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9. 빻은 얼굴도 할 수 있어.-29- >
디자이너는 20대 중후반으로 보였다. 그녀는 도훈의 머리를 손으로 한번 잡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머, 머릿결 되게 좋으시네요."
"그래요?"
"네. 이렇게 힘 있고 윤기 있는 머리는 오랜만에 봐요."
의외라는 표정을 짓는 헤어 디자이너를 보며 도훈이 생각했다.
‘못생긴 게 머릿결 좋아서 의외라는 거겠지?’
"어떤 스타일로 해드릴까요?"
"드라이는 별로 해본 적이 없어서. 알아서 잡아 주세요."
"잠시만요."
미용사는 한참 도훈의 두상을 살피며 어울리는 헤어스타일을 살폈다.
"두상이 예쁘셔서 어떤 머리를 해도 잘 어울리겠어요."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음, 피부도 엄청 좋으시고."
"제가요?"
"네. 남자분치고 이렇게 깨끗한 피부는 드물거든요."
미용사는 그쯤 이르러 속으로 안타까워했다.
‘얼굴이 조금만 잘생겼어도 굉장히 인기 많았을 것 같은데. 아쉽네.’
그도 그럴 것이 얼굴은 변했지만 도훈의 훤칠한 키와 몸매가 어디 간 것은 아니었다. 두발 상태나 피부도 여전히 깨끗했기에 비대칭으로 망가진 얼굴의 균형이 유독 아쉬웠다.
‘쯧. 내 남자친구면 성형이라도 시켜주고 싶을 정도네.’
미용사의 속마음을 읽은 것처럼 도훈이 말했다.
"나중에 돈 벌면 성형이나 하려고요."
"진짜요? 좋은 생각이세요. 여기 눈이랑 코만 좀··· 아,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못생긴 건 사실이니까."
"아니에요. 사실 선수라고 다 잘생긴 건 아니잖아요. 저희 가게에 선수분들 많이 오시거든요."
도훈이 전면의 거울로 확인하니 소파에 현성이 보이질 않았다. 핸드폰을 들고 간 것으로 보아 누군가와 통화를 하러 밖으로 나간 모양이었다. 도훈은 둘만 남았다는 생각에 디자이너에게 물었다.
"혹시 선수 중에서 가장 잘생긴 사람은 누군가요?"
"잘생긴 사람이요?"
"네. 선수 중에서."
"음. 괜히 비교하는 것 같은데···."
"어디 가서 말 안 할게요. 그래도 굳이 꼽는다면?"
"당연히 동탁 오빠죠."
"조동탁 형님요?"
"네. 그 가게 메인이라죠, 여전히?"
"그렇게 들었어요."
"참 대단한 사람이에요. 실은 제가 여기서 일하기 전부터 유명했거든요. 오빠호빠에 준연예인급 선수가 있다나?"
"언제부터 여기서 일하셨는데요?"
"한 2년 쯤 됐나? 대충 그쯤부터요."
‘동탁이 인물은 인물인가보네 몇 년 전부터 지금까지 메인으로 이름을 날리는 걸 보면.’
도훈은 아까 현성의 말을 듣고 찝찝함을 느꼈다.
진상으로 소문이 자자한 텐프로 지명 손님.
굳이 그 자리에 자신과 현성을 불렀다.
‘대체 무슨 꿍꿍이려나?’
도훈은 동탁의 평소 모습이 궁금했다.
"근데 남자가 너무 잘생기면 좀 그렇지 않나요?"
"뭐가요?"
"얼굴값 한다거나···."
"전혀요."
"전혀요?"
"탁이 오빠가 매너가 얼마나 좋은데요."
"그래요?"
"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늘 유쾌하시거든요. 솔직히 얼굴 좀 생겼다고 건들거리는 다른 선수들에 비하면···. 앗. 이 얘긴 어디가서 절대로 하면 안돼요? 아셨죠?"
"네, 뭐."
도훈은 더욱 의문에 빠졌다. 현성이 동탁을 대하는 태도만 봐도, 그의 인품은 짐작이 가능했다. 선수들 뿐만 아니라, 주변 가게의 평판 역시 훌륭했다.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찝찝했다.
‘쓰읍.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있긴 뭐가 있다고 그러십니까? 설마 질투하시는 겁니까?]
‘뭐? 내가? 동탁을?’
도훈이 어이없어했다.
‘내가 설마 누굴 질투할 레벨이야?’
[주인님이 일반인 중에선 겨룰 상대가 없다는 것은 잘 압니다. 하지만 상위 1%까지 올라가면 주인님 정도의 외모가 없는 것도 아니죠.]
‘음···.’
[솔직히 동탁 군이 잘생기긴 했죠. 지금껏 만난 남자 중에선 가장 뛰어난 외모의 소유자 던 데요? 고성민 정도를 제외하면요.]
‘고성민은 성격이 지랄 맞잖아. 망나니 재벌 3세 새끼.’
[어쩌면 그래서 주인님이 열등감을 느끼는 지도 모릅니다.]
‘열등감?’
[고성민의 경우엔 인성을 밥 말아 먹어서, 외모가 되려 죽은 경우였죠. 개차반인 인성이 너무 독보적이라서요. 하지만 조동탁은 인성마저 훌륭하지 않습니까.]
로시의 말을 듣던 도훈은 뭔가 속에서 울컥하는 감정을 느꼈다. 그러나 열등감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화를 내면 도리어 스스로 그것을 시인하는 기분이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쩌면 로시 말처럼 동탁의 본심과 상관없이, 괜히 그를 시기하는 것일지도 모
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내가 질투를 느낀다고? 천하의 이도훈이?’
하지만 냉정히 따져보면 그런 사람이 없다고 할 수도 없었다. 도훈보다 잘생긴 사람은 TV만 틀어도 수도 없이 많았다. 그보다 몸 좋은 사람도 SNS만 뒤져도 한 트럭은 나왔다. 학벌이 좋은 사람은 물론이고, 젊은 나이에 성공하여 큰 돈을 번 사람들도 있었다.
이제껏 대학이라는 조그만 우물 안에서만 지내다 보니, 그러한 남성을 만날 기회가 적었던 것뿐이다. 당장 호빠만 왔는데도 ‘동탁’이라는 쟁쟁한 인물을 만날 정도로.
도훈은 스스로를 반성했다.
‘내가 여태 너무 좁은 물에서 놀았구나. 이 정도에 신경 쓰는 걸 보면.’
[그렇다고 억지로 능력을 검증하기 위해 큰 무대로 나갈 필욘 없죠.]
‘그래도 왠지 자존심이 상한단 말이지.’
[네? 어떤 점이 말입니까?]
‘나보다 잘난 사람이 있을 순 있어. 어떻게 없겠어? 세상에 반이 남잔데.’
[그런데요?]
‘근데 하필이면 호빠 선수 중에서 그런 사람을 만났단 말이야. 직업이 여자를 꼬시는 선수를.’
[아하, 한마디로 동탁군이 동종업계 경쟁자라 더 신경이 쓰이시는 군요.]
‘그렇지.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여자 꼬셔서 눕히는 건 어딜 가도 안 꿀리거든. 근데 동탁도 이쪽 방면에서 난 놈이란 말이지.’
[호오, 이거 왠지 정면 대결의 느낌이 나는데요?]
‘문제는 내가 차포를 다 땐 상태로 겨뤄야한다는 거야.’
[차포라면?]
‘얼굴 빻고, 스킬 봉인되면 차포지 뭐야.’
[아···.]
‘이건 정당한 대결이 아니야.’
[하지만 대물의 절륜함은 여전하니 균형을 맞췄다고 해두죠.]
‘쓰읍.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얼굴이라고.’
도훈은 스타일링을 하는 중 계속 거울을 통해 자신의 변한 얼굴을 응시했다.
빻았다.
못생겼다.
미묘하게 틀어진 불균형이 대참사를 만들었다.
누가 그랬던가? 옷이 날개라고.
개소리다.
또 누가 그랬던가? 남자는 머리 빨 이라고.
그 말 한 사람 주둥이를 쳐야 한다.
옷과 머리 빨은 거들 뿐이다.
패션의 완성은 무조건 얼굴이다.
‘제기랄. 아무리 머리를 해도 진짜 답도 없네.’
디지이너도 슬슬 난감함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이리저리 스타일링을 잡아도 못난 얼굴 때문에 도저히 소화를 못 해냈다.
난처해하는 디자이너 앞에 도훈이 말했다.
"됐어요. 이 정도 했으면 될 것 같아요."
"아···, 네. 이게 좀 어렵네요."
"괜찮아요."
마침 통화를 끝낸 현성이 가게로 돌아왔다.
"다 했냐?"
"네, 형."
"오, 그래도 머리 하니까 훨 낫네. 그죠?"
현성이 디자이너에게 동의를 구했으나 솔직한 디자이너는 영혼없이 고개만 뜨덕일 뿐이었다.
"동생 비용은 제 이름으로 달아 주세요."
"네."
"형, 제가 계산해도 되는데."
"인마. 걍 해. 뭘 그렇게 따져. 어제 내가 많이 챙겨가서 미안해서 그런 거야. 다했으면 일어나 밥이나 먹으러 가게."
"어제 그 식당이요?"
"미쳤냐? 개처럼 돈 번 이유가 정승처럼 쓰려는 건데."
***
현성이 나를 데리곤 간 곳은 고급스러워 보이는 소고기 집이었다. 가게 인테리어부터 점원들이 입은 유니폼 또한 남달랐다. 메뉴판을 펼쳐본 나는 생각 이상으로 비싼 가격에 놀라서 물었다.
"형, 여긴 너무 비싼 거 같은데."
"걱정마. 내가 쏘는 거니까."
"형이 왜요?"
"말했잖아. 생각해보니까 같이 일해놓고 내가 너무 챙겨간 것 같다고."
현성은 어제 자신이 가져간 비율이 조금 과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하긴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동시에 두 명을 상대하고 자신은 끝판왕이긴 했지만 김여사 하나만 상대해놓고 거의 두배로 챙겨갔으니 뒤가 좀 캥길 순 있을 것이다.
"그래도 아까 머리도 해주시고."
"마. 나도 기분 좀 내 보자. 이런 것도 없으면 이 일 어떻게 버티냐?"
현성이 너무 완강히 나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알겠어요. 그럼 사양 않고 시킬게요. 꽃등심이면 괜찮겠죠?"
"얼마든지. 이모, 여기 꽃등심 4인분요."
"4인분을요?"
"왜? 부족해? 더 시킬까?"
"아뇨. 충분히 많아요."
현성은 오늘 쏘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보였다.
이럴 땐 차라리 기분을 맞춰주는 편이 당사자에게도 좋을 것이다.
먼저 나온 밑반찬을 먹으며 현성이 말했다.
"이러니까 유흥업소에서 놀러오는 여자들 마음 알 것 같기도 해."
"무슨 말이에요?"
"걔들 우리 가게 놀러 오면 막 진상 부리잖아. 갑질 오지게 하고."
"그렇다고 들었어요."
"똑같은 거야. 개처럼 벌었으니 그 돈으로 스트레스라도 풀지 않으면 못 버티는 거지."
"음, 그렇군요."
"나도 솔직히 돈 때문에 하는 거긴 하지만, 어제는 진짜 빡셌거든."
"형이 고생 많이 하셨죠. 김여사 비위 맞추느라."
"와, 그 여자 진짜 무겁더라."
"딱 봐도 장난 아니었어요."
"위에서 내리찍는 데 골반 다 나갈뻔 했잖아."
"저라면 돈을 더 준데도 못 버텼을 거에요."
"너도 고생했어. 근데 너 진짜 정력 좋데?"
"하하. 그런가요?"
"나도 솔직히 소싯적에 쓰리썸 안 해본 건 아닌데, 그렇게 양쪽 다 만족시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거든. 물건만 큰 줄 알았더니···. 너 반칙 아니냐, 그거."
"에이, 형. 대신 전 와꾸가 이 모양이잖아요."
"정우 네 얼굴이 어때서?"
"아까 머리하고 거울 보는데 제가 봐도 답이 없더라고요."
"아니야. 그런 생각할 필요 없어. 너 탁이형이 얼굴로 뜬 것 같아?"
"아니에요?"
"물론 잘생겨서 인기 많은 것도 있지. 특히 요샌 단골들만 상대하니까 대충 하기도 하지만···. 예전에는 진짜 장난 아니었어."
동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나도 모르게 귀를 쫑긋했다. 마침 소고기가 나오자, 집게로 달궈진 불판에 고기를 올리며 현성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예전엔 어땠는데요?"
"그 형이 진짜 대단한 게 뭐냐면. 비워가 엄청 좋아."
"비위라면···."
"어제 내가 상대했던 김여사 있지?"
"네."
"그 여자보다 훨씬 심각한 상대가 와도 낯빛 하나 안 변해."
"와. 진짜요?"
"정말이라니까? 특히 손님들 앞에선 정말 여왕처럼 떠받들 거든. 그땐 그 형이 벨도 없는 사람인 줄 알았어. 근데 알고보니까 그게 다 프로의식이더라고."
"아···."
"솔직히 오늘 많이 힘들 거야. 나도 나중에 텐프로 아가씨들이란 거 알고 너 바꿔달라고 할까 했거든."
"네."
"근데 생각해보니 너 정도 경력에 탁이형이랑 같이 초이스 돼서 배울 기회가 얼마나 있겠냐 싶더라고."
"아···."
"이 바닥에서 제일 좋은 교사는 잘난 가는 선배들 하는 걸 직접 보고 배우는 거야. 오늘 고생좀 하겠지만, 그래도 탁이형이 손님 대하는 거 보면 느끼는 게 많을 거야. 그래서 그냥 한다고 했어."
"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어, 고기 타겠다. 소고긴 대충 익혀먹어야 존 맛인데."
"넵. 그럼 감사히 먹겠습니다."
오늘 저녁은 현성이 대접한 소고기로 맛있게 배를 채웠다.
사실 그는 나에게 미안함을 가질 필요는 전혀 없었다.
비율 배분은 그가 아닌 김여사가 했던 것이고, 물주를 직접 상대한 만큼 그에겐 그만한 권리가 있었다.
‘현성이는 참 괜찮은 녀석인 것 같아.’
[어제도 그 말씀 하셨습니다만.]
‘호빠라고 다들 막장만 있는 건 아니잖아. 어쩌면 동탁이라는 녀석도 평판처럼 좋은 녀석일지도 몰라.’
[다른 건 신경 쓰지 말고 주인님은 미션에만 집중하시면 됩니다.]
‘알았어. 이제 3명만 더 자빠뜨리면 끝나니까.’
나는 소고기로 배를 든든하게 채우며 오늘의 일전을 준비했다.
***
평소처럼 늦은 시각 어슬렁거리며 가게를 나온 동탁은 장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달링, 언제 올 거야?"
-곧 끝나. 선수들은?
"3명 맞춰놨어. 저번에 그 아가씨들이야?"
-아니. 나 빼곤 다 뉴페이스.
"오. 예뻐?"
-지금 텐프로 한테 얼굴 예쁘냐고 물어본 거야? 호호호, 이 오빠 봐라? 우린 호빠로 치면 정빠나 마찬가지라고. 어중이 떠중이 모아 놓은 가게 아니야.
"알지, 내 말은 장미 너보다 예쁘냐는 말인데."
-왜? 나보다 예쁘면 꼬시게?
"꼬시면 섭섭해할 거야?"
-자신 있음 해보던가. 참고로 말하면 얘들 기 장난 아니게 세다. 나는 진짜 천사야.
"그 정도야?"
-어. 말도 마. 얼굴은 곱상한 것들이 어디서 그렇게 못된 짓만 쳐배웠는지. 동생들한테 미리 좀 알려줘. 술 시중 들기 빡셀거라고.
"그런 건 걱정마시고. 최고의 선수들로만 영입해 놨으니까."
-암튼 1시간 안에 가니까 미리 양주 세팅 좀 해줘. 가자마자 화끈하게 놀고 싶으니까.
"화끈하게면 어느 정도로? 우리도 벗고 기다릴까?"
-푸하하. 발정났구나, 우리 탁이 오빠? 벗기는 건 우리가 할 거거든? 얌전히 옷 입고 기다리고 있어.
"넵! 분부만 하십쇼."
-그럼 좀따봐.
통화를 마친 동탁이 웃으며 중얼거렸다.
"장미도 보통이 넘는데, 걔보다 더 기 센 애들이 온다고? 아이고, 이거 현성이랑 정우 오늘 병풍 뒤에서 향불 맡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 779. 빻은 얼굴도 할 수 있어.-29-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