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757화 (725/2,000)

< 739. 중수의 자격-68- >

생각해보니 잘생긴 얼굴만 믿고 꾸미는 데 소홀했던 도훈은 작정하고 꾸미면 어느 정도까지 변할지 궁금했다.

‘로시. 혹시 마켓 아이템 중에 메이크업 세트 같은 거 있어?’

[메이크업 세트요?]

‘어, 여자들 화장하는 거 있잖아.’

[지금 화장을 하기겠다고요?]

‘뭐 어때? 그루밍족도 있는 마당에. 요샌 남자도 꾸미고 다니는 시대라고.’

[일단 검색은 해보겠습니다만···.]

마켓을 뒤지던 로시가 잠시 후 결과를 알려왔다.

[찾았습니다, 주인님.]

‘오, 역시 없는 게 없구나.’

[하지만 해당 아이템은 여성 플레이어들이 주로 사용해서 그런지 색조 화장도구가 대부분입니다. 절대 처지지 않는 마스카라, 한 번만 바르면 일주일 이상 가는 파운데이션, 매혹을 부르는 립스틱···.]

‘잠깐. 여성용품 빼고 나한테 적용 가능한 종류로.’

[그렇다면 백옥 크림이 있습니다. 잡티를 제거해주고, 모공을 줄여 피부 톤을 일정하게 맞춰주는 아이템입니다.]

‘오케이 그거 장바구니에 넣고, 또.’

[음, 그 외에 남성 제품은···. 아, 매직 드라이가 있군요.]

‘매직 드라이?’

[헤어 스타일을 완벽한 상태로 고정해주는 장치입니다. <내일은 죠> 히가시 머리도 하루 종일 가능이라는 설명이 적혀 있군요.]

‘오오. 그래. 남자는 머리 빨도 중요하지. 그것도 집어넣고. 또?’

[그밖에는···. 수염이 나지 않는 면도 크림 정도?]

‘면도 크림?’

[네. 해당 크림을 바르고 면도를 하면 제모를 한 것처럼 1년간 수염이 자라지 않는다고 합니다. 단, 모발에 잘못 바르면 대머리가 될 수도 있으니 취급에 주의해야 한다고.]

‘그건 좀···. 나중에 수염을 기르고 싶을 때도 있으니 생략. 다른 건 더 없어?’

[화장 아이템 대부분 여성 플레이어들 기호품이라···. 아, 이건 어떻습니까? 동공 색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레인보우 써클랜즈.]

‘써클랜즈? 내가 무슨 아이돌도 아니고···. 그리고 너무 티 나게 꾸미면 오히려 역효과야. 한 듯 안 한 듯 하는 게 훨씬 낫지. 그냥 백옥 크림이랑, 매직 드라이 두 개만 구입 해. 모두 얼마지?’

[백옥 크림은 500포인트 매직 드라이는 1500포인트 군요. 합이 2000포인트입니다.]

‘생각보다 비싸네. 하지만 한 번 쓰고 말 것도 아니니···. 바로 구매해서 전송시켜.’

[넵,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잠시 후 도훈에게 두 개의 아이템이 도착했다.

도훈은 먼저 백옥 크림이라 불리는 아이템을 얼굴에 펴 발랐다. 화장품을 모두 바른 뒤 거울을 보자 피부톤이 빛나는 것처럼 밝아져 있었다.

"우아, 대박. 완전 연예인 피부잖아?"

[천상계 아이템의 효능이야 두말하면 입 아프죠.]

도훈은 얼굴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달라진 피부를 확인했다.

레이져 박피를 한 것처럼 깨끗해진 피부는 자신이 봐도 백옥같이 매끈해져 있었다.

"엄청나다, 진짜. 피부만 깨끗해도 사람이 달라 보인다더니. 어때? 좀 잘생겨 보여?"

도훈의 질문에 로시가 살짝 망설이며 대답했다.

[흠흠, 주인님이야 원판이 원래 잘생기셨으니까요.]

‘크크. 뭘 또 그렇게 수줍게 말하냐?’

[···아닙니다.]

"자, 그럼 이번엔 헤어스타일을 바꿔볼까?"

도훈은 빗을 이용해 머리를 정돈 시킨 다음 매직 드라이를 이용해 머리를 고정했다. 겉보기엔 평범하게 생긴 드라이기였고, 뜨거운 바람도 별다를 게 없었다. 그러나 드라이를 마치자 머리가 완벽히 고정되며 아무리 움직여도 흐트러짐 없이 고정되었다. 마치

연예인들이 한시간 이상 공들여 세팅을 받은 것처럼 완벽한 스타일이있다.

"야, 이거 물건이네. 어떤 머리든 고정시킬 수 있는 건가?"

[맞습니다. 24시간 이후에 자동으로 머리가 풀리게 됩니다. 만약 지금 변경을 원하시면 찬바람으로 바꾸어 드라이를 하시면 되고요.]

‘그러니까 뜨거운 바람은 고정, 차가운 바람은 해제란 소리지? 어디 다른 머리로 한 번 바꿔볼까?’

도훈은 실험을 위해 찬바람을 쬐 머리를 원래대로 돌린 다음, 집에 있는 왁스를 이용해 머리를 올백으로 빗어 넘겼다. 이마가 넓고 눈썹이 진한 그였기에, 촌스러운 아저씨 스타일로 바꾸어도 영화배우같은 분위기가 났다.

올백한 상태로 다시 매직 드라이를 쬐자 잠시 후 올백 머리가 가발처럼 착 달라붙었다.

"우아, 이거 진짜 신기한데?"

[실험은 그쯤하고 서서히 출발하시죠. 정음양과 30분 일찍 만나기로 하지 않으셨습니까?]

‘아, 맞다.’

한창 화장에 열을 올리는 사이 약속 시간이 빠르게 가까워졌다. 도훈은 다시 머리를 자연스럽게 만든 뒤 어제 산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호빠 출근용으로 구매한 수트 외에 평소 학교 다니면서 입을 수 있는 여름 옷 종류였다.

모든 채비를 마치고 현관 전신 거울 앞에 선 도훈은 스스로의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게 정말 나라고? 와···. 이도훈이 훈남은 훈남이네. 조금 꾸몄다고 이렇게 달라 보이다니."

[주인님. 얼른 서두르셔야 합니다.]

로시의 재촉에 도훈이 황급히 차를 몰고 대학교로 향했다.

신호를 잘 받았는지 다행히 도착 시간에 딱 맞출 수 있었다.

도훈이 학생 주차장에 차를 대로 내리는데 지나가는 여대생 무리가 대놓고 그를 쳐다보았다. 자기들끼리 말한다는 게 도훈의 귀에 다 들릴 정도였다.

"와···, 저 남자 봐."

"엄청 잘 생겼다!"

"훈남이네, 훈남."

"야야, 다 들리겠어."

여대생들은 한껏 힘주고 나온 도훈은 연예인이라도 보는 양 눈을 떼지 못했다. 평소에도 은근한 시선을 받았던 도훈이지만, 지금처럼 노골적인 관심을 처음이라 머쓱함에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겁나 처다보네. 그나저나 늦진 않았겠지?’

[네, 제시간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대학 본부 앞 약속 장소에 이르자 벌써 정음이 도착한 상태였다. 나름 여성스럽게 원피스를 입고 나온 정음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도훈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헉, 쟤는 왜 저렇게 일찍 나오는 거야?’

[주인님이 너무 딱 맞춰 나온 게 아닐까요.]

‘괜히 미안하게···.’

도훈은 양손에 정음의 선물을 든 채 다가가 인사했다.

"일찍 왔네."

"앗, 오빠 오셨어요."

정음이 도훈을 보고 꾸벅 인사했다. 그녀는 도훈을 달라진 모습을 보더니 수줍은 표정으로 쭈뼛거렸다.

"오, 오늘따라 멋지시네요, 오빠."

"응? 아, 사진 촬영 한데서 머리에 뭐 좀 바르고 나왔어."

잔뜩 신경 쓴 도훈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정음은 유난히 긴장한 기색이었다.

"아···. 촬영. 전 너무 대충 나왔나 봐요."

"아니야. 오늘도 예뻐. 늘 그렇듯이."

"괜한 소리 마세요. 오빠 옆에서 사진 찍기 부끄럽겠다."

도훈이 전혀 그렇지 않다는 듯 단호히 말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정음이 너는 언제든 예뻤어."

"아이참, 오빠도···."

빈말이 아니었다.

푸른색 계열의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나오는 정음은, CF에 나오는 배우처럼 산뜻하면서도 발랄한 여대생의 느낌을 물씬 풍겼다. 어깨까지 자라난 머리는 자연스럽게 구부러져 청순함을 더했고, 특유의 투명한 피부와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는 사범대 최고 미녀

라는 수식어가 너무도 잘 어울렸다. 게다가 특유의 건강미 넘치는 몸매가 부각 되어, 가만히 서있기 만해도 화보가 될 정도였다.

‘정음이는 정말 날이 갈수록 예뻐지네.’

[주인님을 의식해 꾸미고 나와서 그렇겠죠.]

‘아니야. 잘 보면 화장도 아직 어설퍼. 저 정도면 화장빨 보정 없는 거의 생얼이라고 봐야지.’

[원래 여자가 사랑에 빠지면 더 예뻐진다고 하더군요.]

‘훗- 그런가.’

"아, 맞다. 왜 일찍 보자고 하신 거예요?"

정음의 물음에 도훈이 양손에 들고 있던 선물을 건넸다.

"사실 어제 혼자 옷사러 나갔다가 너 주려고 뭘 좀 사왔 거든."

"네?!"

정음은 전혀 예상 못 한 듯 눈을 크게 뜨며 놀랬다.

그렇잖아도 커다란 눈이 땡그래지는 모습이 무척이나 귀엽다고 생각하며 도훈이 정음의 손에 쇼핑백을 건넸다.

"여자 옷은 처음 사봐서 잘 어울릴지 모르겠다."

"아니 뭘 이런 걸···."

"저번에 교생 실습할 때 네가 실습복 사줬잖아. 그러니 나도 뭔가 주고 싶어서."

"오빠···."

정음이 감격한 듯 눈가가 촉촉해졌다.

"화장실에서 갈아입고 와봐."

"지금요?"

"응. 곧 촬영하니까 컨셉 맞추는 게 좋지 않겠어? 지금 내가 입은 옷이랑 같은 브랜드거거든."

"아···."

정음은 어쩔 줄 모르고 민망해하다 도훈의 요구에 등 떠밀려 여자 화장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 옷을 새로 갈아입은 정음이 나오자 도훈은 저도 모르게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와우, 존예 보스!’

새 옷으로 갈아입은 정음은 도훈의 예상보다 훨씬 잘 어울렸다. 평범한 반바지와 흰색 티, 그리고 위를 걸치는 남방뿐이었는데도 본판이 워낙 뛰어나다 보니 너무나 예뻤다.

‘역시 패완얼인가!’

"와!"

"괘, 괜찮나요?"

"응. 진짜 잘 어울려. 사이즈도 딱 맞고."

"다행이네요. 근데···."

"응?"

"속옷은 왜."

"아, 기왕 사는 김에 같이 그냥."

도훈은 연신 쑥스러워하는 정음을 향해 짓궂게 물었다.

"그것도 갈아입었어?"

"···네."

정음이 민망함에 고개를 푹 숙였다.

"사이즈는 괜찮지?"

"네. 근데 제 사이즈 어떻게 아셨어요? 말한 적 없는 것 같은데."

"내가 어떻게 알았겠니?"

도훈이 역으로 묻자 정음은 얼굴이 빨개져 아무 말도 못했다. 벌써 몇 번이나 잠자리를 했지만, 여전히 숫처녀처럼 부끄러움이 많은 그녀였다. 정음은 한참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다른 쇼핑백에 든 물건을 내보이며 도훈에게 물었다.

"저 근데 오빠···."

"응?"

"옷은 감사히 잘 입을게요. 정말 고마워요. 근데 이건 도저히 못 받겠어요."

정음이 도훈에게 신상 백이 든 가방을 내밀었다.

"왜?"

"잘은 모르지만 제가 쓰기에는 너무 비싼 물건 같아서요."

정음은 본래 소박한 성격이라 평소에 옷도 대부분 보세 매장이나 인터넷으로 구매했다. 하지만 친구 중에선 사치스러운 걸 좋아하는 타입도 있었기에 어떤 브랜드가 명품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도훈이 미리 선물하기 전 택을 제거하고 가격표를 안 보이게

했지만, 한눈에 보아도 비싼 물건이라는 것을 바로 눈치챈 것이었다.

"제가 받기엔 너무 부담스러워요. 오빠가 돈도 많이 썼을 것 같고."

"괜찮아. 그 정도는."

도훈이 괜찮다고 했지만 정음은 막무가내였다.

"그냥 환불하고 오빠 용돈 쓰세요. 저는 마음만으로 충분해요."

정음이 한사코 거부하자 도훈도 난처해졌다.

여전히 그녀의 손에는 허름한 가방이 들려있었다. 도훈은 정음을 위해서라면 300만원짜리 가방 정도는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이거 비싼 거 아니야. 할인 엄청 받아서 산 거야."

"그래두요."

"진짜라니까? 어제 백화점 갔는데 바겐세일 이라 막 떨이로 주더라고."

"······."

"90% 할인하길래 산 거야. 진짜."

도훈이 되지도 않는 거짓말을 지어내자 정음도 긴가민가 망설였다.

"그래도 엄청 비싸지 않아요?"

"이게 얼마짜린 줄 알고?"

정음이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한, 30만원?"

정음은 명품의 가격에 대해선 정확히 몰랐기 때문에 자신이 평소에 구매하는 가방에 2-3배 가격으로 대답했다.

[확실히 정음양은 사치품에 대한 관념이 전혀 없군요. 세상에 1/10 가격을 부르다니.]

‘그래서 더 매력적이지 않아? 난 사치스러운 여자는 정말 질색이라.’

환생 전 도훈, 그러니까 이정우의 부인은 사치가 극에 달한 여자였다. 허구한 날 백화점에서 옷을 사들였고, 명품 가방이 이미 수십 개가 넘는데도 시즌별로 하나씩 장만하는 낭비벽이 있었다.

당시의 이정우는 호구처럼 퍼주면서도 쓴소리 한번 못 했지만, 내심 속으론 정말 사치스러운 여자라고 생각했다. 그 와중에 나중엔 배신까지 당하고 나니, 세상 모든 사치스러운 여자들을 전생의 와이프와 동일시 하기에 이르렀다.

"음, 대충 비슷해. 그 가격에서 또 할인 받은 거라 진짜 비싼 거 아니야. 그리고 나도 마음먹고 선물한 건데 안 받는 다니까 내가 좀 민망하다."

"오빠···."

"받을거지?""저는 오빠한테 아무것도 해준 것도 없는데···. 이렇게 받기만 해도 될지···."

"해준 게 없긴 뭐가? 내가 너한테 얼마나 신세 많이 졌는데? 자자, 우리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얼른 촬영장으로 가자. 이러다 지각하겠어."

"네."

도훈이 손을 잡아끌자 정음이 부끄러워하며 그를 따랐다.

손을 꼭 잡은 두 사람은 영락없는 연인 사이로 보였다.

***

"혹시 동생분도 여기서 일하시나요?"

"그건 왜요?"

횟집 주인은 별걸 다 궁금해한다는 듯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뭔가를 직감한 창범이 생각했다.

‘그래. 사진에서 본 체형으로 봐선 절대 이 사람은 대물남이 아니야. 그렇다면···.’

상대가 플레이언 줄 알고 긴장하던 창범은 천천히 힘을 끌어 올렸다. 그의 특수 능력, 정신조작을 써먹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그의 동공이 야밤의 고양이처럼 새까맣게 확장되더니 눈동자 전체를 뒤덮기 시작했다.

"동생에 대해 자세히 듣고 싶군요"

창범의 눈빛을 마주친 횟집 주인이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부르르 몸을 떨더니 쟁반에서 접시를 옮기다 말고 갑자기 차렷자세를 취했다.

"···무엇이 궁금하신지요?"

거칠어 보이던 횟집 주인은 갑자기 순한 양처럼 고분고분해졌다. 초점 없는 눈동자는 완전히 풀려 창범의 정신조작에 꼼짝없이 걸린 모습이었다.

‘휴, 역시 플레이어가 아니었군.’

마침내 긴장을 푼 창범이 횟집 주인에게 캐묻기 시작했다.

"동생에 대해 아는 대로 불어."

< 739. 중수의 자격-68- > 끝

ⓒ 성난불기둥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