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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721화 (694/2,000)

< 703. 중수의 자격-32- >

처음엔 제법 놀라긴 했지만, 놈이 나와 같은 이능력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조금 긴장이 풀렸다. 목에 칼을 들이민들 운전대를 잡은 이상 놈은 나를 절대 죽이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좀 더 세게 나가도 될 것 같다.

"혹시 사람 잘못 보신 거 아니에요?"

"···뭐라고?"

침착한 목소리로 묻자 놈도 살짝 당황한 듯 보였다. 목에 칼이 들어왔는데 이렇게 떨지 않는 사람은 얼마 못 봤을 거다.

"제가 대체 누군 줄 알고 이러시는 거죠?"

잠시 당황하던 놈이 차갑게 웃었다.

"어이, 이도훈이. 잔대가리 굴릴 생각 하지마. 이미 뒷조사 다 끝냈으니까."

뭐지?

놈은 내 이름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제가 이도훈은 맞습니다만 어째서 저를···."

"그러게 어린놈의 새끼가 겁 없이 좆대가릴 함부로 굴리고 다니래? 여자들 따먹고 다닐 땐 아주 신났지?"

"······."

바로 느낌이 왔다.

이건 원한 범죄다.

누군가 사주를 한 것이다.

대체 누굴까?

순간적으로 머릿속을 스쳐 가는 여자들이 있었다.

킬러를 고용할 만큼 재력을 갖춘 여자라면 어차피 손에 꼽을 정도. 엊그제 만난 은성은 결코 아닐 테니 그녀를 제외하면···.

혹시 애자매 중 하나인가?

하긴 나 때문에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으니 충분히 나를 미워할 순 있을 거다. 하지만 나는 그들 집안의 몰락을 부추긴 죄 밖에 없다. 어차피 콩가루 집안이었고, 뇌관은 오래전부터 진즉 심어진 상태였다.

변명 같지만, 내가 아니었어도 언제고 터질 화약고 같은 집구석이었다. 그걸 온전히 내 탓으로만 돌리면 나로선 억울할 따름이다.

그럼 그들이 아니면?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나의 능력을 활용하는 것이다.

‘로시, 마음의 소리 준비해.’

[넵.]

"···누가 시킨 겁니까?"

"까고 있네. 니가 그걸 알아서 뭐하게?"

하지만 사람은 질문을 받은 이상 그것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다. 내가 노린 점이 바로 그 부분이었다.

{걔가 큰형님이랑 친한 동생의 여동생이랬던가? 아이돌 데뷔했다는. 암튼 굳이 이름을 알려줄 필욘 없겠지.}

놈의 생각을 읽자 누군지 곧바로 파악이 됐다.

[아이돌이면!]

‘···린다구나.’

사주를 한 사람은 바로 린다였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한 번 자신의 쌩양아치 같은 오빠가 깡패들과 자주 어울린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연결고리가 그렇게 되는 건가?

[세상에. 린다 양이 어째서 주인님을 위해 하려는 사주를···.]

‘그날 바람맞힌 게 화가 많이 났을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심한 거 아닌가 싶은데···. 자기랑 안 해준다고 사람을 고용해 죽이려 들어?’

[설마 죽이기야 하겠습니까만···. 이제 어쩌시려고요?]

‘어쩌긴. 놈이 PK단과 관련 없다는 걸 알아냈으니 그만이야. 어차피 날 협박하려고 보낸 건달 정도겠지.’

[혹시 어제 주인님을 쫓던 사람도 한 패 일까요?]

‘아마도. 린다는 내가 어디 대학에 다닌 다는 걸 다 불었었나봐. 그래서 끄나풀이 붙은 거고···. 가만, 이 놈은 어제 그놈인가?’

[누구요?]

‘왜 모텔에서. 3층 유리창 깨고 뛰어내린 미친놈. 경찰까지 출동했었고. 혹시 나를 쫓아 모텔까지 온 거였을 까?’

[설마 그렇게까지.]

‘아니, 맞는 것 같아. 아니면 내 차를 미리 알아보고 숨어 있을 리 없잖아. 린다는 내가 차가 있다는 것만 알았지, 그게 무슨 차인지도 몰랐거든.’

[근데 그걸 어떻게 알아냈을까요?]

‘방법이야 많지. 주민 번호만 알아도 명의로 된 차종이나 차대 번호 같은 건 바로 조회되니까. 근데 생각할수록 열 받네? 내가 자기한테 뭘 잘못했다고 깡패를 고용해 나를 겁박하려 들어?’

"새끼. 완전 발바리 같은 놈이구만?"

"네?"

"너 지금 수업시간 아냐? 대학생이 이렇게 중간에 농땡이 피우고 여자 집을 들락거려? 하-. 부모님이 비싼 등록금 대주고 대학 보내놨더니만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저, 그게 아니라."

"닥쳐. 그럼 여기가 너네 동네냐? 내가 모를 줄 알아?"

이놈은 생각보다 많은 걸 알고 있었다.

내 수업 스케줄은 물론, 우리 집 주소까지도.

대체 어디까지 조사가 들어간 걸까?

이 정도면 법적으로 공개된 모든 개인 정보는 털렸다고 봐야 한다. 전셋집 명의부터 차량, 심지어 학적 사항까지 전부.

‘보자 보자하니 가만 두면 안 되겠군.’

[주인님. 상대는 무기를 들고 있습니다. 아무리 주인님이라도 칼 든 상대와 맨손으로 싸우는 건 위험합니다.]

‘그건 일단 내려서 생각하자.’

"근데 저희 어디로 가는 건가요? 말씀대로 계속 직진을 하고 있습니다만."

"어. 니 황천길. 이대로 가서 묻어버릴 생각 이거든."

옳거니.

놈은 인적드문 곳으로 나를 끌고 가는 중이다.

정확히는 끌고 간다기보다 내 발로 운전해 가고 있지만.

그렇다면 아직 반전의 기회는 남아있다.

나는 살짝 겁먹은 목소리로 물었다.

상대를 방심시키는 편이 더 효과적일 것 같았다.

"제, 제가 죽을 죄를 졌나요?"

"몰라 새끼야! 왜 자꾸 나한테 물어? 그러게 누가 아랫도리 함부로 굴리래? 그러고 보니 너 어제도 다른 여자랑 모텔 갔지? 대체 몇 명을 데리고 노는 거냐? 완전 난봉꾼새끼잖아?"

확실히 어제 모텔에서 난동을 피우던 그놈이 맞다.

한지연과의 일도 정확히 알고 있다.

"진짜 보면 볼수록 황당한 새끼네. 멀쩡한 얼굴로 할 짓이 그거 밖에 없냐?"

"모두 오햅니다."

"오해는 무슨 씨팔. 내 눈으로 두 번이나 목격했는데. 그것도 하루 걸러서."

"아니, 제가 무슨 강제로 한 것도 아니고···."

"여자 건드렸으면 책임지는 법 안 배웠어? 싸지르고 다닐 줄만 알았지, 이렇게 좆 될 줄은 몰랐지? 넌 오늘 그 대가를 치르는 거야."

놈이 흥분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왜 저렇게 화가 났는지 모르지만, 왠지 개인적으로 나에게 원한을 가진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저거 완전 미친놈이네.’

[주인님 차라리 경찰에 신고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경찰에 신고할 틈도 없어. 지금은 법보다 주먹이 먼저인 상황이야. 어떻게든 이 위기를 벗어나야지. 그나저나 린다 그 미친년이 설마 이럴 줄은 몰랐는데. 뒤통수 한 번 제대로 맞았어.’

[근데 먼저 치신 건 주인님이···.]

‘야! 넌 이 상황에 그런 말이 나와?’

[죄송합니다.]

나는 놈이 시키는 데로 고분고분 차를 몰고 갔다.

이미 시간은 수업시간을 훌쩍 넘긴 상황.

‘젠장. 출석까지 빼먹었네. 너 두고 보자.’

"여기서 좌회전."

"네?"

"좌회전하면 재건축하다 중단된 공사 현장이 보일 거야. 거기로 들어가."

"네."

놈은 이곳의 지형이 익숙한지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차를 끌고 계속 이동하자 놈이 말한 공사 현장이 나왔고, 플랭카드로 공사 중단에 대한 안내가 붙어있었다.

"씨팔, 근데 여긴 볼 때마다 열 받네. 기껏 알 박은 애들 쫓아내고 재건축 인허가 다 받아 놨더니 무슨 땅속에서 유물이 출토되가지고."

"······."

"그래도 잘됐어. 너는 값비싼 유적들과 함께 묻히게 될 테니까. 가문의 영광이지? 저기 차 세워."

공사장 한복판에 차를 대자 놈이 칼끝을 살짝 누르며 말했다.

"허튼짓 할 생각 말고 차에서 내려."

"네."

차 문을 열고 내리는 순간 놈이 따라 내렸다.

하지만 내가 노린 건 바로 그때였다.

나는 재빨리 뒷발질로 좌석 문을 차내며 놈을 못 나오게 틀어막았다.

쾅-!

"이익, 이 새끼가 감히!"

하지만 놈의 반응이 예상외로 빨랐다.

닫히는 차 문 끝을 맨손으로 붙잡으며 버틴 것이다.

놈이 차 문 사이에서 반쯤 끼인 체 악다구니를 썼다.

"너 이 개새끼, 넌 뒤졌어!"

하지만 다행히 놈의 칼이 닿지 않는 거리였다. 나는 완력으로 차 문을 계속 밀어붙였다. 체격은 내가 훨씬 컸기 때문에 힘에선 꿀릴 게 없었다.

"아, 아 손, 손 손가락! 손가락 꼈어."

힘에서 밀린 놈이 갑자기 차 문 사이에 손가락이 꼈다며 엄살을 부렸다. 나는 차창을 사이에 두고 놈에게 소리쳤다.

"손가락 부러지기 싫으면 칼 버려."

"좆까, 이 새끼야? 너 내가 누군 줄 알고!"

말로는 통하지 않았기에 더욱 차 문을 밀어붙였다.

정 안되면 손가락을 부러뜨려서라도 놈을 제압할 계획이었다.

그러자 놈이 임기응변을 부렸다.

칼을 든 손으로 창문을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헉!"

창문이 열리면 칼에 맞을 위험이 있었기에 나는 차 문을 박차고 잽싸게 튀었다. 곧이어 놈이 나를 뒤쫓아 왔다.

"야 이 개새끼! 거기서!"

‘저 새끼 완전 또라이잖아?’

놈은 달리기 속도마저 빨랐다.

‘무기, 나도 대항할 무기가 필요해.’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짓다 만 아파트 건물 콘크리트로 뛰어갔다. 아직 거푸집 형태가 남은 계단을 오르자 놈이 미친놈처럼 칼을 들고 쫓아왔다.

"씨발, 넌 잡히면 뒤질 줄 알아!"

‘로시 뭐 보이는 거 없어?’

[저기 2층 구석에 각목이!]

‘옳거니.’

나는 각목을 챙겨 몸을 반전시켰다.

뒤로 한 손엔 칼을 든 놈이 숨을 헐떡거리며 따라붙었다.

"아 씨, 손가락 아작날 뻔 했네."

놈이 벌겋게 부은 왼손을 말아쥐며 중얼댔다.

분노로 얼룩진 얼굴에는 깊은 상처가 보였다.

설마 칼자국인가?

나는 각목으로 거리를 재며 생각했다.

‘생각 보다 엄청 날렵한 놈이야. 주력도 거의 비슷할 정도로. 대체 뭐하는 녀석이지?’

"내가 좋은 말로 교훈만 주고 끝내려고 했는데, 넌 진짜 안 되겠다."

놈이 칼날을 역수로 돌려 잡더니 위협적인 자세를 취했다.

칼을 쥔 폼 만 봐도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생각보다 강해 보이는 상댑니다. 주인님 괜찮으시겠습니까?]

‘지금 내 무도 재능이 뭐뭐 있지?’

[현재 태권도와 유도가 가능합니다. 무기술을 발휘할 만한 건 없구요.]

‘맨손 격투면 어찌어찌 해보겠는데 하필 칼잡이라니···.’

[소환의 호루라기를 활용하십시요. 주인님은 전대 플레이어의 능력을 끌어 쓸 수 있습니다.]

‘아. 그게 있었지?’

소환의 호루라기는 전대 플레이어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아이템이다. 과거의 군인 출신이라면 분명 검술이나 무기술에 대한 일가견이 있을 것이다.

‘검을 쓸 줄 아는 장군으로 아무나 당장 소환해줘.’

[넵, 빠르게 검색해 보겠습니다.]

‘말만 하지 말고 어서! 놈이 지금 달려든다고.’

곧 칼을 든 놈이 전광석화처럼 뛰어들었다. 위협적인 동작에 나도 모르게 각목을 휘두르자, 놈을 빠르게 머리를 수그리며 공격을 피해버렸다.

예상보다 훨씬 민첩한 반사신경이었다.

‘아뿔싸!’

[주인님! 2배속!!]

‘당장!’

이대로는 소환의 호루라기를 쓰기도 전에 놈에게 당할 판이었다. 공격이 빗나가는 순간 재빨리 최근 얻은 찰나의 지배자 스킬을 실행시켰다.

순간 띵- 하는 느낌과 함께 세상이 느려졌다.

각목을 피한 놈이 품속으로 칼날을 들고 뛰어드는 게 보였다.

여전히 빠르긴 했지만 2배속으로 빨라진 내 움직임보다 빠를 순 없었다. 나는 엉덩이를 뒤로 빼며 놈의 공격을 피해냈다. 정말 죽일 작정인지 역수로 거머쥔 칼날이 아슬아슬하게 옷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대로 두어 걸음 더 물러나 각목으로 거리를 잡자 놈이 놀란 눈초리로 물었다.

"어어쭈우우! 제에버어업이인데? 내에 카알을 피이이해에에?"

놈의 목소리도 두 배로 느려졌다.

가만, 이 정도면 해볼만 한 거 아닌가?

다시 놈이 달려들자 나는 빠르게 각목을 휘둘러 칼을 든 놈의 손을 노렸다. 녀석은 아까처럼 회피하려고 했지만 순식간에 두 배로 빨라진 스윙 속도를 따라올 순 없었다.

빠직-!

챙그랑-!

손아귀를 호되게 얻어맞은 놈이 칼을 놓쳤다.

나는 이어서 발차기로 놈의 옆구리를 후려갈겼다.

육정음에게 얻은 태권도 기술이었다.

퍼억!

무게를 실은 공격에 놈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정음이 태권도 능력이 청대급 실력이었기 때문에 내 발차기 또한 보통 유단자보다는 뛰어났다. 게다가 가속도가 두 배가 되었으니 파워도 두 배이상 강해졌다. 옆구리를 걷어차인 놈은 놀라운 힘에 밀려 저만치 나가떨어졌다.

그때 로시가 외쳤다.

[주인님 칼을 잘 쓰는 전대 플레이어 한 분을···.]

‘아냐. 하지 마. 괜찮을 것 같아. 쿨타임 아까우니까.’

[예?]

‘놈도 이제 무기가 없으니 찰나의 지배자 스킬만으로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알겠습니다.]

바닥을 형편없이 구르던 놈이 옆구리를 붙잡고 겨우 몸을 일으켰다. 충격이 상당할 텐데도 굉장히 근성이었다.

"퉤에-! 이이 새에끼이. 조옴 하아느은데?"

입술이 찢어졌는지 놈이 피 섞인 침을 내뱉었다. 중력마저 두 배로 느려진 듯 천천히 떨어지는 피가래를 보자 기이한 느낌마저 들었다.

‘신기하군. 내가 빨라진게 아니라 세상이 두배로 느려진 기분이라니.’

암만 봐도 이 정도 타격이면 갈비뼈가 최소 두 대는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놈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다시 싸우려는 자세를 취했다.

‘시간을 끌수록 내가 불리해.’

나는 단숨에 놈에게 대쉬했다.

육정음의 태권도 실력과 한지연의 유도 실력이 겸비된 나의 근접전 능력에, 2배속으로 강화된 지금의 신체라면 충분히 해볼만 하다고 판단했다.

‘내 목에 칼을 들이댔다 이거지? 이제부턴 정당방위다 이 새끼야!’

나의 발차기가 놈의 면상으로 날아들었다.

< 703. 중수의 자격-32-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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