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9. 중수의 자격-58- >
극장골이란 말이 있다.
축구에서 종료 직전이나 추가시간에 터지는 극적인 결승골이나 동점골을 뜻한다.
그야말로 클라이맥스에 만화처럼 터지는 최후의 버저비터다.
도훈의 질싸 타이밍도 이와 같았다.
어둠에 휩싸인 상영관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들어온 순간, 의자를 거꾸로 앉은 채 방아 찧기를 하던 연두에게 최후의 일격을 날렸다. 그리고···.
"!"
"?"
"?!"
"!?"
두 남녀는 눈이 마주치곤 처음에는 의혹을, 둘째로는 당혹을, 마지막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연두는 곤혹스러운 얼굴로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난데없이 타인의 섹스를 목도한 사내 역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주춤하는 표정이었다. 이것은 눈갱인가, 개이득인가를 판별하고 있었을까?
"오, 오빠."
미처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도훈이 대답했다.
"으으, 좋았니?"
"저, 그, 그게 아니라···."
"미안, 안에 싸려던 건 아니었는데 나도 모르게."
"저희 들켰어요."
"응? 뭐라고?"
도훈이 고개를 돌리자 입구에 서 있던 한 남자가 놀란 표정으로 움찔 어깨를 떨었다. 도훈 역시 당황하며 로시에게 물었다.
‘뭐야? 미션 엎어졌어?’
[아닙니다. 미션은 성공입니다. 주인님의 질내 사정이 끝나는 순간 마침 상대가 들어왔거든요.]
‘천만다행이네. 아니구나, 이럴 때가 아니야.’
미션의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도훈은 작금의 상황이 풍기문란과 더불어 영업 방해에 이르는 막대한 범죄 행위임을 깨달았다. 그는 연두를 조심스럽게 내려오게 하더니 소곤거렸다.
"···야, 튀자."
연두는 다행히 눈치가 빠르고 대범했다.
어두운 극장 안이라 얼굴을 제대로 판별하긴 어려울 거라 판단했다. 그녀는 빠르게 핫팬츠와 팬티를 올려 입은 다음, 도훈의 손을 잡고 도망치듯 영화관을 빠져나왔다.
그제야 뒤숭숭한 장내 분위기를 감지한 관객들이 웅성거렸다. 그러나 이미 두 사람은 주차장까지 쏜살같이 도망친 뒤였다.
뒤따르는 사람들이 없는 걸 확인한 연두가 배를 잡고 웃었다.
"푸하하-. 아 이게 뭐야"
긴장이 풀린 연두는 본인이 생각해도 황당하기 짝이 없었는지 새우처럼 허리를 꺾으며 깔깔거렸다. 도훈 역시 10년 감수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떻게 된 거야? 봤을까?
"모르겠어요. 오빠가 딱 싸는 순간 그 사람이 들어왔거든요. 병신 아니면 뭔지 다 눈치 깠겠죠."
"으으, 진짜 걸렸으면 개 쪽팔릴 뻔 했네."
"다행히 안 걸렸잖아요. 아마 그 사람 평생 못 잊을 듯?"
도훈은 문득 연두의 핫팬츠 중요부위가 살짝 젖을 것을 발견했다.
"앗, 너 근데 바지."
"으윽! 다 흘렀다."
질싸를 한 뒤 급하게 옷을 입고 나오느라 안에 있던 정액이 밑으로 흘러 바지까지 적시고 만 것이었다.
"일단 타. 차에 물티슈 있을 거야."
도훈은 연두와 함께 차에 오른 후 빠르게 물티슈를 건넸다.
연두는 핫팬츠를 들춰 허벅지 안으로 타고 내리는 도훈의 걸쭉한 정액을 닦아냈다.
"진짜 많이도 쌌네. 저 임신하면 어쩌려고 그래요?"
"위험한 날이었어?"
도훈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미션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질싸를 했지만 뒷수습할 기회가 남아있었다. 팬티 안으로 손을 넣어 뒤처리를 하던 연두가 대답했다.
"아니요. 괜찮을 거예요. 요새 피임약 먹고 있어서."
"피임약을? 그건 왜?"
의외의 대답에 도훈이 되물었다.
연두는 공식적으로 교제중인 남자친구도 없을뿐더러, 도훈 말고 다른 남자와는 관계를 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피임약을 먹고 있다니 이상할 수밖에.
"아, 저 시합 나가요."
"응? 웬 시합?"
"아···. 그게 말이죠."
연두는 유년시절 핸드볼 유망주였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와선 선수는 포기하고 임용에 전념하기로 결심했다. 마이너 종목이라는 불안정한 위치보다 안정적인 교사가 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었다.
"이달 말에 전국체전 열리잖아요. 우리학교 핸드볼부에서 시합에 나가줄 수 없냐고 요청이 왔어요. 왜, 경희도 이번에 나가잖아요."
강경희 역시 전국체전을 위해 열심히 테니스 코트에서 땀을 흘리고 있었다. 도훈은 그녀를 만나러 갔다가 창고에서 그녀와 나뒹군 적이 있었으므로 대번에 이해했다.
"어, 그렇지. 들었어."
"저는 연습 쉰지 오래라서 후보긴 한데···. 암튼 후보로라도 뛰라고 해서."
"그랬구나."
"예선시합 날짜라 생리주기랑 아슬아슬하게 겹쳐가지고 일단 조절중이에요. 그러니 걱정 안하셔도 돼요."
‘어쩐지 질싸를 하는데도 전혀 거리낌이 없더라니.’
[천만 다행이었군요. 그래도 모르니 확인을 해 보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당연하지.’
도훈은 연두의 정보창을 열어 임신 가능성을 확인했다.
임신 확률은 극도로 낮았고, 피임중이라는 설명이 떠 있었다.
‘휴-. 아이템 값 굳혔네.’
도훈이 안도하는데 연두가 말했다.
"아, 찝찝해서 안 되겠다. 속옷이랑 바지 갈아입어야 겠네."
"미안. 나도 그렇게 후다닥 마무리도 못하고 나올 줄은 몰랐어."
"어쩔 수 없죠. 혹시 저 집에 데려다 주실래요?"
"집에? 수업은?"
"오후 수업은 그냥 나연이한테 대출 맡기려고요."
"그래?"
"근데 오빠 밥도 못 먹어서 어떻게 해요? 저희 집에서 먹고 갈래요?"
"엄마 없어?"
"아뇨. 저희 엄마 전업 주분데요."
"아니 그럼 어떻게 집엘 가."
"그런가?"
도훈은 차로 연두를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연두가 차에서 내리기 전에 말했다.
"암튼, 오늘 스파링 재밌었어요."
"나도. 스릴 넘쳤다. 올 만에."
"오늘일은 나연이한텐 절대 비밀이에요. 아셨죠?"
"당연하지."
"후훗-. 그럼 다음에 또 봬요."
연두는 도훈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하고는 차에서 내렸다.
"그럼 간다."
"네!"
도훈이 차를 출발시키는데 룸미러로 연두가 힘차게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방금 전 섹스를 나누긴 했지만, 은근 보면 볼수록 정이 가는 타입이었다.
‘어쨌든 미션 석세스. 보상은 들어왔겠지?’
[네. 포인트는 이미 적립되었고, 아이템 수령이 남았습니다. 바로 확인하시겠습니까?]
‘응. 나도 못 씻어서 찝찝한 건 매한가지라서.’
도훈은 한적한 골목길에 차를 정차시킨 후 아이템을 받았다.
평범한 모양의 사각 팬티였다.
순면 소재인 듯 손에 닿는 굉장히 촉감이 부드러웠다.
‘이게 그 아이템이야?’
[넵. 언제나 청결 팬티입니다. 겉보기엔 평범한 팬티이지만, 패브릭 내부에 천상계의 특수 나노 향균 필터기술이 적용되어···.]
‘설명을 됐고. 암튼 입고 있으면 사타구니가 늘 깨끗하다 이거지? 막 샤워하고 나온 것처럼?’
[넵. 그렇습니다.]
도훈은 팬티를 들고 요리조리 살펴보다 말했다.
‘근데 디자인 너무 구린 거 아니냐? 흰팬티가 뭐야 흰팬티가. 군대에서 주는 브레이브맨도 이 정돈 아닌데.’
[브레이브 맨요?]
‘암튼 디자인 바꿀 순 없나? 왜 모자나 선글라스도 형상변환 할 수 있더만.’
[해당 아이템도 물론 디자인 변경이 가능합니다. 단, 스킨을 입히려면 포인트로 구매를 하셔야 합니다.]
‘헐. 이것들이 상술에 눈이 멀었네? 디자인 바꾸는데 요금을 내라고?’
[네.]
도훈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마치 캐릭터를 팔아놓고 추가 아이템을 과금유도하는 꼴이었다.
‘가격은 얼만데?’
[스킨마다 천차만별입니다. 한번 보시겠습니까?]
‘띄워봐.’
잠시 후 도훈의 스마트워치로 청결 팬티 아이템에 덧씌울 수 있는 스킨목록이 활성화됐다. 스크롤을 내리다 보니 평범한 단색의 디자인부터, 레오파드 무늬처럼 화려한 형태까지 다양한 변신이 가능했다.
‘으음. 나처럼 빤스 벗을 일이 많은 사람은 팬티도 조금 화려한 게 좋겠는데···.’
[이건 어떻습니까? 코끼리 팬티.]
‘코끼리 팬티?’
해당 스킨은 특이하게도 디자인 자체가 변형되는 종류였다.
코끼리의 몸체를 닮은 회색빛에 코끼리의 코에 해당하는 부부분에 대물이 끼울 수(?) 있도록 맞춤 설계되어 있었다.
‘헐. 너무 유치해. 그냥 무난하게 블랙으로 할래. 나중에 필요할 때마다 디자인 바꾸면 되겠네.’
[넵.]
스킨을 적용하려면 아이템을 다시 반송한 뒤 받아야 했다.
다시 되돌아온 팬티를 입은 도훈은 사타구니가 상쾌해지는 기분을 받았다. 마치 샤워를 마친 후 새 속옷을 입은 것 같은 청량감이었다.
‘오오, 정화되고 있어.’
[이제 냄새 걱정은 덜었군요.]
‘근데 안 씻은 잦이 물리는 것도 나름의 재미였는데 말이야.’
[무세정모드도 수동 선택 가능합니다.]
‘어? 그게 된다고?’
[네. 팬티를 뒤집어 입으면 아이템의 기능이 정지되거든요.]
‘아니 그건 좀···.’
새 팬티로 갈아입은 도훈이 한참 로시와 잡담을 주고받고 있는데 누군가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자에는 [정마담]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정마담? 아아, 그 호빠 아줌마.’
정마담은 중고차 구매 당시 박미영 팀장이 알바로 소개시켜준 호스트 빠의 마담이었다. 안 그래도 조만간 연락이 올 것 같은 예감이 들었는데 마침 전화가 걸려왔다.
도훈은 차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정우니?
"······."
‘정우? 이 여자가 어떻게 내 본명을 알고 있지?’
[잊으셨습니까? 지난번에 가명을 쓰자고 했을 때 주인님이 직접 이정우란 이름으로 활동하고 말씀 하셨잖습니까?]
‘아아, 내 바보 같은 기억력.’
도훈은 그제야 긴장을 풀고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오랜만에 통화하네요."
-사장은 무슨. 얘, 그냥 누나라고 불러.
"네, 누님."
도훈이 곧바로 태세전환을 했다.
사실 호빠 알바 자체는 크게 구매가 당기지 않았지만, 거기에 걸린 히든 미션이 무척이나 탐이 나는 도훈이었다.
특수 마스크를 잘못 착용하는 바람에 얼굴 근육이 뒤틀려 우연히 받게 된 ‘빻은 얼굴도 할 수 있어.’ 미션.
거기에 걸린 보상이 무려 1만 포인트와 더불어 경매 낙찰권.
포인트도 포인트지만 최근에 경매장을 구경하고온 도훈은, 낙찰권이 얼마나 큰 가치를 지닌 물건인지 잘 알았다.
‘미션을 위해선 정마담에게 잘 보이는 게 낫겠지.’
-호호, 적응력 좋네. 일 잘 하겠다. 금요일 시간 되지?
"금요일요?"
-왜 저번에 그랬잖아. 2주 뒤부터 간간히 주말 알바 뛸 수 있을 거라고. 까먹었니?
‘벌써 이주가 흘렀나? 아, 하긴 아이돌 미션 도중이었으니 그 정도 됐겠구나.’
"아뇨. 그건 아니고 주말이라고 하셔서 토요일인줄 알았거든요."
-얘는 무슨 소리야. 이쪽 업계는 대목이 금요일, 토요일이야. 일요일은 다음날 출근 때문에 파리 날린다고. 불금 몰라 불금?
"아아, 그렇군요."
-암튼 얼굴은 좀 회복했니? 그때 안면 마비 온 거.
도훈은 순간 대답을 망설였다.
얼굴이 전부라 할 수 있는 호빠에서 도훈은 에이스로 낙점 받은 인물. 그러나 그때 당시 역용마스크의 부작용으로 얼굴이 뒤틀린 채로 면접을 가는 바람에 정마담에게 축객령을 당할 뻔 한 그였다.
그때 약속하기를 일시적인 마비 증세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질것이라고 둘러댔다.
[왜 그러십니까?]
‘이게 생각해보니까 문제가 좀 있는데?’
[어떤 문제요?]
‘봐봐. 정마담에 나에게 기대하는 건 얼굴이 정상으로 돌아온 상태로 가게 에이스를 맡으라는 거잖아.’
[아!]
‘근데 히든 미션을 완수하기 위해선 정상적인 얼굴로는 불가능하다는 거지.’
히든 미션 ‘빻은 얼굴도 할 수 있어.’는 얼굴이 빻은 상태로 5명의 뉴 페이스를 공략해야 완수되는 굉장히 난이도 높은 미션이다. 일체의 스킬과 아이템이 금지되기 때문에 순수한 말빨과 육체적인 능력으로 상대를 꼬셔야 하는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했다.
[그게 또 그렇게 되는 군요. 이 일을 어찌하면 좋죠?]
‘일단 미션 종료까지 시간이 남았으니까 대충 둘러 대보자.’
-정우야? 여보세요?
"아··· 죄송해요. 잠시 문자가 들어와서. 저 사장, 아님 누님."
-어, 말해봐.
"계속 통원 치료는 받고 있는데 아직 얼굴이 회복이 덜 됐어요."
-아직도? 설마 그거 불치병은 아니지?
"아니요. 의사 선생님도 조만간 나아질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아무튼 금요일까진 힘들 것 같은데···."
-어쩐다니. 하-. 진짜 선수 빵구나서 힘든데. 방학까지 계속 기다릴 수도 없고···.
정마담은 난처한 목소리로 혼자 중얼거리더니 다시 말했다.
-정우야, 너 호빠는 한 번도 안 해봤다고 했지?
"네."
-그럼, 어차피 나중에 일 제대로 하더라고 경험을 쌓아두는 편이 좋거든?
"네."
-그러니까 이번 주는 그냥 참관한다고 생각하고 한 번 와봐.
"연습이요?"
-응. 나중에 안면마비 풀리고 시작하면 분위기 적응 힘들 수 있으니까 간만 보라고. 견습한다고 생각하고.
도훈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러면 나야 쌩큐지.’
정마담이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가 아마도 연두가 섹스를 마치고 발동한 운빨 대폭발 패시브의 영향인 것 같았다.
"정말 그래도 될까요?"
-어쩔 수 없잖아. 급하게 선수 모집하기도 그렇고. 어쨌든 땜빵은 구해야 하니까. 옷을 준비됐니?
"아뇨. 아직···."
-저번 선금 준 돈은?
"가지고 있어요. 나간다고 하면 미리 준비할게요."
-그래. 몸은 근사하니까 수트핏이라도 받으면 적당히 봐줄 만은 할 거 같아. 이번 주 금요일이다. 8시까지 늦지 말고 와.
"네, 알겠습니다!"
-대답은 시원시원해서 좋네.
뚝-
통화를 마친 도훈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수업 끝나면 쇼핑 좀 가야겠네."
도훈은 오후 수업을 하러 차를 몰고 다시 대학으로 돌아갔다.
< 729. 중수의 자격-58-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