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8. 빻은 얼굴도 할 수 있어.-8- >
"자, 그만."
시계를 확인하던 김여사가 게임 종료를 알려왔다.
테이블을 뒹굴며 돈을 몸에 붙이던 현성은 마지막까지 오만 원짜리 한 장이라도 더 붙이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그 모습은 너무나 애처롭기도 하고, 비굴했기 때문에 김여사는 심히 만족했다.
‘크크, 버러지 같아. 저게 뭐라고 저렇게까지 한담?’
"조, 조금만 더."
현상이 애원했지만, 김여사는 가차 없었다.
"안 돼. 하루종일 그러고 있을 셈이야? 게임은 게임이지."
현성이 아쉬움에 일어서는 데 몸에서 지폐가 후드득 떨어져 나갔다. 그는 허망한 표정으로 날아가는 지폐를 쳐다보았다. 한 시간을 일해도 벌 수 없는 돈들이 1초 단위로 사라져갔다. 그가 떨어지는 지폐를 붙들려고 하자 김여사가 말했다.
"우리가 직접 떼기 전까지 떨어지는 건 무효야. 손대기만 해."
"으읏."
"정화, 네가 카운트해."
"네, 언니."
정화가 싱글벙글 현성에게 다가갔다. 몸에 지폐를 매단 현성은 수치스러운 얼굴로 룸 안에 섰다. 혹시나 돈이 바닥에 떨어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이 너무나 굴욕적이었다. 도훈은 차마 그를 쳐다보지 못하고 시선을 외면했다. 그래도 잠깐 인연이 닿았다고, 그의 치부를 보는 것이 마음이 불편했다.
‘씨발, 진짜 너무들 하는구만. 이따위로 사람을 굴리는 게 진짜 재밌나?’
도훈은 화가 났다.
현성이 생각만큼 나쁜 녀석이 아니란 걸 알았기에 더 화가 났다. 아무리 몸을 파는 남창이라도, 이 정도까지 자존심을 짓밟는 것은 도저히 할 짓이 아니었다. 이들은 돈으로 사람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그걸 시킨 김여사나, 깔깔거리며 몸에서 돈을 떼는 정화나, 암묵적인 동의로 흥미롭게 쳐다보는 미숙이나 모두 다 같은 부류였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이들은 모두 한통속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가만있어. 내가 떼기 전까지 떨어지면 무효니까."
정화는 알몸으로 선 현성을 놀리듯 느릿느릿하게 돈을 떼어 냈다. 등 짝에서 한 장, 엉덩이에서 한 장, 이마에서 한 장.
돈이 떼어질 때마다 현성은 점점 벌거숭이가 되어갔다. 김여사는 담배를 꼬나물고 느긋한 표정으로 그의 누드를 감상했다. 미숙 역시 남자의 알몸을 보며 김여사에게 농을 건넬 정도로 무감각한 모습이었다.
"언니는 좋겠수. 몸이 언니 취향이네?"
"그지? 내가 딱 보고 알았다니까."
"근데 저렇게 마른 애들은 뭐가 좋을까나? 마른 장작이 더 잘 타는 뭐 그런 건가?"
"계집애 말하는 것 좀 봐? 오래 하는 게 다가 아니야 이것아."
"왜? 오래 해야 당연히 좋은 거 아냐? 기왕이면 크면 더 좋고."
미숙은 그렇게 말하며 도훈을 쳐다보며 씩 웃었다.
도훈은 그녀의 웃음을 보는 순간 정나미나 뚝 떨어졌다.
‘이런 미친년들. 이것들을 확 그냥!’
마음 같아선 테이블 확 엎어버리고 맥주병으로 뚝배기를 깨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유흥을 즐기러 와서 음탕하게 노는 것이야 그러려니 할 수 있다. 젊은 남자 몸뚱이를 주무르고, 2차를 나가 떡을 치는 것도 이해한다 치자.
하지만 용돈을 준다는 핑계로 이런 식으로 인격을 짓밟는 행위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도훈이 분노로 손을 부들부들 떠는데 정화가 말했다.
"어머, 이쪽 번데기에 잎사귀가 붙었네?"
그것은 마지막 잎새.
현성의 몸에 남은 마지막 지폐 한 장이었다.
그것은 현성의 심볼에 애처럽게 매달려있었다.
"이거 떼면 완전 올누드인 거네?"
"아, 아앗,"
"손 치워. 손대는 순간 반칙이야. 그렇게 고생해놓고 몰수패당하고 싶어?"
현성이 부끄러움에 두 손으로 감추려고 하자 김여사가 날카롭게 지적했다. 현성은 결국 두 팔을 늘어뜨린 째로, 마지막 지폐가 떨어지는 순간을 감내해야 했다.
"흐흐, 수거 완료. 고생했어♥"
정화가 현성의 불알을 톡톡 건드리며 말했다.
그녀는 현성의 심볼을 보며 생각했다.
‘좀 작네. 발기해도 그닥이겠어.’
그녀 역시 섹스를 무척 밝히는 타입이었기 때문에, 현성의 심볼을 가까이에서 확인하고는 김이 새고 말았다. 자신의 넘치는 성욕을 감당하기엔 크기가 성에 차지 않았다.
그럴수록 도훈의 물건이 궁금해졌다.
그의 물건을 직접 확인한 미숙의 반응을 봐선 분명 작지 않을 것 같았다.
"모두 여덟 장."
"여, 여덟장이요? 그것보다 훨씬 많이 붙였는데···."
"아니야. 일어서면 반쯤 떨어지고 세는 중에 반 떨어졌어."
"아··· 아. 그, 그래도 두 배로 주시는 거 맞죠?"
정화가 김여사를 쳐다보았다.
김여사가 너그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 80만 원 줘."
김여사의 말에 정화가 나머지 돈을 더 챙기더니 지폐 뭉치를 만들었다. 그녀는 그것으로 현성의 심볼을 툭툭 건드렸다.
"쉽게 돈 버니 좋겠다? 어디 가서 5분에 80만 원을 다 벌어본다니 호호호!"
"······."
현성이 굴욕을 감내하며 돈을 받아 챙겼다. 그는 자괴감 오지는 표정으로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자, 다음은 정우 차례인가?"
***
"자, 다음은 정우 차례인가?"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나는 현성이 굴욕을 당하는 동안 계속 고민하고 있었다.
일타이피를 노릴 것인가, 자존심을 지킬 것인가.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현성의 복수를 하고 싶었다.
남자로서의, 아니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말살한 그녀들에게 복수하고 싶었다. 이들은 인간의 자격을 상실했다. 나는 그들에게 매너를 지킬 생각이 전혀 없었다.
"저요?"
"그래. 너도 용돈 필요하지 않니?"
돈이면 뭐든 다 된다고 생각하는 김여사.
저 씹돼지의 면상에 핵 펀치를 날리고 싶은 충동을 겨우 참았다. 어쨌든 남의 영업장에 처음 출전해서 행패를 부리면 곤란하니까.
"저는 뭐 딱히···."
나는 한 번 튕겼다. 김여사의 입꼬리가 말아 올라갔다.
한쪽 입술을 비대칭하게 올리는 모습이 흔히 말하는 썩은 미소 같았다. 더럽게 역겹기 짝이 없었다. 사람을 낮춰보고 비웃을 때나 짓는 표정이다.
"정말? 부끄러워서 그런 게 아니고?"
김여사가 한 번 찔렀다.
아마도 내가 이 일이 처음이고 하니 창피해서 그랬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아뇨. 벗는 건 오히려 환영인데요?"
"뭐?"
"저야 내세울 게 몸 밖에 없으니까요."
"흠."
틀린 말이 아니었다.
내 몸이 보디빌더만큼 좋다는 건 이들도 아는 사실이다.
김여사는 용돈을 마다하는 내가 이해가 안 되는지 인상을 찌푸리더니 재차 제안을 해왔다.
"아니면 용돈이 부족해서 그래?"
"네?"
"현성이가 저렇게 하고 80만 원 밖에 못 벌어서?"
"그냥 저는 돈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데요?"
다시 한번 튕겼다.
튕기면 튕길수록 저 씹돼지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는 게 압권이다. 네 주제에? 감히? 자존심을 챙겨?
표정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딱 지금 김여사의 얼굴일 것이다. 비대한 살집이 출렁거리고 입꼬리가 씰룩쌜룩 올라가는 게 단단히 약이 오른 모양이다.
"하-. 별놈을 다 보겠네. 호빠 선수가 돈이 싫어? 말이니 방귀니?"
"정우야, 그냥 해. 꽁돈 벌면 좋지 뭘?"
"그래. 아니면 설마···. 생각보다 작은 건가?"
정화의 도발에 미숙이 대신 대답했다.
"작긴 뭘 작아? 내가 직접 만져보기까지 했는데. 정우 대물이라니까."
"직접 까서 벗긴 건 아니잖아."
"뭐?"
"안에 무슨 짓을 했을 줄 어찌 아느냐고. 너 확대한 거 아니야?"
"아닌데요?"
정화가 계속 조롱했다.
"모르지. 또. 요즘 남자들도 확대 수술 많이 한다며? 구슬 안 박았다고 수술 안 했다곤 볼 수 없지. 솔직히 말해봐. 수술한 거 걸릴까 봐 그러지?"
계속되는 조롱에 파트너인 미숙이 마저 분위기가 바뀌었다. 내가 정말로 숨기기 위해 그런다고 의심하는 것이다.
"정말이니?"
"아닙니다, 누님."
"아니면 확 까서 보여줘. 저런 소릴 듣고 참는 거야?"
‘이것들이 진짜 남자 못 벗겨서 환장한 년들만 모였나.’
나는 속으로 학을 떼면서 당당하게 말했다.
"벗는 건 그냥도 가능해요. 저한테 돈이 필요 없다는 거죠."
김여사가 콧방귀를 꼈다.
"웃기시네. 남창 새끼가."
"······."
"까고 말해서 여기서 일하면서 돈 안 좋다고 하는 게 위선이지. 그럴 거면 뭐하러 이런 일 하니? 몸도 멀쩡한 새끼가. 어디 가서 노가다라도 뛰던지."
"여자랑 자고 싶어서요."
"뭐?"
나의 어처구니없는 대답에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옷을 주섬주섬 입고 있던 현성마저도 뜨악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계속 말했다.
"돈보다는 여자랑 맘껏 떡 치고 싶어서 해요. 선수 되면 실컷 잘 수 있다고 그래서."
"뭐라고?"
"푸하하, 얘 말하는 거 봐. 완전 또라이였네."
"정우야. 너 진짜···."
다들 어이없어하는 분위기였다.
나는 기선을 잡았다고 생각하고 역제안을 건넸다.
"그래서 말인데, 돈은 저한테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돈은 안 받아도 좋으니까 다른 걸 걸면 어떨까요?"
김여사가 마침내 낯빛이 바뀌었다.
조롱하고, 멸시하고, 깔보고, 업신여기는 표정에서 드디어 제대로 나를 상대해주는 느낌이었다.
"너, 재밌는 아이구나?"
"그런 소리 많이 듣습니다."
그녀가 비대한 다리를 힘들게 꼬며 담배 연기를 훅 내뱉었다.
"말해봐. 뭘 걸면 해볼래?"
"저는···."
나는 정화와 미숙을 쳐다보며 말했다.
"누님들도 이 게임에 동참했으면 좋겠어요."
"저, 정우야."
현성이 당황하며 나를 만류했다.
자칫 손님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가 괜히 심기를 거스를까 우려한 것이었다. 나는 그를 무시하고 계속 말했다.
"제가 현성이 형보다 많이 붙이면 말이에요."
"하-. 우리보고 이 게임을 하라고? 너 미쳤니?"
정화가 대번에 화를 냈다. 미숙 역시 몹시 불쾌하다는 표정이었다.
"너 그렇게 안 봤는데 진짜···."
"재밌겠는데?"
오히려 반전은 김여사에게서 나왔다.
"어, 언니!"
"지금 무슨 말씀이세요!"
두 사람이 황당해하자 김여사가 말했다.
"왜? 다들 질펀하게 놀아보자며. 재밌지 않겠어?"
"아니 그래도 이건···."
"언니, 저 시집도 안 간 처녀라고요."
"말은 똑바로 해. 노처녀겠지."
김여사가 강하게 나왔다.
그녀가 안면을 싹 바꾸더니 두 사람에게 경고했다.
"너희들 솔직히 나랑 놀면서 돈 한 푼 안 쓰잖아. 그동안 공짜로 재미 봤으면 이 정도는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언니···."
"저희가 무슨 업소녀도 아니고···."
"업소녀는 당연히 아니지. 누가 너희 같은 30대 넘는 돌싱과 노처녀를 써주겠니?"
김여사의 신랄한 표현에 두 사람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렇게 해봐. 네가 현성이보다 더 많이 붙이면 숙이랑 정화도 벗는 걸로 해. 대신."
김여사가 마지막 말을 강조하며 나를 씹어 먹을 것처럼 노려보았다.
"네가 실패하면 넌 이제부터 우리 개가 되는 거야."
"개요?"
"그래. 짖으라면 짖고 핥으라면 핥는 개. 싹 다 벗겨놓고 목줄 채워서 끌고 다녀도 반항하지 않는 개. 어때?"
‘미친 씹돼지년. 자긴 어차피 상관없다고 막 지르는 거 봐.’
김여사는 떨떠름해 하는 두 여자를 향해서도 말했다.
"그리고 너희도 약속 꼭 지켜. 나를 위해서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아? 안 그래?"
그것은 숫제 협박이었다.
자기 돈으로 유흥을 즐기고 싶으면 알아서 기라는.
"안 그럼 뭐, 내가 너희들하고 계속 놀 이유가 있겠니? 어차피 쏜다면 달라붙은 애들 한 트럭인데 말이야."
"······."
"아, 알겠어요."
결국, 두 사람이 동의하에 게임이 시작되었다.
김여사가 조건을 말했다.
"시간은 똑같이 2분이야. 손을 쓰지 말고 몸에다 최대한 많이 붙여. 현성이 보다 많이 붙이면 이기는 거로 해줄게."
"저도 싹 다 벗으면 두 배로 쳐주는 거죠?"
"그래. 룰은 룰이니까."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미숙과 정화가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천천히 상의를 탈의했다.
‘막장으로 놀아보자 이거지? 한 번 갈 데까지 가보자.’
***
3번 룸에서 호출 벨이 울렸다.
룸을 다녀온 웨이터가 최마담에게 보고했다.
"뭔 일인데? 다시 선수 넣어달래니?"
"아뇨. 문고리에 물수건 좀 걸어 달라던데요?"
"물수건을?"
그것은 유흥업소의 대중적인 사인 중 하나였다.
<절대 열어보지 말 것> 호텔룸에 거는 DO NOT DISTURB와 똑같은 의사표시였다. 대체로 룸떡을 치거나, 홀딱쇼를 하는 경우에나 거는 사인이었다.
"뭔 일이래니? 안에 분위기 어떤데? 미친년들 설마 다 벗은 건 아니지?"
"그건 아닌데···."
"본대로 말해봐."
"테이블 위에 지폐가 뿌려져 있더라고요."
"지폐가? 얼마나?"
"오만원짜리가 수북하게요."
"벗은 사람은 없고? 선수들도?"
"네. 아, 그 오늘 새로온 선수가 상의를 벗고 있긴 했어요."
"상의탈의를? 흠···."
최마담은 고민에 빠졌다.
어차피 정빠도 아닌 마당에 룸에서 떡을 치고 놀건 상관하지 않는 게 이곳의 방식이었다. 다만 구성이 이상했다.
‘업소 다니는 사람들 같진 않던데···.’
통상 룸에서 질펀하게 노는 경우는 같은 업종의 윤락녀인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술에 취해 흥이 돋으면 자신들이 놀던 방식 그래도 업장에서 난장을 피우곤 했다. 그쯤되면 누가 손님이고, 누가 접대부인지도 헛갈릴 지경이었다.
그때 지명 손님을 받고 있던 동탁이 복도로 나왔다.
그는 마담을 보더니 반갑게 인사했다.
"넌 또 왜 나오니?"
"동생들한테 심부름시켜 놓은 걸 깜빡해서요. 무슨 일 있어요? 왜케, 심각해요 누님."
"아니야. 아무일도."
"아닌데? 뭔가 있는데?"
"그게 아니라···. 오늘 신참이 하나 들어왔거든."
"네 박실장님한테 들었어요. 첫출전에 초이스 됐다죠?"
동탁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미 그는 도훈의 존재에 대해선 기억에서 지운 상태였다.
"걔 무슨 사고 쳤어요?"
"아니, 그건 아닌것 같은데. 거기 룸에서 물수건 걸어 달라고 했다더라고."
"물수건을요?"
< 758. 빻은 얼굴도 할 수 있어.-8-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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