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769화 (737/2,000)

< 751. 빻은 얼굴도 할 수 있어-1- >

대놓고 사람을 무시하는 게 못마땅했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어찌 됐건 이 몰골로 호빠 선수를 자처한 건 나다. 괄시야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고, 이조차도 미션의 일부로 생각해야 했다.

그리고 솔직히 이런 불법적인 일을 배우면서 제대로 사람 대접받거나, 친절한 설명을 기대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였다. 녀석의 입장에서 보면 나는 경력도 일천한데, 심지어 와꾸마저 빻아버린 폐급 초보일 뿐일 테니.

감내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속없는 사람처럼 실실 웃었다.

"흐흐. 그런 소리 자주 듣습니다. 보기보단 똑똑하다고."

"학교는 어디 나왔어? 공고? 상고? 아님 중퇴?"

"지금 대학 다니고 있습니다."

"뭐라고!"

현성이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왜 저렇게 놀라는 것일까? 현성이 주변에서 밥을 먹고 있던 다른 패거리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야, 이 새끼 지금 대학 다닌다는데?"

"뭐라고요?"

"대학생이 여길 왜?"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황하고 말았다. 아니 대학생이 대체 뭐라고? 전 국민의 80%가 대학을 진학하는 마당에 그게 무슨 대수로운 일이라고 이렇게 호들갑이란 말인가?

"왜, 왜 그러시죠?"

"이 새끼 존나 똑똑하잖아? 설마 전문대 아니지?"

순간 머릿속에 혼란이 왔다.

대학생이 똑똑하다고?

개나 소나 다니는 대학이?

"사년젠데요···."

"대박!"

"완전 브레인이네."

"면접에서 뽑힌 이유가 그거였네!"

나는 벙찐 표정으로 현성에게 되물었다.

"대학··· 다니는 게 그렇게 특별한 일인가요?"

"당연하지 인마. 우리 박스에 최고 학벌이 이제껏 전문대 중퇴였어. 야, 너 어디 나왔다 그랬더라?"

"폴리텍인데요."

"저 새끼 저거 지 혼자 대학물 먹어 봤다고 얼마나 으스댔는지 알아? 크크크. 야, 이제 너보다 공부 잘하는 애 왔다."

폴리텍을 중퇴했다는 놈은 뭔가 분한 지 나를 노려보았다.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대체 이 녀석들은 어떤 삶을 살아온 것일까?

설마 이들이 대학을 진학 못했다는 나머지 20%였나?

"어느 대학이냐? 지방대?"

"아뇨. 국성대···."

말하는 나도 살짝 쪽팔렸다.

물론 국성대가 인서울 대학 중 하나긴 하지만, 전생의 이정우라면 거들떠도 안았을 삼류 대학이다. 반에서 5등들면 가는 대학이 무슨 놈의 대학이란 말인가.

"와! 국성대! 대박!"

"거기 2호선 다니는 거기 맞지?"

"이 자식 인텔리였잖아?"

여전히 호들갑들이다.

대충 사이즈를 보니 호빠일 한다는 녀석들은 대학 문턱도 못 밟은 애들이 태반인 모양이다. 놀라운 일이었지만,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군. 여기 일하는 애들이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밟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어폐가 있겠어.’

[왜 그렇죠?]

‘생각해봐. 사내 새끼들이 오죽 할 게 없으면 호빠 선수를 하겠냐 이거야. 고등학교 때부터 일진놀이 하고, 수업 땡땡이치고, 학업 따윈 던져 버린 놈들 투성일거 아냐. 그러니 대부분 고졸이거나 중퇴한 양아치들 뿐이겠지.’

[세상에···.]

‘아무튼 현역 대학생이란 간판만으로 이런 반응이라니···. 진짜 얼굴만 멀쩡했지 대가린 텅텅 빈 놈들이었구나.’

놈들의 학력을 알게 되자 조금씩 자신감이 차올랐다.

그래. 여기 있는 놈들은 얼굴만 반반하지 무식한 놈들 뿐이다. 어쩌면 이 부분에서 나의 경쟁력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현성은 여전히 믿기지 않은 듯 나에게 다시 물었다.

"너 진짜 구라까는 거 아니지?"

"네."

"근데 너 왜 이 일 하려는 거야?"

"알바하려고요."

"돌았구나?"

현성이 껄껄 웃었다.

지켜보던 다른 사람들도 따라 웃었다.

"알바? 돈 벌고 싶다고?"

"네."

"꿈 깨 인마. 호빠해서 돈 버는 사람이 얼마나 있다고."

"네?"

"어디서 인터넷 썰 푼 거 보고 왔나 보네. 하긴 호빠하면서 버는 사람도 있긴 하겠지. 근데 많이 벌면 뭐해? 쉽게 번도 펑펑 나간다고, 금방 개털 되기 일순데."

"아···."

"뭐 그거야 차차 알게 될 것이고. 아무튼 면접 요령 알려줄 테니 지금부터 잘 들어."

"넵."

"면접은 다른 말로 멘트 날린다고도 하는데 대충 한 명한테 주어진 시간은 길어봐야 10초야. 짧으면 5초 내외고."

"그 시간에 뭘 해야 하나요?"

"임펙트있는 자기소개. 이럴게 아니라 직접 보는 게 좋겟다. 야, 두철아. 시범."

"네, 형님."

현성의 말에 주변에서 얼쩡거리던 두철이라는 녀석이 나섰다.

놈은 포마드로 빗어넘긴 머리를 손으로 쓰윽 쓸어올리더니 나를 손님이라고 가정하고 연기를 시작했다.

"저를 뽑아주시면 오늘 밤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겨드리겠습니다. 기억해 주십시오. 최묵직입니다잉."

그러더니 바지 위로 자신의 물건을 콱 움켜쥐면서 코믹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것이 아닌가. 어처구니없어 쳐다보는데 두철이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상입니다."

"봤냐?"

"보긴 봤는데 뭐가 뭔지···."

"하-. 새끼 영 눈치가 안 돌아가네. 두철이가 지금 자기 이름을 안 쓰고 별명을 썼지?"

"아··· 묵직이요?"

"그렇지. 어차피 이름 말해봤자 아무도 기억 못한다고. 너도 어차피 이정우가 본명은 아니잖아."

"네, 그렇죠."

"여기선 다들 그럴싸한 가명을 써. 현우, 현빈, 현찬, 현성 그런 이름 스무 명씩 줄줄이 자기소개하고 있으면 퍽이나 눈에 띄겠냐? 기억이나 할 것 같아?"

"아뇨."

"그러니까 일부러 웃긴 별명이나 신체적인 특징으로 임펙트를 줘야한단 소리야. 묵직이는 실제로도 제법 묵직하거든. 그러니 그걸로 어필하는 거지."

"아!"

"어차피 너나 저런 애들 얼굴로 먹고 들어가긴 힘들단 말이야. 그럼 뭐겠어? 하나밖에 없잖아. 밤일이라도 잘하는 걸 과시해야지."

"그, 그렇군요."

그때 두철이 외설스럽게 허리를 튕겨대며 신음을 내질렀다. 빈 테이블을 붙잡고 허공에 피스톤 질을 해대는 몸동작이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었다. 어찌보면 또라이 같기도 하고 본래 성격이 쾌활한 것 같았다.

"하아, 하아, 오빠, 오빠 최고, 하아!"

"야이, 미친 놈야 식당에서 무슨 짓거리야?"

"아니, 엊그제 만난 년이 그러더라니까요? 저보고 진짜 묵직하다면서. 크크. 아주 그날 작살을 내줬잖아요. 썅년. 몸보신 제대로 했지."

현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여전히 허리를 튕겨대는 두철을 무시하며 말했다.

"아무튼 저런 식으로 자신만의 매력을 어필하란 말이야. 그게 핵심이야."

"그럼 다들 별명을 다시 짓나요?"

"아니. 에이스들은 그럴 필요 없어. 어차피 눈에 확 띄니까. 와꾸 대장에겐 얼굴이 명함이거든."

"아···."

"그리고 꼭 저걸 따라하란 소린 아냐어. 노래 잘 부르는 애들은 노래로, 춤 좀 되는 애들은 춤으로, 성대모사 되는 애들은 성대모사로. 하여간 뭐가 됐건 짧은 시간에 너를 어필하는 게 중요해. 가만있자, 근데 넌···."

현성이 나를 빤히 보더니 팔뚝을 꽉 쥐며 말했다.

"그래. 몸이 좋으니까 차라리 몸으로 어필해봐. 은근히 너 같은 근육 돼지 취향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돼지까진 아닌 것 같은데···."

"새꺄. 여기서 너 정도면 돼지지. 선수들 옷 빨 잘 받으려고 일부러 몸도 안 키우는 거 모르냐? 와, 근데 너 진짜 딴딴하다. 운동 좀 했어?"

"네. 헬스를 좀···."

"몸 좋은 건 크게 필요 없어. 잘나가는 연예인 중에서 근육돼지들 본적있냐? 아이돌 중에 너처럼 몸 키운 애들 있느냐고. 다들 늘씬늘씬한 모델처럼 만들잖아. 수트 빨 받으려면 팔다리 길고 대가리 작은 게 최고거든."

"아하, 네."

"암튼 이건 당장 어쩔 수 없는 문제니까, 일단은 몸뚱이로 어필을 해봐. 또 아냐? 근육 짱짱맨 좋아하는 손님이라도 올지."

"그러니까요."

현성의 말은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되었다.

면접에선 일단 최대한 튀어 보여라.

상대가 나를 기억하게 만들어야 초이스 기회가 온다.

얼굴이 잘생긴 애들은 해당 없지만, 와꾸가 안되면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을 어필해라.

미션을 성공하기 위해선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이었다.

"담배는?"

"핍니다."

"밥 다 먹었음 한 대 빨러 가자."

현성이 나를 데리고 가게 밖으로 나갔다.

나는 당황하며 말했다.

"계산은···."

"여기서 먹는 건 다 공짜야. 이모가 체크해서 가게에 넘겨주거든. 선수 전용 식당이라고 할 수 있지."

"아···."

"여기 말고 두 군데 더 있는데 여기가 젤 가깝고 좋아. 반찬도 더 나오고."

"식사는 그럼 여기서 해결하면 되나요?"

"그렇지. 근데 뭐··· 스폰이라도 한 명 잘 물면 굳이 분식점 들를 필요 없어. 난 아직 스폰 없어서 이러고 산다만."

현성이 탄식하듯 중얼거렸다.

가게 밖으로 참께 나온 그는 담배를 물며 불을 붙였다. 듀퐁- 하는 청량한 소리와 함께 멋들어지게 불을 붙이는 모습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왜? 담배 없냐? 한 대 줄까?"

"그게 아니라···. 라이터가 없습니다."

내 라이터는 최사장이 구리다면서 버리라고 해서 버렸다.

"말을 하지 그럼. 옛 다."

현성이 던진 라이터를 낚아채자 제법 묵직했다.

첫눈에 보아도 고급스러운 라이터였다.

"원래 근데 여긴 비싼 라이타만 쓰나요?"

"뭐? 듀뽕? 꼭 그건 아닌데, 있어 보일 필요는 있지."

"그게 무슨 소린지···."

"너 사람이 제일 숨기기 힘든 게 뭔줄 아냐?"

"뭔데요?"

"빈티."

"아···."

"없어 보이는 건 금방 드러나. 자기도 모르게 몸에서 배어나거든. 근데 빈티 나는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들은 없단 말이야. 아무리 몸 팔아먹고 사는 호빠 선수라도, 일단 명품으로 몸치장을 해야 여자들이 좋아한다고."

"그렇군요. 잘 몰랐습니다."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심지어 빤쓰 한 장을 입어도 베르사체로 입어야 돼. 그래야 여자들이 우습게 안 봐."

"패, 팬티까지요?"

"물론 처음에는 힘들지. 나도 봐. 이거 얼마짜리 옷 같냐?"

현성이 자신이 입은 정장을 망토처럼 옆으로 펼쳐 보였다. 고급스러운 안감에 마감까지 훌륭한 값비싼 명품으로 보이는 옷이었다.

"꽤 나갈 것 같은데요."

"아니. 짭이야."

"네?"

"짭이라고. S급. 몰랐지?"

"네. 너무 감쪽같은데요."

"물론 짭이지만 비싼긴 해. 그래도 진품에 비하면야···. 아무튼 돈이 없으면 나처럼 짭이라도 구해 둘러. 솔직히 나도 잘나가는 편은 아니라서 절반은 섞어 쓰거든. 구두는 진퉁, 벨트는 짭. 이런 식으로."

"그렇구나."

"하이고. 내가 너를 어느 세월에 가르치니. 암튼 초면에 내가 막말한 건 미안하고 기왕 하는 거 열심히 해봐라. 넌 배우려는 태도가 좋네."

현성은 보기보다 나쁜 녀석은 아닌거 같았다.

말투가 좀 거칠 뿐 생각보다 친절했다.

안 그런척 하면서 중요한 요령들은 대부분 설명해줬다.

그때 현성이 물었다.

"야. 나 근데 존나 궁금한 거 하나 있거든?"

"뭔데요 형?"

"대학생들 진짜 MT가면 떼씹하고 그래?"

"······."

역시 답이 없는 새끼다.

***

밤 10시 반이 넘자 한산하던 가게가 조금씩 분주해졌다.

정마담이 운영하는 호스트빠 클럽, <오빠호빠>에는 삐끼들이 물고 온 뜨내기들과 실장에게 연락해 픽업을 해온 손님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선수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팀원들도 슬슬 스탠바이를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이른 시간이었기 때문에 대부분 지명으로 놀러 온 손님이 많아 도훈이 속한 박스는 아직 한 번도 초이스를 나가지 못한 채로 대기 중이었다.

무료한 시간이 하염없이 흘러갔다. 도훈은 초조함에 살짝 긴장되었다. 이제껏 잘생긴 얼굴로 쉽게 여자를 꼬셨던 것에 비하면 호빠는 모든 것이 생소했다. 똥개도 자기집 앞마당에선 반은 먹고 들어간다고, 평소라면 도훈이 밑으로 낮춰봤을 선수들도 다들 자

신감이 충만해 보였다.

‘젠장. 여자 꼬시는 데 이렇게 긴장하긴 오랜만이네.’

[너무 긴장 마십시오. 일단 오늘은 첫날이니 만큼 탐색전만 하셔도 괜찮지 않습니까?]

‘그렇긴 한데···.’

그때 문이 열리며 룸을 담당하는 실장 한명이 얼굴을 드러냈다. 흔히 ‘실장’이란 직책으로 불리는 이들은 단골손님을 차로 픽업해 오거나 삐끼들에게 붙들린 뜨내기들을 맡아 호빠 선수와 연결시키는 일을 맡고 있었다.

나이트로 치면 웨이터 같은 역할이지만, 이쪽은 손님들이 돈쓰는 사이즈가 다르기 때문에 실장의 영업력은 다른 유흥업소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할 수 있었다.

"야, 올 초이스 떴다."

"오오!"

"누군데요?"

"몰라 인마. 다른 가게 다니던 손님인데 놀러왔나보지. 1팀부터 대기타고 있어. 물 좋으면 날개로 간다니까."

실장이 할 말만 전하고 사라지자 도훈이 옆에 있던 현성에게 물었다.

"형. 올 초이스가 뭐에요?"

"말 그대로야. 우리 가게 있는 선수들 싹 다 면접 보겠다는 소리."

"다요?"

"어. 올 초이스 하면 오더 넣는 술부터 다르거든. 기본 양주 말고."

도훈은 아직 호빠의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였으므로 계속 물었다.

"날개는 무슨 소리에요?"

"인당 두명 씩 끼고 논다고. 양 옆구리에."

"둘을요?"

"어. 그게 날개야. 생각보다 큰 손인가 본데?"

"아···. 그럼 이제 1팀부터 순서대로 나가서 면접보고 오는 건가요?"

"그렇지. 우린 다섯 번째니까 한참 뒤에나 순서 올 거야."

"네. 근데 혹시라도 초이스가 되면···."

"니가? 크크. 꿈 깨 인마. 우리가 왜 마지막인 줄 몰라서 그래?"

"네?"

"우리가 제일 확률이 낮으니까. 앞에서 초이스 끝나버리면 아무리 올 초이스라도 우린 얼굴 비출 일도 없거든. 오버라도 나면 모를까."

도훈은 업계 용어에 미숙했기에 또 물었다.

"오버는 또 뭐예요?"

현성은 끈질기게 묻는 도훈이 답답할 만 한데도 끈기있게 알려주었다. 뭔가 근성이 느껴지는 눈빛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쉽게 말해서 파토 난거지. 한바퀴 돌았는데 맘에 드는 선수가 없는 경우."

"그럼 어떻게 해요?"

"재초이스 가거나 가게 뜨겠지. 나 잠시 물 쫌 빼고 올 테니까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아니다. 정우 너도 가자."

"전 화장실 안가도 되는데···."

"그게 아니라 면접 보기 전에 와꾸 좀 다시 다듬으라고. 아무리 빻았어도 깔끔하게 하고 나가야지. 처녀출전이잖아."

"아, 앗. 넵."

< 751. 빻은 얼굴도 할 수 있어-1- > 끝

ⓒ 성난불기둥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