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0. 중수의 자격-29- <700화 이벤트 알림> >
그러나 도훈은 그마저도 유혹적으로 느껴졌다.
갓 스물된 여자아이에서 나는 땀냄새는 맹렬한 페로몬을 뿜어내고 있었다.
‘하아-. 겨드랑이 들어서 핥아버리고 싶네.’
[아, 아니 주인님···.]
‘저기다 밥 한 그릇 뚝딱 비비 먹으면···’
[휴먼, 제 정신입니까? 정신 차리십시오.]
‘왜 그래? 사람은 누구나 특정 신체 부위에 페티쉬라는 게 있는 거잖아.’
[주인님은 원래 거유성애자잖습니까?]
‘가슴은 원래 기본이지.’
[요샌 후장 개통에도 재미를 들렸구요.]
‘거긴 왠지 처녀 같아서···.’
[하여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변탭니다. 주인님은.]
‘어, 인정.’
경희는 차에 오르자 머리띠처럼 앞머리를 고정시키고 있던 헤어밴드를 뒤로 넘겼다. 그리곤 두 팔을 머리 위로 들어 포니테일로 묶었다. 그 바람에 푹 젖은 겨드랑이가 노출되자 훔쳐보던 도훈이 저도 모르게 헛숨을 들이켰다.
‘으흣, 겨땀! 일부러 유혹하는 게 틀림없군!’
[아니, 무슨···.]
도훈이 빤히 쳐다보자 경희가 민망해하면 말했다.
"죄송해요. 오빠 만날 줄 알았음 화장이라도 하고 나올 걸 그랫어요. 저 너무 까맣죠?"
"아니. 건강해 보이고 좋은데?"
"체전 준비하느라 요샌 매일 땡볕에 서 있서서요. 땀 흘리면 금방 얼룩지니까 화장도 제대로 못 하고···."
"아냐. 진짜로 보기 좋아. 요샌 돈 주고 태닝하는 시대잖아. 그리고 속살은 하얀 거 다 아는데 뭘."
"소, 속살요?"
경희가 놀란 눈을 치켜떴다.
예상은 했지만 도훈이 단둘이 차에 타자마자 과감하게 들이 댈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아직 학교였고, 여전히 정오였다. 아무리 단둘이 차에 있다고 한들 음란해지기엔 너무 노출된 공간이있다.
"음음···. 암튼 겨울되면 다시 하얘 질 거에요."
"난 근데 너랑 반대다?"
"뭐가요?"
도훈이 천천히 차를 몰며 말했다.
"난 겉은 하얀데 안이 까맣거든."
"훗, 속이 시꺼멓다는 소린가요?"
"아니 실제로."
"네?"
"여기 말이야."
도훈이 말없이 사타구니로 시선을 떨궜다. 다리를 벌린 그의 바지 가운데가 묵직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노발기 상태에도 바지만 붙으면 적나라게 드러나는 대물의 위엄이었다.
"아앗···."
"희한하게 여긴 나이가 먹을수록 거무튀튀해지더라고."
"아이참, 대낮부터 왜 그런 소릴 하세요."
"마치 밤에는 해도 된다는 소리처럼 들린다?"
"하하···. 더, 덥네요."
경희가 열이 나는지 차창을 내렸다.
손부채를 파닥거리는 모습이 상당히 곤혹스러운 모양이다.
잠시 빨간불에 차가 정차하자 도훈이 경희쪽으로 바짝 몸을 기울였다.
"어, 어머 운전하시다 말고 왜···."
경희가 깜짝 놀라며 몸을 시트에 파묻히자 도훈이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벨트하라고. 요샌 벌금 물거든."
"아···."
도훈이 긴 팔로 보조석 벨트를 당겨 채워주었다.
괜히 오해한 경희는 민망함에 고개를 푹 숙였다.
도훈이 운전하다 덮치는 줄 알고 놀란 자신이 부끄러웠다.
‘흐흐. 은근 골리는 맛이 있구나.’
[순진한 여학생 놀리면 못 씁니다.]
‘순진하긴. 저번에 못 봤냐? 얘도 엄청 밝히거든. 지금쯤 머릿속으로 온갖 상상 다하고 있을걸?’
도훈은 차를 몰며 곁눈으로 경희를 힐끔거렸다.
짧은 테니스복 치마를 손으로 꾹 누르고 있는 그녀는, 벨트줄이 가슴골 사이를 가로지르는 바람에 유독 도드라진 상태였다. 그러나 도훈의 장난 때문에 정신이 팔려 자신이 어떤 모습인지 의식 못 하는 듯했다.
‘캬. 역시 체육과 넘버 2 스포츠 걸. 미드가 끝내주네.’
[그럼 넘버 1은 누군데요?]
‘당연히 육정음이지. 내가 본 민간인중에선 최고의 재능이 아닐까 싶던데.’
[정음양은 참 여러모로 독보적이군요. 운동이면 운동, 얼굴이면 얼굴, 몸매면 몸매···. 뭐하나 빠지는 게 없으니.]
‘근데 걔 공부는 좀 안 되잖아.’
[오히려 그 점이 매력 아닌가요?]
‘백치 같아서 귀엽긴 하더라. 난 여자가 너무 똑똑해도 살짝 정떨어져서.’
도훈이 한동안 로시와 노닥거리며 말이 없자 어색해진 경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근데 우리 뭐 먹으러 가요?"
"글쎄. 넌 뭐 먹고 싶은데."
"오빠 먹···."
"나?"
"예?"
"방금 나 먹고 싶다지 않았어?"
"아, 아니 그건 오빠가 갑자기 말을 잘라가지고···. 오빠 먹고 싶은 거 먹는다고 할랬는데."
"그랬구나."
"오빠, 장난이 너무 짖궂으세요."
"장난같아 보여선 큰일인데."
"예,예?"
"살짝 진심이거든."
"왜, 왜 그래요. 저희 점심 먹으러 가는 거 아니었어요?"
"점심도 먹어야지. 다른것도 먹고."
"네?"
"농담이야. 심각해지긴."
도훈이 계속 농을 걸자 경희도 점점 표정이 굳었다.
마치 자신을 가지고 노는 듯한 기분이 든 것이다.
‘치. 그날 이후로 연락도 제대로 안 했으면서···.’
사실 경희는 도훈에게 조금 삐져 있는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테니스 코트 창고에서 강간하듯 따먹어 놓고선 한동안 가타부타 연락도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은근히 도훈과 썸 타길 기대했지만, 도훈의 행동은 전형적인 먹튀나 다름없었다.
오매불망 기다려도 답이 없는 도훈에게 슬슬 마음이 돌아서던 중.
우연히 학과실 앞에서 마주친 그를 보자 그간 원망하는 마음이 눈 녹듯 사르르 녹아내렸다. 그리고 깨달았다. 자신은 결코 도훈에게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아무리 그가 멋대로 행동해도 웃음 띈 얼굴로 인사 한번만 해주면 심장이 미칠것처럼 쿵쾅거린다는 것을.
‘아아··· 나쁜 선배인 줄 아는 데 난 왜 이렇게 휘둘리는 걸까.’
경희는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기면서도 도훈과 함께 드라이브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날아갈 듯 기뻤다. 이 모순 또한 견디는 것이 짝사랑이란 이름의 저주였다.
"선배, 요새 많이 바빴어요?"
"아니."
"음···."
차라리 거짓말이라도 그렇다고 해주지.
바쁘지도 않았다면서 문자 한번 없는 건 좀 심하다는 생각이었다. 도훈은 경희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말을 이었다.
"내가 바쁠 일이 뭐 있어. 여자를 만나기를 하나, 아니면 알바를 하나. 그냥 학교랑 집만 왔다갔다 하는데."
도훈이 무심코 던진 말에 경희가 파닥파닥 낚였다.
‘지금 저 말은 여자가 없단 소리지?’
경희는 왠지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다.
여태껏 사귀는 사람이 없다는 건 자신도 여자친구의 후보에 여전히 올라있다는 소리가 아닐까? 더구나 서로 정까지 통했는데 어쩌면 도훈이 오늘 점심을 먹자고 제안한 것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생각이었다.
"오빤 근데 여자친구 왜 안 사귀세요?"
"몰라. 못생겨서 그런가?"
"우아, 말도 안 돼. 오빠같이 멋진 선배가 어딨다고."
"그러게. 다들 눈이 높은가 보지."
"전 별로 안 높은데···."
경희가 넌지시 사인을 보냈지만 도훈은 일부러 모른 체 했다.
"그래? 그럼 넌 왜 안 사귀니?"
"그게···. 아직 그 사람이 제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서요."
"아니면, 알아도 부담스러운 게 아닐까?"
"부담이라뇨?"
"뭐, 그런 거지. 체전을 준비 중인 학교 대표의 시간을 빼앗으면 안 된다는 미안함 같은."
"전혀 그렇지 않아요. 저 연습 빼고는 자주 놀거든요."
경희가 강하게 부인했다.
도훈은 경희의 모습에 풋- 하고 웃을 뻔 했다.
‘쯧, 저렇게 순진해서야. 아주 그냥 나 좋다고 광고를 하지.’
[왜 자꾸 사람 마음을 흔드십니까?]
‘알았어. 적당히 거절할게.’
"그게 아니면 남자쪽에서 아직 여잘 사귈 마음이 없을지도."
"···음. 왜 그럴까요?"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 과씨씨를 하다 크게 데였다던가, 아니면 여자친구에게 잘해줄 자신이 없다던가."
도훈은 완곡한 거절에도 한 번 불이 붙은 경희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누구나 사귀고 헤어지는 아픔은 있는 거잖아요. 그게 꼭 과씨씨라서는 아니죠. 또 잘해주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런건 서로 맞춰가면 되는 거니까. 단지 그런 이유로 피하는 것은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해요, 전."
한바탕 쏟아낸 경희는 스스로 너무 흥분했다는 걸 깨닫고 급하게 뒷말을 덧붙였다.
"무, 물론 오빠한테 한 소리는 아니예요."
"응. 혹시 점심 너희 집에서 먹을래?"
"저희 집요?"
"응. 갑자기 배달음식 먹고 싶네. 얼마전에 생애 최초 할인 쿠폰 할인권 받았거든. 만원이나 깎아 준다는 거야."
"아. 그, 근데 정신없이 나오느라 집을 못 치웠는데···."
"상관없어. 같이 치워줄게. 나 청소도 잘해."
"그, 그럼···. 저쪽이에요."
"응."
도훈은 경희의 안내를 따라 핸들을 꺾었다.
그의 뒤로 검은 세단 하나가 바짝 쫓아오고 있었다.
***
민수는 일찍부터 서둘렀다. 어제 경찰의 훼방으로 도훈을 놓친 것 때문에 분에 못이겨 밤잠을 설친 것이었다. 그는 원래 한번 뭔가에 꽂히면 어떻게든 해결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아침부터 도훈의 학과 주변을 샅샅이 뒤졌으나 쉽게 찾지 못했다. 대학은 안 나온 그로서는 교양수업이라는 개념을 몰랐고, 도훈이 체육교육과 인근에서만 수업을 받는 줄로 착각했던 것이다.
"씨발, 대체 어디 숨은 거야? 학생이 학교를 안나왔을 리가 없는데."
한참 도훈을 찾아 헤매던 그는, 우연히 도훈이 학과에 들렀을 때 주차장에 세워진 그의 차를 발견했다. 차 번호를 완벽히 기억하고 있던 그는 도훈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오냐, 잘 걸렸다. 어디 야산에 끌고 가서 머리만 내놓고 확 묻어 버려야지.’
한참 기다리던 중 민수는 갑자기 소변이 마려웠다. 아침부터 땀나게 돌아다니느라 마신 물이 소변이 되어 나오려는 것이다.
‘젠장. 하필 이 타이밍에···.’
급히 노상방뇨 할 곳을 찾았으나, 지식의 전당은 불법을 허락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그는 지나가는 대학생에게 물어 빠르게 화장실에 들렀다.
"어라? 어디갔지?"
하필 그 사이 도훈은 경희와 차를 타고 빠져나간 상태였다.
3분도 안 되는 사이에 그를 놓치고 만 것이다. 도훈을 놓친 족제비를 쥐잡듯이 털어대던 스스로가 머쓱해지는 순간이었다.
‘아냐, 고작 3분이야. 분명 멀리 못 갔을 거야.’
민수가 재빨리 차에 올랐다.
출구 쪽으로 나가다 보니 도훈의 차가 멀리서 보였다.
‘옳거니. 너 딱 걸렸어.’
민수가 빠르게 추월해가며 도훈을 뒤쫓았다. 아슬아슬 노란불 교차로를 가로지르니 이제 그의 차 바로 뒤에 따라붙게 되었다.
민수의 얼굴이 희열로 기괴하게 비틀렸다.
"개새끼! 나를 좆뺑이치게 만들어? 걸리기만 해. 아주 반병신으로 만들어 줄 테다."
그때 뒤에서 불쑥 싸이렌 소리가 들렸다.
도둑이 제발 저린다고 조폭이 직업인 민수는 저도 모르게 움찔 몸을 떨었다.
‘또, 또 뭔데?’
사이드 미러를 보자 순찰중인 경찰 오토바이가 자신을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2435, 차 갓길로 붙이세요."
2435는 민수의 차였다.
민수가 못 들은 척 나가려고 하자 경찰이 따라붙으면 계속 소리쳤다.
"2435! 차 대세요!"
"에이, 씨발 또 왜 이래?"
너무나 기이한 일이었다.
어째서인지 도훈을 추격하려 할 때마다 거짓말처럼 자신을 훼방하는 뭔가가 등장했다. 어제는 종업원이 보안업체 직원을 부르지 않나, 경찰에 추격을 당하지 않나. 오늘은 화장실 간 사이 내빼지 않나, 이제는 잠복하던 교통경찰에 걸리고 만 것이다.
모든 것이 마치 신의 농간처럼 느껴졌다.
일을 키우기 싫은 민수가 속으로 씨발씨발 거리며 차를 댔다.
차창을 내리자 선글라스를 쓴 나이든 순경이 다가왔다.
"수고 많으십니다."
민수가 건성으로 인사했다.
"면허증 줘보세요."
"네? 왜요?"
"아까 빨간불에 신호위반 하셨습니다."
"노란불이었는데···."
"아뇨. 제가 거기 딱 거기서 서 있었거든요."
민수는 그제야 자신이 도훈을 급히 뒤쫓느라 교통경찰에 걸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오! 씨팔 진짜, 되는 일이 없네."
민수가 습관적으로 욕설을 퍼붓자 교통 경찰의 표정이 굳어졌다. 나이가 지긋한 순경이 직접 순찰을 도는 이유는 대부분 징계성 차원이었다. 그렇잖아도 땡볕에 순찰도느라 열받는데 나이도 어린 놈이 욕설을 내뱉자 순경도 화를 주체하지 못했다.
"뭐요? 시팔? 지금 나보고 한 소립니까?"
"아, 아니 그게···."
민수는 성격 같아선 확 엎어버리고 싶었지만 신분을 노출 시킬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좀 흥분해서···."
"젊은 사람이 거참! 얼른 면허증이나 내요."
민수가 경찰에 붙들린 사이 도훈은 유유히 경희의 아파트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
"드, 들어오세요."
"와, 넓네."
고급스러운 단지 입구에서부터 짐작했지만 40평대는 너끈히 되는 집이었다.
"가족들이랑 같이 사는 집이니까요."
"아, 그래?"
가족이 있다는 소리에 도훈이 신발을 벗다 말고 흠칫했다.
"물론 지금은 다 출근하셨지만요."
도훈은 그제야 활짝 웃으며 거실로 들어갔다.
거실 가운데 벽에 커다란 가족 사진이 걸려 있었다.
"이야, 부모님들도 다 미남미녀 분이시구나. 네가 예쁜 이유가 있네."
"별 소릴 다하시네."
"저기 키큰 애는 동생이야?"
"네. 저희 남동생요. 지금은 고3이에요."
"고3이면 힘들겠네."
"다행히 기숙사 살아서 주말에만 봐요. 얼마나 히스테릴 부리던지 제 동생이지만 옆에서 계속 징징댔음 패죽였을 걸요."
‘역시 연년생 남매는 원수지간이라더니.’
도훈은 문득 거실 장에 높이 트로피를 발견했다.
"저건 뭐야?"
< 700. 중수의 자격-29- <700화 이벤트 알림>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