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0. 중수의 자격-79- >
***
가게 밖으로 빠져나간 김상무는 근처 24시간 김밥집으로 나를 인도했다. 입구에 들어서자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던 젊은 남자들이 벌떡 기립하더니 허리를 90도 숙여 폴더 인사를 건네왔다.
"오셨습니까, 김상무님!"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서 인사하는 모습은 조폭 영화에서 보던 장면을 연상시켰다. 김상무가 손을 들어 가볍게 답례하더니 나를 구석의 테이블로 데려가 앉혔다.
"요기만 적당히 때워. 뭐 먹을래? 참고로 이 집은 김치찌개가 젤 낫다."
"그럼 그걸로 하겠습니다."
"이모, 여기 김치찌개 하나요."
"김상무님은 안 드십니까?"
"나는 아까 먹었어."
주문을 마치자 할 말이 없어진 나는 잠자코 앉아 있었다.
주변 테이블에서 밥을 먹던 사내들이 우리 테이블을 향해 시선을 던지며 웅성거리자 김상무가 대번에 불편하다는 사인을 보냈다.
"야, 내가 알아서 배속해 줄 테니까 신참은 신경 끄고 밥이나 드셔."
"넵."
김상무는 정마담이 말한 것 이상으로 영향력이 있어보였다. 호빠 선수들로 보이는 사내들은 그의 눈치를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다.
‘뭐지? 아직 나이도 어려보이는데···. 상무라는 직함까지 달고. 하긴 그 상무가 그 상무겠냐마는.’
나는 조심스럽게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굉장히 잘생긴 얼굴이다.
깊이 쌍꺼풀 진 눈과 오뚝한 콧날, 날카로운 턱선까지.
여성들이 흔히 좋아하는 꽃미남 스타일이다.
‘고놈 참 잘생겼네. 혹시 선수 출신일까?’
[호빠 선수 말이죠?]
‘저 갸름한 얼굴 좀 보라고. 여기서 밥먹는 어지간한 선수들보다 100배는 나아 보이는 데.’
실제로 그랬다.
처음엔 낯선 분위기에 압도당해 제대로 주변을 살피지 못했는데, 가만 지켜보니 인접 테이블의 젊은 남성 중에선 눈에 띄게 빼어난 미남은 거의 없었다.
물론 내가 이도훈의 얼굴로 살다 보니 자연스레 기준이 높아진 점도 있겠지만, 누가 봐도 미남이라고 인정할 부류는 테이블당 1명. 그러니까 4명당 1명 정도였다.
"최마담, 아니 최사장님한테는 어떻게 한 거냐?"
김상무가 호기심을 드러냈다. 자기가 봐도 당장 짤려나갈 지경이었는데, 멀쩡히 살아남은 게 신기했던 모양이다.
"네?"
"어떻게 최사장님을 설득했냐고. 다른 건 몰라도 얼굴 따지는 걸로 유명한 양반이거든."
"그런가요?"
"예전에 최사장님이 손님으로 올 땐 장난 아니었어. 우리 가게 선수 전원이 투입되서 면접 보면 한 두명 살아남을까 말까 할 정도였으니까."
‘어쩐지 얼굴 빻았다고 겁나 무시하더라니···. 완전 얼빠였잖아?’
그제야 최사장이 나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던 게 이해가 됐다. 그런 얼굴 성애자에게 빻은 이도훈의 얼굴을 내비췄으니 오죽 기가 찼을까.
"그렇군요. 제가 타이밍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가게에 선수들이 많이 없다고 하셔서."
김상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없긴 해. 정확히 말하면 선수도 선수지만 에이스급이 너무 없지."
"에이스급이요?"
"너 이 일 처음이랬나?"
"네."
"오늘 첫날이니까 내가 짧게 설명해 줄테니 잘 기억해둬. 여기서 일하려면 알아야 하는 것들이니까."
"넵."
"호스트 빠 선수들에겐 등급이란 게 있어."
"등급이요?"
무슨 고기등급도 아니고.
"너 텐프로라는 말 들어봤지?"
"네, 대충은요."
"화류계 여성 상위 10%. 미모뿐 아니라 학벌까지 따져서 그중에 가장 빼어난 애들을 말하는 거잖아."
"네."
"쩜오는 알아?"
"네, 텐프로에 살짝 못 미치는."
"그렇지. 그런식으로 이쪽 세계에서도 등급이 딱딱 나뉘거든."
"아···."
"호빠 에이스는 쉽게 말해 텐프로급이야. 그리고 그 밑에 준척급이 쩜오고. 나머진 다 하빠리지. 머릿수만 채워주는."
"대충 이해했습니다."
김상무가 설명을 하는 동안 조그만 뚝배기에 김치찌개가 담겨 나왔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김치찌개 냄새가 유난히 식욕을 돋궜다.
"우선 식사부터 해."
"네, 잘 먹겠습니다."
나는 사양 않고 혼자서 찌개를 먹기 시작했다. 그의 추천대로 조그만 가게치곤 괜찮은 맛이었다. 것보단 앞선 정음과의 3연타의 여파로 체력소모가 상당했던 모양이다.
"현재 우리 가게에 가장 부족한 건 에이스야. 최소 한 박스에 한 명은 꽂혀 있어야 팀하나를 꾸릴 수 있는데 5박스 중에서 에이스가 아예 없는 곳도 있으니까."
"근데 그 박스라는 게."
"간단히 말해 12명으로 구성된 팀이라고 생각하면 돼. 한 박스는 최대 12명. 적게는 8명도 있고."
"아하."
"내가 임의로 너를 팀에 배속시켜 줄 거야. 오늘 투입할 때는 그 친구들하고 같이 면접 보러 다니면 돼."
"면접이라면···."
"너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구나? 어쩌려고 이 일 시작했냐? 그 덩치로 어디 가서 노가다만 해도 먹고 살겠구만."
김상무의 핀잔에 나도 모르게 얼굴이 뻘게졌다.
사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여기 모인 남자들은 쉽게 말해 기생충이다.
어떻게든 여자 하나 물어서 빨대 꽂아 보려는 사회의 암적인 존재들. 사정이야 어찌됐던 몸 팔아 먹고 산다는 생각을 하는 것 자체만으로 토 나오게 저열한 근성을 드러낸단 말이다. 나 역시 미션이 아니었다면 이쪽 세계는 발도 붙이지 않았을 것이다.
김상무가 다시 말했다.
"하긴 뭐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닌데···. 근데 솔직히 넌 호빠 스타일은 아니잖아. 너도 인정하지?"
"아까 최사장님도 그리 말씀하시더라고요."
"이쪽 세계는 뭐니 뭐니해도 와꾸가 전부야. 생각해봐. 손님들이 자기 돈 쓰고 노는 마당에 기왕이면 잘생긴 호스트를 더 선호하지 않겠냐? 까놓고 말해서."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네가 혹시나 모를까 봐 얘기해주는데, 남자보다 여자들이 훨씬 얼굴 많이 따져. 평소 얼굴 안 보다고 하지? 그거 다 구라야."
"아···."
"물론 자기 애인 고르거나 남편감 고를때야 이것저것 따지겠지. 애인이 잘생겼는데 바람기가 많다? 그런 걸 누가 좋아하겠냐. 평생 같이 살아야 된 남자가 반반한 얼굴 말곤 쥐뿔도 없다? 그것도 역시 나가리지. 근데 생각해봐. 여기서 남편감 구하러 온 여자들이 있을까?"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단 말이야. 그래서 얼굴이 전부라고. 어차피 하룻밤 실컷 돈 쓰고 놀러 온 사람들이란 말이지. 평소엔 말 붙이기도 힘든 잘생긴 애들하고 질퍽하게 뒹굴수 있는."
김상무의 표현은 저속하긴 했지만 상당히 수긍가는 면이 있었다. 어찌됐건 이 바닥에서 오래 구른 만큼 나보다는 일가견이 있을 것이다.
"아무튼 난 사정이야 모르겠고, 네가 이 일 굳이 시작한다니까 얘기해주는 건데 너무 이상적으로만 생각하면 앞으로 좀 고달플 거야."
"이상적이라면···."
"여기서 일하는 애들 태반이 무슨 생각인지 뻔하잖아. 여자랑 재미도 보고 돈도 쉽게 벌려고. 아니야?"
"맞습니다."
"참고로 말하면 여기 밥 먹고 있는 놈들, 죄다 개털이야."
"네?"
김상무는 남을 흉보는 게 눈치가 보였는지 목소리를 낮춰 계속 얘기했다.
"진짜 잘나가는 애들은 이런 분식점에서 저녁 안 먹는다고."
"아···."
"돈 없으니까 이런 데서 먹는 거야. 꾸밈비 쓸 돈도 없어서 자기 혼자서 스타일링하고, 옷도 직접 다려 입고."
"그렇군요."
"너도 그냥 몇 달 죽었다고 생각하고 열심히만 해. 그럼 운좋게 초이스 받는 날도 있을 거야. 사람 취향이란게 의외로 다양하니까."
"네."
"뭐 더 얘기해 봐야 알아듣지도 못할 거고, 막상 일 시작해보면 뭔 말인지 감이 올 거야."
김상무는 손목엔 찬 고급 금장시계로 시간을 확인하더니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더 궁금한 건 나머진 팀원들한테 물어. 야, 현성아."
김상무의 말에 맞은편 테이블에 앉아있던 남성 한명이 대답했다.
"네, 김상무님."
"얘 오늘 들어온 신참이니까 니가 사수 맡아서 이것저것 알려줘라."
"저희 팀인가요?"
"그래. 너네 결번 많잖아. 머릿수는 채워야지."
현성이라는 사내가 대번에 인상을 찌푸렸다.
"김상무님, 저희 팀은 지금 에이스 하나 없이 후달리는 데 이런 폐급을 토스하시면···."
‘뭐? 폐급?’
나도 모르게 울컥 속에서 노기가 올라왔다.
아무리 주인공이 힘을 숨김 모드라고 하지만 노골적인 멸시와 무시는 도저히 참기 힘든 수준이었다.
‘이런 씨발, 진짜 보는 새끼들마다 빻았다고 사람 개무시하네.’
[참으십시오. 이 또한 견뎌야 할 시련입니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사람 면전에 대고. 이것들은 상도덕도 없냐? 아주 예의라곤 찾아볼 수 없구만.’
[미션 수행이 먼저 아니겠습니까? 이 정도도 모욕도 못 참아서 어찌 중수라 할 수 있겠습니까?]
‘크흠.’
[중수의 길은 결코 쉽지 만은 않습니다. 제공되는 미션 난이도도 점점 어려워질 것이고, 남은 미션들 또한 주인님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게 태반일 겁니다. 그것을 견뎌내는 게 중수입니다. 중수의 자격이란 그만큼 무거운 것이고요.]
‘자격이라···. 쳇, 알았다. 더러워도 참아준다.’
"일단 받어, 인마. 최사장님이 오늘부터 투입하라니까 면접보는 요령도 좀 알려주고. 대신 나중에 에이스 들어오면 우선적으로 챙겨 줄테니까. 알았지?"
"···네."
현성이 못 마땅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김상무가 자리를 뜨자, 그는 곧바로 내 맞은편에 앉았다.
액면으로만 봐서 20대 중반 쯤 되어 보이는 사내였다.
동안이라고 가정하면 20대 후반 쯤?
앞선 김상무 만큼은 아니었지만, 제법 귀엽게 생긴 인상에 옷 입는 스타일도 깔끔했다.
‘에이스급은 아니고 쩜오쯤 되려나?’
"너 이름이 뭐냐? 아, 말 놔도 되지? 나 스물 여덟이다."
"네, 형님. 전 스물 셋입니다. 이정우라고 하고요."
"그래 정우야. 밥 숟가락 놓지 말고 밥 먹으면서 들어. 좀 있다 바로 출근해야 하니까. 나중에 배고파도 라면먹을 시간도 없어."
"넵."
"폐급이라고 해서 삔또 상했냐?"
"···아닙니다."
‘이미 상했다, 씨벌 놈아.’
나는 속마음과 다르게 감정을 숨겼다.
"익숙해져야 해."
"네?"
"손님들 앞에선 지금보다 훨씬 굴욕적인 말도 수도 없이 듣게 될 테니까. 자존심 같은 거 그냥 없다고 생각해. 이런 일 할 때는."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하-. 근데 하필 넌 들어와도 우리 박스에 들어왔냐?"
"네?"
"아까 들었지? 현재 우리 팀은 에이스가 없어. 아니 있었는데 저번에 다른 가게로 스카웃 되서 나가버렸거든. 김동건 이 쌍놈의 새끼 의리라곤 눈꼽만큼도 없어가지고."
"아···."
"에이스 없는 팀은 그냥 쩌리야. 면접 보기도 전에 쫓겨날 때가 많거든."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손님 중엔 빠꼼이 들도 많단 말이야. 한마디로 죽순이지. 그런 애들은 얼굴보고 처음부터 바로 필터링 해버려. 에이스가 속해 있는 팀들은 자기소개 해볼 기회라도 있지. 에이스 없으면 그대로 들어갔다다가, 그대로 줄줄이 사탕처럼 쫓겨나는 거야."
"아···."
현성의 말이 대충 무슨 말인지는 이해가 됐다.
에이스는 한마디로 얼굴마담이자, 간판이다.
왜 단체 미팅을 할때도 초반에 기선을 제압할 수 있는 매력적인 인물의 존재가 중요하듯, 호빠에서도 각 팀별로 에이스를 나눠 배치하는 건 초이스의 순간 팀원의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함이란 뜻이었다.
"너 면접이 뭔지는 알지?"
"네, 손님들 앞에서 자기 소개하는 거 말입니까?"
"그래. 면접볼 때 손님들이 싹 얼굴 스캔 한단말이야. 누가 잘생겼는지, 누가 훤칠한지, 누가 허리좀 돌리게 생겼는지."
"네."
"사람들 눈이라는 게 다 비슷해. 너 원빈 보고 못 생겼다는 사람 봤냐?"
"아니요."
"옥동자보고 미남이라는 사람 봤어?"
"아니요."
"거봐. 일정 수준에서는 취향의 영역이긴 한데, 그거야 고만고만한 사람들 이야기고 원래 호빠는 와꾸가 전부거든. 와꾸 대장이 여기선 통먹는 거야."
"네."
"현재 우리팀은 에이스가 없다. 그래서 쩌리라는 거야."
흠. 최악이다.
안그래도 난이도 높은 미션에서 하필 최악의 팀에 배속되고 말았다. 면접 통과도 문제지만, 면접을 볼 기회조차 박탈당할지 모른다.
"여튼, 그건 둘째 문제고 혹시 모르니까 면접 요령 알려줄게. 오늘 바로 투입된다 그랬지?"
"네."
"보통 박스에서 적으면 4명 많으면 8명씩 룸 하나에 들어가."
"12명이라지 않았나요? 박스당?"
"풀로 방에 들어가는 경우가 얼마나 있겠냐? 하나씩 초이스되서 계속 빠져 나가는데. 지명받아서 가는 애들도 많고, 스폰서 잡고 결근하는 애들도 많고. 최대가 12명이란 소리지 항상 풀 파티는 아니야."
"아하."
현성이란 녀석은, 말투는 거칠었지만 제법 설명이 뛰어난 편이었다. 일단은 그에게 도움을 구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면접 볼 때 제일 중요한 건 임펙트야."
"임펙트라면···."
"보통 초이스 끝나는 게 3바퀴가 평균이거든. 그러니까 손님들이 완전 초보가 아닌이상 3팀 정도는 평균적으로 드나든다 봐야지. 그중에 마음에 드는 애가 있으면 픽해서 데리고 노는 거고."
"그렇군요."
"평균 3팀이면 들어가는 남자들만 스무명이 넘어. 여자들은 많아야 넷, 적으면 둘도 있고. 걔들이 잠깐 얼굴만 본 20명 중에서 누굴 기억하겠냐?"
"임펙트 있는?"
"바로 그거야. 무식하게 생겼는데 말귀는 곧 잘 알아먹는구나."
근데 이새끼가 자꾸.
< 750. 중수의 자격-79-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