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7. 아이돌 vs 돌아이-40- >
***
은주와 오붓한 시간을 보낸 뒤 도서관으로 이동했다.
오후 수업이 공강인 관계로 복습을 위해서였다.
‘정액엔 해로운 성분이 들어 있는 게 확실해.’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한 발 뽑고 나니까 이렇게 머리가 상쾌하잖아. 살짝 나른하긴 해도, 훨씬 잡념이 덜 생기는 기분이랄까?’
[그거야 주인님이 유독 성욕이 넘치시니 그런 거겠죠.]
‘내가 성욕이 넘쳐?’
로시의 말에 곰곰이 생각했다.
전생의 나는 섹스리스였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고 결혼한 지 3년쯤 지나자 섹스에 대한 욕구가 꺼진 불씨처럼 사그라들었다. 어차피 나 말고 다른 남자가 있었던 아내는, 딱히 나를 통해 성욕을 풀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결혼 전, 정확히는 20대 때는 확실히 성욕이 강했다. 그보다 전 고등학생 시기엔 늘 딸딸이를 치지 않으면 못 참을 정도로 욕구가 왕성한 편이었다.
‘가만. 이쯤에서 궁금해지는데? 나의 성욕은 이도훈 육체의 것이야, 아니면 이정우의 영혼에서 비롯된 산물이야?’
[영혼과 육체에 관계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모든 것은 연관되어 있다라고 밖에 말할 수 없겠군요.]
‘그게 무슨 소리야?’
[강한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기도 하지만, 육체의 상태를 정신이 따라가기도 한다는 것이죠. 어느 것에 종속된다는 논리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관계라는 의밉니다.]
‘그러니까 지금의 이 왕성한 성욕은 이도훈의 젊은 육체와 나의 영혼이 시너지를 일으킨 결과라는 건가?’
[아무래도 그렇게 봐야겠죠?]
‘하지만 고딩때도 이렇게 심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부인과 섹스리스 문제도 있었지만, 솔직히 40대에 이르렀을 땐 잦이가 잘 서지도 않았다. 인터넷 댓글에 달리는 "아재, 꼬추서요?"라는 농담이, 농담처럼만 들리지 않게 된 것이다.
[주인님도 저번에 그러셨잖습니까? 남자는 숟가락 들 힘만 있어도 발기될 수 있다면서.]
‘음, 틀린 말은 아니지.’
전생에서 발기가 잘 안 되었던 이유는 육체의 노화와 호르몬의 변화, 게다가 나에게는 절대 안주면서 남들에게만 잘 대주는 못 된 와이프 영향 탓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환경이 바뀌고 육체가 변하고, 어린 여자아이들과 자주 어울리게 되면서 잠재되었던 성욕을 되찾게 된 것은 아닐까?
뭐, 기왕 ‘섹서’ 클래스가 된 김에 성욕이 강해진 건 나쁜 일이라고 볼 순 없다. 뼛속까지 정액으로 가득 차 짐승처럼 행동하면야 문제가 되겠지만, 나에겐 20대의 혈기를 조절할 수 있는 40년이란 관록이 있다.
중년의 지혜에 젊은이의 싱싱한 육체가 결합 되는 것만큼 무서운 것은 없으니까.
‘잡생각은 이쯤하고 이번 주 공부한 거 복습이나 해야지.’
오랜만에 초집중 모드로 공부를 마치니 2시간이 훌쩍 지났다. 다소 여유가 생긴 나는 도서관에 앉아 오늘의 일정을 대비했다.
‘로시, 남은 일이 뭐지?’
[초대남 이벤트 참석과 아이돌 그룹 큐티의 데뷔 무대가 있습니다. 양자 택일을 하셔야 될 상황이군요.]
‘초대남은 남은 기간이 빠듯하니 어떻게든 오늘 가야해. 큐티의 데뷔 무대 참석은 아쉽지만 포기하는 수밖에.’
안 그래도 열심히 공부 중 제희에게 깨톡 연락이 왔었다.
오늘 7시에 생방 찍는데 떨려 죽겠다면서. 은연중에 무대를 보러 와주길 바라는 눈치였다.
가족이나 친구에 한해선 방청석 자리가 제공 된다던가?
[아쉽군요. 오늘 눈도장을 확실히 찍어 놓으면 남은 멤버인 링링 양과 미소 양의 공략에 도움이 될텐데요.]
‘나도 그 생각을 안 한 건 아닌데, 어차피 오늘 데뷔 끝나고 나면 축하파티로 정신없을 거야. 소속사 대표부터 매니저들, 방송 스텝까지 모두 모인 자리에서 기회를 노리기도 쉽지 않을 거고. 차라리 나중에 다시 기회를 잡는 편이 나아.’
[그렇게 생각하면 또 그렇군요.]
‘일단 초대남부터 대비하자. 오늘 미션 끝내야지.’
나는 태영이 일러준 말을 떠올렸다.
-운 좋게 초대에 나가면 호스트들이 신분증 같은 걸 요구하기도 한대요. 자기들도 정체가 드러나면 괜히 찝찝하니까 보험을 걸어두는 거랄까?
‘신분증이라···.’
지갑을 뒤지니 주민등록증과 학생증이 보였다.
나는 민증을 가방 안쪽에 깊숙이 숨긴 뒤 학생증을 책상위로 놓았다.
‘근데 신원이 노출되면 나도 위험한 거 아닐까? 간통죄가 없어졌으니 초대남 자체가 범죄는 아니지만, 괜히 잘못 엮었다가 들통나기라도 하는 날엔···.’
호스트빠 알바처럼 초대남 역시 사회적으로 지탄받기 충분하다. 이건 성적인 자유를 훨씬 벗어난 일탈이니까.
[아무대로 그렇겠죠. 교사가 될 대학생이 초대남을 참석하다니···. 찝찝하시면 미션을 포기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아니야. 방법이 없으면 궁리를 해봐야지. 로시, 혹시 신분증을 위조해 주는 아이템은 없을까?’
[위조라고요?]
‘응. 왠지 그런 물건도 있을 것 같은데?’
천상계의 기술력으로 불가능한 것은 없다.
단지 비용이 문제일 뿐.
로시가 잠시 기다려보라고 하더니 마켓을 검색한 결과를 내놓았다.
[오, 있습니다. 신분증 생성기라고 간단한 스캔과 조작을 통해 보유한 신분증을 원하는 신분증으로 교체 가능합니다.]
‘그래? 얼만데?’
[가격은 좀 나갑니다. 3,500포인트 군요.]
‘흐음. 적진 않군.’
일회용으로 쓰긴 값이 제법 나가는 편이다.
앞으로 다시 쓸 일이 없다면 괜히 미션 하나를 위해 3,500 포인트를 지르는 셈이니.
고민을 거듭 끝에 구매를 결정했다.
‘나중에 분명 또 쓸 일이 있겠지. 구매해.’
[넵.]
잠시 후 전송 위치로 지정된 가방에서 편의점에서 쓰는 바코드 스캐너 형태의 장치가 나왔다.
로시가 사용법을 설명했다.
[해당 장치로 신분증을 스캔하면 워치 디스플레이에 변경 가능한 부분이 생성됩니다. 수정을 마친 뒤 재스캔해서 새로운 정보를 위에 덧씌우는 방식이지요.]
‘설명만 들어도 신기한데?’
로시 말대로 스캔을 하자 기계에서 붉은 가로 선이 생성되며 학생증을 전체를 쓱 한번 훑고 지나갔다. 그리고 연동된 스마트 워치에 학생증이 떠오르며 변경 영역이 표시되었다. 천상계 아이템들은 블루투스가 기본인걸까?
‘오오. 학교, 학번, 이름, 전공까지 싹 다 수정이 가능하네?’
[네. 사진 역시 변경할 수 있지만 다른 사진을 미리 준비하셔야 합니다.]
‘됐어, 이도훈 군 입대 전 사진이긴 한데 지금이랑 얼추 비슷하니까 그대로 두어도 될 것 같아.’
나는 조작을 통해 학교와 학번 이름 전공을 모두 수정했다.
대학은 너무 튀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이름이 있는 인 서울권 대학으로, 전공은 무난하게 사회체육, 학번은 지금보다 두 살 더 많도록 위로 올렸다. 너무 어린것보단 차라리 나이들어 보이는 게 낫을 것 같았다.
‘이름은 뭐로 하지?’
[주인님 전용 가명이 있잖습니까.]
‘이정우?’
[네.]
‘아, 이걸 미리 알았으면 호빠 면접 볼 때도 위조 신분증을 쓸 걸 그랬어.’
[아니죠. 그땐 박미영 팀장에게 운전면허증을 제출해야 했으니 통하지 않았을 겁니다. 차량 등록 시 위조된 신분증을 제시할 순 없으니까요.]
‘아, 그건 공문서위조가 되는 구나.’
어쨌든 이걸로 전혀 새로운 인물이 탄생했다.
중심대 사회체육학과 15학번 이정우.
사진에 내 얼굴이 떡 하고 박혀 있으니 설마 위조되었다고는 생각하지 못하겠지. 변경사항을 저장하고 신분증을 재스캔했다.
붉은 가로 선이 아까보다 느릿하게 지나가며 기존 학생증 위에 플라스틱 문구들을 하나씩 바꾸어갔다. 뭔가 타들어 가는 것처럼 연기가 피어오르는 바람에 황급히 몸으로 가려야 했다.
‘근데 어떤 기술인 거야?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대충 설명하자면 최첨단 3D나노 인쇄 기술입니다. 입자를 미세하게 쌓아 표면 위에 적축을 하는 방식이죠.]
‘적축이라면 위에 덧씌웠다는 소린가?’
[네, 하지만 인간의 촉감으로는 덧씌워진 부분을 감지해 낼 수 없습니다. 매우 가는 입자를 이용하니까요. 마이크로 나노정도?]
인쇄가 끝나자 새로운 학생증이 나왔다.
외관 디자인 역시 중심대학교에서 쓰는 양식으로 바뀌었다. 디폴트로 저장된 배경이 자동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로시 말대로 표면을 만져보아도 꺼끌거리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와 대박. 이거 잘하면 하버드 학생증도 위조할 수 있는 거 아니냐?’
[물론 가능합니다. 전 세계 모든 나라의 양식이 저장되어 있으니까요. 원하는 모든 신분증을 위조할 수 있죠.]
‘이걸로 신분증 장사하면 초대박아냐?’
[알다시피 불법적인 일에 사용하면 당연히 탈이 납니다. 해당 아이템은 첩보 활동을 주로 하는 플레이어들을 위해 준비된 제품이지요.]
‘하긴-. 신께선 불법을 좋아하지 않으시니까.’
[어쨌든 위조된 신분증도 얻으셨으니 슬슬 모임에 참가해야 하지 않을까요? 남은 시간이 빠듯합니다.]
시간을 보자 약속까지 1시간 남아있었다. 경기도 외곽까지 달려가야 했기에 서둘러 짐을 챙겼다.
‘좀 밟아야 겠네.’
***
도훈은 약속 장소로 향하며 어제 인스타로 연락하던 사람에게 쪽지를 남겼다.
-PlayerD : 7시까지 가면 되죠?
-원할머님보고쌈 : 네. 오시면 쪽지 주세요.
-PlayerD : 혹시 다른 분도 부르셨나요?
-원할머님보고쌈 : 한 분만 더 오실 거예요. 다른 분은 30분 전 갑자기 파토를 내가지고···. 참, 그리고 아는 형님네 부부도 나중에 참석하기로 했어요.
‘그렇다면 부부 두 쌍에 초대남 둘까지 모두 6명인 셈인가? 남자 넷이서 여자 둘을 돌려먹는다고?’
도훈은 저녁에 벌어질 광란의 파티를 떠올리며 살짝 역겨운 생각이 들었다. 그는 여자가 여럿인 것은 좋아해도 남자가 여럿인 섹스는 영 내키지 않았다. 특히 이 경우는 성비가 맞지 않아 남자 둘에 여자 하나를 나누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니야. 이건 미션이야. 미션은 플레이어의 일이고. 사람이 맨날 하고 싶은 것만 살 순 없으니까.’
오전에 손 교수와 섹스를 했기 때문에 일로서의 섹스도 겸허히 받아들이는 도훈이었다.
-PlayerD : 늦지 않게 참석할게요.
-원할머님보고쌈 : 네. 조심히 오세요.
도훈이 약속 장소로 달려갔다.
약속한 장소는 동네 소박한 호프집이었다.
네비에도 상호가 뜨지 않아, 주소를 받고 직접 간판을 찾아야만 했다.
"저긴가?"
도훈은 추리닝에 모자를 눌러 쓴 채였지만, 워낙에 몸이 좋아 동네 백수보단 피트니스 강사 같은 느낌을 풍겼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초저녁이라 손님이 드문드문 앉아 있었다. 도훈은 남자 둘에 여자 한 명이 앉은 테이블에 주목했다.
‘저 사람들이구나. 근데 다른 초대남이 먼저 왔나 본데?’
"몇 분이신가요?"
"일행이 있습니다."
"아, 네."
도훈은 폰을 꺼내 쪽지를 보냈다.
잠시 후 등 돌려 앉아 있던 사람이 벌떡 일어서더니 도훈을 향해 손짓했다.
"이쪽이요."
"네."
처음 보는 사이지만 일부러 친근한 척을 했다.
"와, 사진보다 몸 좋으시다."
원할머니보고쌈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말했다. 안경을 쓴 그는 전형적인 회사원처럼 보였다. 도훈이 꾸벅 인사를 하며 자리에 앉았다. 맞은편으로 이번 이벤트의 메인인 유부녀가 보였다.
그녀는 부끄러운 듯 시선을 회피하며 가볍게 고개를 까딱였다.
"제가 좀 늦었나요?"
"아니에요. 저희도 방금 들어왔어요. 사장님, 여기 생맥 500 한잔 추가요."
도훈이 보니 테이블 위엔 손가락 과자 하나만 덩그러니 나와있었다. 방금 들어왔다는 말이 사실인 것 같았다.
"그럼 다 오셨으니 대충 소개라도 할까요?"
"형님네 부부도 오신다지 않았어요?"
"아, 장사 하시는데 일이 늦게 끝나서 늦게나 합석하실 거에요."
"아, 네."
원할머니가 도훈보다 먼저 온 초대남을 소개했다.
"닉네임이 수원성 맞죠?"
"예, 뭐···."
수원성이라 불린 남자는 30대 초반처럼 보였다. 지저분한 수염에 강인한 인상이 느껴지는 사내였다. 손에 박힌 굳은살이 육체노동을 업으로 삼은 사람 같았다. 까맣게 탄 얼굴이 다부지면서도 단단한 돌쇠를 연상케 했다.
이번엔 그가 도훈을 소개했다.
"플레이어디님은 대학생이라고."
"네, 맞습니다."
"이쪽이 제 와이프에요. 낯가림이 심한 편이라 초면에 말수가 없는 점 양해해 주세요."
소개를 받은 와이프가 수줍게 자기소개를 했다.
"안녕하세요. 환희라고 해요."
"피부도 곱네 처자가, 쩝."
수원성이 노골적으로 환희를 쳐다보았다.
아까부터 입술을 씰룩거리는 게 당장이라도 덮치고 싶어 하는 기색이다.
도훈은 그를 쳐다보며 쯧쯧 혀를 찼다.
‘이래서 초대남이 도박이라니까? 어중이떠중이 다 모여드는 판국에 뭘 믿고 자기 와이프를···.’
그러나 정작 신기한 건 환희의 반응이었다.
초면부터 드러내놓고 음심 가득 눈빛을 보내는데도, 수원성을 향해 슬며시 웃어 보인 것이었다.
‘어랍쇼? 뭐지 저 반응?’
"톡으로 말해서 아시겠지만, 와이프가 워낙에 대물을 좋아해요. 지원하신 분들 중에선 두분이 가장 훌륭했구요."
‘뭐라고? 저 산적 같은 새끼가 대물이라고?’
도훈과 수원성이라는 사내는 서로를 쳐다보며 눈빛을 교환했다. 다들 큰 물건에 자부심을 갖고 있어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라이벌 의식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때 종업원이 양손에 맥주를 들고 오는 바람에 대화가 중단되었다.
"맥주 왔습니다."
"네, 여기 주세요."
종업원이 정신없이 생맥잔을 차리는 사이 도훈은 환희라고 불리는 여자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아무리 봐도 평범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그러나 어제 사진에서 봤을 땐 몸매도 새끈하고, 쓰리썸을 펼치는 데도 주저함이 없었다.
도훈은 문득 그녀가 궁금해졌다.
‘로시. 저 여자 정보창 띄워봐.’
[네. 주인님.]
< 647. 아이돌 vs 돌아이-40-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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