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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657화 (630/2,000)

< 639. 아이돌 vs 돌아이-32- >

정 마담이 콧방귀를 꼈다.

"그럼 사람이 겉모습 보고 판단하지 속마음 보고 판단하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하고 있어?"

"제가 잠깐 안면 마비가 와서 얼굴이 좀 삐뚤어졌지만, 본래부터 이 얼굴은 아닙니다."

"안면 마비라니?"

"구안와사라고도 하는데, 자고 일어났더니 갑자기 신경이 뒤틀려 조금 이상해진 것뿐이라고요."

"흠···."

정마담은 도훈의 말이 사실인지 긴가민가했다. 하긴 입매가 위로 비틀어진 게 일부러 저렇게 만들기도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박 팀장이 직접 봤으니까 진위 여부는 금방 확인할 수 있는데···.’

"여튼, 구안와사건 뭐건 그 몰골로는 이 일 못 해. 날 너무 냉정하다고 생각하지 마. 이쪽 일이 원래 그런 식이니까."

"무슨 말인 줄 알아요. 그러잖아도 걱정 되서 오전에 병원에 찾아갔더니 의사 말이 피로가 쌓여 생긴 일시적인 증상이라고 했어요. 치료받고 나면 원상태로 회복될 수 있습니다. 어차피 저도 당장 일을 시작할 입장도 아니니까."

정마담이 곰곰이 생각해 보니 도훈의 말이 사실이라면 전혀 손해 볼 게 없는 장사였다. 또 편견을 걷고 곰곰이 살피자 도훈의 얼굴이 조금은 달라 보였다.

‘진짜일까?’

정마담의 닫혀 있던 마음이 살짝 흔들렸다.

"너 입술 한 번 가려볼래?"

"네."

도훈이 마스크를 쓰듯 손으로 입을 가렸다.

"왼쪽 눈도 가리고."

"네."

이번엔 남은 손으로 왼 눈도 가렸다.

비틀어진 입매와 짝눈이 된 한쪽 눈을 감추자 오뚝한 콧날을 가진 잘생긴 청년이 인상이 들어왔다. 만약 저 뒤틀림이 일시적 마비 증상 때문이라면, 본래 얼굴은 지금 봤듯이 상당한 미남이라는 소리였다.

정마담이 흐트러진 자세를 고쳐 앉았다.

판단을 보류해야할 시점이었다.

"너 사진 가진 거 있니?"

"사진요?"

"폰에 셀카 있을 거 아냐. 보여 줘봐. 진짠지 확인하게."

"아, 잠시만요."

도훈은 평소 사진을 자주 찍는 편은 아니었지만, 최근에 설수지와 소개팅을 한답시고 몇 번 인증사진을 찍은 기억이 떠올랐다.

도훈이 폰에서 사진을 찾아 건넸다. 정마담이 폰에 담긴 도훈의 얼굴을 확대하더니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뭐야? 여긴 또 엄청 멀쩡하잖아? 저 얼굴이 원래 얼굴이라고?’

정마담은 황당한 마음에 추남이 된 도훈의 얼굴과 사진 속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웠지만, 사진 속의 인물과 동일인임은 확실했다.

"세상에. 너 대체 하룻밤 새 무슨 일이···."

"저도 많이 놀랐어요. 근데 의사 말이 젊은 사람도 가끔 안면 마비가 올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도훈이 다시 폰을 받아들며 대답했다.

어느새 여유를 찾은 목소리였다.

정마담은 사태의 내막을 알게 되자 불쑥 자기가 도훈에게 너무 매몰차게 대한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헛, 이런 사정이 있었을 줄이야! 하긴 미영이 그놈이 아무리 막장이라도, 뽕이나 맞고 그럴 애는 절대 아니지···. 내가 너무 성급하게 판단했구나.’

"좋아. 다시 앉아봐."

"네."

[주인님. 어쩌시려고요?]

‘본래 이런 식으로 추남이 될 의도는 아니었잖아. 아는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살짝 바꾸려고만 한 거지. 게다가 정 마담은 본래부터 박미영과 친한 사이였어. 내 얼굴이 지금 이 얼굴이라고 한다면 오히려 박미영 쪽에서 날 이상하게 생각할 거야. 정마

담은 지금 당장 전화해서 따질 기세고.’

[하긴 그것도 그렇군요.]

‘일단 조건을 충족시켜 미션은 받아 냈으니, 다음에 필요할 때 이 얼굴로 변신해서 해결하면 돼. 기회는 언제든 잡을 수 있으니까.’

[오호, 그런 방법이!]

"···아깐 내가 좀 말이 심했지?"

"괜찮습니다. 저도 아침에 거울 보고 깜짝 놀랐는데, 다른 사람들은 오죽했을까요. 창피해서 오늘은 학교도 마스크 쓰고 갔잖아요, 이 더운 날씨에."

"학교! 참 방학이 언제랬지? 일은 그럼 언제부터 시작할 수 있는 데?"

"기말고사까지 아직 한 달 정도 남았어요. 끝나는 데로 바로 할 수 있고요."

"얼굴 원상태로 회복하는 데는?"

"의사 소견으론 길어야 일이주 정도? 젊고 건강하니까 금방 괜찮아질 거라면서."

정마담이 빠르게 주판을 두들겼다.

가게엔 당장 에이스가 필요한 상황.

에이스가 없으니 매상이 줄고, 매상이 줄수록 능력 있는 선수들이 조금씩 유출되고 있었다. 일이 특성상 젊고 잘나갈 때 바짝 벌어 일찍 은퇴하려는 기류 때문에 망조가 든 가게에 충성심을 갖고 버티는 선수는 드물었다. 도훈이 일을 시작한다는 한 달 사이 상

황이 악화될 건 불모듯 뻔했다.

‘한 달은 너무 길어. 그리고 대학생이라서 이쪽 일을 못 한 다니, 말이 되는 소리야?’

호빠 선수 중 대학생이 없는 것도 아니다. 직업여성들을 포함한다면 주말 알바 식으로 치고 빠지는 여대생이 부지기수다.

"가게 사정상 한 달 간 빈자릴 놀릴 순 없어.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 얼굴이 회복되는 데로 2주 뒤부터 주말에 한 번씩 출전해 보는 거야. 솔직히 나야 미영이 말 듣고 자리를 내준 상황이지만, 이쪽 일이 적성이 맞는지도 한 번 확인해 봐야지 않겠어?"

정마담이 절충안을 제시했다. 2주 뒤에 일을 시작하되 주말에만 잠깐 나오라는 것이었다. 도훈 역시 조건을 따졌다.

‘음, 나쁘지 않군. 어차피 이번 일은 미션만 성공시키면 되는 거니, 굳이 방학 내내 붙잡힐 필요도 없고. 2주내로 걸그룹 미션도 종료되면 타이밍 상 딱 떨어지기도 하고.’

"알겠습니다. 그 정도는 괜찮을 것 같습니다."

"좋아. 그러고 보니 우리 아직 통성명도 못 했구나. 반가워, 난 정유미라고 해. 보통 정마담이라 부르는데, 자긴 우리 직원 될 사람이니 사장님이라 부르면 돼."

"네, 사장님. 이도훈입니다."

"너 이름부터 바꾸자."

"네?"

"여기서 실명 쓰는 애들 하나도 없어. 현빈, 원빈··· 막 이런 이름들 있잖아. 괜찮은 이름으로."

"아···네."

정마담은 도훈을 보더니 호빠 선수로 쓸 가명을 제안했다.

"서준이 어때?"

"서준이요?"

"성이 이씨니까 이서준. 이게 더 낫지 않아? 아니면 태민. 그것도 괜찮고."

도훈은 남이 지어준 이름이 썩 와닿지 않았다.

애초에 지금 가진 이름부터가 남의 이름이나 마찬가지지만.

"···정우는 어떤가요?"

"정우?"

정마담이 또렷한 발성으로 이름을 읊조렸다.

"네, 이정우."

"이정우. 느낌 있다. 약간 공부 잘하는 범생이 같긴 하지만···."

이정우는 이도훈이 죽기 전 40년 넘게 함께 했던 이름이었다. 이제는 잊힌 이름이지만, 이렇게나마 부활시키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그래, 이정우로 가자. 넌 이제부터 여기서 그 이름만 쓰는 거야. 알겠니?"

"네."

"그리고 저기···."

정마담은 소파 밑에 준비한 가방의 손잡이 잡았다가 다시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가만. 저런 몰골에 선금으로 삼천을 땡겨 주는 건 완전 미친짓 이잖아?’

물론 도훈의 얼굴이 일시적 마비 탓이라는 걸 듣긴 했지만, 막상 눈앞에서 마주하고 있으니 여전히 찜찜한 마음이 남은 정마담이었다. 계약금 조로 주려고 했던 삼천을 고스란히 안기기엔 아직 미심쩍은 구석이 많았다.

정마담은 조심스레 가방 지퍼를 열더니 손에 잡히는 뭉텅이 하나를 쓱 꺼내 내밀었다. 종이 끈으로 정갈하게 묶인 100만원 다발이었다.

"다음에 나올 때 이걸로 옷이라도 한 벌 해 입고 와."

"이게 뭐죠?"

"공짜로 주는 거 아니니까 너무 좋아하지마. 일단 월급 선금으로 땡겨 줬다고 생각하고. 아까 문 앞에서 김상무 만났지?"

"네."

"김상무 만큼은 아니더라도 정장으로 쫙 빼입고 출근해. 그게 여길 찾는 손님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돈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여긴 최저 시급 그딴 거 없어."

"조건이 어떻게 되나요?"

"기본급은 한 달에 50. 지방에서 올라왔으면 숙식은 제공해줘. 대신 기본급에서 30까고."

"아···."

너무도 형편없는 조건이었다.

염전 노예나 새우잡이도 이렇게는 안 시킬 것 같았다. 인신을 구속해 놓고 한 달에 30만원씩 월급 주는 악덕업체라니.

도훈이 뜨악해하자 정마담이 덧붙였다.

"대신 너처럼 서울에 집이 있으면 출퇴근해도 돼."

"네."

"그리고 기본급이 적은 이유를 알려줄게. 우리 가게에서 출근하는 선수 숫자가 50명이 넘어. 그런 애들 서울에 방 잡고 숙식까지 제공하면 한 달에 얼마씩 들겄같니?"

도훈이 빠르게 계산했다.

기본급만 모두 줘도 달에 1200.

인해 전술을 펼치는 데 들어가는 인건비가 상상 이상이었다.

"내가 아까 너한테 심하게 대했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야. 괜히 여자랑 술 마시고 재미도 본답시고 어중이떠중이들 몰려와 봐야, 허송세월만 하고 도망치는 애들이 부지기수거든. 괜한 시간 낭비 말라 이거지."

"네."

"그리고 모든 일이든 다 그렇겠지만 이 바닥은 철저한 비즈니스야. 남자들은 잘 가꿔진 상품이어야 하고, 여자들은 돈 쓰고 남잘 만나는 거니만큼 꼼꼼하게 상품을 뜯어보지. 잘 버는 선수들은 달에 몇천씩 땡기고, 못 버는 애들은 죽어라 들러리만 서는 거라고."

"무슨 말인지 이해했어요."

"그래도 너는 대학까지 다녀서 그런지 말귀가 다 통하는 편이구나."

"대학교 안나온 사람도 있어요?"

도훈이 되묻자 정마담이 만난지 처음으로 피식 웃었다.

"웃기는 질문이네. 화류계 쪽에서 대학물 먹었으면 인텔리야, 얘. 뭐 텐프로 이쪽으로 가면 스펙 짱짱한 애들도 많은데, 멀쩡한 정신으로 이 일 하는 애들 거의 없어. 너도 각오 제대로 하고 와. 별의별 막장 인생들 구경하게 될 테니까."

"네."

"그래. 어느 정도 얘긴 다 끝난 거 같고. 그럼 이주 뒤에 보는 걸로 하자."

"네, 이만 가보겠습니다."

도훈이 꾸벅 인사를 하고 룸을 나가려는데 정마담이 뭔가 생각난 것처럼 물었다.

"참, 정우야."

"네?"

"미영이랑은 재미 좋았니?"

"아, 박 팀장님요?"

"친한 동생이긴 한데 걔가 좀 끈질길 텐데···."

정마담이 뭔가를 아는 사람처럼 이죽거렸다. 예전에 가게에 있던 선수와 긴 밤을 보내게 한 다음 날, 선수들이 하나 같이 앓는 소리를 했던 것이 떠올랐던 것이다.

"면접이래서 확실하게 보여 드렸어요. 제 입으로 말하긴 쑥쓰러우니 박팀장님에게 직접 확인하시는 게 좋겠어요."

‘흐흐. 이미 들었지. 듣던 대로 굉장한 자신감이구나. 하긴 얼굴 좀 못나면 어때. 그거 하난 끝내주는 아인데.’

"알았어. 그럼 가봐."

"네."

***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오랜만에 차가 생기니 아직은 어색한 느낌이다.

‘휴, 하마터면 일도 못 해보고 쫓겨날 뻔했네.’

[얼굴이 그리 변했으니 어쩔 수 없지요.]

룸미러를 힐끔거리며 변해버린 얼굴을 확인했다. 처음보단 익숙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끔찍한 몰골이다. 분명 똑같은 얼굴인데 근육 몇 개 뒤틀렸다고 이렇게 다른 인상을 주다니.

‘캬, 이렇게 보니 정말 못나긴 했구나. 이런 와꾸로 호빠 선수가 되겠다고 달려 들으니 얼마나 어이가 없었겠어?’

[그러니까요. 당연한 반응입니다.]

‘어쨌든 덕분에 미션 하나 챙겼으니 전화위복인 셈이야. 나중에 역용 마스크 쓸 때는 최대한 잘 다듬는 수밖에. 근데 이거 언제 풀리지?’

[지속시간은 총 10시간입니다. 현재 7시간 좀 안되게 남았구요.]

‘으. 이딴 면상으로는 아는 여자애들도 못 보겠네.’

[오랜만에 집에서 푹 쉬시는 건 어떻습니까?]

‘그래. 간만에 포인트 정리 좀 하자. 스킬 레벨도 올리고.’

그때 차에 연결된 블루투스로 전화가 걸려왔다.

네비에 뜬 이름을 보니 아까 급하게 끊었던 나예림이었다.

그녀에겐 여전히 부채의식이 있었으므로 매몰차게 전화를 끊은 것이 미안했다.

"여보세요?"

-야! 이도훈! 너 이딴 식으로 나왔다 이거지?

"예림이니? 미안. 아깐 좀 사정이 있어서."

-사정? 무슨 사정? 여자만나서 사정이나 하고 있었겠지.

"왜 그렇게 까칠해?"

-약속이 다르잖아, 약속이! 나 다이어트 언제 시켜줄 건데!

예림은 완전히 흥분한 상태였다.

내내 연락도 없다가 전화까지 일방적으로 끊어버리자 뚜껑이 완전 열린 모양이다.

‘어우씨, 나는 지 때문에 인생 일대의 굴욕을 당하고 왔구만 알지도 못하면서.’

"미안. 좀 바빴어."

-바쁘시겠지. 여자 만나느라. 야, 내가 언제 너 보고 여자 만나지 말래니? 사람이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 할 거 아니야?

"알았어. 그럼 내일 보자."

-안돼. 지금 당장 봐. 내일 보자면서 또 약속 어기려고?

"아니야. 내가 정말 오늘은 피치 못 할···"

-됐고. 난 분명 오늘 보자고 했어.

어휴, 이 육덕같은게 고집은.

"할 일이 남아서 그래."

-그래. 그럼 할 일 끝나고 보면 되잖아. 새벽이라도 상관없다니까? 오늘은 꼭 만나야 겠어.

"새벽이라도?"

-왜? 이젠 새벽에도 일 있다고 하려고?

나는 차량의 시간을 확인했다.

7시 살짝 넘은 시간. 안면 근육의 마비가 풀려면 아직 6시간이 남아있었다.

"새벽 1시라도 괜찮아?"

-상관없다니까?

"부모님한테 혼나도 모른다?"

-신경 안 써. 나 오늘 진짜로 하고 싶단 말이야!

예림은 애원하듯 매달렸다.

온전히 내 탓은 아니겠지만, 그녀의 시련에 책임이 있는 나로서는 예림의 청을 더 이상 거절하기 어려웠다.

"알았어. 그럼 집 근처로 데리러 갈게."

-데리러? 무슨 소리야?

"나, 어제 차 뽑았거든."

< 639. 아이돌 vs 돌아이-32-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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