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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756화 (724/2,000)

< 738. 중수의 자격-67- >

‘대한민국 하고 많은 곳중에 하필 삼척이라니···. 이번 휴가도 끝이네.’

자칭 대물남이라는 제보자가 밝힌 위치 강원도 삼척.

대중교통으로 방문하기엔 지나치게 불편한 장소다.

KTX가 뚫린 영동선을 타고 강릉까지 이동 후, 그곳에서 다시 열차를 타거나 버스를 갈아타는 멀고도 험한 여정. 원래 목표로 했던 광주보다 심리적으로 훨씬 멀어진 기분이었다.

‘씨뎅, 그때 300만원짜리 중고차라도 샀어야 했나.’

창범은 남들 다 있다는 자가용조차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서러웠다. 세상을 구원한다는 사명감으로 PK단에 합류한지 어언 4년 차. 그러나 변변찮은 옷 한 벌 제대로 사 입지 못했고, 여전히 주거지는 반지하 단칸방 신세였다. 더운 여름 밤 창문이라도 열어놓고 잘라치면, 노상방뇨부터 토사물, 담배꽁초까지 날아드는 일이 일상인 곳이었다.

‘쥐꼬리 만한 출장비조차 영수증 없인 안 챙겨 주니.’

광주행 KTX 환불표를 호주머니에 구겨 넣은 창범은 스스로도 구차한지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영웅이 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영웅 그 자체의 임무도 어렵지만, 영웅이 되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도 많았다.

영화에서 보면 영웅들이 자금난을 겪거나, 생활고에 시달리는 모습은 나오지 않았다. 늘 어디선가 자금줄이 나왔고, 정부를 상대로 갑질도 하며, 최첨단 장비와 복장을 갖추고 멋지게 악당을 제압했다.

그에 반해 PK단은 정부와의 교섭은커녕, 걸렸다간 반테러 단체로 낙인찍힐 판이었다. 그곳에 소속된 명단들은 고스란히 범죄단체조직법으로 구속될 것이다. 애초부터 PK단은 공인되지 않은 단체기 때문이다. 엄밀한 의미에선 무장한 사조직에 불과했다.

‘제기랄. 악당 놈들은 이능력을 이용해 떵떵거리고 잘만 사는데 말이야.’

생각할수록 억울했다.

플레이어와 PK단의 차이는 이능력의 유무가 아니다.

그것을 일신의 영달을 위해 마음껏 쓸 수 있느냐의 없느냐의 차이.

오로지 플레이어를 제거하는 데만 능력을 쓴다는 PK단과, 별다른 제약 없이 마음껏 능력을 사용하는 플레이어의 아웃풋은 비교할 수 없는 수준까지 벌어져 있었다.

‘그 터틀넥 티 입고 다니던 대머리 아저씨도 겁나 부자였잖아. 재벌 수준이었지 아주.’

창범은 자신의 핸드폰 뒤에 새겨진 사과마크를 보며 생각했다.

미국 시총 1위에 오를 정도의 거대 기업을 거느렸던 창립자 또한 플레이어로 밝혀졌다. 세계 제1의 기업 CEO라면 재산을 얼마나 많을까? 재력만으로 보면 전세계 PK단과 맞짱 떠도 꿀리지 않을 것이다.

‘하-. 진짜 내가 미쳤다고 Pk단을 들어와서.’

지금도 젊지만 더 어린 시절엔 혈기가 넘쳤다.

자신에게 주어진 커다란 능력에 막대한 책임이 뒤따른다는 것을 받아들였고, 그것을 세상을 구원하는 데 쓰고자 했다.

하지만 PK단 한국지부 서울지구대장의 감언이설에 꾀어 피의 맹세를 한 것이 이렇게 기나긴 고통을 안겨줄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

‘그냥 확 그때 능력을 포기했어야 했는데.’

PK단 가입은 양자택일 뿐.

능력을 거세당하고 기억을 편집당한 채 평범한 일반인으로 살아가거나, 아니면 능력을 보존하되 세상을 파멸로 이끄는 ‘플레이어’의 존재를 말소시키는 것이었다.

그땐 당연히 영웅이 되고 싶었다.

히어로물을 즐겨보던 청년 창범에게, 악당을 때려잡는 영웅이란 정말 폼나고 멋져 보였다. 과장해서 얘기하면 일제 강점기 시절 독립운동을 하던 애국지사를 떠올리게 했다.

인류애, 애국심, 고귀한 희생.

생각만으로 가슴이 벅차오를 때도 있었다.

하지만 영웅이라는 직업이 이렇게 영세한 줄 미리 알려줬더라면 한 번쯤 자신의 선택을 되뇌었을 것이다.

비참한 영웅은, 부유한 악당보다 초라하다.

꼬르륵-.

빈속인 위장이 신호를 보내왔다. 열차 시간에 맞춘답시고 끼니도 거르고 새벽부터 나온 탓이다. 창범은 좌석 앞 선반을 내려 그 위에 들고잇던 검은 비닐봉지를 올렸다. 봉지를 뒤적이자 항아리 형태의 바나나우유와 삼각 김밥 두 개가 나왔다. 열차에 오르기 전 편의점에서 미리 구매한 그의 아침식사였다.

조심스레 삼각 김밥 비닐을 뜯어내던 창범은 순서를 잘못하는 바람에 옆면을 덮고 있던 김 한 장이 비닐과 함께 통째로 뜯겨 나오자 비명을 내질렀다. 되는 일이 없는 날이었다.

"이런, 씨뎅!"

그러자 통로 반대편 좌석에 앉은 5살짜리 꼬맹이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씨뎅이 뭐야?"

"떽! 그런 말 쓰면 못 써. 나쁜 말이야."

엄마는 아이가 창범을 보지 못하게 자기 쪽으로 몸을 돌리더니 그를 매법게 노려보았다. 면도도 안 한 얼굴에 꼬질꼬질한 옷까지 걸친 창범을 진절머리난다는 듯 혀를 차기까지 했다.

젊은 사람이 왜 그렇게 추레하게 사느냐며 핀잔하듯.

순식간에 영웅에서 애들 앞에서 거친 말이나 쓰는 못난 놈으로 전락한 창범은 심한 자괴감이 밀려왔다.

‘아아-. 내가 삼각 김밥 하나에 이런 취급을 받는구나.’

서러웠다.

처량하고 서글펐다.

세상은 플레이어의 존재도 모르지만, PK단 역시 몰랐다.

그들만의 피 튀기는 리그였다.

아무도 관심 없는.

김밥으로 목이 매인 창범이 급히 바나나 우유를 들이키며 생각했다.

‘···빌어먹을 플레이어 새끼들 같으니. 하여간 잡히기만 해봐. 아주 요절을 내버릴 테니까.’

옳은 일을 하고도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한 분풀이를 PK단에게 돌리는 창범이었다. 그러한 분노가 정당하다고 느꼈다.

***

강릉역에 내린 창범은 시간을 확인 후 삼척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연결되는 열차를 기다리자니 반나절은 죽치고 기다릴 판이었다.

그나마 고속도로는 다닐만 하더니, 국도에 접어들자 강원도 특유의 구불구불한 산길이 등장했다. 어떻게 이런 곳에 도로를 냈는지조차 불가사의한 S자 코스앞에 창범은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고 열차에서 먹은 김밥이 목구멍까지 넘어올 것 같은 구토감에 허덕거렸다.

‘으으, 내가 다음엔 무리를 해서라도 중고차를···.’

하지만 창범은 의지의 PK단이었다.

그는 토쏠릴 것 같은 도로컨디션 속에서도 핸드폰을 뒤적여 대물남의 위치를 추적했다.

‘30대 남성, 삼척 거주, 횟집 운영. 이게 단서의 전부란 거지?’

게시들을 뒤지고, 댓글과 대댓글에 남겨진 수많은 흔적들.

대물남이 정말 영상 속의 남자가 맞느냐는 의견이 분분했던 이유는 다른 게 아닌 독특한 그의 인증 방식에 있었다.

바로 자신의 물건을 인증한 것.

‘하여간 미친 또라이 새끼.’

아무리 성인 싸이트라지만 성기의 직접 노출은 허용되지 않았다. 결국 그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인증을 대신 했는데, 바로 발기된 물건 위에 야구모자를 씌워 그 크기를 과시하는 방법이었다. 모자가 뻗어 나온 길이를 봐선 대물은 확실했다.

그 외에 일본행 비행기 티켓과 야동을 찍을 당시의 세트장 모습.

그가 인증글에 풀어놓는 수많은 썰 들은 차치하고라도, 생생한 현장 사진이 바로 결정적인 증거였다.

창범은 300여개에 달하는 댓글을 꼼꼼히 정독하며 글쓴이가 남긴 대댓글에 주목했다.

일단 횟집.

바닷가 옆에서 횟집을 운영한다며 인증 사진을 올려놨는데, 배경 뒤로 횟집 메뉴가 찍혔다. 상호는 알 수 없지만 우선 놈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유력한 증거 중 하나였다.

‘물 회가 9,000원. 광어 한 접시 3만원··· 씨발, 무슨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도 아니고, 삼척에서 횟집 찾기라니.’

몇 가지 단서가 더 있었다.

삼척에 거주 중이라는 익명의 댓글러가 남긴 한 마디.

-혹시 운영하신다는 횟집이 장호항 근처 아니세요? 비슷한 가게를 저번에 본 것 같은데.

대댓글을 열심히 달던 글쓴이도 그 댓글만큼은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의도적인 무시 거나, 아니면 정곡을 찔렸다는 것. 삼척에 모든 횟집을 뒤질 수 없었던 창범은 일단 의심스러운 장호항 인근부터 뒤지기로 결심했다. 일치하는 메뉴판만 확보한다면 어떻게든 단서를 좁혀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장호항에 도착한 창범은 점심나절부터 발에 땀이 나게 횟집을 돌아다녔다.

오로지 메뉴판. 대물남이 인증한 메뉴판과 똑같은지 확인하기 위해 가게를 들어갔다 나오기를 수십 차례.

음식도 시키지 않고 메뉴판만 확인하고 곧바로 자리를 뜨는 그에게 재수 없다며 소금바가지를 뿌리는 주인도 있었다.

여러모로 서러운 탐색 작업이었다.

‘근데 그 대물남이란 새끼가 또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 어쩐다?’

플레이어의 능력은 예측 불가.

일단 성과 관련된 능력이 있다는 것은 확인했지만, 별도의 전투능력을 갖추고 있을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었다. 만에 하나 그렇다면 자신의 독심술과 정신조작만으로는 상대하기 벅찰 수도 있었다.

정신조작은 무방비인 상대에겐 자살을 강요할 정도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지만, 상대의 정신력이 예상외로 강할 경우 능력이 반감되는 효과가 있었다. 만에 하나 상대가 정신조작을 버텨낸다면, 그다음부터 반격 당하는 것은 자신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 이럴 줄 알았으면 조사장님이나 미호랑 같이 오는 건데···.’

PC방 사장 조대근이나 영물인 구미호는 창범과 달리 전투계 능력자였다. 물리력 최강인 대근은 역발산기개세의 이능을 지녔고, 미호 역시 각종 주술과 주문에 능한 마법사 계열이었다. 게다가 남자의 혼을 빼놓는 매혹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

본래 창범은 플레이어를 직접 찾으러 가는 것이 아닌, 그와 함께 방송에 출연했던 BJ를 찾아 나서던 길이었고 급하게 새로운 단서를 찾아 방향을 돌리느라 홀로 삼척까지 오게 된 것이다.

문득 창범은 플레이어에게 역공을 당해 동해바다 깊은 곳에 수장되는 상상을 하다 진저리쳤다.

‘어우. 영세한 영웅도 서러운데 악당에게 잡혀 죽는 영웅이 될 순 없지. 오늘은 그냥 탐색만 하는 거야 탐색만.’

그 뒤로 한참 횟집을 뒤지던 창범은 미닫이문으로 열리는 오래된 가게에 들어섰다. 외관이 꼬질꼬질한 것이 제법 맛집의 냄새를 풍기는 가게였다. 간판도 허름했고, 미닫이 문에 붙인 코팅은 오래 햇볕을 쬐 색이 바래있었다.

드르륵-.

"계세요?"

아무도 없는 가게에 앉은 창범은 메뉴판을 보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얼어붙고 말았다.

‘여, 여기다!’

창범은 황급히 핸드폰에 저장해 둔 메뉴판 사진과 대조했다.

‘똑같아! 이 가게였구나!’

창범이 상기된 얼굴로 의자에서 안절부절 못 하는데 주방에 있던 한 사내가 회칼을 들고 나타났다. 사람이라도 포를 뜰 것처럼 회색으로 코팅된 앞치마에 험상궂은 인상을 가진 사내였다.

"왜? 회 한 접시 드려요?"

PK단 임무를 수행하며 별의별 꼴 다 본 창범이었지만, 사내의 살벌한 모습에 바짝 긴장했다. 사시미칼 끝에 묻은 것이 생선의 핀지 사람의 핀지 구분이 가질 않았다.

‘젠장···. 메뉴판만 확인하고 나갈 걸.’

창범은 긴장한 표정을 숨긴 채 조심스럽게 매뉴를 주문했다.

"아뇨. 물 회 한그릇만요."

"물회."

사내는 시큰둥하게 대답하더니 다시 주방으로 돌아갔다.

창범은 긴장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섣불리 능력을 썼다간 PK단인 걸 알아챌지 몰라.’

혼자 온 이상 모든 면에서 조심해야했다.

텅빈 가게에는 사시미를 든 주인과, 자신만 있는 상황.

만에 하나 일이 터져도 누구도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다.

‘가만있자. 근데 체격이 생각보다 작아 보이는데···.’

창범은 영상에서 본 대물 남의 모습을 떠올렸다.

여자 배역의 키를 정확히 모르지만, 180은 훌쩍 넘어 보이는 장신이었다.

반면 횟집 사시미는 단단해 보이긴 하지만 키가 170을 조금 넘어 보였다.

그리고 체형.

3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사장은 대물 남처럼 몸매가 꽉 잡힌 근육질이라기보단, 적당히 살집 붙은 아저씨 체형이었다.

‘뭔가 이상한데?’

창범은 주방에서 달그닥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휴대폰에 저장된 대물남의 인증사진을 뒤졌다. 모자를 씌운 인증 사진에는 사타구니 서혜부 일부와 하복근이 함께 찍여 있었다.

사람들이 대물남의 인증을 보고 납득했던 까닭은 특유의 근육질 몸매가 영상과 닮았기 때문이었다.

‘달라, 전혀 다른 사람이야.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창범이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그는 용의주도한 성격이었다.

같은 단원이 미호만 보아도 9가지의 인격으로 변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둔갑술을 이용할 경우 전혀 다른 모습으로도 변신이 가능했다.

‘만에 하나 놈이 변장을 했을 가능성도 염두해야 해.’

일정 레벨에 오른 플레이어는 PK단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다. 때문에 PK단의 추적을 피하기위해 최대한 능력을 숨기며 살아간다.

‘일단은 조심해야겠어.’

창범이 초조한 마음으로 테이블에 앉아 기다리는데 잠시 후 주방장 사내가 쟁반을 들고 나타났다. 심술궂은 표정이 뭔가 단단히 짜증이 난 모습이었다.

"근데 이 새끼는 대체 출근을 몇 시에 하는 거야? 오후에 횟감 들어온다니까."

"네?"

"아니요. 그냥 동생 놈이 도통 가게에 나오질 않아서."

창범의 그와의 대화 속에서 또 다른 단서를 찾았다.

바로 이 횟집에 근무하는 또 다른 인물의 존재였다.

***

도훈은 아침부터 정음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이도훈 : 오늘 촬영 시작 30분 전에 올 수 있어?

-육정음 : 무슨 일 있으세요?

-이도훈 : 응 뭐 좀 줄게 있어서.

-육정음 : 넵. 일찍 나갈게요. 대학 본부 앞에서 뵈요.

대학 홍보 모델 사진을 찍기로 한 날이었기 때문에 도훈은 한참 거울을 보며 외모에 신경썼다. 그러나 아무리 새 옷을 입어도 뭔가가 부족한 마음이 들었다.

‘흠, 정음이랑 함께 찍는 건데 좀 더 멋있게 보일 순 없나?’

< 738. 중수의 자격-67-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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