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770화 (738/2,000)

< 752. 빻은 얼굴도 할 수 있어.-2- >

화장실은 유흥업소답지 않게 고급스러운 편이었다. 대리석으로 된 바닥 타일과 은은하게 비추는 조명이 안락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변기 칸마다 비대가 설치되어 있었고, 세면대에 달린 수도꼭지마저 값비싼 제품이었다.

눈이 휘둥그레진 도훈은 거울 앞에서 머리를 빗어 넘기는 현성을 향해 물었다.

"화장실이 장난 아닌데요?"

"뭘 이정도 가지고. 여자 화장실엔 파우더 룸까지 있는데."

"파우더룸이요?"

"어. 화장 리터칭하라고 아예 의자까지 갖다 놨을 걸."

도훈이 어리둥절해 주위를 둘러보는데, 현성이 가방을 뒤적였다. 흔히 일수가방이라고 불리는 조그만 클러치 백이었다.

"뭐하시는 거예요?"

"보면 몰라? 비비 바르잖아."

"아···."

도훈은 남자가 화장하는 모습을 처음 봤기 때문에 생소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선수가 되면 그런 것도 발라야 하나요?"

"당연하지. 룸 안이 어둡다곤 해도 가까이 보면 얼굴에 잡티 같은 건 다 보이거든. 너도 바를래?"

"아, 아뇨. 저는···."

도훈이 사양하자 현성이 그의 피부를 슥 쳐다보며 말했다.

"은근 피부는 좋네. 넌 바를 필요도 없겠다. 타고 난 거냐?"

"아, 예 뭐···."

도훈은 백옥크림을 바른 상태였기 때문에 피부가 무척 말끔한 상태였다. 현성은 비비에 이어 눈썹 화장까지 하면서 도훈에게 말했다.

"너 꾸밈비라는 말 알아?"

"꾸밈비요?"

"여자들 쓰는 말 있잖아. 남자 만나기전에 치장하면서 드는 돈 말이야. 화장품이나 옷, 악세사리 같은."

"들어본 것 같아요."

"우리도 사실 똑같아. 손님 맞으려면 그만큼 신경을 써야 하니까."

"아까 말씀하신 명품 같은 것도요?"

"물론 그것도 있고, 이렇게 얼굴 단장하는 것까지 포함되지. 우리 같은 직업엔 이게 다 투자라는 말씀이야."

"···그렇군요."

‘거참, 누가 남창 아니랄까봐.’

"웃기냐?"

"네?"

"니 표정이 그렇구만. 뭘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생각했지?"

"아, 아닙니다."

현성은 눈치가 빠른 타입이었고, 순간적으로 거울에 비친 도훈의 떫은 표정을 예리하게 캐치했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아랑곳 않고 이번엔 입안에 구강 청결제를 뿌렸다.

칙-칙-.

"카학-! 퉷!"

입안을 헹군 현성이 말을 이었다.

"너도 이 일 하다보면 차차 알게 될 거야. 여긴 완전 전쟁터거든."

"전쟁터요?"

"내가 아까 말했잖아. 호빠하면서 돈 버는 거 쉽지 않다고. 여기도 다 그 뭐시냐, 부익··· 아 씨발 뭐더라?"

"부익부 빈익빈이요?"

"맞어. 역시 똑똑하네. 딱 그거거든. 잘 나가는 놈은 더블에 2차에 스폰까지 다 챙기지만, 못 나가는 놈은 허구헌날 들러리만 서다 끝나는 거지. 쥐꼬리만한 기본급으론 품위유지도 안 되는 거 알지?"

"네···. 근데 더블은 또 뭐예요?"

"더블? 말 그대로 두 탕 뛰는 거야."

"두 탕이라면."

화장을 고친 현성이 소변기 앞에 서며 답했다.

"룸에서 룸을 옮겨 다닌다고."

"그게 가능해요?"

"어. 초이스 되었다고 거기 지박령하는 건 절대 아니야. 물론 2차 컨펌 오면 죽쳐도 무방하지. 근데 그게 아닌 이상 더블정돈 허용해 주거든. 정빠에선 그게 기본이기도 하고."

현성은 업력이 길었기 때문에 업계 용어를 아무렇게나 사용했다. 초보인 도훈은 당연히 질문에 질문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형, 죄송한데 정빠는 또 뭔가요?"

"아, 그걸 설명 안했구나. 정빠는 쉽게 말해 정통 호스트빠를 말하는 거야."

"정통요?"

"어. 선수들 와꾸 필터링 되어있고, 손님들도 매너 좋고. 룸에서 지저분하게 안 놀고. 한마디로 제대로 된 호스트빠랄까?"

"아···."

"사실 정빠는 몇 군데 없어. TC도 제법 비싼 편이라서 손님들도 드나들기 부담스럽거든. 대부분은 우리처럼 잡탕이지."

"그렇구나."

"TC는 뭔 줄 알지? 테이블 차지. 기본 티씨는 35,000원이야. 우리 가게 같은 경우는 찡대, 그러니까 마담이 챙겨가는 수수료는 5,000원이고."

"그럼 초이스가 되면 기본 시간당 3만원씩 버는 건가요?"

"그렇긴 한데 와리로 받으면 술값도 일부 챙길 수 있어."

"와리는 또···."

"니가 단골 만들어서 직접 가게 데려오는 경우 말이야. 실장이 받을 수수료를 선수가 대신 챙기는 거지."

"아···."

"넌 근데 오줌 안 싸냐? 나중에 혹시라도 초이스 되면 화장실 갈 짬도 안날 걸? 술도 계속 먹어야 되니까 미리 빼두는 편이 좋아."

"아, 넵."

도훈은 현성 옆에 서서 안 나오는 소변을 억지로 누었다.

쏴아아아-

"새끼, 오줌 빨 좋은 거 보소?"

현성은 고개를 스윽 내밀더니 도훈의 물건을 슬쩍 훔쳐보았다. 그러더니 기겁하며 소릴 질렀다.

"뭐, 뭐얏 씨발!"

"네?"

"야, 너 솔직히 불어. 인테리어 공사했지?"

"아닌데요."

"와, 씨발. 깜빡이야. 갑자기 말 좆같은 게 달려있어 가지고 존나 놀랐네."

현성은 도훈의 대물에 놀란 듯 한참 흥분해 떠들었다.

"그게 진짜라면 묵직이보다 더 큰 거 같은데?"

"그건 잘···. 아무튼 특별히 시술 같은 건 안했습니다."

"대박이네. 야, 넌 그냥 멘트 날릴 때 좆만 까도 되겠다야."

"정말 그래도 돼요?"

도훈의 순진한 물음에 현성이 호탕하게 웃었다.

"푸하하, 미친. 그게 되겠냐? 우리가 아무리 정빠가 아니어도 그렇게 막장까진 아니지. 남보도 뛰는 애들도 아니고."

도훈은 또 물을까 하다가 그냥 속으로 추측하기로 했다.

‘남자 보도 뛰는 애들을 남보도라고 하나 보군. 대충 알아먹어 야지.’

"암튼, 야, 와! 너 진짜 좆나 크다. 은근히 매니아 좀 있겠어."

도훈은 기회다 생각하고 궁금한 걸 물었다.

"근데 이걸로 어필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죠? 형도 알다시피 제가 내세울 게 별로 없어서."

"뭐? 좆 큰 거? 음···."

세면대에서 손을 씻던 현성이 티슈로 손을 닦으며 말했다.

"그게 사실 제일 문제긴 해. 일단 초이스를 못 받은 이상 그런걸 알릴 방법이 없으니까."

"아님, 그 묵직이 형님이 쓰시는 방법은···."

"인마. 멘트 날릴 때 밤일 잘한다는 애들이 한 둘인 줄 아냐? 당장 까볼 것도 아닌데 구라부터 치는 애들이 한 트럭이야. 그래서 손님들도 그런 말은 곧이곧대로 안 믿어. 대충 걸러듣지."

"아···."

"씁-. 아쉽네. 얼굴이 평타만 됐어도 은근 인기 좀 끌 것 같은데···."

현성이 도훈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안타까워했다.

"성형이라도 받지 그랬냐?"

"돈이 없어서요. 돈 모아서 하려고 했는데···."

"뭣하면 마담한테 마이킹이라도···. 아 맞다, 지금 최사장님한텐 안 되겠구나. 정사장님 출근 하시면 한 번 물어보던가."

"마이킹이 선금 땡기는 거 말하는 맞죠?"

"어. 근데 내가 너라면 안 빌리고 만다."

"왜요?"

"인마. 마이킹 이자가 사채 이자야. 까딱하면 원금 두배 되는 거 순식간이다. 마담 뒷배에 조폭들 있는 거 알지? 떼먹으려다가 골로 간 새끼 여럿 봤거든, 내가."

"아···."

"너무 조급하게 생각 말고 당분간은 배운다는 마음으로만 해. 내가 보니까 넌 워크에씩이 좋아서 금방 자리 잡겠다. 얼굴은 좀 빻았어도 몸도 좋고 특히 물건이 특급이잖아."

"감사합니다."

"근데 워크에씩 맞나? 잡지에서 본 거라서 헛갈리네."

***

"됐어, 다음."

김여사가 노래방 기계 앞에 도열한 선수들을 쫓아냈다. 맛집(?)이라는 소문을 듣고 놀러온 <오빠호빠>의 물 상태가 영 별로였다.

‘여기 추천한 년이 대체 누구야? 하나같이 쭉정이 뿐이네.’

말이 좋아 여사지, 사실 그녀는 토지보상으로 대박이 난 졸부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 돈은 차고도 넘쳤지만, 남편은 이미 어린 여자들과 놀아나느라 가정을 버린 지 오래. 장성한 자식을 생각해 차마 이혼은 못하고, 서로 애인을 두는 것을 암묵적으로 허용한 쇼윈도 부부에 지나지 않았다.

김여사를 따르는 동생 중 하나가 말했다.

"언니, 마지막 걔는 좀 괜찮지 않았어? 나름 큐트하던데?"

그녀의 이름은 정화.

김여사의 심복 중 하나로, 남편의 불륜 때문에 갈라선 돌싱이었다. 어찌나 아첨을 잘하는 지 김여사는 늘 유흥을 즐길 때 정화를 데리고 다녔다. 정화 역시 물주인 김여사에게 충성을 다했다.

"큐트는 무슨 얼어 죽을. 딱 봐도 성괴더만."

맞은편에 앉은 미숙이 어깃장을 놨다.

자칭 골드미스, 김여사와는 어릴 때부터 알고지낸 고향 동생으로 정화와 마찬가지로 김여사의 유흥파트너 중에 하나였다.

그녀는 아부에 능한 정화를 늘 못 마땅하게 생각했지만, 김여사를 물주로 여긴다는 점에서는 정화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성괴면 어때서? 남자가 꾸밀 줄 알면 좋은 거지."

"어쭈? 말이 짧다? 내가 니 친구니? 나이도 어린게 반말은."

정화는 36.

미숙은 37.

두 사람 다 나이에 비해선 동안인 외모였다.

미숙은 습관적으로 말을 놓는 정화를 못 마땅해 했고, 정화 역시 한 살 차이 가지고 타박을 주는 미숙을 볼썽사납게 생각했다.

두 심복이 으르렁 거리자 김여사가 한마디 했다.

"싸우지들 말고 양주나 빨아 이것들아."

김여사가 스트레이트 잔을 들어 올리자, 정화가 잽싸게 잔을 맞대며 아양을 떨었다.

"울 언니가 오늘 술이 고팠구나?"

"술이 고픈 게 아니라 남자가 고프다 이년아."

"마지막 애들만 보고 그냥 옮길까? 여기 말고 청담 쪽에 괜찮은 데 하나 있다던데."

정화가 생글거리며 말하자 지켜보던 미숙이 또 딴지를 걸었다.

"올초이스한다고 비싼 술까지 다 시켜놓고 그냥 가자고?"

"뭐 어때? 우리 여사님이 이깟 술값에 눈하나 깜짝 할 것 같수?"

"저게저게. 지 돈 아니라고···. 언니, 그냥 마담 불러봐요. 메인은 다 빼놓고 쭉정이들만 계속 돌리잖아. 언니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서 그렇다니까?"

그때 똑똑- 하고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선수 입장해도 되겠습니까?"

김여사는 들고 있던 술잔을 내리더니 두 심복에게 말했다.

"마지막 애들만 보고 결정하자. 장소를 옮기던, 아니면 마담 불러서 진상을 부리던."

"좋아요."

"저도 콜."

"들어와."

센터에 앉은 김여사가 비대한 몸을 소파에 묻으며 다리를 꼬았다. 어찌나 허벅지가 두꺼운지 제대로 꼬아지지도 않자, 그 모습을 보면 정화가 속으로 끌끌 혀를 찼다.

‘하여간 저 돼지. 돈 많으면 지방흡입이라도 하라니까. 그니까 남편이 밖으로 싸돌지.’

김 여사에 비하면 정화나 미숙은 나이답지 않은 미모의 소유자들이었다. 사실은 김여사가 자신이 꿀려 보이지 않기 위해 얼굴이 예쁜 편인 두 사람을 데리고 다니는 면도 있었다. 둘을 꼬봉처럼 데리고 다니면서 우월감을 느끼려는 것이다.

문이 열리며 다섯 번째 멤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6명인 그들은 자연스럽게 노래방 기계 앞에 간격을 벌리고 섰다.

짧은 순간 수많은 눈빛이 교환되었다.

평소 호빠 경험이 많은 미숙은 빠른 스캔으로 면면을 살폈다.

‘하-. 갈수록 점입가경이네. 여긴 무슨 메인도 하나 없담?’

메인, 혹은 에이스라 불리는 존재는 박스를 구성하는 기본 중에 기본이었다. 당연히 박스가 면접을 보러 들어오면 에이스부터 눈에 띠기 마련인데, 마지막 팀엔 그런 존재가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미숙이 대번에 미간을 찌푸리더니 앞에선 선수들을 향해 시비를 걸었다.

"너네, 다 들어온 거니?"

"네?"

"···아니다. 됐다, 기대한 내가 바보지."

미숙이 선수의 면면에 실망한 듯 팔짱을 끼고 고개를 돌리자, 그녀와 사이가 좋지 않은 정화가 곧바로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두 사람은 앙숙과 같은 관계로 누군가 불호를 표시하면 억지로라도 좋다는 티를 내며 서로의 신경을 자극하는 편이었다.

"왜? 괜찮기만 하구만. 자자, 자기 소개 부탁해용. 맨 오른쪽부터."

"넵."

일행의 오른쪽에는 박스의 리더 격인 현성이 있었다. 그는 앞서 면접을 본 선수들에게서 가운데 앉은 뚱뚱한 여자가 물주라는 첩보를 들었던 터라 처음부터 김여사를 공략했다.

"다들 미인분 이시네요. 특히 가운데 분."

"나?"

"제가 좀 글래머 취향이라서요. 하하, 누님. 잘 부탁드립니다. 현성이라고 합니다."

현성이 멋들어지게 인사를 올리며 김여사를 추켜세우자, 김여사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미소가 떠올랐다.

‘짜식, 귀여운 맛이 있는데?’

그러자 맨 마지막 줄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도훈은 올라오는 구토감을 억지로 삼켜야했다.

‘우엑-. 저 씹돼지가 무슨···. 현성이는 비위도 좋네.’

김여사는 누가 봐도 풍만한 체형이었다. 가슴이 크긴 했지만, 체형을 고려할 때 결코 글래머라고 부를 수 없었다. 그보다는 양 옆에 앉은 두 여성의 외모가 눈에 띄었다.

‘아줌마 같긴 해도, 차라리 옆에 두 명은 봐줄만한 편 같은데?’

정화나 미숙은 둘 다 젊었을 때 한가닥 했을 것 같은 외모였다. 도훈은 저렇게 멀쩡한 여자들이 어째서 호빠를 드나드는 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말 세상엔 별 사람이 다 있구나. 저런 외모를 가지고 뭣하러 남자를 돈 주고 고른담?’

물론 이는 김여사가 물주라는 존재를 전혀 몰랐기 때문에 벌어진 착각이었다. 현성에 이어 하나둘 소개를 마치고 마침내 도훈의 차례가 되었다.

도훈의 빻은 외모를 본 세사람은 기대없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 752. 빻은 얼굴도 할 수 있어.-2-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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