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1. 중수의 자격-20- >
"하- 새끼. 이거 뒤통수 한 번 거하게 치네?"
"손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보안 업체 직원은 체격이 건장한 편이었다. 호리호리한 체격의 민수의 비하면 20kg 쯤 더 나가 보였다. 가끔 취객의 난동으로 출동한 적이 있었기에, 그들은 민수에게서 술 냄새가 나는지부터 확인했다. 당연하지만 민수는 멀쩡한 상태였다. 보안업체 직원이 혀
를 차며 생각했다.
‘나이도 어려 보이는 새끼가 술도 안 처먹고 진상이야?’
직원이 민수의 팔목을 붙들았다.
"일단 나가시죠."
"놔, 이거."
"글쎄, 나가서 얘기 하시자니까요?"
"내가 놓으라 했지!"
민수의 붙잡힌 손목을 뱅글 돌려 빼더니 재빨리 상대의 팔목을 밖으로 꺾어 버렸다. 순식간에 보안 업체 직원이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악!"
"어디서 좆만한 새끼가 남의 팔을 함부로 잡아?"
"이 사람이!"
다른 보안 직원이 놀라 달려드는데, 민수가 순식간에 손날을 앞으로 뻗더니 목덜미를 끊어쳤다. 목을 틀어쥐는 것처럼 엄지와 검지를 펼친 다음, 성대 쪽을 빠르게 강타하는 기술.
"컥!"
한 손은 손목을 제압한 자세에서 나머지 손으로 다른 인원을 제압하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5초 남짓이었다. 급소를 가격당해 숨이 턱 막힌 직원이 얼굴이 새빨개진 채 컥컥거렸다.
민수의 놀라운 실력에 기겁한 호텔 직원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얼굴에 흉터가 그냥 생긴 것이 아님을 직감한 것이다.
"죄, 죄송합니다!"
민수는 직원의 사과에도 싸늘한 표정으로 노려보았다.
"감히 내 뒤통수를 쳐?"
안 그래도 똥개 훈련을 하는 바람에 잔뜩 열이 받아 있던 민수는, 자신을 기만한 모텔 직원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애초에 그는 성미도 급하고 용서라곤 모르는 사람이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새끼들이 바로 뒤통수 치는 새끼들이야."
손목을 꺾은 나머지 보안 직원마저 바닥에 내팽개친 민수가 으르렁거리며 다가갔다.
"너 오늘 나한테 맞아야겠다."
민수는 이제 도훈을 찾는 목적도 잊은 채 분풀이에 들어갔다. 늘 그렇지만, 과격한 성격이 문제였다.
***
도훈이 한창 뒤치기에 돌입할 무렵.
밖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리며 주변이 시끄러워졌다.
"응? 뭐지?"
몰입이 깨어진 도훈이 고개를 쳐들었다.
불쑥 모텔 방화 등의 기사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설마 불이라도 난 건가?’
도훈이 경찰차와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를 오인해 삽입을 중단했다.
"밖에 뭔 일 난 것 같은데?"
지연 역시 흥이 식기는 마찬가지였다. 더욱이 병가를 사유로 반차를 내고, 모텔에서 뒹굴고 있던 터라 괜스레 뜨끔한 마음까지 들었다.
"무슨 일일까?"
도훈이 사정을 알아보기 위해 나체로 창가에 섰다.
3층 위라 아래가 훤히 내다보였다. 주차장이 있는 1층에 싸이렌 등을 켠 경찰차가 눈에 들어왔다.
"경찰차?"
"경찰이라고?"
경찰이라는 소리에 지연이 놀라며 이불을 끌어안았다.
모텔에 경찰이 출동할 만한 사건이 뭐가 있을까?
"간통신고는 아닐 거고···."
위헌 판결이 난 간통은 더는 형법의 처벌 대상이 아니었다.
도훈은 간통이라는 말에 뭔가 떠오른 듯 말했다.
"혹시 그런 거 아닐가?"
"뭐?"
"치정살인."
"사, 살인이라니?"
간통법 폐지 후 불륜에 대한 사적 복수가 증가하는 추세였다. 어차피 법적으로 해결 못 하는 상황에서, 스스로 응징에 나서는 것이다. 바람난 여편네에 눈이 돌아간 남편이라면 칼부림이 벌인데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에이, 설마···."
"하긴 그건 너무 나갔지?"
아무튼 모텔까지 경찰이 출동한 것을 보면, 이곳에서 뭔가 사단이 벌어진 게 분명했다. 도훈이 사그라든 대물을 보며 난감함을 느꼈다.
‘젠장. 스킬마저 봉인하고 미션 수행인데 이게 무슨 꼴이람? 산통 다 깨졌네.’
미션의 제한 시간은 고작 세시간.
아직 여유는 있었지만, 사태가 종료되고 다시 분위기를 잡는데 시간이 제법 걸릴 것 같았다.
그때 요란한 문밖에서 우당탕 거리는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야, 저 새끼 잡아!"
"출입구 봉쇄해!"
모텔이 순식간이 난장판으로 변했다.
민수의 폭행을 목격한 손님하나가 경찰에 곧바로 신고를 했고, 출동한 경찰이 계단으로 도망다니는 민수를 뒤쫓는 소리였다.
영문을 모르는 도훈이 급히 가운을 걸쳤다.
"아무래도 뭔 일 난 것 같은데?"
"왜 갑자기 옷을 입어?"
"무슨 상황인지는 알아봐야지."
도훈이 가운을 걸친 채 문을 열어 복도를 확인했다.
경찰복을 입은 순경 하나가 복도 끝으로 도망치는 남자 한 명을 뒤쫓고 있었다.
‘와, 살벌하구만. 진짜 누구 하나 죽인 건가?’
[글쎄요. 그나저나 남 일에 왜 그렇게 오지랖이십니까? 미션을 하다 말고요.]
‘미션을 하려고 해도 환경이 도와주질 않네. 분위기 팍 식어버렸는데 어쩔 거야?’
도훈이 다시 문을 닫으며 말했다.
"우리 나갈래?"
"나가자고? 지금?"
"응. 여기 영 분위기 살벌한데."
그때 어디선가 와장창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쿵- 하는 충격음과 함께 차량의 도난 경보음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경찰의 추적을 피해 3층 창문을 깨고 뛰어내린 민수가 멀쩡히 주차되어 있던 차량 천장에 떨어지는 소리였다. 애꿎은 남의 차 지붕을 박살 낸 민수가 바닥을 굴러 재빨리 일어섰다.
"에아 씨발, 짭새 새끼들. 좆도 도움도 안 되네."
민수는 경찰과 시비 붙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다.
안 그래도 조직폭력 사범으로 당국의 감시를 받는 바람에 선량한 시민에게 행패를 부린 것이 걸리는 날엔, 조직에 누를 끼칠까 걱정이 들었던것이다.
그는 도망치며 생각했다.
‘대체 어떤 새끼가 경찰에 신고한 거야? 일단 여기서 벗어나야겠어. 이도훈인가 뭔가, 너 운 좋은 줄 알아.’
경찰의 추격을 따돌린 민수가 재빨리 모텔을 빠져나갔다.
한편 도훈의 제안에 밖으로 나갈지 말지 고민하던 지연은 유리창이 깨지고 도난 경보가 울리는 상황에 이르자 결국 포기를 선언했다.
"그래. 나가자. 네 말대로 영 분위기가 안 좋은 것 같네."
두 사람은 주섬주섬 옷가지를 챙겨 들더니 모텔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소란에 놀란 손님이 둘뿐이 아닌지, 황급히 모텔을 나온 사람들로 엘리베이터 앞이 북적이고 있었다. 대부분 40대 이상의 중년 커플들이었는데, 아무리 봐도 부부사이론 보이지 않았다.
‘젠장. 불륜의 왕국도 아니고 진짜.’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싶지 않았던 도훈이 제안했다.
"그냥 계단으로 갈까?"
"그래. 그게 좋겠어."
도훈이 계단을 통해 내려가는데 2층 중간쯤 여경 한 명과 마주쳤다. 파란 경찰 제복을 입은 여경이 도훈을 발견하자 그를 막아섰다.
"이쪽은 제한구역입니다."
여경은 신고를 받고 지원을 나온 경찰이었다.
상관의 지시에 따라 1층으로 내려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던 나머지 민수가 창을 깨고 탈출한 사실을 아직 모르는 상태였다.
"저흰 그냥 손님인데요."
도훈이 따졌지만 여경은 완강했다.
"피의자를 쫓고 있으니 협조해 주세요."
도훈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무리 경찰이라도 선량한 시민을 멋대로 막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민수가 일으킨 소동으로 미션을 하던 중 중단된 터라 무척이나 예민해진 상태였다.
"아니, 이런 법이 어딨어요? 경찰이면 맘대로 해도 돼요?"
도훈이 여경의 가슴팍에 자수된 명찰을 확인했다.
공무원들은 민원에 벌벌 떠니 이름을 불러 위협을 주려는 의도였다.
"···왕빛나 순경님?"
그런데 빛나의 제복이 생각보다 타이트해 보였다. 제복이 작다기보단 유난히 가슴이 도드라져 압박을 받는 모양이었다.
빛나는 도훈이 자신의 이름을 확인해 부르자 어처구니가 없었다.
‘뭐야? 지금 내가 여자라고 깔보는 거야?’
빛나는 무척 자부심이 강한 여성이었다.
3수의 도전 끝에 공채에 합격했고, 비교적 여자들이 꺼려하는 현장직까지도 자진한 열혈 경찰. 그런 그녀에게 도훈의 도발이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지금 공무집행 방해하는 겁니까?"
빛나는 동시에 도훈의 뒤에선 여자를 쳐다보았다. 자기랑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지연을 보자 더 배알이 꼴렸다.
‘나이도 어려 보이는 놈이 초저녁부터 모텔와서 여자랑 노닥거리기는.’
"도훈아. 그냥 돌아서 가자."
괜한 시비에 휘말리기 싫었던 지연이 도훈을 만류했다.
하지만 흥분한 도훈은 지연의 말이 들리질 않았다.
"공무집행 방해라뇨? 제가 무슨 범죄잡니까?"
"자꾸 이런 식으로 비협조적으로 나오시면···."
그때 1층에서 남자 경찰 하나가 빛나를 향해 소리쳤다.
"왕 순경! 거기서 뭐해? 그 새끼 창문으로 튀었다니까!"
"예?"
"얼른 튀어오라고!"
"예, 옙!"
말단인 빛나는 상관의 호통에 화들짝 놀라더니 도훈을 한 번 째려보고는 빠르게 뛰어갔다. 도훈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지연에게 말했다.
"뭐야? 창문으로 뛰었다고?"
"아까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그 소리였나 보네."
"나참. 별일이 다 있네."
"어? 근데 이게 뭐지?"
지연이 허리를 숙이더니 바닥에 떨어진 지갑을 주워들었다.
검정색 단지갑이었는데 가운데를 펼치자 경찰 신분증이 들어 있었다.
"왕빛나? 방금 그 여자 경찰분이 흘린 것 같은데?"
"하여간 칠칠맞기는. 이리 줘 내가 돌려주고 올게."
도훈이 혀를 끌끌 차며 속으로 투덜댔다.
‘뭐? 공무집행 방해? 웃기고 있네. 경찰이 무슨 대단한 권력이라고.’
지연에게 지갑을 받아 든 도훈이 주차장 쪽으로 나갔다.
그러나 이미 순찰차는 모텔 입구를 빠르게 빠져나가는 중이었다.
"어이, 여기 지갑!!!"
도훈이 크게 소리쳤으나 싸이렌 소리에 묻혀버렸다.
도훈이 허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나참. 누굴 쫓길래 저렇게 급하게 가는 거야?"
도훈은 나중에 우체통에 놓어 줄 생각으로 지갑을 뒷 주머니에 챙겼다. 그때 입구로 나온 지연이 도훈에게 물었다.
"지갑 돌려 줬어?"
"아니. 금방 가버리더라고. 나중에 우체통에 넣어주지 뭐."
"그래. 근데 아까 왜 그렇게 삐딱하게 군 거야?"
"뭐?"
"아니 아까 그 여경한테."
"괜히 시비 털잖아. 공무집행 방해니 어쩌니. 내가 무슨 범법자도 아니고."
투덜거리던 도훈이 불쑥 농담이 떠올랐다.
"하긴 범죄를 저지르긴 했구나."
"···뭐라고?"
지연이 눈을 크게 뜨며 도훈을 노려보았다.
그녀가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바람둥이는 만나도 범죄자랑은 안 만나. 너 무슨 짓 했어?"
"절도죄. 네 마음을 훔쳤지."
"아니···."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
‘세상에! 아재 개그를 좋아하는 줄은 알았지만 이건 도저히···.’
지연이 고개를 절래 절래 저으며 물었다.
"그나저나 이제 어쩔 거야?"
"일단 차부터 타자."
지연은 자신이 차를 까페에 주차 시키고 도훈의 차로 움직인 상태였다. 혹시라도 나중에 모텔 출입 기록이 문제가 될까 미연에 차단한 것이다.
두 사람은 차에 올라 모텔을 빠져나왔다.
"근데 무슨 일이었을까?"
"뻔하지. 바람난 여편네 찾으러 온 남편이나 되겠지."
도훈은 과거 아내의 외도 기억이 떠올라 짜증스럽게 대답했다.
"하여간 바람피우는 년놈들은 확 그냥···."
도훈은 문득 그 말을 하다 위화감을 느끼고 재빨리 정정했다.
"연애라면 모를까 결혼까지 해놓고 사람이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안 그래?"
"···참나."
지연도 도훈의 대답이 모순적이라 느꼈는지 팔짱을 끼우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멋대로 바람을 피우는 게 대체 누군데 그래? 아가씨랑 나 말고도 수도 없이 많으면서.’
"왜 그래?"
"아냐. ···아무것도."
중간에 훼방을 받는 바람에 지연도 흥이 식은 상태였다. 열망이 가라앉자 문득 도훈과의 어정쩡한 관계가 머릿속을 잠식했다.
‘난 대체 왜 애한테 끌려다니는 거지?’
사실 따지고 보면 객관적으로 전혀 꿀릴 게 없었다.
자신은 우리나라에서도 손꼽히는 대기업의 대리.
도훈은 끽해야 임용도 합격 못 한 대학생일뿐이었다.
사회적인 위치로 보나, 직업으로 보나 만나주는 것만으로도 도훈에게 영광이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난 자기 때문에 조직도 배신했구만···.’
실은 그게 더 큰 부분이었다.
도훈을 위해 신뢰하는 조직까지 배신했다는 오명.
명예를 중시하는 군인 출신으로선 어마어마한 자기희생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것을 도훈이 몰라주는 게 속상했다.
"근데 우리 어디로 가?"
"드라이브나 하려고."
"응."
그쯤 도훈이 지연의 감정변화를 눈치채고 있었다.
스킬을 봉인했다는 게 그렇게 답답할 수가 없었다.
‘흐음. 아까랑 분위기가 전혀 다른데···. 이럴 때 속마음이라도 읽었으면 좋으련만.’
도훈은 그제야 자신이 스킬의 도움 속에서 편하게 여자의 마음을 훔쳐왔음을 깨달았다. 정보창으로 호감도를 미리 파악하고, 마음의 소리로 생각을 훤히 들여다보는 등 그밖에 수많은 스킬과 아이템으로 여성의 정신과 육체를 지배해 왔던 것이다.
‘젠장. 스킬 봉인이 이렇게 커다란 패널티로 다가올 줄이야.’
차라리 섹스킬은 피지컬로 커버가 가능했다.
하지만 여자의 변덕이 심한 여자마음을 알아내는 것은 아무리 그라도 무리였다.
'아무래도 오늘 일진이 사나울것 같은데, 이러다 처음으로 미션을 실패하는것은 아니겠지?'
도훈은 슬슬 조급증이 들기 시작했다.
답답한 마음에 도훈이 입을 열었다.
< 691. 중수의 자격-20-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