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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738화 (706/2,000)

< 720. 중수의 자격-49- >

"오오! 히든 미션이 남아있었군요!"

히든 미션.

‘빻은 얼굴도 할 수 있어’라는 명칭의 미션으로 도훈이 일전에 호스트 빠에 면접 보러 갔을 때 발생한 이벤트였다.

일시적 또는 항구적 손상으로 평소보다 외모 지수가 급감한 상태에서만 발동되는 이벤트로, 당시 도훈이 역용 마스크의 부작용으로 얼굴이 망가졌을 때 우연히 받게 된 것이다.

"그 미션 보상이 10,000포인트랑 경매 낙찰권이었잖아."

"맞습니다. 저도 깜빡 잊고 있었는데 주인님이 용케 기억해 내셨군요."

"경매장에 오니까 퍼뜩 생각이 나더라고. 그것만 있으면 뭐든 살 수 있는 거 맞지?"

"뭐든 살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우선 낙찰이라며?"

"우선 낙찰이란 입찰경쟁이 붙기 전에 낙찰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시작가를 지불할 능력이 있는 아이템까지가 한계선이죠."

"아, 아이템을 수령 하는 권리가 아니라 낙찰 우선권이구나."

"그렇습니다."

"아무튼, 수중에 포인트만 쟁여 놓으면 나중에 필요한 아이템을 일순위로 낙찰받을 수 있다는 거네?"

"정확히 이해하셨습니다. 그만큼 귀한 쿠폰이니만큼 아껴 쓰시실 권해 드립니다. 인벤토리 종류는 자주 나오고 가격도 경매 물품 치곤 크게 비싸지 않은 만큼 거기에 낙찰권을 쓰는 것은 아까울 것으로 판단됩니다."

"오케이. 그건 상황 보고 결정해야겠군."

도훈은 경매장을 둘러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만있자. 앞으로 전 부인에 대한 복수를 수행하려면 저 참견쟁이 로시를 떼 놓을 수단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아이템은 없나?’

생각을 마친 도훈이 물었다.

"근데 로시."

"넵, 말씀하십시오."

"너와 나는 이 스마트 워치로 늘 연결되어 있잖아. 자나 깨나. 일년 365일."

"네."

"혹시 이걸 일시적으로 해제하는 아이템도 있나?"

로봇으로 변한 로시가 눈으로 추정되는 부위를 깜빡이며 물었다.

"그건 왜 물으시죠?"

목소리 톤이 살짝 올라간 것으로 보아 왠지 도훈의 저의를 의심하는 눈치였다. 도훈은 천연덕스럽게 변명했다.

"아니, 여기 오니까 별의별 아이템이 다 있길래. 혹시나 해서."

"흐음, 대답이 너무 궁색한데요?"

로시는 역시 날카로웠다.

도훈은 만만치 않은 인공지능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설명을 덧 붙였다.

"그게 아니라. 나는 너를 통해 능력을 발휘하잖아. 스킬이든 아이템이든."

"그건 모든 플레이어가 마찬가집니다. 신과의 매개물이 있어야 능력을 끌어 쓸 수 있으니까요."

"아무튼. 근데 만약 PK단 놈들이 너와의 연결을 해제하는 아이템으로 공격해오면 어떡하나 싶어서 말이지."

도훈의 지적에 일리가 있다 느꼈는지 로시가 다소 누그러든 목소리로 대답했다.

"거기까지 생각하셨다니 놀랍군요. 물론 그런 아이템이 있긴 합니다."

"정말? 플레이어의 교신을 끊는 아이템이 있다고?"

"끊는 것 까진 아니고 일시적으로 차단시키는 종류입니다. ‘변절자’라 불리는 반역자들을 소탕하기 위해 제작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오···. 그럼 그런 공격에도 미리 대비해야 하는 거 아냐? 네가 없이는 난 스킬도 마음대로 못 쓰는데."

"하지만 그 점에 대해서라면 우려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어째서?"

"그건 PK단이 이용하는 블랙마켓에선 취급하지 않는 물건이니까요."

"오호라. 그러니까 아군만 지닐 수 있는 무기인 셈이네?"

"맞습니다."

"그 아이템 이름이 뭔데?"

도훈이 자꾸 캐묻자 로시도 점점 이상함을 느꼈는지 따졌다.

"근데 왜 그렇게 궁금해 하시는 거죠?"

"방금 네가 그랬잖아. PK단 중 변절자라는 놈들에 대해선 그걸로 대항할 수 있다고. 혹시 모르니까 나도 비상용으로  가지고 있어야하나 해서."

"음···. 그럴 가능성도 있겠군요. 거기까진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치?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나쁠 건 없으니."

"그럼, 잠시 장소를 옮기겠습니다."

로시가 둥근 원통의 몸체를 한 바퀴 팽그르르 돌리자 또 다시 배경이 바뀌었다.

박물관, 중세의 성에 이어 이번엔 푸르른 신록이 펼쳐진 야외 정원이었다.

"여긴 야외네?"

"어차피 시신경으로 교란한 그래픽 덩어리일 뿐이니 놀라실것 없습니다. 이곳에 아까 말했던 아이템이 있습니다."

도훈은 커다란 나무 그루터기 위에 올려진 검은색 물체를 확인했다.

"바로 플레셔라 불리는 아이템입니다."

"플레셔? 생긴 건 무슨 자전거용 미니 후레쉬처럼 생겼는데···."

"맞습니다. 뒤에 있는 버튼을 누르시면 플레쉬가 번쩍이면서 플레이어와 연결된 장비가 일시적으로 마비되는 기능입니다."

"아아, 이거 그거네."

"그거라뇨?"

"왜, 맨 인 블랙이란 영화에서 보면 외계인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 사람들 모아놓고 번쩍하고 터뜨리는 거 있잖아. 그럼 순간적으로 기억상실에 걸리는."

"글쎄요. 같은 기능은 아니지만, 원리는 비슷하겠네요."

"가만. 근데 빛이 터지면 주변에 있는 모든 플레이어가 다 먹통이 되버리는 건가? 나까지도?"

"아니요. 빛에 쬐인 플레이어에게만 해당됩니다. 그래서 모양이 플레쉬처럼 생겼고요."

"아하. 이해했어."

도훈은 슬쩍 은색 버튼을 눌러 장비의 가격을 확인했다.

<플레셔

-신의 성물과 플레이어의 교신을 차단하는 장비이다. 대상을 지향해 플레쉬를 터뜨리면 일시적으로 모든 동기화가 해제된다.

-경매 시작가 : 18000 포인트

‘오호라. 찾았다. 이것만 있으면···.’

도훈이 속으로 딴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로시가 경고음을 날렸다.

"주인님! 서둘러 경매장을 떠나셔야겠습니다!"

"왜, 무슨 일인데?"

"주인님의 신변에 약간의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뭐라고?"

***

"야, 저기 저거 뭐냐?"

다소 껄렁해 보이는 여학생들이었다.

상의는 교복을 입고 있으나 밑에는 츄리닝을 입은 학생 한 명과, 화장을 진하게 하고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여고생 한명이 코인 노래방 부스를 어슬렁 거렸다.

"머가?"

"머긴 뭐야 이년아. 눈깔있음 보라고. 노래방 와서 처자는 새끼 있잖아. 저기."

노란 머리는 유난히 입이 걸걸했다.

특히 진한 화장 덕분에 도저히 고등학생으론 보이지 않았다.

"얼레? 진짜네? 노숙자세요?"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이년아."

"멀쩡하게 생겨 가지고 왜 저러고 있지?"

"몰라. 찐딴가 보지. 잘 됐다. 안 그래도 담배 뚫어줄 사람 필요했는데."

"담배 셔틀? 조옿지."

두 학생은 벽에 기댄 채 기절하듯 쓰러져 있는 도훈의 부스로 다가갔다. 가까이서 본 도훈은 생각보다 훨씬 상태가 심각했다. 그냥 조는 것도 아니고 눈을 반쯤 뜬 상태로 가수면 상태에 빠져 있던 것이다.

벌어진 입에서 침이 질질 흘러나오는 모습에 노랑머리가 움찔 놀랐다.

"씨발, 깜짝이야. 진짜 미친놈 아냐?"

"설마?"

"아냐. 봐봐. 눈이 풀렸잖아. 아님 요새 클럽에서 유행한다는 물뽕 같은 건가?"

"오호. 그럼 뽕쟁인가?"

"야. 니가 가서 깨워봐."

노랑머리가 츄리닝 바지를 입은 여학생에게 명령했다.

친구처럼 보이면서도 은근히 상하 관계가 명확한 것처럼 보이는 두 사람이었다.

츄리링 바지는 상태가 몹시 안 좋은 도훈의 겉모습에 살짝 겁이 났다. 그러나 여기서 뒷걸음질 쳤다간 일진들 사이에서  겁쟁이라고 낙인 찍힐 게 두려웠다.

‘썅년, 말 꺼냈음 지가 깨울 것이지···. 하여간 왕재수 같은 년. 현창 오빠랑 붙어 먹고 나더니 지가 상전행세야, 아주.’

추리닝 바지는 속으로 씨부렁씨부렁 거리면서 부스 밖에서 쾅쾅 문을 두드리며 도훈을 깨웠다.

"아저씨, 일어나봐요. 아저씨!"

"그래가지고 깨겠니? 들어가서 깨우라니까?"

"드, 들어가라니?"

"싫으면 니가 교복 입고 가서 담배 쳐 사오던가요."

‘아씨, 좆 같은 년. 현창 오빠가 준 담배는 지가 다 펴놓고 왜 나한테 지랄이야?’

추리닝이 문고리를 잡은 그때였다.

갑자기 혼이 나가 있던 도훈이 부르르 몸을 떨며 의식을 회복했다. 로시의 경고를 받고 곧바로 접속을 끊은 것이었다.

"으으으!"

그러나 처음으로 가상 세계를 돌아다닌 후유증은 만만치 않았다. 뇌 내의 자극과 실제 운동신경의 불일치가 만들어낸 교란이 그의 몸을 멋대로 움직이게 만들었다.

도훈은 마치 틱 장애 가진 사람처럼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 간헐적으로 경련을 일으켰다.

‘으윽, 뭐야? 몸이 왜 제 멋대론데?’

[저런. 너무 급하게 동기화를 끊은 것 같습니다. 현재 주인님의 몸 상태는 멀미와 유사합니다.]

‘멀미라니?’

[시선은 앞으로 나아가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는 괴리에서 생기는 증상말입니다. 경매장 안에서 움직이던 자극이 실제로 전달이 되지 않으면서 근육 세포가 다소간 혼란을 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젠장. 이거 그럼 어떻게 해야 해?’

[일시적인 경련 증상이니 곧 괜찮아 질 겁니다.]

‘나참.’

도훈이 병신처럼 고개를 까딱거리며 부들부들 떨고 있는데 갑자기 부스문이 벌컥 열렸다.

"어이, 아저씨. 좀 나와보라니까."

"나, 나?"

도훈이 비뚤어진 입매로 겨우 대답했다.

"그럼 거기 아저씨 말고 또 있어?"

"진짜 약 빨았나봐. 저기 막 손 떠는 거 보여?"

"그러게."

도훈은 갑자기 등장한 두 여학생을 보고 로시에게 물었다.

‘쟤들은 또 뭐냐?’

[잘은 모르겠습니다. 저도 주인님이 계신 부스를 두드리는 모습을 보고 주인님을 깨운 것이거든요.]

‘그래? 어째 생긴 게 영 껄렁해 보이는데?’

도훈은 어이가 없었지만 정상적이지 않은 몸을 일으켜 겨우 부스 밖으로 나왔다. 도훈이 일어서자 그제야 그의 키가 엄청 크다는 걸 깨달은 두 여학생이 주춤하는 기색을 보였다.

"어, 생각보다 키가 크네."

"아저씨 몇 살이야? 민짜는 아니지?"

노랑머리는 도훈이 생각보다 건장한 체격을 가진 것을 보고 속으로 쫄았지만 꿀리지 않으려는 생각에 당차게 나가기로 했다.

"아, 아저씨? 지금 나, 나 말하는 거, 거야?"

‘뭐야? 왜 말은 또 더듬 거려?’

[아직 신경이 정상으로 회복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도훈이 자꾸 틱장애 환자처럼 부들부들 대면서 말까지 더듬자 노랑머리는 도훈의 상태를 의심했다.

‘뭐지? 진짜 허우대만 멀쩡한 병신인가?’

"아씨, 존나 말 많은 아저씨네. 됐고, 편의점에서 담배 하나만 뚫어줘."

"다, 담배?"

도훈은 두 사람의 옷차림을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둘이 고등학생이란 걸 깨달았다. 자세히 보니 화장이 진해서 그렇지 아직 젖살도 안 빠진 어린애들이었다.

‘하-. 진짜 어처구니가 없네. 얘들 나한테 지금 담배 셔틀 시키려고 깨운 거냐?’

[그런 것··· 같습니다만.]

‘아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도훈은 확 혼을 낼까 하다가 좋은 말로 타일렀다.

"너, 너희들 그런 거 피면 모, 못 써."

도훈이 여전히 말을 더듬거리자 추리닝을 입은 여학생이 갑자기 도훈의 어눌한 말투를 따라하기 시작했다.

"너, 너희들 그, 그런 거 피, 피우면 못써. 푸하하, 이 아저씨 진짜 병신인가 봐."

"그러게. 아저씨 존말 할 때 얼른 담배나 사 와요. 확 센타 까버리기 전에."

두 사람이 도훈을 향해 협박하자 도훈의 인내심도 점점 바닥을 드러냈다.

‘근데 어린노무 새끼들이 말하는 싸가지 좀 보소?’

슬슬 가상 현실의 부작용이 풀려나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도훈의 몸도 곧 정상으로 돌아왔다. 도훈이 딱딱히 굳은 얼굴로 경고했다.

"야. 나 그런 사람 아니니까 좋은 말 할 때 가라."

"뭐래?"

"미친."

"이 아저씨 돌았나 봐."

"아저씨 맞을래요?"

두 학생이 손찌검할 것처럼 팔을 쳐들자 도훈의 인내심도 뚝 ? 끊어지고 말았다.

"이것들이 진짜 확 그냥!"

그때 여학생 뒤에서 껄렁해 보이는 남학생 무리가 등장했다.

"쟤 현창이 깔 아니냐?

"아현이, 거기서 뭐해?"

등장한 사내들은 모두 다섯이었다.

생긴것 부터가 양아치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그중 한 놈이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끼어들었다.

"뭐야? 뭔 일인데?"

"오빠! 마침 잘 나타났어. 이 아저씨가 다짜고짜 우릴 때리려고 하잖아."

"맞아요. 우리 여기서 놀고 있는데 갑자기 시비 걸었어요."

두 여학생은 없던 사실을 지어내며 도훈을 모함했다.

듣고 있던 도훈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내가 시비를 걸었다고?"

"봤죠? 지금도 저희 때리려고 하는 거."

"이상한 사람이에요."

"어이, 형씨."

여학생의 일방적인 말만 들든 사내가 갑자기 기사도 정신이 빙의했는지 도훈에게 소리쳤다.

"거, 나이도 잡술대로 잡순 양반 같은데 선량한 여고생을 괴롭혀서 되겠습니까? 이 씨발 놈아?"

선빵.

다짜고짜 주먹이 날아들었다.

양아치들 특유의 치사한 기습이었다.

도훈은 예상했다는 것처럼 고개를 살짝 틀어 주먹을 피하더니 순식간에 정강이를 걷어차며 놈을 쓰러뜨렸다.

"으악!"

쪼인트를 까인 놈은 바닥으로 주저앉더니 두 손으로 정강이를 붙잡고 데굴데굴 굴렀다. 도훈이 어깨를 으쓱하며 뒤에 험악해 보이는 남학생들에게 말했다.

"봤지? 이건 정당방위다."

그러나 숫적으로 우세한 양아치들은 친구가 맞는 걸 보는 순간 무더기로 달려들었다. 도훈이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아씨, 진짜 무슨 이런 쓰레기같은···.’

도훈의 신체 스펙과 무도 재능은 일반인 수준에선 범접할 수 없는 레벨. 굳이 능력을 쓰지 않아도 양아치 놈들을 모두 때려눕히는 덴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쪽수만 믿고 도훈에게 덤벼든 양아치들은 한 순간에 참교육을 당하고 구석에 처박혔다.

그때 한명에게 당했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한 양아치 하나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들었다. 그것은 접이식으로 펼쳐지는 잭나이프였다. 놈이 칼을 빼들더니 도훈의 뒤로 슬금슬금 접근했다.

< 720. 중수의 자격-49-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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