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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743화 (711/2,000)

< 725. 중수의 자격-54- >

도훈은 곧바로 마켓을 뒤져 변장 세트를 확인했다.

마켓에는 다양한 종류의 변장 세트가 있었는데, 착용도 쉽고 하나하나가 공들여 특수분장을 한 것처럼 완벽하게 꾸며주는 아이템이었다.

도훈은 그때 봤던 정원 관리사를 떠올리며 비슷한 모습으로 꾸몄다. 머리에 가발을 쓰고, 복장을 갖추자 영락없는 50대 중년 사내가 거울 앞에 서 있었다.

‘우아, 이게 정말 나라고?’

[피부의 주름 하나까지 감쪽같이 묘사한 제품입니다. 머리카락 또한 실제와 똑같고요.]

‘사람 머리카락으로 만들었단 말야?’

도훈은 순간 소름이 돋았다. 무협지에 흔히 나오는 인피면구처럼 사람머릿 가죽을 벗겨 만든게 아닐까 하는 오싹함이 든 것이었다.

[오해는 마십시오. 천상계 기술력으로 탄생시킨 제품이니까요.]

‘휴, 난 또.’

거울을 보며 세심하게 변장을 가다듬은 도훈은 현관문 앞에 마법의 문고리를 설치한 뒤 상상한 곳을 향해 문을 열었다.

문틀을 통과하자 하얀빛이 일렁이며 초록의 배경으로 바뀌어 있었다.

‘왔다. 저번에 왔던 고 회장의 정원이다.’

도훈이 문을 열고 나온 곳은 정원관리 물품을 보관한 외부창고였다. 잔디 깎는 기계나 스프링 쿨러 같은 각종장비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도훈은 그곳에서 커다란 전정가위를 챙겨 나와서는 저택을 배회했다. 워낙에 방대한 저택이었기 때문에 지나가는 직원들은 도훈을 보고서도 누군지도 모른 채 고개만 꾸벅 숙일 뿐이었다.

‘키햐. 상주하는 직원들이 많아서 천만다행이구나. 직원들끼리도 서로를 잘 모르니.’

도훈이 안심하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선 누군가 소리쳤다.

"어이, 김씨! 분수대 옆 나무부터 치라니까 거기서 뭐하는 거요?"

도훈이 뒤를 돌아보자 늙은 정원사 한명이 도훈의 얼굴을 확이하고는 놀라서 물었다.

"어라? 김씨가 아니네? 당신 누구요?"

"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아, 혹시 이번에 새로 뽑혔다는···."

도훈이 순발력 있게 받아쳤다.

"아, 네. 맞습니다. 그 소개로···."

"최씨 할아버지 후임으로?"

"네, 네."

상대가 알아서 오해해주어 천만 다행이었다.

"난 또 누구라고. 거 집사님은 정식으로 소개도 안 시켜주고 일부러 투입 시키네."

"좀 바쁘신 것 같더라고요."

"암튼, 오늘 분수대부터 뒤쪽 산책로까지 정리하기로 했으니까 그쪽부터 봐주쇼."

"저, 제가 여긴 처음이라···."

"아아, 잘 모르시겠구만. 여기 아가씨가 주로 다니는 산책론데···."

"아가씨요?"

"왜 회장님 손녀딸 있어요. 예쁘장하게 인형같이 생긴."

"아."

"암튼 저쪽으로 가면 경계석이 깔린 산책로가 보일거요. 거기서부터 시작해요."

"알겠습니다."

"잠깐. 그냥 가려고?"

"네?"

"여기 사다리 챙겨가야지. 높은 가지는 어떻게 자르려고?"

"아, 예. 제가 처음이다 보니···. 하하, 감사합니다."

무사히 위기를 넘긴 도훈은 사다리를 챙겨 산책로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하지만 복장이 정원 관리사일 뿐 그의 목적을 어떻게든 저택으로 잠입해 지연의 곁으로 접근하는 것이었다.

‘아, 처음부터 그냥 저택 안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할걸. 실수했네.’

도훈이 사다리위에 올라 저택 주변을 기웃거리며 발을동동 굴리고 있는데, 저택 이 열리며 두 사람이 걸어 나왔다. 한 명은 꽃무늬가 프린트된 원피스를 입은 공주풍의 복장이었고, 또 다른 한 명은 몸에 착 달라붙은 검은 정장을 입은 여성이었다.

‘이렇게 공교로울 수가! 고은성이랑 한지연이었잖아?’

높은 곳에서 먼저 그들을 확인한 도훈은 가지를 치는 척하며 그들이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 귀를 쫑긋 세우자 두 사람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언니 오늘은 산책하게 싫은데···. 그냥 디저트나 먹고 쉬면 안 돼요?"

"안됩니다. 밖으로 잘 못 나가시는 만큼 일부러라도 저택을 도시면서 햇볕을 쬐셔야 합니다. 너무 실내에만 있으면 건강에 안 좋습닏."

"맨날 걷던 길 또 걷고 또 걸으니까 너무 질린단 말이에요."

"아가씨. 할 건 하셔야죠."

도훈은 두 사람의 대화를 훔쳐 들으며 생각했다.

‘뭐야? 고은성 이거 따로 있을 땐 완전 어리광쟁이잖아?’

따로 있을 땐 몰랐는데 은성과 지연은 생각 이상으로 가까운 사이였다. 특히 한지연은 경호원이라는 직책보다 칭얼대는 어린애를 달래는 보모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이크. 이쪽으로 오는구나.’

도훈은 사다리 위에 올라 등을 돌린 채 두 사람이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 정보창을 쓰기 위해선 최소 3m 이내까지 근접해야 했다.

"그나저나 오빠 오늘 온다는 거 맞아요?"

"네."

"아···. 조금만 늦게 오지. 그럼 도훈 오···."

무심결에 도훈의 이름을 내뱉고만, 은성은 전정 가위로 잔가지를 치고 있는 도훈을 발견하고는 급히 입을 다물었다. 저택에 일하는 일꾼들에게 괜한 소문이 돌았다간 오빠의 귀에 들어갈까 염려되었던 것이다.

"흠흠! 안녕하세요. 오늘도 고생 많으시네요."

늘 사람들에게 친절한 은성이 밝은 목소리로 인사하자 도훈도 모자를 살짝 들어올린 채 꾸벅 인사를 받았다.

"안녕하십니까, 아가씨. 산책하시는 길인가 보군요."

그의 목소리는 이미 목캔디를 통해 중년의 목소리로 위조되어 있었으므로 두 여자는 그가 도훈이라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더구나 자연스러운 주름과 모발로 인해 30년은 훌쩍 늙어 보이는 터라 설사 도훈 본인의 목소리라고 해도 몰라봤을 것이다.

다만 지연은 경호원답게 무의식적으로 도훈의 변장한 모습에서 약간의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음, 처음 보는 얼굴인데? 누구지?’

경호원인 그녀는 저택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름을 몰라도 얼굴은 어느 정도 기억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방금 은성과 인사를 나눈 정원사는 분명 초면이었다.

‘게다가··· 어딘가 낯이 익단 말이야?’

피부와 모발을 꾸고 목소리를 변조했어도, 체형은 여전히 도훈의 것 그대로였다. 얼굴이 아닌 실루엣으로 사람을 기억하는 지연은 늙은 정원사의 모습에서 어딘지 모를 친숙함을 느꼈다.

"새로 오신 분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그렇군요."

하지만 막연한 추측만으로 사람을 의심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쨌든 외부인이 이 저택에 쉽게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은 경호담당인 그녀가 더 잘 알았다. 특히 저택의 인원관리를 담당하는 집사는 무척이나 꼼꼼한 기준으로 사람을 가려 뽑는 것으로 유명했

다. 저택에서 20년을 넘게 지내온 집사의 안목이 그릇될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한편, 도훈은 은성과 지연이 자신을 똑바로 보고도 못알아 본다는 점에서 큰 자신감을 얻었다.

‘됐어. 전혀 눈치를 못 채네. 이제 가까이만 다가오면···.’

그러나 두 사람은 도훈을 피해 돌아가려는 것처럼 반대편으로 방향을 틀어 버렸다. 아무래도 도훈의 존재가 대화를 나누는데 불편했던 모양이었다.

‘아, 아앗! 왜 반대로 가는 거야?’

당황한 도훈이 사다리 위에서 두 사람을 불러 세웠다.

"저, 저기 아가씨."

"네?"

도훈의 부름에 은성이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무턱대고 은성을 부른 도훈은 할 말이 없어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그···. 이 나무가 전염병이 든 것 같은데···."

"네?"

"제 마음대로 잘라도 되지."

"아, 그런 건 알아서 해 주세요. 늘 정원을 예쁘게 가꿔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그게 제 일 인걸요."

대화를 마치자 다시 두 사람이 멀어지려고 했다.

여기서 기회를 놓치면 두 번 째는 안 올지도 몰랐다.

이 순간을 위해 어제 온종일 6연떡을 치며 비밀의 문고리를 충전했던 도훈에겐 절대 놓쳐서는 안될 기회였다.

‘에라 모르겠다.’

"어이쿠!"

도훈이 사다리 위에서 전정가위를 놓치며 소릴 질렀다.

커다란 가위가 밑으로 떨어지더니 멀리 튕겨나갔다.

"괜찮으세요?"

"괘, 괜찮습니다. 실수로 가위를 떨어뜨리는 바람에."

"거기 계세요. 제가 주워 드릴게요."

친절한 은성이 가위를 집어 주기 위해 다가가려 하자 지연이 그녀 앞을 가로 막았다.

"아가씨. 가위 날이 날카롭습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아···. 네, 언니."

지연은 바닥에 떨어진 전정 가위를 집어 들더니 사다리 위에 오른 도훈에게 건넸다.

"조심하세요. 여기."

"감사합니다."

거리가 좁혀진 도훈이 재빨리 정보창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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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한지연  (비처녀, 일시 22세 7개월)

나이 : 26 #육사 출신 #경호원 #사랑의 스파이

호감도 : 96/100

개방성 : C

성감대 : 클리토리스, 겨드랑이, 입술

*애무 포인트 : 그녀는 키스할 때 아랫입술을 잘게 깨물어 주는 걸 좋아합니다.

성욕지수 : 중간 (임신확률 : 82%)

공략팁

*그녀는 이미 당신의 포로입니다.

-그녀는 당신에게 푹 빠져 있습니다.

-아무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그녀는 당신의 원할 때 취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본분을 망각하고 당신에게 무한한 협조를 제공할 것입니다. 설사 그것이 다른 여자에게 당신을 바치는 일이라 해도요.

-추천멘트 : "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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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지연의 정보창을 확인한 도훈은 깜짝 놀랐다.

성욕지수 옆에 나오는 임신 가능성이 82%였던 것이다.

"왜 그러세요?"

도훈이 자신을 쳐다보고 비명을 지르자 가위를 건네던 지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훈은 그제야 자신이 실수했다는 걸 깨닫고 뒤늦게 변명했다.

"너, 너무 미인이시라···."

"네?"

"아가씨만 예쁜 줄 알았더니 가까이 보니 경호원님이 더 미인이시네요."

"···뭐라고요?"

지연은 늙은 정원사의 추파가 어이가 없었지만, 딱히 기분이 나쁜 말이 아니라 대충 둘러 넘겼다.

"별말씀을 다. 수고하세요."

지연이 어깨를 으쓱하며 은성에게 되돌아가자 은성이 궁금한 듯 물었다.

"방금 무슨 얘길 한 거예요?"

"아닙니다, 아가씨."

"아니 저 아저씨가 언니보고 엄청 놀란 것 같던데? 그리고 막 둘이 대화하지 않았어요?"

"별 내용 아니에요."

지연은 반대 방향으로 향하면서 다시 가지를 치고 있는 도훈을 쓱 돌아보았다.

‘···내가 은성이보다 더 예쁘다고? 도훈이가 그런 말을 해 줬으면 더 좋았을 텐데. 가만, 이제 생각났다. 저 아저씨가 도훈이랑 몸매가 닮았었구나.’

지연은 별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다시 멀어져갔다.

반면 홀로 남겨진 도훈은 허탈감에 힘이 쭉 빠졌다.

‘임신 가능성이 80%가 넘는다는 말은 지연이 여전히 가임기라는 소리지?’

[그렇습니다.]

‘착상이 되었으면 임신 확률이 없어야 하니까···.’

[네. 그때 질내 사정으로 임신이 안되었던거죠.]

‘아 놔.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어제 6연 떡 펼친 건 대체 뭔데? 무슨 삽질을 한 거야? 하루 종일.’

[그래도 다행 아닙니까? 지연양에세 긴급 피임약을 처방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요.]

‘그거야 그렇긴 한데···.’

[그래도 이번 기회에 좋은 교훈을 배우셨습니다.]

‘뭐?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다?’

[그거 오줌 아닌가요?]

‘좆물 아니었어?’

[음···. 암튼 그렇습니다. 위대한 유산 옵션은 늘 켜주시길 바랍니다.]

‘그래야겠다. 아니지. 나중에도 또 이런일이 있을지 모르는데 아예 그냥 이 기회에 묶어 버릴까?’

[묶다뇨?]

‘정관수술 말이야. 그럼 씨 없는 수박 될텐데.’

[그건 안 하는 게 좋겠습니다.]

‘왜?’

[주인님 힘의 기반은 정력에서 비롯됩니다. 또한 정력의 근원으 정액에서 나오죠.]

‘그게 뭔 소리야?’

[주인님의 정액에 마법적인 힘이 깃들어 있다는 말입니다. 중독의 정액이든 마법의 정액이든.]

‘아아, 그렇지.’

[그런데 그 정액의 조성이 바뀌면 스킬으 효과가 반감되거나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혹시 모를 부작용이 있을지 모르니 정관수술은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음, 듣고 보니 또 그렇군.’

지연이 임신을 하지 않았다니 안심이 되면서도 다소 허탈한 결말이었다. 다만 질싸의 위험성을 깨달은 도훈은 다음에는 절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사람들 시선을 피해 마법의 문고리로 집으로 돌아온 도훈은 오후 수업을 위해 학교로 향했다. 가는 길에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넣고 있는데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연두?"

-네. 오빠 어디에요?

불쑥 어제 그녀와 단둘이 만나기로 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나연이 몰래.

‘아, 귀찮게 됐네. 어제 하도 물을 많이 빼서 지금은 전혀 안 땡기는데···.’

하지만 약속을 잡아놓고 일방적으로 무시했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두려웠다. 연두는 도훈의 비밀을 제법 많이 알고 있었고, 충동적인 성격상 까딱 도훈의 학교생활을 곤란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응, 오전 수업 휴강해서 지금 학교 가는 길이야. 오후 수업 가려고."

-그래요? 그럼 몇시에 끝나요?

"음···. 5시?"

-알았어요. 그때까지 나연이랑 학교에서 시간이나 때우고 있을게요. 적당히 핑계대서 나연이는 먼저 보내고요.

"그래."

-근데 목소리가 왜 그러세요? 오늘 저 만나기 싫은 사람처럼?

역시 예리한 타입이었다. 도훈이 의무방어전을 힘들어하는 기색을 보이자 대번에 눈치를 챘다.

"설마. 그게 아니라 지금 차에 기름 넣고 있느라 정신이 없어서."

-아, 오빠 차 뽑았다고 그랬죠?

"중고차야 그냥."

-흐흐. 중고차가 어디에요. 저 오늘 저녁에 드라이브 시켜줘요.

"드라이브?"

< 725. 중수의 자격-54-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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