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744화 (712/2,000)

< 726. 중수의 자격-55- >

***

"와, 차 좋은데요?"

수업이 끝난 후 연두는 주차장에서 기다리던 도훈의 차에 올랐다. 허벅지를 훤히 드러낸 핫팬츠에 위에는 끈 나시를 입고 그 위로 얇은 가디건을 걸친 차림이었다.

‘저게 대학생이람, 나가요 걸이람?’

도훈은 오늘따라 유난히 짧은 연두의 복장에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차에 오를 때 허리를 살짝 숙인 자세에서 깊이 패인 가슴골이 노골적으로 내비친 것.

[웬일입니까? 주인님이 여자를 다 마다하시고.]

‘의도가 너무 뻔하니까 그렇지.’

[허허. 배가 불렀군요.]

‘배가 부르다니?’

[연두 양은 이제 겨우 스무 살입니다. 얼굴도 이름만큼 상큼하고요. 그런 귀여운 숙녀분이 주인님 좋다고 덤벼드는데 그걸 귀찮아하시다니···. 그게 배가 부른 게 아니고 뭡니까?]

로시의 말을 듣던 도훈이 자기도 모르게 설득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스무 살이면 파릇파릇 영곈데. 산삼보다 낫다는 나이에서 고작 한 살 더 묵혔을 뿐.’

도훈은 다시 태어난 이후 너무 많은 여자를 만났다. 그중 대부분은 20대였고, 20대 중에서도 상당수는 갓 대학생이 된 스무 살 새내기였다.

그러다 보니 처음 과 후배들을 따먹고 다닐 때 신선함이 어느덧 사라졌다. 처음엔 치마만 둘러도 여자라고 40대 미시인 편의점 사장까지 기를 쓰고 넘어뜨렸는데, 이제는 갓 스물의 예쁜 영계가 꼬리를 쳐도 시큰둥해지는 지경에 다다른 것이다.

"어디 갈래?"

"우선 학교에서 나가는 게 좋지 않겠어요? 다른 애들한테 들킬까 봐 몰래 뛰어왔단 말이에요."

"그래."

도훈이 차를 몰고 대학교 밖으로 나갔다.

이럴 땐 차라리 비싼 외제 차가 아닌 게 다행이었다.

남들 눈에 잘 띄지도 않을뿐더러, 설사 길다가 마주친다 해도 워낙에 비슷비슷한 차들이 많아 누가 타고 있는지 관심도 없는 경우가 많았다.

"오빠 나 배고파요. 우리 저녁부터 먹어요."

"뭐 먹고 싶은데?"

"회 어때요?"

"회?"

"응. 기왕이면 신선한 바닷가 근처로."

"바닷가라···."

도훈은 티는 안 냈지만 속으로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하하, 정색하시긴. 농담이에요. 언제 바다까지 가요? 저도 집에 들어가야 하는데. 가까운 횟집이나 가요."

"정색 안 했는데?"

"뚱한 거 다 티 나거든요? 저 차 탈 때부터 맘에 별로 안 드는 표정이었잖아요."

역시 연두는 눈치가 빨랐다. 곰같이 순진한 타입이라기보단 앙큼하고 약삭빠른 여우 같은 타입이었다.

"혹시 저랑 단둘이 만나는 거 불편하세요?"

"아니."

"아닌데 반응이 왜 그래요?"

연두가 계속 따지고 들자 도훈이 변명을 늘어놓았다.

"사실···."

"네."

"옷이 좀 그래서."

"제 옷이 어때서요?"

뜬금없는 대답에 연두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너무 파였잖아. 바지도 짧고."

"이런 거 좋아하시는 거 아니었어요? 오늘 다들 예쁘다던데?"

"예쁘지. 섹시하고. 보기 좋은 거 맞아."

"근데요? 뭐가 불만인데요?"

"내 여자가 그러고 다니는 게 싫어."

"아···."

도훈의 적절한 변명에 연두가 기분이 좋은지 그녀답지 않게 얼굴을 붉히며 도훈의 팔에 냥냥 펀치를 날렸다. 애교 섞인 스킨십이었다.

"뭐야 이 오빠 진짜···. 사람 감동하게 할 줄도 알고."

도훈은 의도치 않게 점수를 딴 꼴이었지만, 기왕 이렇게 된 거 컨셉을 확실히 잡기로 했다.

"다른 여자가 그렇게 입고 다니는 건 상관없어. 아니 홀딱 벗고 다니면 나야 쌩큐지. 근데 내 여자는 그러면 안 돼. 누가 내 것 눈독 들이고 쳐다보는 거 맘에 안든다고."

"아이참···. 알았어요. 이제부터 이렇게 안 입을게요."

연두가 기분이 좋은지 배시시 웃으며 물었다.

"근데 정말 나 오빠 거에요?"

"당연하지. 그럼 네가 누구 건데?"

"음···. 맞아요. 오빠 꺼. 히히. 근데 오빠는 여자가 너무 많아서 문제죠."

"내가?"

연두가 다리를 꼬더니 차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갑작스럽게 태도를 바뀌는 게 카멜레온 같은 태세전환이었다.

연두는 남자를 들었다 놨다 하는데 천부적인 기질이 있었다.

"···피. 어제도 다른 여자 꼬시려고 해놓고."

"아, 그건···."

"됐고요. 그래서 했어요 안했어요?"

"뭘?"

"말로 해야 알아요? 그 여자랑 둘이 차 타고 어디 간 거 다 봤거든요?"

"잠시 차만 얻어 탄 거야."

"차만 탔나 몰라? 몸도 탔을지도."

"야!"

"암튼. 오빠가 바람둥이인 건 사실이잖아요. 모를 줄 알아요?"

도훈은 연두를 설득하는 게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연이처럼 맹한 타입은 절대 아니었기 때문에 어떤 감언이설로도 먹힐 것 같지 않았다.

‘그래. 뭐 이렇게 된 거···. 정면 돌파 하는 수밖에.’

"···하긴. 뭐 바람둥이라고 불려도 할 말은 없지."

"오호. 지금 인정하시는 각?"

"그래 인정."

"웬일이에요?"

"너도 대충 다 안다면서. 근데 조금 억울하긴 하네."

"뭐가 억울한데요?"

도훈이 푸념하듯 말했다.

"여자들이 나를 가만 둬야 말이지."

"무슨 소리에요?"

"너도 예쁘니까 알 거 아니야."

도훈은 우선 연두를 추켜세웠다. 칭찬을 받은 상대일수록 상대방에게 설득당하기 쉽다는 말을 실천한 것이다.

"뭘요?"

"남자들이 막 껄떡대지 않아? 시도 때도 없이?"

"음···. 시도 때도 없는 건 아니지만···. 그쵸."

"내 말 맞지? 헌팅도 많이 당하고."

"맞아요. 저번에도 누가 연락처 달라고 하더라고요."

"은근슬쩍 챙겨주고."

"그거야 뭐···."

"너처럼 나도 마찬가지거든."

"여자들이 오빠한테요?"

도훈은 이번엔 동질감을 조성했다.

상대와 유사한 처지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자연스럽게 레포를 형성한 것이다.

"응. 번호만 주고 가는 건 예사지. 아주 대놓고 성추행도 당한다니까?"

"성추행이라뇨?"

"왜, 은근슬쩍 가까이 와서 살 비비고 가는 거 있잖아. 엉덩이든 가슴이든."

"아···."

"그나마 거기서 그치면 다행이지."

"더 심한 경우도 있어요?"

"내가 누구라고 말은 안 하겠는데 술 먹고 전화해서 한 번 자자고 한 여자애도 있었어."

"누군데요?"

"그건 말못해."

"아무튼, 잤어요?"

"그것도 노 코멘트."

"했네, 했어. 했죠? 맞죠?"

"아무튼, 남자들은 여자가 그 정도까지 나오면 참기 힘들단 말이야. 알잖아. 남자들이 훨씬 유혹에 약한 거."

"그죠. 여자도 참기 힘들 때가 있는데."

"내 말이. 그리고 또 내가 워낙 그런 걸 즐기니까."

"흐흐. 오빠야 뭐···."

"막말로. 내가 고자도 아니고. 여자가 알아서 덤비는데 어떻게 참냐는 거지. 바람둥이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은 없는데 억울한 건 좀 있다는 거야."

"근데. 어젠 그럼 뭔데요?"

"어제?"

"어젠 의대생이라고 뻥치면서까지 꼬시고 있었잖아요?"

연두가 날카롭게 허점을 찔렀다.

"그것도 정확히 말하면 꼬신 게 아니야."

"뭐라고요?"

연두가 어이가 없다는 듯 콧방귀를 꼈다.

심지어 의학 전공 서적까지 펼쳐놓고 코스프레 하는 걸 두 눈으로 뻔히 봤는데 발뺌하는 모습에 기가 찰 지경이었다.

"제가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해 봐요, 그럼."

도훈이 입술을 오므리더니 주머니에서 립밤을 꺼냈다.

신호대기에 잠시 립밤을 입술에 바른 그가 말했다.

"난 입술이 되게 건조한가 봐. 여름에도 이렇게 입술이 막 갈라진다니까?"

"아니. 말 돌리지 말고 설명해 보시라고요."

"알았어."

오빠 믿지 립밤으로 설득력을 높인 도훈이 개소리를 시작했다.

"너 어디 가서 나한테 들은 말 하면 안 돼."

"네."

"나 사실 의전 편입 준비 중이야."

"네?"

연두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체육인인 도훈이 갑자기 의학 전문대학원을 준비한다니 너무나 얼토당토않은 소리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희한하게 그의 대답에서 왠지 모를 진심이 느껴졌다.

"오빠가요? 진짜예요?"

"응. 물론 아직 멀었어. 학사는 끝내야 MEET 시험 자격이 주어지니까."

"미트요?"

"Medical Education Eligibility Test라는 거야. 의과 전문대학원 진학에 필수 시험이지."

"아···. 그, 그렇구나. 오빠 그럼 의대 다시 가려고 준비하는 거예요?"

"음. 솔직히 지금도 고민 중이야. 의전에서 다시 의대로 회귀하는 대학도 많고···. 예전만큼 기회가 많은 것도 아니니까. 근데 수능을 다시 봐서 의대를 가자니 다시 6년을 대학 다니는 거나 의전을 가는 거나 차이가 없겠더라고."

"와···. 오빠가 의대를···."

"암튼,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그래서 카페에서 공부하고 있었거든. 그때 지갑 잃어버린 그 여자 경찰분이 찾아온 거야."

"그 왕슴가!"

"왕 순경이야."

"근데 왜 그분한테는 의대생이라고 뻥쳤어요? 의전 준비한다고 하면 되지."

도훈이 손가락을 입술을 쓱 훑었다.

"그러니까. 그게 사실 좀 복잡한데···."

"얘기해 봐요."

"처음엔 거짓말할 생각이 없었어. 근데 그 여경분이 지갑 찾아줬다고 고맙다고 커피를 사 들고 와서는 계속 추근대는 거야."

"오빠한테 반했구나!"

"아마도?"

"역시. 가슴 출렁거리고 다닐 때부터 흘리는 여자 같긴 하더구먼."

"내가 마음에 들었나 보더라고. 자꾸 학교가 어디냐고 무슨 과 다니냐고 묻는 거야."

"그래서 거짓말 한 거라고요?"

"그치. 어차피 대학은 속일 수가 없었어. 내가 국성대 앞에서 보자고 해서 그 카페로 온 거니까."

"네."

"그래서 마침 책도 보고 있겠다, 의대생이라고 거짓말 한 거야. 괜히 피곤하게 얽히기 싫어서."

"아···. 그 여경분이 막 귀찮게 할까 봐요?"

"글치. 막 학과까지 찾아오고 그러면 얼마나 불편하겠어. 솔직히 내 타입도 아니었거든."

"예쁘던데? 가슴도 대빵크고."

"얼굴이 아니라 가슴이 마음에 안 들었어."

"왜요? 오빠 큰 거 안 좋아요?"

"무식해 보여서 싫어. 젖소 같아서."

"아···."

"암튼 그래서 적당히 둘러대는 중인데 너희들이 오해한 거라고. 이미 거짓말을 한 상황에서 갑자기 말 바꾸기도 뭐해서 계속 속인 거고."

"난 또. 오빠가 의대생 사칭해서 여경 언니 꼬시는 중이라고?"

"이제 진실을 알겠지?"

"네."

도훈의 아무 말 대잔치는 오빠 믿지 립밤의 효과로 완벽히 들어갔다. 곱씹어 생각하면 MEET를 준비하면서 의과 서적을 공부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였고, 여자를 떨쳐 내기 위해 의대생 코스프레를 했다는 것도 황당한 변명이었다.

하지만 오빠 믿지 립밤의 효과로 인해 연두는 도훈이 하는 말을 의심조차 없이 철석같이 믿어버린 것이었다.

"와, 난 또 오빠가 막 여자꼬시려고 별짓을 다 하고 다닌다고 나연이랑 엄청 흉봤잖아요. 모르고 오해해서 죄송해요. 나연이한테는 제가 말 잘할게요."

"아니야."

"네?"

"나연이한테는 하지 마."

"왜요? 나연이도 오해하고 있을 텐데."

"그게 아니고 이런 얘기를 네가 알고 있다면 우리 둘이 단둘이 만난 걸 시인하는 꼴이잖아. 괜찮아?"

"아, 그렇네요?"

"그러니까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마. 나중에 같이 만나면 내 입으로 직접 말하는 게 모양새가 좋으니까."

"알겠어요."

‘휴. 어쨌든 이걸로 여경 건은 정리했군.’

[주인님은 정말이지 연기자를 해야 했을 것 같습니다.]

‘나도 그 생각해. 그냥 배우 했으면 대성했을 거라고. 아이템 빨도 있고.’

도훈의 변명을 모두 들은 연두는 갑자기 그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잘생긴 외모 탓에 여자들에게 시달리고, 바람둥이라고 오해까지 받으면서 묵묵히 의전까지 준비하는 모습이 조금은 고독해 보였다.

"근데 오빠 정말 대단하다."

"내가? 뭘?"

"전 오빠가 운동만 잘하는 줄 알았지,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시는 줄은 몰랐거든요. 설마 맨날 도서관 가시는 것도···."

"응."

"근데 왜 의사가 되려고 해요? 사범대 오셨으면서."

"고등학교 땐 체육 교사가 되고 싶었거든. 근데 교육학도 배우고, 실습도 다녀보고 하니까 내 적성이 이쪽이 아닌 것 같더라고."

"아···. 뒤늦게 적성을 찾으셨구나."

"근데 모르지. 의전이 열심히 한다고 가는 곳도 아니고. 그냥 한 번 도전은 해보려고. 실패하더라도 해보고 후회하는 편이 낫지 않겠어?"

"멋져요, 오빠. 제가 이제까지 오빠를 오해하고 있었나 봐요."

"무슨 오해?"

"그냥···. 난 오빠가 여자나 밝히고, 막 그런 사람인 줄만 알았거든요. 물론 그런 오빠도 충분히 좋았지만, 지금 보니까 제 생각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이에요."

"야. 무슨. 됐거든? 그런 소리 안 해도 저녁 내가 쏠 테니 아부 안 해도 돼."

"아부 아닌데···. 진짠데."

"횟집 다 와 간다."

그때 연두가 운전 중인 도훈의 허벅지 위로 스르륵 손바닥을 올렸다.

"저랑 저녁 먹고 싶은 거 맞아요?"

"응?"

"아님 애피타이저는 건너뛰고 저부터 드실래요?"

‘헉. 저녁이 애피타이저라니?’

[마침내 연두 양이 본색을 드러내는군요.]

"왜, 왜 그래. 운전하는데."

"오빤 운전해요.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뭘 알아서 한다는···. 야야, 지퍼를 왜 내려?"

"왜요? 오빠가 아까 그랬잖아요. 덤비는 여자 막기 어렵다고. 제가 지금 오빠한테 덤벼볼 거거든요."

"아니 그래도 운전 중인데···."

지퍼를 벌려 손을 집어넣은 연두가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웃으며 말했다.

"잡았다. 요놈."

"읔. 야, 빼."

"안 그래도 꺼내려고 했어요."

"아니 손 빼라고. 야야, 아니···."

도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연두는 이미 대물을 바지 밖으로 끄집어낸 뒤였다. 발기가 안 된 상태였음에도 원체 큰 대물이 어묵처럼 늘어져 나왔다.

"흠, 아직 안 커졌네? 잠시만요."

빨간불에 신호대기를 받고 있던 도훈의 사타구니로 연두가 머리를 들이밀었다.

< 726. 중수의 자격-55-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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