 그 오빠는 아마 아홉일걸."
"으, 노땅이네."
"여름이 너는 몇 살이 좋은데?"
"나이 많은 사람은 우리 가게에서 실컷 만나잖아요. 기왕이면 20대 초반이 낫지. 나보다 어려도 상관없고."
여름의 나이는 23살.
윤솔이 26이니 실제로 세 사람은 3살 터울 간격이었다.
운전을 하던 윤솔이 말했다.
"언니. 그 오빠랑 많이 친한 거 아니죠?"
"왜?"
"괜히 지인이라고 예의 차리기 싫어서요. 우리가 돈 쓰러 가는 건데 좀 막하고 싶어요."
"상관없을 거야. 그리고 미리 말해두는데 나 탁이 오빠랑 메이드 된 거 아니야. 저번에 그냥 우연히 짝이 됐을 뿐이지 나도 고를 거야."
"진짜 별론가 보네."
"아니 그건 아닌데···."
장미가 동탁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이유는 다른게 아니었다. 원래 좋은 것을 한 번 경험하고 나면 나머지가 시시해 지기 마련.
‘그때 나이트 만난 대물이 진짜 대박이었는데.’
몇 달 전, 그러니까 가게를 옮기기 전 친한 동생들과 우연히 들른 가게에서 장미는 도훈을 만난 적이 있었다.
현직 업소녀 셋을 테이블 셧다운 시켜버린 놀라운 대물남을 만난 이후, 그녀는 모든 섹스가 시시해졌다. 물건 사이즈로만 따지면 그만한 남자가 없진 않았지만, 그 당시 보였던 테크닉과 절륜한 정력까지 겸비한 사람은 눈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하. 진짜 쓸데 없이 눈만 높아져 가지고.’
동탁에겐 자신의 전매 특허인 초고속 펠라를 쓸 필요도 없었다. 그저 뒷방아 만으로 허겁지겁 토끼처럼 싸버리는 그를 보며 많은 아쉬움을 느꼈던 터였다.
그럼에도 얼굴이 잘생기고, 섹스외에도 즐거움을 주던 기억이 나서 그와 계속 연락을 유지했던 것이다.
‘암튼, 하룻밤 진탕 놀거면 탁이는 좀 아니야. 난 차라리 얼굴이 좀 못나도 그때 그 대물처럼 박음질만 시원하게 해줬으면 좋겠어. 심지어 걔는 되게 잘생기기까지 했는데.’
어느덧 시간이 지나며 기억이 가물가물해졌지만, 도훈이 상당한 미남에 몸매도 좋았던 것은 또렷히 기억났다.
특히 그 대물. 거기가 잘생긴 남자라면, 바로 떠오를 정도로 대물의 인상만은 뇌리에 각인되어 있었다.
누군가 그녀에게 물건만 손에 잡고도 사람을 맞춰보라고 한다면 100명을 데려다 놓아도 찾아낼 자신이 있었다.
"언니, 이 가게 맞죠? 오빠호빠."
상념에 잠긴 장미에게 운전 중인 윤솔이 물었다.
도훈과의 원나잇을 추억하던 장미가 화들짝 정신을 차려 주변을 살폈다. 일전에 두어 차례 들렀던 오빠호빠의 전경이 보였다.
"응. 여기 맞아. 대충 대면 발렛파킹하러 사람 나올거야."
"알았어요."
윤솔이 가게 입구에 차를 대자 장미의 말처럼 웨이터 한명이 부리나케 뛰어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어서오십쇼, 손님!"
윤솔은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고 웨이터의 손에 차키를 떨궜다.
"흠집 안 나게 주차 좀 부탁해요. 뽑은 지 얼마 안됐거든요."
"넵, 맡겨만 주십시오."
"그럼, 들어갈까요?"
"잠깐 탁이한테 전화좀 해보고."
장미가 전화를 꺼내 동탁에게 걸었다.
***
"여보세요? 어디쯤이야?"
-바로 받네? 기다렸나봐?
"당연하지. 텐프로 에이스들 모시는데. 제일 좋은 룸에 양주 세팅 싹 끝내놨어. 선수들은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고."
-우리 지금 가게 입구야. 오빠가 에스코트 좀 해줘.
"응. 금방 튀어 나갈게."
통화를 끝낸 동탁을 향해 옆에 있던 마담이 물었다.
"오늘 온다던 지명 손님들?"
"네. 지금 입구 앞이래요."
"초이스는 안할 거랬지?"
"네. 제가 지명으로 미리 섭외해 놨어요."
"누구?"
"현성이랑."
"현성이 요새 물올랐네? 또?"
"어제 온 신참이요."
"신참? 설마 정우?"
"네."
동탁이 슬쩍 정우의 이름을 언급하며 최마담의 눈치를 살폈다.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면 좀 열받겠지?’
최마담은 정우의 이름을 듣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걔들 업소 애들이라면서. 정우가 감당할 수 있을까?"
마담의 우려 섞인 말에 동탁이 둘의 썸씽을 확신했다.
‘흥. 이럴 줄 알았지. 지 기둥서방 뿌리라도 뽑힐까봐 걱정되나 보지?’
"정우 걔 어제 첫 출근에 홈런 쳤다면서요."
"그거야 운이 좋았던 거지."
"아니에요. 그 정도면 싹수가 있어요. 저도 한번 만나봤는데 애가 잘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도 업소애들이면 보통이 넘을 텐데···."
"누님, 너무 걱정 마세요. 크게 될 애들은 시작부터 강하게 키워야되요. 제가 신입 때 손님 가렸다는 얘기 들어 보셨어요?"
"아니 그거야, 탁이 너는 워낙에 잘났으니까."
"암튼 전 지금 에스코트 하러 나가 볼게요. 초이스는 안 하더라도 기대감을 주려면 선수 입장은 최대한 늦추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제가 벨 누르면 그때 입장시켜 주세요."
"알았어."
동탁이 나가고 혼자 카운터에 남은 최마담은 노파심에 지나가는 웨이터를 불렀다.
"얘, 대기실에서 정우 좀 불러와봐."
"정우가 누구죠?"
"어제 온 신참 있잖아. 몸 좋은애."
"아아, 걔요. 네."
웨이터가 잠시 후 정우를 데려왔다.
"수고했어. 넌 가봐."
"네."
웨이터가 다시 사라지자 최마담이 도훈을 보며 말했다.
"오늘 지명 손님 받는다며?"
"아, 저한테 온 건 아니고 탁이형 손님들이에요. 저는 그냥 꼽사리로."
"그거나 그거나."
"근데 무슨 일로 부르셨어요? 곧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은데."
최마담은 도훈은 핏줄이 돋아난 손등을 보며 군침을 삼켰다.
‘하-. 마음 같아선 출전 안 시키고 내 돈 주고 데리고 놀고 싶네. 어제 본 대물이 아직도 아른거리는데.’
"음, 정우 너 업소 뛰는 애들은 처음 받아 보지?"
"네."
"미리 주의 좀 주려고. 나도 소싯적엔 그쪽일 해봤으니까."
최마담도 그렇고 지금은 병상에 누운 정마담 역시 잔뼈가 굵은 화류계 출신이었다. 지금 동탁의 지명 손님으로 온 장미의 미래가 두 사람의 모습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도훈은 뜬금없이 자신을 부른 최마담의 속내가 궁금했다.
‘주의를 준다고?’
[원 포인트 레슨 같은 거 아닐까요?]
‘그건 그렇다 치고 왜 나한테 굳이?’
[저도 그게 의문이군요. 속마음을 한 번 읽어보시렵니까?]
도훈은 순간 마음의 소리를 쓸까 하다가 관뒀다.
‘아니야. 혹시 모르니 일단 놔둬보자.’
[네? 혹시 모르다뇨.]
‘어쨌든 최마담도 빻은 얼굴로 처음 본 여자잖아. 만에 하나 나한테 호감이 있어서 저러는 거라면 일단 스킬은 봉인해 두는 편이 나중을 위해 낫지 않겠어? 괜히 스킬을 썼다가 후보군에서 탈락시키는 것보단.’
[설마 최마담까지 공략하시려고요?]
‘아직까진 아닌데 일종의 보험같은 거지.’
일종의 보험이 된 최마담이 도훈의 팔을 교묘히 터치하며 말했다.
"그러니까 정우야, 업소 뛰는 애들은···."
< 780. 빻은 얼굴도 할 수 있어.-30-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