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710화 (683/2,000)

< 692. 중수의 자격-21- >

***

"기분 별로 안 좋아?"

"···아니?"

아니라고 하지만 아무리 봐도 토라진 표정이다. 여자들 변덕 심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이렇게 되니 답답하기 짝이 없다. 방금 전까지 나랑 정을 통해놓고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지금은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기분이 풀릴까?

내가 뭘 잘못한 거지?

‘하-. 진짜 한창 좋았는데 갑자기 또 왜 저러는 거야?’

[그걸 알면 주인님이 전생에 그런 삶을 사셨을까요?]

‘무슨 소리야? 내가 뭘 어쨌다고?’

[주인님은 확실히 똑똑합니다. 아니 탁월한 수준이죠. 지능에 너프를 먹고도 이 정도인데, 과거엔 얼마나 영민했을지 짐작도 안 갑니다.]

‘갑자기 웬 아부야? 그게 뭐?’

[하지만 머리가 좋다고 사람 마음도 잘 헤아리는 것은 아니죠. 솔직히 말해 보십시오. 연애 경험이 얼마나 되십니까?]

‘연애 경험?’

예상 밖의 질문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러니까 여자를 사귀고 만났던 일을 말하는 건가?

‘두 번? 아, 아니. 한 번인가?’

[그 한 번이 설마 전생의 와이프 분인가요?]

‘어.’

[그럼 주인님은 완전 연애 고자나 마찬가진데요?]

‘뭔 소리야? 내가 고자라니? 나 대물이야.’

[섹스에 대해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건 테크닉이죠. 피지컬이기도 하구요. 제가 말씀드리는 건 여성의 마음을 헤아리고 배려하는 것에 대한 문제입니다. 어쩐지 주인님이 너무 여자 마음에 무딘 게 아닌가 싶었는데, 애초에 연애 경험이 전무한 고자 수준이었

다고 하니 이제 좀 이해가 가는군요.]

이놈의 인공지능이 듣자 듣자 하니까 못하는 말이 없네?

내가 고자라고?

‘로시. 내가 이도훈으로 태어나서 따먹은 여자들이 몇 명인지 알지? 손발을 다 합쳐도 못 새. 이런 내가 연애 고자라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주인님은 플레이어로 다시 태어나면서 가장 혜택을 받은 게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피지컬요? 아뇨 그건 이미 충분했습니다. 잘생긴 얼굴? 그것도 스킬과는 무관하죠. 섹스킬 역시 보조를 받은 것뿐이지 그게 주가 될 순 없습니다.]

‘그럼 뭔데?’

[바로 정보창입니다.]

‘정보창?’

[하나 더 꼽자면 마음의 소리고요.]

‘마음의 소리?’

[주인님이 여자를 쉽게 공략할 수 있었던 배경엔 그녀들이 무엇을 원하는  지 정확히 캐치할 수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호감도를 올릴 방법을 알 수 있었죠.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대답을 듣고 싶어하는 지 훤히

아는데 어떻게 실패할 수가 있을까요? 상대 패를 읽으면서 카드 게임을 하는 거나 마찬가진데요.]

‘아니, 그럼···.’

[그렇습니다. 주인님이 가진 진정한 치트 능력은 섹스킬이 아니었습니다. 주인님도 아시겠지만, 이도훈으로 다시 태어난 순간부터 피지컬은 이미 충분한 상태였으니까요. 주인님의 진짜 능력은 여자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바로 정보창이란

사기적인 능력을 통해서요.]

‘아···.’

[보십시오. 당장 스킬 봉인 미션이 나오자마자 갈피를 못 잡고 헤매지 않습니까?]

듣고 보니 뼈를 때리는 펙트 뿐이다.

이제껏 커져라 여의봉이나, 몸에 좋은 크림, 듀얼 쇼크 같은 육체적인 부분에서만 큰 도움을 받았다 여겼다. 하지만 정작 더 큰 도움은 공략 직전 사전 작업에서 받고 있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마음을 훔친 여자였기 때문에, 섹스도 쉽게 이룰 수 있었던 것. 즉, 지금의 스킬 봉인에서 가장 너프를 먹은 것은 바로 여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기술이었다.

사태가 파악되자 더 마음이 답답해졌다.

전생의 유일한 연애 경험조차도, 돈을 노리고 결혼했던 악처뿐.

그녀의 연애 시절과 결혼 시절이 달라진 모습을 떠올리면, 연애할 때의 모습도 진심이 아닌 가식과 연기였을 거다.

그것은 제대로 된 연애라고 볼 수도 없다.

‘젠장···, 내가 이렇게 무능력한 인간이었다니.’

[그렇다고 너무 자책할 필욘 없습니다. 주인님은 여전히 플레이어입니다. 보통의 사람들에겐 없는 초능력의 소유자죠. 일단 부족한 점을 알게 되었다는 그것만으로도 커다란 수확입니다. 부족한 점은 얼마든지 매울 수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노력한다면 조만

간 연애의 고수가 되지 않겠습니까? 주인님은 이미 뛰어난 피지컬과 현명한 두뇌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완전 병 주고 약 주고군.

하지만 로시의 말은 제법 위로가 되었다.

내가 부족한 점은 명확하다.

앞으로 스킬 봉인 미션이나 위업은 계속 생겨날 것이다.

그럴 때마다 힘들다고 포기할 순 없다. 어쩌면 이번 기회야말로 내가 진정 부족했던 점을 채울 수 있는 발판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 한 번 해보자.

스킬이 막혔어도 나는 여전히 이도훈이다.

훌륭한 외모와 절륜한 정력을 가진 매력적인 남성인 점은 변함없다.

그것을 십분 활용해야 한다.

"지연아."

"왜?"

지연이 여전히 뚱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시큰둥한 목소리에는 섭섭함이 묻어있었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지만 분명 나에게 실망한 부분이 있었고, 섹스가 중단되면서 불쑥 그것이 떠올랐을 것이다.

그게 무엇일까 계속 고민했다.

"우리가 이렇게 안 만났더라면 더 좋았으려나?"

"갑자기 무슨 말이야?"

"아니 시작부터 좀 그랬잖아. 넌 나를 감시하다 알게 되었으니까. 송이든이란 미술과 학생으로 위장해서."

"그, 그건···."

지연이 한때 위장 신분이던 송이든을 언급하자 민망함에 얼굴이 빨개졌다. 스물여섯의 나이로 스물 두살의 풋풋한 대학생을 연기했던 자신이 스스로가 생각해도 창피했던 모양이다.

"그냥 일이라 그런 거야. 개인적인 감정은 없었어."

"가끔 널 처음 봤을 때가 생각나."

"처음?"

"화구통 메고 벤치 앞에서."

"아···."

"정말 예쁘다고 생각했어. 눈이 번쩍하더라고. 이런 미인이 우리 학교를 다녔는데 왜 모르고 살았을까 싶었거든."

칭찬을 곁들이자 지연이 조금 기분이 풀린 것 같았다.

"뭐야, 민망하게 왜 그런 소릴 해?"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 네가 정말 미술과 송이든이어서 나랑 학생대 학생으로 만났으면 어땠을까 하는."

"흠···. 신분을 속이고 접근했던 건 미안하게 생각해."

"괜찮아. 그 덕에 이렇게 서로 가까워질 수 있었으니까."

"···아가씨랑은 앞으로 어쩔 거야?"

지연이 마침내 본심을 꺼냈다.

역시 은성이와의 일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하긴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이성과 발가벗고 뒹구는 모습을 보게 되면 누구라도 피가 거꾸로 솟을 수밖에 없다.

나 역시 그 경험자다.

그 장면은 평생 잊혀지지 않는다.

지연은 은성과 내가 몰래 하는 장면을 목격했고, 그것이 앞으로 평생 트라우마로 남을 것이다.

조금 더 그녀의 마음을 헤아렸어야 했다.

감언이설로 그녀를 농락하기보다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구했어야 했다. 누군가를 기만하는 것보다 용서를 구하는 게 훨씬 용기가 필요한 법인데 나는 상황을 모면하기에만 급급했다. 그게 패착이었다.

"음···. 모르겠어. 앞으로 은성이가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달렸겠지."

"난 너의 생각을 묻는 거야."

지연이 진지하게 물었다.

이제 내 대답 여하에 따라 그녀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풀릴지 꽉 닫힐지 결정될 것이다. 한지연이 정말 나에게 듣고 싶은 대답은 무엇일까?

지금은 정보창도 마음의 소리도 없다.

내가 가진 능력만으로 그녀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

"솔직하게 말해도 돼?"

"그래 줬으면 좋겠어."

"나 은성이 별로 안 좋아해."

"왜 그럼···."

"은성이가 날 좋아하는 것과 별개로 나는 지연이 네가 더 마음에 드니까."

"그런 말을 원하는 게 아니야."

"진심이야. 지연이 네가 훨씬 매력적이라고 생각해."

"어째서? 나는 아가씨에 비하면 잘난 것 하나 없는데···."

"네가 실망했다는 거 충분히 알고 있어. 그런 모습을 봤으니 내가 많이 미울 거야."

"···그 얘긴 더이상 듣고 싶지 않아."

"아니야. 정말로 미안해. 아까 사과가 부족했어. 널 만나러 가놓고 은성이랑 그런 짓을 벌이다니···. 마음 같아선 무릎이라도 꿇고 용서를 구하고 싶어."

"칫···."

"내가 어떻게 해야 화가 풀리겠니?"

진심 어린 사과에 지연이 조금은 누그러든 표정이었다.

다행이다. 헛다리를 짚은 건 아닌 거 같다.

"몰라. 지금은 그냥 기분이 좀 그래. 너랑 있으니까 좋으면서도, 아까 일이 계속 생각나서 울컥울컥해."

"그랬구나."

결국 섹스를 중간에 끊은 게 문제였다.

그녀가 다시 고민할 여지를 줘 버렸다.

밖에서 소란이 일어나든 말든 모텔을 떠나지 말았어야 했다.

다른 불륜 커플들이야 모텔에 경찰이 들락거리니 찔린 게 있어 도망쳤겠지만 나는 그런 상황도 아니었다. 어쩌면 내 스스로도 무의식적으로 떳떳하지 못하다는 걸 느끼는 걸까? 어쨌든 지나간 일은 후회해도 어쩔 수 없다. 지금은 어떻게든 남은 미션을 해결해야 한다.

‘로시, 미션 완료까지 남은 시간은?’

[2시간 조금 못 됩니다.]

‘좋아. 한판 벌이기엔 충분해.’

끝날 때까지 끝난 건 아니다.

"기왕 차 타고 나온 김에 드라이브나 할래?"

"어디로?"

"당연히 전망 좋은 곳으로."

나는 지긋이 엑셀을 밟았다.

***

"와···. 예쁘다."

도훈은 지연을 두물머리로 이끌었다.

양평에 위치한 두물머리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나루터의 해질녘 풍경이 유망한 곳으로, 강변을 향해 구불구불 달려가는 가는 길이 드라이브하기 딱 좋은 곳이었다. 지연은 차창으로 보이는 야경에 눈을 떼지 못했다. 어느새 꿀꿀했던 기분도 모두 사그라진 것 같았다.

도훈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기분 전환엔 드라이브가 최고라니까.’

[이런 곳은 또 어떻게 아셨답니까?]

‘내가 연애 경험은 별로 없어도 차 끌고 다닌 지 20년 넘은 베테랑이잖아. 이 정도 코스야 빠삭하지.’

[대단하군요. 지연양이 다시 기분이 좋아진 모양입니다. 근데 이제 미션 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어쩌시려고요?]

‘날도 안 추운데 오늘은 야외 플레이로 가보자.’

[야외요?]

한참 인적 드문 곳으로 달려가던 도훈이 잠시 차를 갓길에 정차했다.

"왜 세워?"

"계속 차를 몰았더니 어깨가 좀 뻐근해서. 잠깐 걸을래?"

"여기서?"

"응. 아직 해 안 떨어졌잖아. 바람 좀 쐬게."

"그래."

지연과 도훈은 차에서 내려 강변길을 따라 걸었다.

잔잔히 흐르는 강물과 노을지는 풍광이 그림처럼 아름다운 곳이었다.

"여기 너무 좋다."

"그렇지? 여름이라 날도 춥지도 않고."

"응. 이런 곳은 어떻게 알았어?"

"그냥 인터넷 뒤지다가. 차 사고 나면 여자친구랑 꼭 한 번 드라이브해보고 싶은 곳이었거든."

"아···."

지연은 기분이 좋아졌다.

도훈이 마치 자신을 여자친구처럼 여긴다는 말처럼 들렸다.

"근데 여기 화장실 없나?"

아까부터 요의를 느끼던 지연이 주변을 돌아보며 물었다.

강변길이 조성되어 있긴 했지만, 드문드문 나무 벤치만 놓여 있을 뿐 화장실 같은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왜? 쉬하게?"

"응···. 아까 휴게실 들를 때 다녀올 걸."

"저기서 싸."

도훈이 수풀이 우거진 곳을 가리켰다.

"여기서? 싫어!"

"아무도 없잖아. 내가 망 봐줄게."

"아이참···."

지연이 망설였다.

남자들과 달리 여자는 노상방뇨를 하기에 적절치 않은 신체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당연히 지연도 거의 경험이 없었다.

"창피한데···."

"참는 것보단 낫지 않겠어?"

도훈의 말에 지연도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다시 화장실이 나올지도 모르는데, 계속 참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도훈이 지연을 부추기며 속으로 웃었다.

‘나이쓰 작전 성공.’

[작전이라뇨?]

‘몰랐어? 일부러 아까 휴게실 들렀을 때 커피 사 온 거?’

[그럼 그게 일부러?]

‘커피는 이뇨 작용을 촉진하거든. 드라이브하면서 계속 홀짝거렸으니까 지금쯤 오줌보가 터질 지경일걸?’

[그런 야비한 수를.]

‘어떻게든 상황을 만들어야지. 일부러 화장실 없을 만한 곳에 차를 대기도 했고.’

상황을 의도한 도훈이 계속 말했다.

"저기 숨으면 수풀이 높아 절대 안 보일 거야. 내가 망보고 있을테니까 걱정 마."

"흠···."

지연은 한참 망설이다 결국 소변을 못 참겠던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너도 훔쳐 보지 마."

"내가 왜 그러겠어?"

지연이 망설이며 수풀 안으로 들어갔다.

지연이 자릴 잡는 소릴 듣자 도훈이 슬금슬금 따라갔다.

[훔쳐보지 말라지 않았나요?]

‘참새가 방앗간을 어떻게 지나쳐?’

도훈이 수풀을 거치고 들어가자 안쪽에서 지연이 보였다. 팬티를 내리고 쪼그려 앉은 자세라 그런지 탱탱한 엉덩이가 훤히 비추고 있었다.

도훈이 수풀 사이에서 몰래 쉬하는 지연을 쳐다보았다.

쏴아아아아-

‘캬, 오줌발 보소. 엄청 참았나 보네.’

[주인님. 이러니까 진짜 변태같은데요?]

‘뭘 또 변태까지. 어차피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긴장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지연이 소변을 마치고 옆에 내려놓은 가방을 뒤졌다. 휴지로 밑을 닦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하필 휴지가 보이지 않았다.

‘아···. 어쩌지? 있는 줄 알았는데···.’

난감해진 지연이 잠시 고민하다 엉덩이를 아래위로 털기 시작했다.

팬티에 소변이 묻는 것보다 잠시 민망한 게 났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흔들흔들.

몰래 훔쳐보고 있던 도훈은 엉덩이를 깐 채로 흔들어 대는 지연을 보고 겨우 웃음을 참았다. 그러나 그 모습이 너무 외설스럽고 우스웠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킥- 하고 목소리가 새어 나오고 말았다.

뒤에서 들리는 웃음소리에 지연이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꺄, 꺄악! 누, 누구!"

도훈이 수풀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나야."

도훈이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 692. 중수의 자격-21-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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