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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728화 (1,530/2,000)

< 710. 중수의 자격-39- >

도훈은 그녀가 부임 이후 한동안 학교전담경찰관직을 역임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자고로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에 관심을 드러내면 더 흥미를 보이는 법.

"그러고 보니 요샌 학교에도 경찰들이 배치되는 것 같던데 정말 그런가요?"

"학교전담 경찰관제도요?"

"네, 뭐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은데."

"미국처럼 상시 배치까진 아니고요, 관할 구역 내 있는 5~6개 학교를 특정 경찰관이 전담해 맡는 제도에요."

"아, 그렇구나. 그럼 빛나씨도 그런 일 해보셨어요?"

빛나는 도훈의 질문이 의외라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대체로 경찰쪽에 관심이 없으면 그런 일을 하는 줄도 모르는 게 대부분이었다.

"네. 작년 한 해 동안은 쭉 그 일만 했죠."

"그러셨구나."

"원래 초임한테 많이 돌아가는 업무에요. 강력사건을 맡기엔 경력이 부족하니 학교폭력 정도의 비교적 소소한 일부터 맡겨보는 거죠."

"그럼 중고등학교도 많이 가보셨어요?"

"네. 그때 담당학교가 초등학교 3개, 중학교 2개, 고등학교 1개였던가?"

"빛나씨는 남중 남고 갔으면 엄청 인기 많으셨겠어요."

"왜요?"

빛나는 무슨 뜻인지 몰라 되물었다가 도훈의 시선이 자신의 가슴을 빤히 보고 있는 것을 눈치채고 움찔 놀랐다.

‘뭐, 뭐야? 방금 날 희롱한 건가?’

빛나는 어려서부터 발육(?)이 뛰어난 편이라 남자들의 얄궂은 시선을 지겹게 받고 자라왔다. 그러나 경찰이 되고 나서부터는 제복 덕분인지 감히 그런 시선을 보내는 사내는 거의 없었다. 아무래도 경찰이라는 직업이 주는 위압감이 상당했던 것이다.

때문에 도훈의 노골적인 시선에 어이가 없으면서도, 살짝 기분이 이상했다. 기분이 좋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나쁘다고도 할 수 없는 기묘한 감정이었다.

‘흐음, 바람둥인 줄 알았지만 저건 너무 대놓고 보는거 아닌가?’

빛나가 운전석에 허리를 파묻으며 어깨를 움츠렸다.

허리를 펴면 너무 앞으로 돌출되길래 의식적으로 감추는 것이었다.

"방금 그 말은 무슨 뜻이에요?"

"네? 아니 학생들도 남자보다는 여자 경찰 쪽을 더 선호하지 않을까 해서요."

"음?"

"보통 경찰이라고 하면 괜히 죄지은 거 없어 쫄리잖아요. 그래서 학생들도 험악한 남자 경찰보다 빛나씨처럼 예쁜 여자 경찰을 선호할 것 같다는 얘기였어요."

도훈이 능구렁이처럼 도망치자 빛나도 딱히 반박할 말이 없었다.

‘흥. 말은 청산유수네. 가슴 빤하게 쳐다볼 땐 언제고. 하여간 바람둥이 끼가 있는 것 같다니까?’

빛나는 불쑥 도훈의 실체를 확인하고 싶어졌다.

그것은 도훈에 대한 일말의 미련 때문이었데, 만에 하나 자신이 도훈을 오해했다면 정말 괜찮은 남자를 놓치게 되었다는 후회가 남을 것 같았다.

일단 그가 정말 모쏠인지 확인하는 게 우선이었다.

‘···살짝 떠볼까?’

"하긴 전담 경찰관 할 때 남학생들이 좀 짓궂게 굴긴 했네요."

"예를 들면요?"

"주 활동이 학교폭력 예방 쪽이었거든요. 어린 학생들은 처벌보다는 교육을 통해 계도하는 편이 권장되니까요. 그래서 한 번은 남고에 가서 교육 하는 데 남자애들이 자꾸 이상한 질문을 묻더라고요."

"이상한 질문이요?"

"성폭력 관련 교육을 하고 있었는데 저보고 실제로 성추행 같은 걸 당한 적 있느냐고···."

"애들이 그랬다고요?"

"네."

"그래서요?"

"아무래도 대한민국에서 젊은 여성으로 살다 보니 한두 번 그런 일을 겪은 적은 있다고 했죠."

"저런!"

"뭐, 상관없어요. 저야 그런 사람들 만나면 바로 현행범으로 체포해버리면 그만이니까."

"마치 함정수사 같은 거군요."

"그런가요?"

"근데···."

"네?"

"만약에, 이건 정말 만약인데 그렇게 접근한 사람이 엄청 마음에 들 경우엔 어떻게 되는 거예요?"

"성추행범이요?"

"네. 뭐··· 그냥 예를 들면요. 아이돌처럼 잘생긴 경우라면."

"도훈 씨 평소 이상한 거 많이 보시나보구나?"

"네?"

"야동에 나오는 그런 일은 절대 없어요. 지금 치녀같은 거 말씀하시는 맞죠?"

"음···. 그래도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까."

"정말 있다고 치면 그건 성추행에 해당 되진 않겠죠."

"그래요?"

"추행은 본래 피해자가 느끼는 주관적인 감정을 가장 중시해요. 똑같은 행위라도 상대가 기분이 나쁘지 않으면 애정표현이고, 기겁하면 추행인 거죠."

"왠지 법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같네요."

"맞아요. 그래서 한때는 성폭행도 친고죄인 시절도 있었으니까."

"그렇군요."

빛나는 이 시점에서 도훈을 떠보는 질문을 던졌다.

"근데 진짜 많이 보시는 거 아니죠?"

"네?"

"야동요."

도훈은 직감적으로 빛나가 자신을 떠본다는 걸 눈치챘다.

‘요것 봐라?’

[갑자기 왜 저런 질문을 하는 걸까요?]

‘일종의 테스트같은 거지.’

[테스트요?]

‘빛나는 원래 내가 모쏠 의대생이라는 점에서 끌렸던 거거든. 순진하고 공부만 해온 사람처럼 보였을 테니까. 아마 그런 타입이 이상형인가봐.’

[그런데요?]

‘하지만 그 환상이 나연과 연두의 난입으로 깨져버렸잖아.’

[확실히 깨긴 깼죠. 분위기도 살짝 이상했고요.]

‘근데 여전히 미련이 남아 있는 것 같아.’

[미련이라면···.]

‘현실을 인정하기 싫은 거지. 어쩌면 자기가 오해한 건 아닐까. 정말 모쏠에 순진한 의대생이라면 남 주긴 너무 아까운. 뭐 그런 거 있잖아.’

[캬, 역시 남자는 잘생기고 똑똑하고 볼 일이네요.]

‘그렇지. 못 생기면 도전할 기회조차 없지만, 일단 잘생기면 목숨이 두 번쯤 있는 셈이랄까? 로시, 이쯤에서 빛나 정보창 띄워봐. 답지를 보고 하면 정답을 맞추는 것쯤 식은 죽 먹기지.’

[알겠습니다.]

곧 스마트 워치에 왕빛나의 정보창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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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왕빛나 (비처녀, 24살 2개월)

나이 : 27 #여경 #거유 #지배성향

호감도 : 68/100

개방성 : C

성감대 : 클리토리스, 젖가슴 전체, 복숭아뼈

*애무 포인트 : 여성 상위를 좋아합니다.

성욕지수 : 중간

공략팁

*그녀는 당신에게 약간의 호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는 대학 시절 바람둥이와 사귀며 지독한 마음고생을 한 적이 있습니다.

-따라서 바람기 많은 남자를 무척이나 혐오합니다.

-동시에 그녀는 연애 당시 당한 기억 때문에 왜곡된 성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는 남자를 구속하길 좋아하며, 강압적으로 지배하려 드는 타입입니다.

-그녀가 모쏠이면서 순진한 남성을 원하는 이유는 자신의 뜻대로 휘두르기 위함입니다.

-그녀에게 호감을 얻기 위해선 그녀의 적극성을 역이용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닳고 닳은 남자가 아니라 순진하고 쑥맥처럼 보일수록 그녀의 성욕을 부추길 수 있습니다.

-추천 멘트 : "저는 보기보다 내성적인 타입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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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랍쇼?’

빛나의 정보창을 들여 다 본 도훈은 그녀의 해시태그에 무척 놀랐다.

[지배성향이라면···.]

‘맞지? 마유미가 가진 그 S타입. 사디스트 성향.’

[그런 것 같군요. 정말 의외네요. 여경이라길래 무척 건실하고 바른 여성인 줄로 알았는데.]

‘직업이랑 성벽이 무슨 상관이겠어? 겉모습은 요조숙녀면서 속은 창녀같은 마인드를 가진 애들도 얼마나 많은데?’

[하긴···. 마유미양과 강민주 조교도 평범한 대학생과 교직원이긴 했죠. 겉으로만 보면요.]

‘아무튼 저런 과거 때문에 바람둥이를 혐오했던 거였군. 진작 정보창부터 들여다 볼 걸 그랬어. 그럼 전략을 처음부터 수정했을 텐데 말이야. 근데 아까 싸이코메트리를 했을 땐 왜 저런 특성이 전혀 안 나왔을까?’

[싸이코 메트리 스킬은 사물에 대한 단편적인 기억만 보여줄  뿐입니다. 지갑만 가지고 상대의 독특한 성벽을 유추하는 것은 쉽지 않죠. 그걸로 뭔가 하지 않는 이상요.]

‘그렇군. 하여간 겉보기엔 참해 보이는 여경이 알고보니 마유미과였다니···. 경찰이 괜히 된 게 아니었네. 남자 위에 군림하고 싶은 여자라면 경찰만큼 좋은 직업도 없겠지. 실제 수갑도 지니고 있을테니 말이야.’

[그럼 이제 어쩌실 겁니까?]

‘수동적인 남자를 좋아한다니 멋대로 휘두르게 놔둬봐야지 내가 또 순진한 연기 하나는 기가 막히잖아.’

[한 번 지켜보겠습니다. 참, 그리고 주인님. 미행이 따라붙은 건 알고 계십니까?]

‘미행이라니?’

[아까부터 어장관리 어플에서 주의 알람이 뜨고 있습니다. 주인님이 계속 대화 중이라 미처 말씀을 못 드렸습니다만.]

‘얘기해봐.’

[이나연 이연두 양과의 거리가 좀처럼 좁혀지질 않습니다. 마치 일정한 거리를 두고 따라오는 것처럼요.]

‘진짜 미행하는 거야? 걔들이 차가 있었나? 운전면허도 없을 것 같은데?’

[아마 30m 뒤에서 따라오는 택시를 탄 것으로 추정됩니다. 사이드미러로 확인해 보시지요.]

도훈이 살짝 몸을 비틀어 사이드미러로 택시를 확인했다.

가만 보니 차량 3개 정도 간격을 두고 꾸준히 따라붙고 있는 택시가 보였다.

‘저 택시로군.’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두 사람이 주인님을 미행하는 걸까요?]

‘뻔하지. 구두로 받는 약속보다 증거를 잡는 편이 더 확실할 테니까. 저 앙큼한 것들이 나를 옭아맬 작정을 했나 보구나.’

[흐음, 그럼 어쩌시겠습니까?]

‘상관없어. 나중에 참교육을 참교육대로 하는걸로 하고, 우선 저걸 이용해봐야겠어.’

[이용한다고요?]

‘나한테 맡겨둬.’

도훈이 한참 대답을 안 하고 엉뚱한 짓을 하자 빛나가 다시 물었다.

"왜 갑자기 사이드 미러를 보세요?"

"아··· 아니요."

"제 질문이 좀 그랬나요?"

"음···. 그게···."

도훈은 일부러 난처한 듯 우물쭈물 대답을 망설였다.

이 모든게 순진남으로 보이기 위한 연기였다.

"아, 오해는 마세요. 고등학교 남학생들에게도 가끔 물어보는 질문이거든요. 저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편이에요."

"네? 야동을···요?"

"네. 그런 질풍노도의 시기에는 에너지가 펄펄 넘치잖아요. 차라리 그렇게 해서라도 해소하는 편이 낫다면서. 그렇지 않아요? 도훈씨도 청소년기를 겪어 봤을 테니까요."

도훈은 빛나가 보이는 적극성에 살짝 놀라고 있었다.

까페에서 대화를 나눌 때만 해도 전혀 티가 나지 않았는데, 밀폐된 공간에 단둘만 있으니 내면에 숨겨진 음험한 성욕이 꿈틀거리는 듯했다.

만약 도훈이 그녀의 정보창으로 특성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이를 그린라이트로 착각하고 넙죽 받아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도훈은 이것이 빛나의 시험이란 걸 알고 있었다.

‘지금은 맞장구를 치는 것보다 내숭을 떠는 편이 더 호감을 올릴 방법이지.’

"그, 글쎄요. 저는 공부만 해가지고···."

도훈이 쑥스러운 듯 고개를 돌리자 빛나의 입가에 살짝 조소가 드리웠다. 그녀는 맛있는 먹잇감을 발견한 것처럼 정지선에 걸린 차에서 도훈을 향해 몸을 기울였다.

"보기보다 순진하시네요?"

"아, 저··· 음. 네."

"이상하네? 아까 후배들은 바람둥이라고 놀리던데."

도훈이 강하게 부정했다.

"아니에요."

"그럼 그건 뭔데요?"

"저···. 솔직히 말씀드려도 될까요?"

도훈이 고민을 가진 청소년처럼 빛나를 향해 조곤거렸다.

빛나는 전담경찰관시절 청소년 상담도 병행했으므로 익숙한 태도로 대답했다.

"뭔데요. 말해보세요."

"이건 사실 낯부끄러워서 어디 얘기도 못하던 건데···."

"네. 편하게 말씀해보세요."

도훈은 입술을 오물거리다 쑥스럽다는 듯 고개를 떨구며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 그냥 안 할래요."

"왜요?"

빛나는 도훈이 답답했다. 겉만 봐선 신체 건장한 훌륭한 남성인데 하는 짓은 여자 손 한번 못 잡아 본 쑥맥처럼 굴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모습이 빛나를 점점 자극했다.

‘뭐야. 진짜 모쏠인가? 살짝 떠보기만 했는데 뭐 저렇게 얼굴이 빨개진담?’

도훈의 얼굴은 유래없이 홍당무처럼 달아 올랐다.

실은 숨을 억지로 참아가며 얼굴에 바짝 힘을 주면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후-. 빛나 씨가 경찰이라서 더 말하기가 그래요."

"뭔데요? 혹시 범죄랑 관련된 거에요?"

"아, 아니에요. 그런 건 아닌데···."

"좋아요. 오늘 들은 건 그럼 모르는 일로 할게요. 그냥 솔직하게만 말해줘요."

도훈이 침을 꿀꺽 삼키더니 결심을 굳힌 것처럼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가···. 말씀드렸다시피··· 모쏠이거든요."

빛나는 도훈의 순진한 태도에 저도 모르게 군침을 삼켰다.

"그래서요?"

"아까 봤던 여자애들 있죠?"

"과 후배라는?"

"네. 걔들이 사실 예전에 저를 좋아한다고 고백했던 애들이에요."

"정말요? 어쩐지 유난히 살갑게 굴더라니. 근데요?"

"근데 제가 좀··· 여자를 잘 모르고··· 또··· 쫌 겁나기도 하고···."

"여자가 뭐가 겁나는데요?"

"모르겠어요. 그냥 좀 공부만 해서 그런가 평소엔 아무렇지 않게 지내다가도 괜히 이성적으로 얽히면 정말 거북해서···."

도훈의 처절한 연기에 빛나도 점점 의구심을 걷었다.

‘뭐지? 진짜 쑥맥인가? 아깐 전혀 아닌 것 같았는데···.’

"암튼 제가 거절한 뒤로 저를 의도적으로 괴롭히고 있어요."

"괴롭힌다고요?"

빛나는 마치 학생들 왕따 상담을 하는 느낌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찌질한 남자라니···.

"네. 그 스파링이라는 거 있잖아요."

"네."

"그게 막 일방적으로 때리는 거거든요 사실."

"아···."

"그래서 제가 의도적으로 회피했던 거예요. 걔들은 저를 괴롭힐 생각만 하니까요."

"아니. 덩치도 좋은 사람이 왜 그렇게···."

"제가 선천적으로 사람을 못 때려요. 그래서 일부러 시비 붙지 않으려고 몸도 키우고 운동을 배운 거에요. 그럼 아무도 안 건드리니까요."

"아···."

"그런데 걔들이 제 약점을 알아 버렸거든요. 그래서 시도 때도 없이 괴롭히면서···."

"왜 도훈씨를 괴롭히는 데요? 도훈씨가 좋다고 고백했다면서요?"

"음···. 그게···."

도훈이 우물쭈물 거리더니 겨우 용기를 내 대답했다.

"제 동정을 뺏고 싶다고···."

< 710. 중수의 자격-39-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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