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2. 중수의 자격-11- >
올 것이 왔다.
하지만 나는 당당하다.
어찌 됐건 공식적으로 나는 솔로니까.
하지만 오랜만에 본 은성을 골려주고 싶었다.
"생겼냐고?"
"···네."
은성이 긴장된 얼굴로 나를 보았다. 만약 있다고 한다면, 킬러를 보내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간절해 보인다.
"생겼을까?"
"새, 생겼어요?"
"안 생겼을까?"
"뭐, 뭐예요. 확실하게 대답해줘요."
"없어."
"없어요?"
은성의 목소리 톤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 저렇게 좋아하는 모습이라니···.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잖아?
"응. 바빠서 누굴 만날 시간이 있어야지."
"그래도···. 오빠 사범대학교 다니잖아요. 주변에 여자도 많을 텐데···."
은성이 답정너를 요구했다.
원하는 대답을 들려주지 않으면 진심으로 킬러를 고용할지도 모른다.
눈씨넌이 아니므로 적절한 대답을 들려주었다.
"여자가 많으면 뭐해. 마음에 드는 여자도 없는데."
"오빤 어떤 스타일 좋아하시는데요?"
"글쎄···."
나는 은성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 보았다.
"일단 속 쌍커플 진한 눈이 좋아."
"아···."
은성은 깊고 진한 쌍커플이 있었다.
수술 같진 않고 타고난 생김새였다.
"그리고 콧대는 높되 작았으면 좋겠고."
은막의 스타였던 어머니를 빼다 박은 은성은 한국인 답지않게 코가 예뻤다.
"그리고요?"
"입술은 붉은빛이 돌고, 턱선은 갸름했음 좋겠어."
"···혹시 저 보고 하시는 말씀이세요?"
"그러게. 말하고 보니 내 눈 앞에 있네?"
"아이참, 오빠도···."
은성이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저렇게 자기감정을 온전히 드러내는 여자라니.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혹시 더 있어요?"
"사실 난 얼굴보단 몸매를 보는 편이야."
"모, 몸매를···."
은성이 살짝 움츠러들었다.
마른 체형의 은성은 하늘하늘하고 여리여리한 몸매였다.
물론 체격에 비해 미드는 훌륭한 편으로 B에서 C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듯했다. 평소엔 B+, 생리가 가까워지면 C.
"쭉쭉 빵빵한 거 좋아하세요?"
은성이 살짝 긴장된 음색으로 물었다.
슬랜더에 가까운 그녀로선 나의 취향이 몹시 궁금했던 모양이다.
"딱히? 그냥 전체적인 벨런스를 봐."
"벨런스라면···."
"원래 운동하는 사람들은 전체적인 균형을 중시하거든."
"네."
"어깨는 넓지 않고, 허리는 가는게 좋지."
"아···."
"반면에 골반은 적당히 발달되어 있고 팔 다리가 길쭉해야 이상적이고."
"그렇구나."
"그런 체형이 운동을 잘하거든. 너도 운동 했으면 잘 했을 것 같은데?"
"아, 아니에요. 저 몸치에요."
"전혀. 저번에 보니 되게 유연하던데?"
"저번에 언제요? ···아!"
은성의 얼굴이 새빨게졌다.
지난 온천에서의 일을 상기시킨 탓이다.
"그, 그땐···."
"아무튼, 너도 참 라인이 좋구나."
"과, 과찬이세요."
은성은 수줍어하면서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빈말이 아니고 은성의 몸매는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아마 집에서 하는 홈트레이닝이 어지간한 고급 PT샵보다 수준이 높을 것이다. 타고난 몸에 늘 운동을 하며 관리까지 받으니 좋을 수밖에 없다.
"오빠가 저보다 훨씬 좋으시면서."
"내가?"
"네. 그때 보니까···."
은성이 슬슬 입질을 시작했다.
이래서 남녀 사이는 한 번 몸을 섞게 되면 끊어내기 쉽지 않다.
자전거를 처음 타는 사람을 모든 것이 낯설다.
넘어지지 않으려면 페달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조그만 안장에 엉덩이만 걸친 자세는 무척이나 위태롭다. 손아귀에 힘을 꽉 주고 언제든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도록 긴장한다.
하지만 익숙해지면 두 발로 땅을 걷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의식하지 않아도 알아서 반응한다.
흔한 말로 몸이 적응해 버리는 것이다.
정을 통한 남녀도 이와 같다.
처음엔 서로가 조심스럽다.
그러나 한 번이라도 이어지고 나면 서로가 서로에게 빠르게 적응하게 된다.
의식하지 않아도 알아서 반응한다.
다른 의미로 몸이 적응해 버리는 것이다.
은성이 조금씩 내 곁으로 다가왔다.
자석처럼 나에게 빨려들고 있다.
몸이 먼저 기억한다.
그 날의 쾌감을.
"안 그런 줄 알았더니 유심히도 봤나 보네?"
"볼 수밖에 없으니까···."
"어디가 제일 마음에 들었는데?"
"다요."
"그래도 콕 찝자면?"
"음···."
은성이 우물쭈물 거리더니 고은 손으로 어깨를 어루만졌다.
"넓은 어깨?"
"또?"
이번엔 손이 겨드랑이 쪽으로 들어와 대흉근을 쓰다듬었다.
"탄탄한 가슴?"
"그리고?"
"그리고···."
몸이 단 은성이 조금씩 대범해졌다.
그녀의 손이 관능적으로 밑을 쓸었다.
일부러 힘을 주어 복근이 도드라지게 해주었다.
"불끈불끈한 식스팩?"
"좀 더 솔직해도 될 것 같은데?"
은성이 의도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한국에 귀국했으니 오랜만에 나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컸을 것이다. 얼굴만 보아도, 대화만 나누어도 좋겠다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몸은 그렇지 않다.
서로 간의 호흡이 느껴질 만큼 바짝 붙어버리면, 처음보는 남녀라도 흥분될 수 밖에 없다.
"좀 더요?"
은성의 손이 아래로 미끄러지더니 바지 위로 텐트를 친 대물위에 얹어졌다.
"어머, 왜 이렇게···."
"커졌냐고?"
"네."
은성은 부끄러워 하면서도 여전히 손을 떼지 못했다.
아니, 조금씩 바지 위를 어루만지며 귀두 부근을 주물러댔다.
"네가 만져주니까 그렇지."
"거짓말. 만지기도 전에 커져 있었잖아요."
"그래? 그럼 너도 한 번 확인해 볼까?"
나는 은성의 다리사이로 불쑥 손을 집어넣었다.
은성이 재빨리 허벅지를 오므렸으나, 손은 눈보다 빠르다.
"앗!"
"아직 만지지도 않았는데 젖었을까 안 젖었을까?"
"하, 하지 마세요."
허벅지에 붙잡힌 손은 가까스로 팬티 바로 앞에서 멈춘 상태였다. 힘을 주어 밀어 넣는 건 일도 아니었지만, 그녀를 더욱 긴장시키기 위해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
"대답해봐. 나만 그러는 거야?"
"아, 아니··· 그게···."
반응을 봐선 백퍼 젖은 것 같았다.
처음 볼 때 부터일까?
아니면 내 옆에 앉았을 때?
최소한 몸을 만지면서 덩달아 흥분한 것은 분명했다.
나는 그녀를 애타게 만들기 위해 치마 속으로 들어갔던 손을 다시 뺐다.
"알았어. 하지 말래니까 안 해야지."
"아···."
은성이 아쉬운 표정으로 탄식을 내뱉었다.
지금쯤 말린 것을 후회하겠지?
하라면 하기 싫고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다. 허무하게 끝난 애무에 은성이 시무룩해졌다. 나는 변명하듯 말했다.
"밖에 지연이가 있잖아."
"지연언니요?"
"응. 땡볕에서 누가 오는지 감시하고 있는데, 우리가 여기서 이러면 안 되지."
나는 한지연 핑계를 댔다.
아마 지연도 지금쯤 안에서 무슨 얘기를 하는지 궁금해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을 것이다. 작은 대화 소리는 들리지 않겠지만, 신음이라도 터지는 날엔 당장 문을 열고 뛰쳐 들어올 가능성이 컸다.
"근데 지연 언니랑은 어떻게 아시는 사이에요?"
"지연이가 말 안했어?"
"네. 그냥 업무상 알게 되었다고 밖엔···."
"맞아. 업무 중에 만나긴 했지."
묘한 뉘앙스를 풍기자 나를 보는 은성의 눈빛이 의심스러워졌다. 한지연도 빼어난 미인이다. 특히 유도로 단련된 탄탄한 몸과, 은근한 허당끼가 매력적인 여자다. 두 사람이 친한 것과 별개로 나와의 관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냥···. 아는 사이?"
"그보다는 좀 더 친한 사이?"
"···친하다고요?"
은성이 슬슬 질투심에 차올랐다. 지연은 은성의 경호원 신분이지만, 여자로서는 완전히 동등한 입장이다. 간과하고 있던 은성이 마침내 그 부분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왜?"
"음··· 아니에요."
"내가 지연이랑 썸씽이 있을까 봐?"
"모, 몰라요."
"솔직하게 물어. 그럼 솔직하게 대답해 줄게."
나의 말에 용기를 얻었는지 은성이 다시 물었다.
"잤어요?"
"안 잤어."
"휴···."
[와, 얼굴에 철판을 깔아도 유분수지.]
‘왜? 내가 틀린 말 했어? 같이 잤냐고 물었잖아. 나는 잔적은 없어. 싸고 튀긴 했지만.’
[유치한 말장난일 뿐입니다.]
‘세상엔 감추는 게 나은 것도 있는 법이야.’
[그게 주인님께 이득이 되니 그렇겠죠.]
‘아니 생각해봐. 은성은 그날 온천에서 사라랑 쓰리썸을 했잖아.’
[그런데요?]
‘내가 다른 여자랑 하는 것도 봤던 사이란 말이야.’
[그렇죠.]
‘그러니 내가 한지연과 섹스를 했다고 의심할 수도 있겠지. 지연이도 무척 예쁘니까.’
[당연합니다.]
‘하지만 둘 사이가 너무 돈독해. 괜히 의좋은 자매같은 사이를 나 때문에 망치고 싶지 않은 거랄까?’
[나중에 들키면 어쩌시려고요?]
‘지연이도 생각이 있으면 말은 안 할 거야. 오히려 속앓이를 하면 하겠지. 나를 은성이한테 갖다 바치는 꼴이니까.’
[그래서 아까 컴퓨터 고치다 덮치신 겁니까?]
‘그런 부분도 있다고 봐야지. 섭섭해할게 분명한 지연에게 자기가 언니라는 걸 알려준 셈이니까.’
[언니라뇨?]
‘대물도 위아래가 있는 법이라고.’
[참나···.]
"내가 아무 여자랑 잘 것 같아?"
"그, 그게 아니라···. 지연 언니도 예쁘니까."
"예쁘다고 다 하고 싶은 건 아냐."
"그치만, 접때 사라랑도···."
"그건 어쩔 수 없었잖아."
"흠. 솔직히 오빤 조금 여자를 밝히는 것 같아요."
"아니. 네 앞에서만 이렇게 되는 거야."
"거짓말."
나는 다시 대물을 빳빳히 세워 은성 앞에 내밀었다.
어찌나 바짝 꼴렸는지 바지를 뚫고 욱일승천할 기세였다.
"진짜라니까. 네가 내 앞에서만 젖는 것처럼."
"아···."
"근데 밖에 지연이 때문에 눈치 보여서 못하겠어."
은성이 조바심이 났는지 말했다.
"아무 소리 안 낼게요."
"정말 자신 있어?"
"네."
은성은 당장이라도 지퍼를 내리고 싶은 모양이었다.
물론 이럴 때를 대비해 준비된 아이템이 있지.
"잠깐만 지연이 뭐하는 지만 보고 올게."
"네."
나는 문 가까이 다가가 미리 준비한 방음 패치를 붙였다. 내부의 소리가 밖으로 들리지 않게 하는 아이템이었다. 패치를 붙이며 현관문 렌즈로 동태를 확인했다. 지연은 초조한 표정으로 문앞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다시 돌아온 내가 은성에게 말했다.
"가만히 서 있네."
"아··· 날도 더울텐데."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자 오후에도 푹푹 찌는 날씨가 이어졌다. 직무상 정장을 입고 있는 지연이라면 땀을 줄줄 흘리고 있을 것이다.
"그럼 안으로 들어오라고 할까?"
"아, 안돼요."
"왜? 안에서 기다리고 하지."
"셋은 싫어요."
"응?"
"오빠랑 단 둘이 있고 싶어요."
지난번 사라와의 쓰리썸 때문인지 은성이 결사코 반대했다.
나 역시 지연을 끌어들일 생각은 없었다.
"그나저나··· 너 이러려고 나 부른거야?"
"아, 아니에요. 그건."
"그치만 결국 이렇게 되버렸네?"
"그게··· 오빠랑 있으니까 저도 모르게···."
"흥분 돼?"
은성이 차마 말로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고 싶어?"
"꼭 그런건···."
"꼭 그런건 아니지만, 기왕 만났으니 하고 싶어?"
"···네."
"알았어. 소리 크게 내면 안 돼?"
"네."
나는 소파 위에서 조심스레 은성의 옷을 벗겼다.
***
"족제비."
"네, 넵!"
"감시 중인 대상을 놓쳤다고?"
"죄, 죄송합니다.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지는 바람에."
"아니야, 아니야. 그럴 수도 있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
민수 앞에 불려간 족제비가 바짝 긴장한 모습으로 얼어붙어 있었다. 말끔하게 잘생긴 외모와 달리, 잔인한 손속으로 악명높은 민수를 의식한 탓이었다.
족제비는 웬일로 민수가 좋게 넘어가나 싶어 설명을 덧 붙였다.
"정말 신출귀몰한 놈이었습니다. 아무래도 평범한 대학생은···."
"근데 그 눈 참 쓸모없네."
"네, 네?"
"감시도 못 하는 눈을 어디에 쓰겠냐고."
"아, 아!"
"잡아봐. 저렇게 쓸모없는 동태 눈깔은 뽑아버려야지."
민수의 명령에 부하 둘이 족제비의 양어깨를 붙들었다. 체구가 작은 족제비는 꼼짝도 못 하고 결박되었다.
"눈깔을 뭘로 후벼파야 한 번에 뺄 수 있을까?"
"혀, 형님 제, 제발!"
"누구 사시미 가진 것 없냐?"
담담히 말하는 민수의 목소리에 주변에 있던 조폭들도 다들 경직되고 말았다. 사시미로 눈알을 파낸다는 소리에 족제비가 오열하며 사정했다.
"하,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요!"
"한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세 번도 되는 거야."
"그, 그치만!"
"야! 사시미 가져오라니까!"
민수의 성화에 옆에 있던 부하가 품속에서 긴 회칼을 건넸다. 그는 칼을 건네면서도 멈칫멈칫 망설였다.
"혀, 형님, 다른 애들도 다 보고 있는데 이건···."
"보고 있으니까 더 해야지. 이런 쉬운 일도 제대로 못 해내는 놈을 어디에 쓰겠어?"
민수가 사시미를 역수로 잡더니 족제비의 눈을 향해 빠르게 찔렀다.
"아악!"
그러나 그의 칼끝은 정확히 눈동자 앞에서 멈춰섰다.
"눈 떠 새끼야."
하마터면 실명할 뻔한 족제비가 부들부들 떨면서 말했다.
"가, 감사합니다. 형님, 정말 감사합니다!"
"너 이 새끼. 그 눈깔 나한테 맡겨 놓은 줄 알아."
"네, 넵!"
민수가 귀찮다는 듯 사시미를 바닥으로 내던졌다.
콘크리트 바닥에 쨍그랑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거, 진짜 성가신 놈이네. 학교가 어디라고?"
"구, 국성 대학굡니다."
"내일 별일 없으니 혼자 다녀온다."
"형님, 그래도 애들이라도···."
"야, 깍두기."
"네, 형님."
"내가 지금 대학생 하나 손보러 가는데 덩어리들 주렁주렁 매달고 가야겠냐?"
"아닙니다."
"좋은 말로 타이르려고 했더니, 꼭 직접 손이 가게 만들어요."
고개를 좌우로 까딱거리는 민수의 모습에 부하들은 이제 도훈이 반쯤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의 잔인한 손속을 생각할 때 어디 하나 병신이 되기 전까진 그치지 않을 것이다.
< 682. 중수의 자격-11-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