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7. 빻은 얼굴도 할 수 있어.-17- >
"탁이형, 나오셨어요?"
현성이 깍듯이 인사했다. 그의 짬밥을 고려할 때 상대의 지위가 상당히 높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나 역시 고개를 깊이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어, 그래. 넌 누구지? 뉴페이스인가?"
현성이 빠르게 나를 소개했다.
"오늘 출근한 신참이예요. 정우야, 이쪽은 우리 가게 메인이신 동탁이 형."
"야야, 쪽팔리게. 메인은 무슨. 이빨 다 빠진 호랑이지. 하하. 이름이 정우니?"
"네, 이정웁니다."
"반갑다. 난 조동탁이라고 한다."
동탁의 첫인상은 강렬했다. 워낙 얼굴이 잘생기다 보니 TV에서 보던 연예인을 실제 마주한 느낌이었다.
‘우아, 와꾸보소. 그래, 이게 선수지. 지금까지 본 호빠 선수 중에선 제일 잘생긴 것 같네.’
[키도 주인님에 비해 안 꿀린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말이야. 비율도 엄청 좋아. 덩치가 크진 않지만 잔근육도 제법 있어 보이고. 관리를 하는 타입인가?’
동탁이 대뜸 악수를 청해왔다.
"반갑다, 정우. 우리 악수 한 번 할까?"
"영광입니다. 형님."
그의 손을 맞잡는데 손바닥에 깊숙한 한기가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엇!" 하고 소리를 내는데 동탁이 찡긋 눈웃음을 지었다. 사람을 홀리는 미소였다.
"차지?"
"손이 왜 이렇게···."
"기억해 둬. 깊은 인상을 남기는 수법 중 하나니까."
"수법이라뇨?"
악수를 마친 동탁이 나에게 설명했다.
"얼음통에서 뺀 얼음을 손에 계속 쥐고 있는 거야. 그러다 악수할 일이 생기면 얼음을 버리고 손에 물기를 싹 닦는 거지."
"아!"
"그러면 손바닥이 비정상적으로 차갑게 느껴지거든. 아무리 손이 차도 이렇게 한기까지 느껴지는 손은 잡아 본 적은 대부분을 없을 테니까."
"오,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이렇게 선수는 첫인상을 강하게 남길 줄 알아야 해. 그래야 롱런하거든."
동탁의 기상천외한 방법에 감탄하는데 현성이 거들었다.
"정우야, 탁이 형은 우리 가게 간판이야. 나 같은 쩌리하곤 비교도 안 되니까 알려주실 때 잘 배워놔."
"하하, 왜 그러실까나, 5조 에이스께서 나를 다 띄워주시고."
"형, 에이스라뇨! 제가 무슨. 에이스 영입될 때까지만 임시 팀장맡고 있는 거라니까."
"원래 다 그렇게 시작하는 거야, 인마. 내가 이 생활 오래 해보니까 얼굴로 뜬 놈들보다 자기 장기 가지고 밑바닥에서 차근차근 올라온 애들이 더 잘 되더라. 선수를 무슨 얼굴로 냐?"
처음 본 동탁은 말도 청산유수같았다.
가게에서 얼굴이 가장 잘생긴 선수가 하는 조언치곤 어폐가 있었지만, 방금 전 얼음 악수법에 살짝 감명을 받은 터라 그의 말이 깊이 와닿았다.
‘와, 호빠애들 남창짓 한다고 무시했는데 이 바닥에도 고수는 있는 법이구나. 저 얼굴로 노력까지 열심히 하니 지금도 가장 잘나가는 거겠지?’
[부러우십니까? 주인님도 충분히 매력 넘치십니다.]
‘그거야 일반인들 사이에서나 그런거지. 여기 와보니까 에이스급이 아니면 쩜오급만 넘어도 얼굴은 전혀 안 꿀리더만.’
[그래도 주인님에겐 남들에겐 없는 특별한 무기가 있잖습니까.]
‘크크. 내가 얼굴이 부럽댔지 정력이 부럽다고 했나? 여기서 나보다 섹스 잘하는 사람이 어딨다고.’
그때 현성과 잡담을 나누고 있던 동탁이 물었다.
"이름이 정우라고 했니?"
"네. 동탁 형님."
"무슨 풀 네임까지. 그냥 탁이라고 불러도 돼."
"네, 탁이 형님."
"정우 너 혹시 최마담하곤 어떻게 아는 사이야?"
"최마담이요?"
"응. 아까 우연히 네 얘기를 하더라고. 구면인가 싶어서."
"아닙니다. 저도 오늘 처음 뵜어요."
"···그래?"
동탁의 표정이 살짝 미묘하게 바뀌었다.
‘왜 저러지?’
[최마담이 주인님에 대해서 쓸데없는 소릴 한 게 아닐까요?]
‘무슨 쓸데없는 소리?’
[면접이 좀 파격적이었잖습니까.]
‘아···. 에이, 마담이 유흥바닥에서 뒹굴게 몇 년인데 그런걸 떠들었으려고. 진짠가?’
"혹시 최마담님이 무슨 얘길 하던가요?"
"아니야. 아무것도."
동탁은 뭔가를 숨기는 것 같았지만, 곧바로 화제를 돌렸다.
"근데 너 오늘 첫 출전에 메이드 된 거야?"
대답은 나 대신 현성이 했다.
"네, 처녀 출전에요."
"처녀? 총각 출전아니고?"
"하하, 이 형님 아재개그 많이 느셨네."
"인마. 아줌들은 아재 개그에 껌뻑 죽는 거 모르냐? 그래서 누님들이 나를 찾는 거야."
"아쉽다. 방금 저희가 모신 손님이 딱 미시들이었는데."
"미시? 30대?"
"네."
"호오, 현성이도 그쪽 취향이야?"
"제가 취향이 어딨어요. 그냥 돈 주면 어디든 앉는 거지."
동탁이 히죽 웃더니 진지한 얼굴로 충고했다.
"현성아."
"네, 형."
"돈에 너무 집착하지 마라."
"네?"
"그러다가 크게 역으로 공사당한 애들 내가 여럿 봤거든. 돈 욕심 내다가."
"아···."
"술집 아가씨들 특히 조심해. 첨에 퍼주다가 나중에 기둥뿌리까지 뽑아 간다. 너무 욕심내지 말고 순리대로 해. 형이 하는 말 무슨 얘긴 줄 알지?"
"네, 형. 명심할게요."
"그래, 잘하고 있네. 너라면 언제나 안심이다. 정우 너도 현성이한테 많이 배워. 같은 조에 저런 선배가 있다는 건 정말 운이 좋은 거야."
"네.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야, 근데 너 몸이 되게 좋아 보이네? 운동 좀 했니?"
동탁이 팔을 뻗더니 내 팔뚝을 어루만졌다.
‘뭐야? 설마 게이는 아니겠지?’
[설마요.]
"이야, 팔 두꺼운 것 좀 봐."
"탁이형, 얘 진짜 몸 좋아요."
"어떻게 알아? 오늘 처음 봤다면서."
"아까 룸에서 손님들이 벗어보라고 시켰거든요."
"전부 다?"
현성은 내 눈치를 슬쩍 보더니 교묘히 말을 바꾸었다.
"아뇨. 그냥 상반신만."
"아, 그래서 물수건 걸어 둔 거야?"
"형이 그걸 어떻게 아세요?"
"우연히 지나가다 봤어. 웨이터 잡고 물어보니까 현성이 네가 들어갔다고 하더라고. 난 또 안에서 떡이라도 치는 줄?"
"하하. 설마요."
"인마. 치면 좋지. 공떡만 아니면 돼."
"넵, 다음에는 더 분발해 보겠습니다."
"그래. 아직 퇴근 남았는데 다음 초이스 또 들어갈 거냐?"
현성이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앞서 기운을 많이 뺀 것 같아서 오늘은 이만 퇴근할까 하구요."
"이제 2시밖에 안 됐는데?"
아마 현성은 오늘 벌 돈은 이미 다 벌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나 역시 쓰리썸을 하느라 기운이 많이 쇠한 상태였기 때문에 오늘은 이쯤에서 정리하고 싶었다. 민주랑 약속도 남아 있고.
동탁이 아쉽다는 듯 말했다.
"나주엥 한 번 시간 좀 내봐."
"시간이요?"
"어. 조만간 지명 손님 하나 온다는데 친구들 데려 온다더라. 초이스 보기 귀찮다고 나보고 괜찮은 선수 몇명만 섭외해 달래."
"아···."
동탁이 계속 말했다.
"괜찮은 애들이야. 팁도 후하고. 너희들 보니까 껴주고 싶네."
"정말요? 감사합니다. 언젠데요?"
"아마 내일이나 모래 쯤? 아무튼 연락오면 내가 미리 알려줄게."
"감사합니다, 형님!"
동탁이 나를 보더니 한마디 덧붙였다.
"정우야."
"네."
"너도 같이 놀면 재밌을 것 같다."
"아, 네."
동탁이 사라지자 현성이 말했다.
"와, 대박. 탁이형 지명 손님이라니···."
"그렇게 대단한 손님들이에요?"
"탁이형 지명이면 상당히 괜찮지. 모르지? 저 형 지명 앉히려면 최소 50 이상 깨먹는 거."
"와···. 저 형님이 우리 가게에서 가장 잘나가는 에이스 맞죠?"
"딱 보면 알겠지? 잘생겼잖아. 키도 크고. 게다가 유머 감각도 좋아. 은근히 스스로를 망가뜨릴 줄 아는 캐릭터거든."
"그래 보이네요. 첫인상도 엄청 좋고."
"솔직히 우리 정도 가게에서 머물 인물은 아냐. 지금도 정빠에서 스카웃하려고 가끔 연락 온 다는데."
"스카웃요?"
"호빠도 총만 안들었지 전쟁터나 마찬가지야. 괜찮은 선수 있으면 웃돈 얹어서라도 스카웃 해가려고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거든. 잘나가는 선수 한 명이 가게에 가져다주는 매상이 어마어마하니까. 강남 어디 정빠는 매출순으로 가게에 입간판도 세운다더라."
"입간판이라면···."
"그달에 가장 술 많이 팔아준 선수 사진을 맨 위로 올리는 거지. 마치 랭킹 경쟁하듯. 그러면 단골들은 자기 선수들 자존심 세워주려고 일부러 과하게 술을 시켜 먹거든. 막 양주 한명에 50 넘는 걸로."
"우아."
"또 순위에 들면 가게에서 TC 비율도 올려주고 달마다 인센티브까지 챙겨준다면서."
"엄청나네요. 근데 탁이 형님은 왜 다른 가게로 안 옮기셨데요? 여긴 근로계약 같은 건 없잖아요."
"저 형이 은근히 의리가 쩔어. 저번에 다른 동생도 물어봤거든. 형은 왜 더 큰 가게로 안 옮기냐고. 거기 가면 더 잘나갈 수 있지 않느냐면서. 그러니까 이렇게 대답하더래. 자기가 여기서 컸는데, 옮기면 배신하는 것 같아서 싫다나? 그게 돈보다 중요하데."
"멋진 사람이네요."
"응. 은근 착하다니까? 동생들 심부름 시킨다는 핑계로 못 나가는 애들 불러다 용돈도 쥐여줘. 저 형 진짜 착해."
듣고 있자니 현성은 동탁을 거의 신처럼 떠받드는 느낌이었다. 얼굴도 잘생기고, 매너까지 좋고, 동생들까지 알뜰히 챙기는 의리 있는 남창이라니.
왠지 직업에 대한 편견 때문인지 몰라도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뭔가 아이러니했다.
‘정말 별의별 사람이 다 있구나.’
[그러게요.]
"저요? 근데 여긴 퇴근시간 개념이 따로 있나요?"
"없어. 아니 뭐, 있긴 하지. 공식적으로 새벽 4~5에 마감이라. 근데 그때까지 남아있는 애들은 대부분 허탕친 애들뿐일걸."
"아···."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끝까지 남아서 초이스 들어가는 거야. 경쟁자들 다 떨어져 나가서 확률도 올라가고, 무엇보다 새벽 늦게 들어온 손님들은 이미 술이 꽐라 된 상태라 애들 와꾸 많이 안 따지거든. 솔직히 그 시간까지 죽치고 있는 거면 사이즈가 안나오
는 거니까."
"아, 네."
"너도 지금 퇴근할 꺼지?"
"네. 첫날이라···."
"고생했어. 첫날부터 세게 들어갔네. 오늘은 되게 운이 좋은 편이야. 나도 하루에 100이상 받아본 날이 손에 꼽거든."
"다 형 덕분이에요."
"네가 잘했지 뭐. 가기 전에 마담한테 들러서 일당 받아가라."
"일당이요?"
"몰랐어? 여긴 월급제 아냐. 주급도 아니고. 그날 번 TC는 바로 현찰 박치기야."
"아···."
"담배 다 폈으면 들어가자."
***
룸으로 다시 돌아간 동탁은 히죽히죽 웃었다.
"왜? 우리 탁이 무슨 기분 좋은일 있어?"
"아니에요, 누님."
"아닌데? 담배 피우고 온다더니 아까보다 표정이 훨씬 좋아졌는데?"
"그게 아니라, 좀 신경 쓰이던 녀석이 있었는데···. 별거 아니더라고요. 괜히 신경 썼나 봐요."
"그랬니?"
"그냥 이제 저도 나이가 들었나 봐요. 별것도 아닌 일에 예민해지고."
"나이들긴? 지금도 어려보이는데."
"겉만 그렇죠. 속은 다 망가졌어요."
"아니야. 우리 탁인, 지금도 애기같아."
"애기같아요?"
"응. 너무 애기같아서 이렇게 안아주고 싶어."
지명 손님이 동탁을 끌어안았다.
도훈을 직접 마주치고 그의 형편없는 외모에 기분이 좋아진 동탁은 손님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으며 말했다.
"애기 젖먹고 싶어요."
"으잉? 진짜?"
"응. 젖줘요."
"아이참···. 좀 있다 2차 가기로 했잖아."
"애기 젖줘요."
동탁이 어린애처럼 칭얼거리자 지명 손님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블라우스를 풀었다. 둘밖에 없는 룸에서 동탁이 손님의 브래지어를 벗겨냈다.
"아이, 여기서 굳이, 흡!"
동탁이 젖가슴을 입에 물고 애처럼 쪽쪽 빨아대자 손님이 그새 눈동자가 풀렸다.
"아, 아앙, 탁아···. 아아."
"빨아주니까 좋아요?"
"당연하지. 난 탁이만 보면 너무 좋은 걸."
"열심히 빨아드릴게요."
동탁은 젖가슴을 입에 삼킬것처럼 힘차게 젖꼭기를 빨며 생각했다.
‘괜히 별 볼일 없는 놈한테 긴장했네. 보니까 어쩌다 몸 좋은 남자 밝히는 손님한테 얻어걸린 모양이더만. 난 또···.’
동탁은 궁금해하던 도훈의 실물을 접한 뒤 오히려 긴장이 풀려 버렸다. 그의 얼굴이 질투를 하기에는 너무 상태가 엉망이었던 것이다. 설사 안면마비라는 증세가 풀린다 한들, 자기보다 확실히 떨어지는 외모였다.
‘그나저나 이 새끼 좀 괘씸하네? 나한테 거짓말을 해?’
동탁은 최마담과 도훈이 분명 썸씽이 있다고 의심했다. 그런데 도훈이 이를 부정하자 자신을 기만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방진 녀석 같으니. 다음에 한 번 제대로 진상 소개시켜서 뜨거운 맛 좀 보여줘야지. 크크, 내가 생각해도 그년들 존나 골때리는데···.’
음모를 꾸민 동탁은 벌써부터 기분이 좋은지 힘차게 젖을 빨았다. 룸안에서 두 남녀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
최마담에게 TC를 받고 나온 도훈은 길거리로 나왔다. 함께 퇴근한 현성이 물었다.
"집 어디냐? 방향 같으면 택시 타고 갈래?"
"형은 어딘데요?"
"나는 합정동."
"아, 저는···."
도훈은 일부러 반대 방향을 말했다. 현성이 아쉽다는 듯 인사를 했다.
"완전 반대구나. 아무튼 오늘 고생했다. 그리고 이거 받아."
"왠 돈이에요?"
"형이 오늘 팁 많이 받아서 택시비 주는 거야."
"아, 괜찮습니다."
"받어 인마 줄 때."
도훈이 계속 사양했지만 현성의 완강한 태도에 돈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암튼 내일 보자. 난 저 택시 타고 먼저 갈게."
"네, 형 들어가세요."
현성을 먼저 보내고 손에 쥔 5만원을 보며 도훈이 중얼거렸다.
"근데, 택시비 정말 필요 없는데. 기사 불러가지고."
때마침 그의 기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도훈이 목소리를 착 깔고 말했다.
"어디야?"
< 767. 빻은 얼굴도 할 수 있어.-17-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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