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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727화 (1,529/2,000)

< 709. 중수의 자격-38- >

***

테이크아웃 잔을 들고 별 다방을 빠져나온 나연과 연두가 재잘재잘 떠들었다.

"와, 도훈 오빠 그리 안 봤는데 진짜 실망이다."

"그치? 세상에 의대생 코스프레라니."

"대체 얼마나 꼬시고 싶었으면 학과까지 속였을까?"

"그 여경이라는 사람? 가슴은 뭐 빵빵하더라야."

"뽕이겠지."

"뽕이라고?"

"딱 보면 몰라? 아님 확대 수술이거나."

"그래? 난 잘 모르겠던데···."

"자연산에 그렇게 큰 가슴이 말이 돼? D컵은 돼 보이만."

"하긴. 경찰씩이나 됐으면 체력 테스트도 통과했을 텐데···. 그 큰 가슴 출렁거리면서 뛰긴 힘들겠지?"

"암튼, 도훈 오빤 진짜 최악이야. 노티 나는 여경이나 꼬시고 다니질 않나."

"맞아. 나도 그렇게 안 봤는데 취향 참···."

두 사람은 한참 도훈의 호박씨를 깠다. 그때 연두가 뭔가 재밌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는지 씩 웃으며 물었다.

"너 혹시 오후에 할 일 있니?"

"아니. 딱히?"

"그럼 우리 도훈 오빠 뒷조사나 해볼래?"

"뒷조사라고?"

"오늘 여자 꼬시다가 우리한테 딱 걸렸잖아. 잘하면 나중에 두고두고 협박할 수 있는 건수를 잡을 수도 있을 거 같아서."

"협박이라니? 우리가 왜 도훈 오빠를 협박해?"

"바보야. 넌 도훈 오빠가 우릴 잘 안 만나주는 이유를 아직도 모르겠어?"

"뭔데?"

상대적으로 순진한 나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자가 너무 많은 거야."

"흐음···."

"생각해봐. 저런 외모에 매너까지 좋은데 여자가 없겠니?"

"그렇긴 해."

"거기다 그것도 잘하고."

"인정, 인정."

"그래서 우리가 늘 찬밥신세란 말이야."

"우리 찬밥이야?"

"솔직히 그렇잖아. 우리가 아무리 졸라도 잘 만나주지도 않고, 요리조리 피해 다니기만 하고. 그게 다 저렇게 여자를 맨날 꼬시고 다녀서 그렇다니까?"

"흐음···. 그렇게 안 봤는데···."

"오빠 입장에선 아쉬울 게 없지. 막말로 알아서 대주는 여자애들이 주변에 쫙 깔렸는데···."

"야! 넌 무슨···."

나연이 주변을 돌아보며 황급히 연두의 입을 틀어막았다.

"입 조심좀 해! 옆에 다 들리겠어!"

"흥, 내가 뭐 틀린 말 했니?"

"그래도 표현이 그게 뭐니? 저질스럽게."

"알았어. 아무튼 이런 식이면 우린 맨날 뒷전이란 말이야. 너 도훈 오빠랑 놀고 싶지 않아?"

연두의 꼬드김에 나연도 조금씩 흔들렸다.

사실 도훈과 마지막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이 언제인지도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쾌락만 알려주고 방치플레이를 하고있는 도훈에 대한 아쉬운 감정이 앙금처럼 남을 수 밖에 없었다.

나연의 눈빛이 흔들리는 걸 본 연두가 계속 부추겼다.

"사실 말은 그렇게 했는데 닥히 거창한 걸 말하는 게 아니야. 그냥 약점을 확실히 잡아서···."

"잡아서?"

"우리가 원하면 늘 봉사하도록 만드는 거야."

"···그래도 정말 괜찮을까?"

"못할 건 또 뭐야? 오빠가 우리한테 한 짓은 괜찮고?"

"아니 그건 또 아니지만···."

연두가 마지막으로 결정타를 날렸다.

"너, 도훈 오빠 가지고 싶지 않아?"

그러면서 살짝 나연의 옆구리를 감싸 안았다. 바이섹슈얼인 그녀는 나연이 옆구리가 예민한 곳임을 알고 있었다. 일부러 성감대를 자극해 나연을 흔드는 것이었다.

"아, 앙···.야아."

"오빠의 약점을 잡기만 하면 도훈 오빤 이제 평생 우리게 되는 거야."

"우리 거."

나연이 주문처럼 그 단어를 읊조렸다.

"그래. 원할 땐 언제든 우리한테 와서 재롱떠는."

표현은 재롱이라고 했지만, 과격하게 말하면 도훈을 육노예로 만들자는 계획이었다. 나연도 바보가 아니니만큼 연두의 진의를 바로 눈치챘다.

‘흐음···. 확실히 오빠 행동이 조금 괘씸하긴 해. 그때 자취방에서 따먹어 놓고 연락 잘 안 하고···. 또 지현이 병문안 갔을 때도 실컷 따먹어 놓구 다시 잠적해 버리고. 완전히 자기 하고 싶을 때만 하고 평소엔 관심도 없는 느낌이야. 우리가 너무 잘 해줘서 그래.’

두 사람은 최근 도훈에 대한 호감도가 조금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그것이 관계가 끊어질 정도로 약해진 것은 아니었으나, 그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하며 떠받드는 정도도 절대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좀 더 상태가 심각한 연두가 도훈을 옭아맬 계획을 구상했고, 나연 역시 이에 동조하게 된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자는 건데?"

나연이 넘어오자 연두가 씩 웃었다.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봐."

***

빛나와 도훈이 커피숍을 나왔다.

그녀는 주차된 차로 이동하며 물었다.

"지원동이 집 가는 방향이세요? 학교랑 제법 떨어진 곳에 사시네요?"

"아니요. 집은 학교 근처에요. 혼자 자취하고 있거든요."

"아···."

‘자취하는 남자구나. 아쉽네. 남자친구 삼으면 딱 좋았을 텐데···.’

빛나는 도훈에게 실망했지만 여전히 미련이 남아 있었다. 다만 그녀의 철칙은 바람둥이는 절대 만나지 않는다는 주의였다. 예전에 한 번 데인 적이 있고나선 더욱 그랬다.

"그쪽에 과외가 있어요."

"아, 과외."

"원래 지하철 타고 갈까 했는데 빛나씨랑 생각보다 오래 얘길 하는 바람에 지각할 것 같아서요."

"흠, 알겠어요. 얼른 타세요. 바래다 드릴게요."

빛나가 리모컨으로 차를 열어주었다. 그녀의 차는 국산 준중형 세단으로 그녀 나이대 직장인들이 많이 애용하는 차였다.

도훈이 차에 오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뭘요. 가는 길인데···."

도훈은 좋은 냄새가 나는 차 안을 둘러보다 뒷좌석 시트 옷걸이에 걸린 경찰복을 보고 물었다.

"엇? 저거 유니폼이예요?"

"맞아요."

"와, 맨날 빳빳하게 다려 입으시는 거예요?"

"아니요. 평소엔 락커에 넣어 두는데 어제 세탁소에 맡긴 걸 찾아온 거예요."

"아···."

그때 도훈에게 알림음이 울려왔다.

★천상의 메시지★

‘어엇, 이건!’

도훈이 급히 디스플레이를 확인했다.

-코스프레 신의 관심-

"코스프레 플레이를 즐기는 신이 당신의 공략에 관심을 보냅니다. 코스프레의 신은 당신이 여경복을 입힌 채 대상을 공략할 경우 3,000포인트와 더불어 ‘구속의 사슬’ 아이템을 증정키로 했습니다."

달성 조건 : 6시간 내 경찰복을 입은 상대를 공략. 단 정신조작류 스킬 일체 허용 불가.

보상 : 3000포인트, 구속의 사슬 아이템.

*구속의 사슬 : 수갑 형태의 이 아이템은 상대가 가진 이능력을 원천봉쇄할 수 있습니다. 지속 효과는 당신의 레벨에 비례합니다.

실패 시 : 코스프레의 신은 당신의 실패에 실망하며, 모든 코스튬 관련 업적에 저주를 걸 것입니다.

내용을 모두 확인한 도훈이 어처구니 없는 표정으로 로시에게 물었다.

‘코스프레의 신? 이건 또 무슨 변태 같은 신이람?’

[음, 신들의 성 취향이 이렇게 다양할 줄 저도 몰랐습니다.]

‘아무튼 빛나를 경찰복 입힌 상태로 따먹으면 보상을 주겠다는 소리지?’

[네. 그런 것 같군요.]

‘보상 아이템은 또 뭐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아이템이 아닌 것 같은데?’

[구속의 사슬은 ‘마나 번(Mana Burn)’이라는 안티매직 아이템의 한 종류입니다.]

‘마나 번이라고?’

[쉽게 말하면 이능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마나를 불태워 일정 기간 능력을 봉쇄한다는 뜻입니다. 가령 주인님이 구속의 사슬로 묶이게 되면 정보창을 비롯한 모든 스킬들이 일시적으로 봉인됩니다.]

‘오호, 혹시 이거 Pk단 상대로도 쓸 수 있는 건가?’

[그렇죠. 그들의 이능 또한 본질은 마나를 기반으로 하거든요.]

‘근데 마나라는 건 또 뭐야?’

[이능을 발휘하게 해주는 특수한 힘을 말합니다. 카르마, 기(氣) 등등 언어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번역 되지만 정식 명칭은 마나로 통칭됩니다.]

설명을 듣고 보니 PK단을 상대로 굉장히 쓸모가 있을 아이템이었다.

‘그럼 이거 무조건 해야 하는각 아니야?’

[신중하셔야 합니다. 미션이 실패했을 때 페널티가 너무 큽니다.]

‘패널티라고?’

도훈이 다시 설명을 읽었다.

‘모든 코스튬 관련 업적에 저주를 건다라. 이 설명을 이해 못 하겠어.’

[쉽게 말하면 앞으로 유니폼을 입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공략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뜻입니다. 호감도 디버프라든가 운을 약하게 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패널티가 부가될 겁니다.]

‘유니폼을 입은 여성이라면···.’

당장 떠올려봐도 간호사, 스튜어디스, 의사···. 생각보다 다양한 직종이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즉, 실패 시에는 앞으로 위의 직업을 가진 여성들을 공략하기가 보다 어려워 진다는 뜻이었다.

‘패널티가 좀 짜증나긴 한데 성공하면 되는 문제 아냐?’

[정신 조작류 스킬을 안 쓰고도요?]

‘아!’

사실은 그게 가장 큰 문제였다.

도훈은 적당히 호감도만 끌어 올리고 나면 상식개변 등의 다양한 방식의 마인드 컨트롤 스킬을 통해 빛나를 공략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코스프레 신의 후원을 받아내기 위해선 그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가만 이거 신중히 생각해야겠는데···.’

갑작스러운 쌍나연두의 난입으로 호감도는 다시 제로베이스가 된 상태. 아니 어쩌면 처음 봤을 때의 호감도를 모두 까먹고 마이너스인지도 몰랐다. 그 상황에서 경찰복까지 입히고 6시간내에 공략하기란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 될 것이다.

[주인님. 모든 신들의 후원을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신들은 그저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을 보고자 후원하는 것뿐이니까요.]

‘그건 알지···. 아는데···.’

신들은 마치 스트리머를 후원하는 시청자와 같다.

어떤 행동을 요청하고, 그것을 수행하면 제시한 보상을 주는 식이다. 도훈은 그들에게 놀아날 생각은 없었지만, 그 반대급부가 워낙 달콤했기 때문에 욕심이 생겼다.

‘저 구속의 사슬을 꼭 갖고 싶어. 특히 중수가 된 이후로 Pk단이 접근해 오는 지금 상황에선 말이야.’

[이번 공략이 훨씬 어려워 질 텐데도요?]

‘어떻게든 해 봐야지 그건.’

[휴-. 알겠습니다. 주인님은 늘 힘든 길을 자처 하시는 군요.]

‘쉬운 여자라면 따먹어도 성취감이 덜 하니까.’

도훈이 옷걸이에 걸려 흔들리는 경찰복을 보며 중얼거렸다.

***

"아저씨, 저기 저 차 따라가 주세요."

나연과 연두가 택시에 오르며 말했다.

"차를요?"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택시 기사는 두 사람의 요구에 황당해했다. 차라리 아줌마라면 치정이니 불륜이니 그런 생각이라도 하겠지만, 택시에 오른 아가씨들은 너무 예쁘고 귀여운 여대생들이었던 것이다.

"네. 저 앞에 흰색 차요."

"흠···. 저는 아니 그런 일은···."

괜한 시비에 휘말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택시 기사가 선뜻 허락하지 않자 연두가 불쑥 지갑에서 오만원 짜리 지폐를 꺼내 내밀었다.

"오만원 더 드릴게요. 택시비는 따로구요. 네?"

오만원을 본 택시 기사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안 그래도 사납금 채우기도 빠듯한데 택시비에 오만원까지 얹는다면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그, 그러죠 뭐. 단순히 따라만 가는 거면."

기사가 조심스럽게 미행을 시작하자 뒷좌석에 나란히 앉은 나연이 연두에게 말했다.

"아니 넌 무슨 오만 원씩이나···."

"쉿. 아무소리 말고 나만 믿어. 결정적인 증거만 잡으면 오만원이 대수겠어? 이건 한 달 용돈 다 털어서라도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흐음···."

막상 연두의 제안대로 미행을 시작하긴 했지만, 나연은 여전히 찝찝한 표정이었다. 도훈이 탐나는 것과 별개로 그를 협박한다는 사실이 영 내키지 않았던것이다.

‘이건 너무 나쁜 짓이 아닐까?’

나연의 마음이 약해지는 기미를 보이자 연두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으며 말했다.

"나연아. 잘 생각해봐. 우릴 이렇게까지 만든 도훈이 오빠도 잘못이 아주 없다고 할 순 없어."

"흐음···."

"막말로 우리가 얼마나 오빠한테 잘 했니? 배구 경기도 매번 응원가고, 누가 오빠 모함이라도 하면 얼마나 옆에서 커버쳐 줬냐고? 안 그래?"

"그렇긴 한데···."

"그런데 지금 하는 짓을 봐. 처음 보는 여자 꼬시려고 세상에 학과까지 속이고···. 우리 체육교육과가 부끄럽다는 소리잖아. 계다가, 지금도 차에 타서 같이 가는 거 봤지? 둘이 뭐 소풍이라도 가는 거 같니, 너는?"

"그건 아니겠지."

나연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도훈이 얼마나 여자를 밝히는 지 잘 알고 있었다.

또 얼마나 섹스를 잘하는지도.

자신들을 재쳐 놓고 다른 여자랑 놀아난다고 생각하자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 확대 수술인지 뽕인지 모를 여경의 가슴을 움켜쥐고 헐떡 거리는 상상을 하자 질투심이 겉잡을 수 없이 밀려왔다.

‘듣고보니 연두 말이 맞아. 이건 완전히 우리에 대한 배신이야. 오빠가 먼저 잘못했어. 그러니 우리가 이러는 것도 잘못은 아냐.’

"그래. 네 말대로 할게."

"기사 아저씨. 너무 바짝 따라붙지 마시고 최대한 거릴 벌려서 따라가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

"그건 스마트 워친가요?"

"네?"

도훈이 천상의 메시지를 읽느라 혼자 생각에 빠져 있는데, 빛나가 물었다. 차에 오르고 나선 한동안 말이 없어진 도훈이 살짝 불편해진 까닭이었다.

"아, 네."

"어쨌든 제 지갑 찾아주셔서 감사했어요. 안에 든 것보다 사실 저에겐 의미있는 선물이었거든요."

도훈은 그녀의 어머니가 공무원 합격 선물로 지갑을 사주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때 뭔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싸이코메트리 스킬을 통해 본 그녀의 과거를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그래. 어쩌면 다시 호감도를 끌어올릴 방법이 있을지도···.’

< 709. 중수의 자격-38-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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