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771화 (739/2,000)

< 753. 빻은 얼굴도 할 수 있어.-3- >

도훈을 바라보는 세 여자의 표정이 미묘하게 갈렸다.

먼저 김여사.

‘뭐지, 저 병신 같은 멀대는?’

도훈은 다른 선수들보다 키가 월등하게 큰 편이었다.

맨 구석에 서 있는데도 처음부터 눈에 확 띄었다.

대한민국 20대 남성의 평균 키는 174.

호빠 선수들 역시 평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얼굴도 잘생겼는데 키까지 큰 경우 이미 호빠보다 방송계나 연예계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훈의 키는 무려 185.

거기다 덩치도 좋은 편이라 딱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크다’는 느낌이었다.

좌우로 떡 벌어진 어깨와 정장이 타이트해 보일 정도로 단단한 근육질 체형은 다부진 전사의 이미지를 풍겼다.

하지만 김여사는 덩치 큰 남자보다 현성처럼 귀여운 남자를 더 밝히는 편이었다. 비대한 몸집으로 평생 남자에게 사랑받아 본 적 없던 김여사는, 자기도 모르게 남성에 대한 강한 열등감과 적대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따라서 강한 남성보다는 자신이 마음껏 휘두를 수 있는 체구가 작고 유약한 남성을 선호했다. 그런 남자를 지배하는 데서 묘한 쾌락을 느꼈다. 아까 전 정화가 앞선 선수보고 귀엽지 않느냐고 물었던 것도, 그녀의 취향을 고려한 질문이었다.

그런 김여사에게 도훈은 다소 징그러운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못생긴 얼굴 탓에 커다란 덩치가 더욱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지금의 도훈은 호빠 선수라기보단 조폭 건달에 가까워 보였다. 무식하고 못 배운 싸움꾼을 데려다 놓은 것 같았다.

‘여기 물 좋다고 했던 년 확 그냥 아가리를 찢어 버려야겠네. 저딴 것도 선수로 있는 곳이 무슨 맛집은 맛집?’

김여사가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팍 돌리자, 그녀의 눈치를 살피던 정화가 비위를 맞추기 위해 선빵을 날렸다.

"얘, 넌 뭐하러 왔니?"

소개 전부터 적대감이 느껴지는 질문에 도훈이 살짝 당황했다.

‘뭐, 뭐야?’

"네?"

"도저히 선수 할 사이즈가 아닌 것 같은데, 무슨 배짱으로 여길 온 거냐고?"

민망할 정도로 직설적인 화법이었다.

아무리 돈을 주고 놀러 온 손님들이라도 면전에 대고 모욕을 주는 것은 지나친 결례였다. 멘트를 마친 다른 선수들은 자신이 수치를 당한 것 마냥 딱딱하게 표정이 굳어졌다. 특히 도훈의 사수인 현성은 주먹을 감싸 쥘 만큼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정화의 도발에 도훈이 속으로 생각했다.

‘아오, 내가 진짜 별 거지 같은 꼴을 다 당해 보는구나. 이걸 참아 말아?’

[지혜롭게 넘기셔야 합니다. 저들은 주인님이 어떤 사람이 인지 모릅니다. 미션을 위해서···.]

도훈은 속에 열불이 났으나 이것 또한 미션의 일부로 여기기기로 했다. 도훈은 설마 웃는 낯에 침 뱉진 못할 것이라며 속없이 웃어 보였다.

"하하, 제가 와꾸 사이즈는 안 나와도 다른 사이즈는 나오거든요."

도훈의 재치있는 답변에 가만히 지켜보던 미숙이 그를 흥미로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사실 그녀도 못생긴 도훈이 크게 구미가 당기는 편은 아니었지만, 정화가 대놓고 쿠사리를 먹이는 모습에 괜한 반발감이 일었다. 미숙이 도훈을 옹호했다.

"재밌네. 다른 사이즈는 대체 뭘 까나? 넌 이름이 뭐니?"

"이정웁니다, 누님."

"너 그렇게 자신 있어?"

"제가 뭐 믿고 여기 왔겠습니까? 내세울 건 단 하나!"

도훈이 당당하게 가슴을 내밀며 압도적인 등빨을 과시했다. 원래 미숙은 얼굴보다 몸을 밝히는 편이었고, 특히 밤일을 잘하는 남자를 선호했다. 그녀가 볼 때 다른 건 몰라도 도훈은 힘 하나는 좋아 보였다. 물론 정력과는 별개인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게다가 정화년 설치는 꼴 보기 싫으니까.’

무엇보다도 정화가 도훈을 저격한 사실에, 그녀의 부아를 돋고 싶었다. 두 사람은 물과 기름처럼 양립할 수 없는 관계였다.

"이정우? 이름 마음에 든다."

"언니?"

"왜? 내가 내 파트너 결정하는 데 네 눈치 봐야 하니?"

미숙이 받아치자 분위기가 애매해졌다.

선수들은 잠자코 손님들의 결정을 기다렸다.

어차피 초이스는 손님의 권한. 주제넘게 끼어들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보다 못한 김여사가 중재하듯 말했다.

"일단 아가들은 나가 있어. 결정되면 부를게."

"넵."

현성을 필두로 선수들이 줄줄이 룸을 나서자 남은 세 여자가 서로 의견을 나누었다.

"어쩌자는 건데? 왜 니들은 볼썽사납게 허구헌 날 투닥거리니?"

"저도 제가 마음에 드는 남자 정돈 고를 순 있는 거 아니에요?"

"진짜로 그 무식한 애가 마음에 든다고?"

"왜요? 난 괜찮아 보이던데. 뭐 남자들 얼굴 뜯어 먹고 살 것도 아니고."

"푸핫-. 우리 언니 너무 밝히신다앙."

정화가 비아냥거렸다. 분위기가 다시 냉냉해졌다.

"내가? 너만 할까?"

"뭐라고요?"

"요샌 돌싱이 더 하다면서? 돌아온 싱글인지, 돌아버린 싱글인지."

"어, 언니!"

"작작좀 해!"

쾅!

결국 김여사가 술잔은 테이블 위로 내려쳤다.

물주를 자처한 마당에 남의 싸움 구경 하려고 술값을 지불한 것은 아니었다.

"죄송해요."

"제가 지나쳤어요. 미안."

형식적인 사과가 오가고 김여사가 말했다.

"솔직히. 난 이 가게 마음에 안 들어. 올초이스까지 했는데, 이따위로 사람을 엿 먹여? 우리를 완전 뜨내기로 보는 것 같아."

"맞아요. 그냥 가게 옮겨요. 여기 아니면 호빠없나? 참나."

"아니."

김여사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내가 왜? 이 시간에 또 가게 옮겨서 초이스하자고? 그것도 별로야. 이미 지불한 술값은 또 어쩌고?"

"그럼요?"

"진상 한번 피워보자."

"진상요?"

"그냥 확 막장으로 놀아버리게. 어차피 두 번 올 곳도 아니잖아? 지들이 어쩔 건데?"

김여사의 제안에 두 사람이 서로 눈치를 보았다.

오늘 모임을 제안한 것은 다름 아닌 김여사.

아마도 욕구불만으로 성욕이 팽배해진 시기일 것이다.

그녀의 강한 성욕은 두 사람도 감당 못 할 정도였는데, 한 번 삘을 받으면 몇날 몇일이고 호빠에 전세를 내는 수준이었다.

"그래도 괜찮으려나?"

"뭐 어때? 여기가 정빠도 아니고."

대체로 정빠는 손님을 가렸다.

테이블 매너도 준수하고, 2차도 쉽게 나가기 힘들었다.

하지만 정빠가 아닌 곳은 질펀하게 노는 곳도 많았다. 세 사람은 곧 의기투합해서 의견을 모았다.

"그래. 기왕 올초이스까지 했는데 본전은 뽑고 가야지."

"그럼 다들 누구 고를 거예요?"

"날개는 됐고, 난 마지막에 들어온 현성이라는 애 귀엽더라. 싹싹해 보이고."

"전 그럼 4번째로 들어왔던 민호로 고를게요. 걔가 제일 낫더만."

"그래. 걔 니 전 남편 닮았더라야."

"아이씨, 언니 진짜!"

"농담이야 농담. 왜 썽을 내고 그래. 난 그럼 그 정우라는 애로 할게요."

"그 못난이 전봇대?"

"진짜? 걔는 좀 아닌 것 같은데?"

"왜? 그냥 순진해 보이잖아. 솔직히 뭘 믿고 선수라는 지도 궁금하고."

"크크. 언니. 내 경험상 덩치 크다고 거기 큰 거 아니더라."

"뭐 맘에 안 들면 뺀지 놓으면 되지. 그게 뭐라고."

"그럼 초이스 한다?"

***

대기실로 돌아온 도훈을 현성이 위로했다.

"기분 상했냐?"

"그냥 뭐."

"기분 풀어 인마. 더한 진상들도 많다. 저 정도면 양호한 편이야."

"그래요?"

"당연하지. 우리가 무슨 보돈 줄 알고, 신고식도 시키는 손님들도 있었어."

"신고식이요?"

"그래. 막 벗기고 하는 거 있잖아. 테이블 위에 올라가 보라는 둥, 꼬추 한번 보자는 둥. 그래도 저 정도면 양반이지."

"괜찮아요. 어느 정도는 각오했으니까."

"넌 참 멘탈이 괜찮네. 어쨌든 초이스 갈 기회는 종종있으니까 잘 해봐. 그래도 아까 대응 좋았어. 거기서 화내면 우리도 입장 난처해지거든."

현성이 도훈을 위로하는 그때 대기실 문이 열리며 실장이 얼굴을 내밀었다.

"김민호, 이현성··· 그리고 이정우, 정우는 또 뭐냐?"

"저희 박스에 신입입니다."

"어, 그래? 아무튼 3명 초이스, 3번방."

"3번방이요? 그 씹돼지?"

"손님보고 씹돼지가 뭐야? 돈 많아 보이는 여편네니까 잘 구워 삶아봐. 물주가 너 찍은 것 같더라."

"절요? 아놔 씨발. 어쩐지 어젯밤 꿈이 사납더라니."

도훈은 자신이 뽑혔다는 말에 놀랐다.

‘누구지? 그 돼지가 날 뽑았을리는 없고. 혹시 그 여자인가?’

도훈은 자신에게 호의적이던 미숙을 떠올렸다.

도훈이 얼떨떨해하는데 주변의 선수들이 축하를 건넸다.

"이얼, 처녀 출전에 초이스라니!"

"역시 사람 취향은 알 수 없다니까?"

"잘해라. 괜히 실수하지 말고."

도훈의 박스에 속해있던 선수들은 대부분 축하를 건넸다.

그러나 그와 다른 박스에 속한 선수들은 오늘 처음 출근한 도훈이 초이스를 받은 것이 못 마땅한 눈치였다.

"저 새낀 뭐냐?"

"좆같이 생겨가지고 하여간."

"아씨 저런새끼한테 밀렸다는 거야?"

현성은 팀의 대표로서 자기 팀원이 비아냥 받는 걸 참을 수 없었다.

"야, 너 방금 뭐라고 했어?"

"내가 뭐? 그냥 짜증난다고도 못해?"

"어이, 김현성이. 형 앞에서 지금 꼬장 부리냐?"

대기실 분위기가 순식간에 험악해졌다.

늘상 벌어지는 일이지만, 선택받은 소수와 탈락된 다수의 감정은 격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손님이 가득 찬 날에도 절반 가까이는 공치는 게 다반사였고, 초이스를 못 받는 선수들은 생계의 위협을 받을 정도로 힘든 상황이었다.

나이가 벼슬이라고 다른 박스에서 제일 나이 많은 형까지 나서자 현성도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을 보던 실장이 혀를 차며 말했다.

"야야, 뭐하냐 니들? 손님 안받을 거야? 당장 튀어와."

현성은 대기실을 나가며 도훈에게 말했다.

"신경쓰지마. 지들 안 뽑혔다고 투정부리는 거니까."

"전 괜찮아요."

도훈의 대답에 현성이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역시 멘탑갑이라니까."

초이스를 받고 룸으로 향하는데 현성이 조언했다.

"들어가면 거슬리는 경우가 있어도 최대한 비위 맞춰.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자존심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하는 게 좋아."

"네."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빡셀거야. 그것만 기억해. 우린 돈만 벌면 돼. 옆에서 술시중만 들어도 시간당 3만원씩 받는 거야. 그런 알바가 어딨냐?"

"네."

도훈은 오늘 처음 본 현성이 자신을 챙기는 모습에 적잖이 감동했다.

‘이런 밑바닥에서도 의외로 인성이 좋은 사람도 있구나. 첨엔 나쁜 놈인 줄 알았는데.’

[말투는 거칠지만 사람은 좋아 보이네요.]

‘그러게. 확실히 이런 일을 한다고 다 나쁜놈은 아니니까.’

3번 룸앞에 당도하자 실장이 노크하기 전에 세 사람에게 당부했다.

"너희들 오늘 잘하면 2차까지 프리패스다."

"2차요?"

"어. 아까 픽업해서 오는데 그러더라. 셋 다 외박해도 상관없다고."

"유부녀들 아니에요?"

"아닐걸? 운전하면서 대충 들었는데 한명은 노처녀, 한명은 돌싱일 거야. 나머지 한 명은 뭐··· 외박해도 상관없는 것 같고. 그러니까 잘해. 원래 아줌마들이 화끈하잖아. 그리고 너."

실장이 도훈을 콕 찝었다.

"저요?"

"그래. 너 신참이지?"

"네."

"도박판에도 초심자의 행운이란 말이 있잖아. 너처럼 첨 출전해서 초이스 받는 거 흔한 일 아니다. 그러니까 잘 해봐. 양주 알아서 잘 비우고."

"양주를···."

"그래야 나한테 뽀찌 좀 떨어질 거 아니냐. 또 아냐, 다음에 내가 지명 잡아서 챙겨줄지."

"넵. 알겠습니다."

유흥업소 일이라는 게 다 그렇지만, 철저하게 자신의 사익을 챙겨먹는 구조였다. 마담은 가게를 운영하고, 실장은 손님을 물어오고, 선수는 손님에게 돈을 뜯어내고. 그 돈은 다시 위로 위로 올라가며 수수료를 뗐다.

"그럼. 준비 됐지?"

똑똑똑-

"선수 입장합니다!"

***

문을 열자마자 담배 냄새가 훅 풍겼다.

가운데 앉은 물주를 제외한 두 사람이 쌍으로 담배를 꼬나물고 앉아있었다.

"가운데 너. 넌 왕언니 옆에."

"넵!"

현성이 씩씩하게 대답하더니 밝은 표정으로 물주 옆에 앉았다. 방금 전까지 구겨있던 인상이 어느새 해맑게 바뀌어 있었다.

‘이야, 저게 프로구나. 나라면 돈을 억만금을 줘도 표정관리 안되겠는데.’

"그리고 넌 내 옆으로."

선수 배치를 하던 여자가 마지막으로 나에게 말했다.

"멀대 너는 미숙이 언니한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숙이라 불린 여자 옆에 앉았다.

그녀는 짧은 치마를 입고 다리를 꼬고 있어 허벅지가 훤히 드러나 있었다.

‘몸매도 상당한데? 이름이 미숙인가? 좀 촌스럽구나.’

미숙은 나를 옆자리에 앉히더니 빈 술잔을 내밀었다.

"왔니? 주변에서 말리는데 내가 너 찍었다? 나한테 잘해라."

"감사합니다, 누님."

"이름이 정우라고 했지? 난 숙이라고 불러."

"네 숙이누님."

"정우야. 여기 술 한잔 말아 볼래?"

"넵. 언더락으로 드릴까요?"

"아니. 그냥 따라."

나는 옆에 보이는 양주를 두 손으로 받쳐 조심스럽게 따랐다. 우선은 분위기를 살피는 게 먼저였기 때문에 최대한 예의있게 행동해야 했다.

술잔을 채우자 미숙이 갑자기 거기에 담배꽁초를 집어 넣었다.

피익- 하는 소리와 함께 담배 필터가 둥둥 떠다녔다.

"어이고, 어쩌나? 이 아까운 술을."

고의적인 행동이 분명했지만 의도를 파악할 수 없었다.

"다시 따르겠습니다."

"아니야."

미숙이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아까우니까 네가 마셔라, 정우야."

미숙이 무표정한 얼굴로 나에게 스트레이트 잔을 내밀었다.

담배 필터가 둥둥 뜬 술잔을 말이다.

< 753. 빻은 얼굴도 할 수 있어.-3-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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