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6. 빻은 얼굴도 할 수 있어.-16- >
***
다행히 현성은 뒤처리에도 프로였다. 이전에 경험이 몇 번 있던 듯 여자들이 옷을 입는 사이 혼자서 재빨리 이곳저곳 흔적을 지워나갔다.
"형, 제가 좀 도와 드릴까요?"
"아냐. 이건 혼자서 할 게. 옷 다 입었으면 문고리 밖에 걸어둔 물수건부터 치워줘."
"물수건이요?"
"응. 그럼 웨이터들이 알아먹고 나중에 대청소 한 번 할 거야. 어차피 싹 다 물걸레질 다시 해야 하거든."
"아, 네."
적당히 상황이 정리되자 세 여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소파에 걸터앉았다. 김여사가 말했다.
"다들 수고했어. 그리고 이건, 감사의 표시니까 넣어 둬."
그녀가 꺼낸 건 백지였다. 자세히 보니 100만원 짜리 자기앞수표 두 장이었다. 김여사가 그것을 현성의 셔츠 포켓에 꽂으며 말했다.
"이건 현성이 너 갖고 아까 바닥에 떨어진 잔돈은 정우 가지라고 해. 그럼 얼추 계산 맞지?"
"감사합니다, 누님."
"둘 다 열심히 해서 후하게 챙겼어. 그리고 마담 불러. 여기 계산한다고."
"정우야. 최마담 좀."
"네."
룸 밖을 나가며 생각했다.
김여사가 테이블에 뿌린 돈은 도합 250만원.
그중에 현성이 먼저 80만원을 챙겼으니 남은 돈은 170. 김여사가 자신을 위해 봉사한 현성에게 200을 따로 챙겨줬으니 그에게는 토탈 280, 나에게는 170만원을 지불한 셈이다. 아무리 룸떡이라도 하룻밤 화대치고는 지나치게 많은 금액이었다. 그리고 내 추측
인데 정화와 미숙의 화대까지 같이 혼자 계산한 것은, 게임을 하며 두 사람을 골탕 먹인 대가로 보였다.
그 때문인지 세 사람은 아까와 달리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기이한 사람들이다.
‘서로 죽일 듯이 헐뜯고 싸울 땐 언제고, 섹스 끝났다고 위 아 더 월드 분위기라니. 정말 다들 제정신이 아니구나.’
밖을 나가자 지명 웨이터가 문밖에 서성이고 있었다.
"다 끝났어? 물수건 치웠네?"
"네."
"안에서 무슨 짓을 한 거냐? 아, 이거 치우기 곤란한 거 아닌가 모르겠네."
왠지 뭔가를 바라는 눈치였다. 술 가져올 때 빼고는 팁 받기가 쉽지 않은 직업이다 보니, 이렇게 나가고 뒷정리 하는 데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정리 중에 챙긴 5만원 두 장을 내밀었다.
"웨이터 형. 이거라도."
"뭐야? 니가 왜 줘?"
그는 순순히 돈을 받아 들면서도 출처를 궁금해했다.
"저희 때문에 고생하시잖아요."
"그래도 그렇지 니들 TC 얼만지 나도 뻔히 아는데···. 어라? 한 장이 아니라 두 장이네? 근데 왜 이렇게 쩍 달라붙어 있냐? 돈에다 뭔 짓을 한 거야?"
"술을 좀 엎질러가지고요."
겉에 묻은 습기는 결코 술 때문이 아니었지만, 진실을 말할 순 없었다. 웨이터는 상관없다는 듯 씩 웃으며 돈을 뒷주머니에 챙겼다.
"젖었어도 돈은 돈이니까. 아무튼 고맙다. 근데 니들 팁 많이 받았나 보다? 얼마나 챙겨주든? 큰 거 한 장 정도 되는 거야?"
"팁은 현성이 형이 대표로 받았어요. 얼만지는 잘 몰라요."
"그런 걸 대표로 받는 게 어딨어?"
"형 파트너 분이 물주셨거든요."
"아, 나한테 담배 심부름시킨 그 손님 말이지? 그래 보이더라. 그 와꾸에 호빠 놀러 올라면 돈이라도 많아야지. 너 그 손님들 차 뭔지 모르지?"
"네."
"발렛파킹 하는 애가 그러던데 바흐 뭐시기 그거라던데? 엄청 비싼거라고."
"마이바흐요?"
"어어. 맞어. 암튼 돈 엄청 많아 보이더라. 잘 해봐. 혹시 아냐? 앞으로 든든한 스폰 생길지?"
웨이터는 나에게 10만원을 받은 게 기뻤는지 쉴새 없이 떠들어 댔다. 미션을 이미 끝낸 나는 그들과 더는 엮일 생각이 없었기에 대충 흘려 넘겼다.
"뭐 그건 봐서요. 참, 손님들이 마담님을 좀 불러달라고."
"최마담님? 아, 빌지 가져오래?"
"네. 계산하신다고."
"가만있어봐. 빌지는 내가 챙길 테니 마담 모시고 인사드려. 원래 저 정도 쓰고 가는 손님들에겐 지배인이 직접 배웅하는게 예의거든."
"네."
내가 가려고 하자 웨이터가 나를 붙잡았다.
"아, 잠깐 신참."
"네?"
"너 최마담한테는 돈 받은 거 말하지 마라."
"왜요?"
"역시 모를 거 같더라니···. 원래 선수가 2차 나가려면 마담한테 찡대 꽂아 줘야 해. 근데 니들 룸에서 공떡 쳤잖아. 당연히 마담이 알면 싫어하지. 여관비 따로 받는 것도 아니고."
"물수건 걸었으니 이미 다 알지 않을까요?"
"얌마. 물수건 건다고 무슨 다 떡 치는 줄 아냐? 그런 손님이 실제로 얼마나 있다고. 이건 너랑 나랑 현성이 셋이 비밀로 하고 대충 홀딱쇼 같은 거 했다고 구라 쳐. 솔직한 게 좋은 거 아니다."
"네 감사합니다. 형님."
"짜식. 예의가 바르네. 너 이름 뭐냐? 아까 들었는데 까먹었다."
"실명이요?"
"당연히 가명이지. 업소에서 누가 진짜 이름 써?"
"이정웁니다."
"그래. 나는 박찬호라고 해."
"그 야구선수?"
"어. 잘 아네."
‘생긴 건 전혀 아닌데···. 무슨 연관성이 있는 거지?
"내가 좀 투머치 토커거든 하하하. 하지만 걱정은 마라. 룸에서 있던 일은, 룸에서 끝낸다. 그게 업계 철칙이거든."
"아, 네. 감사합니다."
"암튼 가봐. 나는 빌지 챙겨 올게."
"네."
웨이터 박찬호와 지나 마담에게 가자 카운터에 앉아 있던 마담이 의외라는 듯 물었다.
"뭐야? 벌써 끝났니?"
"네."
"돈 많아 보이던데 3~4시간은 붙잡고 있어야지."
"그런가요?"
"니들 시급제잖아. 몰랐니?"
"근데 손님이 집에 가신다고 하셔서요. 마담님 좀 불러달라고."
"계산할 건가 보네. 지명이 찬호였지?"
"네. 중간에 만나서 빌지 챙겨달라고 말했어요."
"그래. 그럼 같이 가보자."
최마담이 엉덩이를 살랑거리며 앞장섰다.
몸매가 드러나는 야한 드레스가 눈에 확 띄었다.
‘야, 걸음걸이부터 색기 넘치는 것 좀 보소.’
앞서 걷던 최마담이 잠시 멈췄다.
"참, 너에 안에서 뭐 한 거야?"
"네?"
"방해 말라고 물수건 걸었었잖아. 모를 줄 알았어?"
나는 찬호가 시킨 대로 거짓말을 했다. 거짓말은 워낙 자신있다 보니 일체의 주저함도 없었다.
"그냥 손님들이 방해받기 싫다고 해서요."
"안에서 이상한 짓 한 건 아니지?"
"무슨요?"
전혀 모르겠다는 듯 되묻자 최마담이 씩 웃었다.
"···아니다. 오늘 처음 출근한 애가 무슨. 현성이도 그럴 깡이 있는 애는 아니고."
"아, 네. 뭐 그냥 이것저것 게임하고 놀았어요."
"수위가 좀 높았나 보지?"
"그냥 뭐···."
"하여간 보면 볼수록 신기하단 말이야."
"뭐가요?"
"난 솔직히 너 헛물 켤 거로 생각했거든. 아, 미안. 오해는 말고. 내가 워낙에 직설적인 성격이잖니. 너 와꾸 빻은 건 너도 인정하잖아."
"저, 최마담님 사실 이건···."
"아까 들었어. 뭐, 안면 마비라고? 그것 때문에 그렇다면서?"
"네. 원래 이 정도까진 아닙니다. 잠깐 근육이 뒤틀려서 그래요."
"흠. 근데, 오늘 일하는 거 보니까 와꾸랑 상관없이 잘할 거 같네. 확실한 장점도 있고."
최마담이 노골적으로 바지춤을 쳐다보았다.
아까 면접 때 실물로 본 것이 뇌리에 강하게 남았나 보다.
‘흐. 이 여자도 대물 매니안가?’
[최마담요?]
‘나를 보는 눈빛이 영 끈적거려서 말이야.’
[설마 최마담도 공략 대상에 넣으시려고요?]
‘왜? 가능은 하지 않아? 빻은 상태로 처음 보는 여자만 따먹으면 되는 거라며.’
[물론 그렇긴 한데···.]
‘아니 뭐 무조건 그렇겠다는 건 아니라 어쨌든 마담이니까 적당히 내 편으로 만들어 놓는 게 좋겠다는 거지. 정마담하곤 상황이 다르니까.’
정마담은 밑에 선수들과는 절대 개인적으로 만나지 않는다고 했다. 하긴 유흥업소에서 여자 마담과 선수가 눈이 맞았다간 다른 선수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최마담의 경우라면 얘기가 다르다. 그녀는 임시로 바지사장을 맡고 있을 뿐이며 언젠가 정마담이 퇴원하면 바로 물러날 사람이기 때문이다.
‘암튼 급해지면 생각해봐야지. 오늘은 운 좋게 일타이피로 얻어 걸린 거고 다음에 기회가 또 언제 올지 모르니.’
"들어가자."
"네."
마담과 함께 룸으로 들어가자 최마담이 낯빛을 확 바꾸며 영업용 멘트를 날렸다.
"언니들 오늘 재미 좋으셨어요?"
그 변화가 너무 극적이었기 때문에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을 보는 착각이 들었다.
‘화류계 짬빱이라는 게 과연 무시할 건 아니구나. 어떻게 사람 말투가 저렇게 순식간에 바뀌지.’
최마담의 사근사근한 목소리에 기분이 좋아진 김여사가 말했다.
"오늘 처음 놀러 와 봤는데 애들이 기본이 돼 있네."
"그러셨구나. 사실 저희가 정빠 만큼은 아니더라도 선수관리를 하는 편이거든요."
그러다 문득 내가 옆에 서 있던 걸 떠올렸는지 황급히 말을 바꾸었다.
"물론 얼굴 말고 다른 끼가 있는 친구들도 많고요."
"어. 아주 마음에 들었어. 여기 얼마나 나왔지?"
"잠시만요. 웨이터한테 빌지 챙겨오라고 했어요."
잠시 후 찬호가 기다렸다는 듯 문을 열고 들어왔다.
"사장님, 여기."
빌지를 받아든 최마담은 마지막 숫자를 보더니 김여사에게 말했다.
"언니, 현금이시죠?"
"현금 지금 없는데."
아까 뿌린 250만원이 현금의 전부였던 모양이다.
하긴 현금을 그만큼 가지고 다니는 것도 희한한 일이다.
"물론 카드도 돼요. 현금이면 좀 더 빼드릴 수 있어서요. 혹시 인출서비스 하시려면 저희 애들 불러 뽑아오라고 할게요. 아님 계좌이체도 괜찮고요."
"이체도 돼?"
"물론이지요.""그럼 이체로 할 게. 계좌 불러봐."
최마담이 명함을 꺼내 김여사에게 건넸다.
"이쪽으로 넣어주시면 돼요. 빌지에서 10% 빼고."
"그래."
김여사가 폰으로 계좌이체를 하는 사이 최마담이 현성에게 물었다.
"너희 혹시 2차 나갈 거니?"
"아니요. 피곤하시다고 바로 집으로 가신다고 하셔서."
"아, 그래?"
최마담은 물수건까지 걸고 문란하게 놀았던 것 치고는 내부가 깨끗이 정돈된 것이 못내 의문스러웠던 모양이었다. 주변을 싹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이체를 마친 김여사가 말했다.
"보냈어. 확인해봐."
"들어왔겠죠. 언니 차 발레 맡기셨죠? 주차장에 빼놓았을 거예요."
"그래. 다들 일어나자."
김여사의 말에 정화와 미숙이 나란히 일어났다.
섹스가 끝나고 제정신이 돌아왔는지 나를 보면서 조금 부끄러워하는 표정이었다. 내게서 번호를 받았던 미숙이 나가는 길에 조용히 속삭였다.
"나중에 연락할 게. 그땐 단둘이서 보자."
나는 대답 없이 씩 웃기만 했다.
만나긴 뭘 만나, 이 노처녀야. 대물 한 번 받아봤으면 됐지.
"너희들도 가는 길 배웅해 드려야지."
"넵!"
주차장 까지 따라와 배웅 인사를 끝내자 최마담이 나와 현성을 보며 물었다.
"근데 2차는 왜 안 나갔어? 꽤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더니만."
현성이 어깨를 으쓱했다.
"많이 피곤하신가 보더라고요. 내일 일도 있고."
"에이, 저렇게 나이 많은 언니들은 딱 원하는 게 뻔하다니까? 까놓고 말해서 룸 다니는 애들처럼 여기 스트레스 풀러 오겠니? 남자 필요해서 오는 거지."
현성이 알겠다는 듯 넉살 좋게 받아쳤다.
"오늘 처음이라 그랬나 봐요. 다음에 또 오면 지명 불러주신다니까 그때 한 번 힘써 볼게요."
"그래. 정우도 현성이한테 잘 배워둬. 현성이 정도면 이쪽 바닥에선 멘탈 좋은 편이거든. 배워둘 게 많을 거야."
"넵."
"그럼 난 먼저 들어간다."
최마담이 떠나자 둘만 남은 주차장에서 현성이 담배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고생했다."
"형도요."
"새끼. 제법이더라? 동시에 두 사람을 상대하다니."
"얻어걸린 거죠. 형이 분위기 다 깔아주셨잖아요."
빈말이 아니었다.
현성과 김여사가 먼저 스타트를 끊지 않았다면, 나 역시 룸떡은 무리였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내 아이템 효과 때문이지만.
현성은 아까 일이 떠오른 듯 고개를 새차게 흔들었다.
"어우씨 그 얘긴 꺼내지도 마라. 진짜 완전 발정나서 달려드는데, 상대하느라 혼났다."
"형도 대단하세요. 설마 진짜 취향이 그쪽은 아니죠?"
"인마. 나도 예쁜 여자 좋거든? 네 파트너였던 누구냐, 그."
"숙이 누나요?"
"어. 그 누나 괜찮더만. 아니면 좀 싸가지는 없어도 정화라는 누나도 좋고."
"둘 다 나이에 비해선 엄청 동안이긴 했죠."
"근데 딱 보니까 느낌이 오더라고. 둘 다 개털인게 감이 왔어."
"아."
"야, 어차피 이 짓 돈 벌려고 하는 건데 얼굴 좀 못 생기면 어때. 뱃살 좀 있으면 또 어떠냐고. 나한테 돈 주는 사람이 왕이지."
"하긴 그렇긴 해요."
"내가 더 많이 받긴 했는데, 이해하지?"
현성은 100여만 가까이 차이 나는 화대가 못내 신경이 쓰인 듯 했다. 사실 두 사람을 동시에 상대한 나도 적잖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 때문에 의가 상할 정도로 내 지갑 사정이 궁핍한 것은 아니었다.
"아니에요. 형이 다 판을 깔아주신걸요. 왕누나도 형 얼굴봐서 제 것도 챙겨주신 것 같고요."
"새끼, 말은 잘하네. 아 맞다. 찬호 팁 줘야 되는데."
"형. 아까 제가 미안해서 챙겨 줬어요."
"그걸 니가 왜 챙겨? 얼마나 줬는데."
"십만원요."
찬호는 그러면 안 된다면서 자기 지갑에서 10만원을 챙겨 내 손에 쥐어 주었다.
"인마. 웨이터를 챙겨도 내가 챙겨야지. 신참 주제에 건방지게. 담부턴 그러지 마."
"죄송해요 형."
"아니야. 그래도 잘했어.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웨이터들도 가끔 챙겨야지."
둘이서 담배를 피우며 해후를 즐기는 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아니, 이게 누구신가? 5조 에이스, 현성군이 아니신가?"
돌아보니 훤칠하게 잘 생긴 선수였다. 내가 여기 와서 본 사람 중에서 그만큼 잘생긴 사람은 처음이었다.
< 766. 빻은 얼굴도 할 수 있어.-16-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