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656화 (629/2,000)

< 638. 아이돌 vs 돌아이-31- >

박팀장에게 미리 언질을 받은 터라 정마담은 나름 완벽한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화장에 잔뜩 힘을 주고, 향수도 진한 걸로 뿌렸다.

‘후후. 제깟 놈이 아무리 잘나 봐야 새파란 대학생일 뿐이지. 내가 첫사랑이랑 결혼해서 애를 낳았으면 너만한 자식이 있겠다.’

정마담이 도발적으로 다리를 꼬아 앉는 사이 문이 열리며 누군가 머리를 빼꼼 내밀었다.

"어서와요."

"저, 사장님··· 김상뭅니다."

"아니, 바로 들여 보래라니까 왜 김상무가 들어와?"

유혹의 자세를 취하고 있던 정마담은 뜨끔 하는 마음에 괜히 야단을 쳤다. 그의 충성심의 상당 부분이 자신을 향한 연정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게···."

김상무는 정마담의 꾸지람에도 아랑곳 않고 불쑥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평소답지 않은 행동에 정마담이 놀라 물었다.

"왜 그러는데? 무슨 일 있어?"

"직접 만나기 전에 사장님이 아셔야 할 것 같아서요."

"응?"

"박 팀장이 소개해 줬다는 친구가 왔는데···. 상태가 안 좋습니다."

"상태가 안 좋다니?"

"그게···."

김상무는 어찌 말해야 할지 고심했다.

사장은 간만에 ‘에이스’를 영입한다고 오전부터 들떠 있었다. 가게의 자금 흐름을 훤히 꿰뚫고 있는 그였기에, 사장의 기대가 충족되길 바랐다. 이대로라면 반년도 못가 가게를 접어야할 상황이었다.

‘아··· 사장님이 크게 실망하실 텐데···.’

정마담은 사장이기 전에 은인이었고, 은인이기에 앞서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였다. 비록 부하직원이라는 위치와 과거의 전적 때문에 감히 감정을 드러내진 못했지만, 그녀가 최근 들어 돈문제로 힘들어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뉴페이스에 대한 기대감은 엄청났다. 영입자금으로 현찰 삼천을 준비시킨 것은 분명 역대급 대우였다.

"얼른 말해봐요. 대체 무슨 일인데?"

"박 팀장이 사장님께 장난질을 친 것 같습니다."

"뭐라고?"

"도저히 호스빠에 어울리는 용모가 아닙니다."

"무슨 소리야? 나도 영상통화로 얼굴을 확인했는데?"

"정말 자세히 보셨습니까?"

김상무가 재차 묻자 정마담도 더는 강하게 나오지 못했다.

아무래도 카메라와 거리가 있었고, 통화하다 말고 느닷없이 영상으로 돌린 탓에 제대로 집중을 못했다. 이후 물건 크기는 똑똑히 확인했지만,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 말해보라면 한마디도 못 할 수준이었다.

"음···. 몸은 굉장히 좋았던 것 같은데···."

"그건 맞습니다. 학생처럼 단정하게 입고 왔는데도 근육질의 몸이 느껴지더군요. 하지만 도저히 용모가···."

"대체 어느 정도길래 그렇게 까지 말하는 거지?"

"아무튼 에이스라고 부르기엔 많이 부족합니다. 아무리 몸 좋고 능력이 뛰어나도 기본적인 얼굴이 안되면 버티기 힘든 게 이 바닥이 아닙니까?"

김상무도 지금은 은퇴했지만, 한 때 선수 생활을 했던 사람이다. 이 바닥의 생리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얼굴은 서류심사야. 와꾸에서 밀리면 실력을 발휘할 기회도 안 준다고.’

호스트빠에 놀러 온 여자들은 한 번에 초이스 하는 경우가 절대 없다.

이것은 마치 옷을 쇼핑하는 것과 비슷하다. 남자들이 대충  마음에 드는 옷을 골라 빠르게 쇼핑을 마친다면 여자들은 정 반대다. 하루 온종일 거닐며 매장을 다 들르고, 옷이란 옷은 모두 입어 본 뒤 최대한 신중히 결정한다. 심지어 가격만 묻고 안 사고 가는 경우도 많고, 정작 샀다가도 누군가에게 지적받으면 며칠 안 돼 환불 받는 사례도 부지기수다.

그렇게 까다로운 손님들이 오는 곳이 호빠일진데, 수십명의 선수 중에 얼굴이 심하게 딸린다? 그럼 애초부터 선택을 받을 확률이 극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간혹 특이 취향이 있어 뚱뚱한 타입이나 추남을 고르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정말이지 몇 년만에 한 번

있을만한 사건이다.

여자들도 남자 얼굴을 많이 보며, 특히 호빠에 돈 주고 남자랑 놀려고 오는 여자라면 최소한의 기본 베이스는 갖춰야 한다. 오전에 정다담이 면접을 본 세 사람만 해도 잘생겼다는 칭찬을 일주일에 한 번씩은 듣는 청년들이었다. 그런 그들마저 마음에 안 든다며 쫓아낸 정마담일 진데, 도훈의 얼굴을 보면 얼마나 실망할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김상무가 허튼소리를 하는 성격은 아니었기 때문에 사태가 이쯤되자 정마담도 슬슬 긴장하기 시작했다.

‘뭐야?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진짜 미영이 고년이 날 엿 먹인 거야?’

미영과는 벌써 5년째 알고 지낸 사이다.

바람기 다분한 유부녀와 결혼 못 한 골드미스의 조합은 의외로 죽이 잘 맞았다. 비즈니스적인 관계였지만, 적어도 생일날 안부를 묻고 소소한 선물이라도 보내는 둥 지금껏 큰 다툼없이 지내왔다. 서로가 서로를 필요하다고 느꼈고, 언제까지나 윈윈인 관계였

다.

‘근데 걔가 그렇게 눈이 낮은 애가 아닌데···.?’

자주 어울리다 보니 미영의 남자 취향에 대해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는 영계를 좋아하고, 그중에서도 잘생긴 영계를 좋아한다. 특히 잘생긴 영계가 밤일까지 잘한다면 정말 정말 좋아한다.

어제 전화를 통해 소개한 도훈은 딱 미영의 이상형의 사내였다. 통화 중에는 어떤 기만과 속임수도 느낄 수 없었다.

‘뭔가 이상해. 미영이 년이 약을 처 먹었든지, 그 사이 취향이 바뀐게 아니라면 말이지.’

고민은 짧고 행동은 빨랐다.

정마담이 굳은 표정으로 김상무에게 말했다.

"알겠으니까, 일단 들어오라고 해. 어쨌든 여기까지 불렀으니 내가 직접 보고 판단해야겠어."

"···알겠습니다."

김상무가 허리를 꾸벅 숙이며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문이 열리며 훤칠하게 키가 큰 젊은 남성이 들어왔다. 그리고 정마담은 속으로 저주를 퍼부었다.

‘박미영 이 미친년! 드디어 약까지 처 빨았구나!’

"······."

충격을 받은 정마담은 멀뚱히 서 있는 도훈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뻘쭘해진 도훈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 알바 구하러 온···."

"···꺼져."

"네?"

"당장 내 앞에서 꺼지라고 이 새끼야!"

다짜고짜 욕을 처먹은 도훈은 어이가 없었다.

안 그래도 가게 입구에서 자신을 맞이한 남자의 태도에 적잔히 화가 난 터였다. 제비처럼 말끔하게 생긴 청년은 노골적으로 자신을 훑어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던 것이다.

‘아으 씨, 진짜 아무리 얼굴이 바뀌었기로서니 내가 이런 대접을 받네?’

환생한 이후 최고로 굴욕적인 날이었다.

자존심이 상한 도훈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껍데기가 바뀌었어도, 여전히 그는 대물이었다. 남자라면 모를까 초면에 만난 여자에게 욕을 듣는 것은 자존심이 용납지 않았다.

"저기요."

"···?"

"오라고 한 건 그쪽인데, 이거 좀 심한 거 아니에요?"

"뭐 이새끼야?"

외모와 달리 평소 입이 걸걸한 정마담이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되받았다.

"아니 그렇잖아요. 내가 온다고 했어요? 바쁜 사람 불러놓고서 이게 뭐하는 겁니까?"

도훈의 당당한 태도에 정마담이 콧방귀를 뀌었다.

‘분수를 몰라도 유분수지 지금 어디서···.’

"하-. 진짜. 박미영 이 또라이 같은 년···. 그래 좋아. 거기 앉아."

정마담이 맞은 편 소파를 가리켰다. 도훈은 전혀 꿀릴 게 없었으므로 당당히 걸어가 앉았다.

"앉았어요."

"너 뭐하러 여기 왔니?"

"알바 구하러요."

"박팀장이 시키던?"

"네?"

"나 엿 먹여달라고 얼마에 사주받았냐고."

"지금 무슨 말씀인데요?"

"너 진짜 생각이 있는 얘니 없는 얘니? 그 몰골로 여기가 어디라고 찾아와? 여기 뭐하는 데는 줄은 아는 거지?"

거듭되는 폭언에 도훈도 점점 열이 받았다.

전생에도 외모에 대한 불이익을 경험했던 그였다.

그러나 그땐 키가 작다고 수군거리는 수준이었지, 이렇게 면전에 대고 초면부터 쌍욕을 날리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이도훈으로 다시 태어난 지 어느덧 반년에 접어든 그는, 어느새 잘생긴 훈남 이도훈 캐릭터에 흠뻑 빠진 상태였다. 그 동안 항상 미남에 대한 호의와 편의만 누리다가, 느닷없이 과거로 다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끽해야 포주 밖에 안 되는 년이 나를 개무시해? 진짜 이건 도저히 못 봐주겠는데?’

[어쩌시려고요?]

‘확 조져 버려야지.’

[참으십시오. 지금 주인님 얼굴이 말이 아닌 건 사실이니까요.]

‘아니 얼굴 좀 빻았다고 이렇게 사람 개무시해도 된다는 거야? 그리고 내가 뭐 화상이라도 입었어? 이거 어차피 시간 지면 원상복구 되는 거라고!’

[그걸 정마담이 모른다는 게 문제죠. 그리고 저는 이게 인과응보라고 생각합니다만···.]

‘뭐?’

[솔직히 양심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십시오. 주인님이 못 생긴 여자분들에게 평소 어떻게 대했습니까? 희주양만 해도 빻녀라고 놀렸던 게 주인님 아닙니까?]

‘아, 아니 그건···.’

[이제 좀 서러운 감정을 아시겠습니까?]

‘뭐야, 너 설마 일부러 부작용 말 안 한거야? 나보고 직접 느끼게 하려고?’

[그럴리가요? 하지만 잘 됐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주인님의 외모에 따른 차별이 사라진다면 남은 업적이나 미션을 달성하기도 훨씬 수월해 질테니까요.]

‘음···.’

도훈은 왠지 로시가 고의로 그랬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지만, 증거가 없으니 더 이상 따질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눈 앞의 정마담이 당장 한 대 치겠다는 듯 눈에 쌍심지를 켜고 자신을 노려보는 상황부터 해결해야 했다.

"잘 알아요. 남자 접대부들이 여자 손님들 즐겁게 해주는 곳이요."

"흥, 입은 삐뚤어 진 게 말은 잘하네."

실제로 도훈의 입술은 아까 역용술을 펼치던 도중 웃는 바람에 약간 비틀려 있는 상태였다. 코의 높이만 그대로지 눈매와 입술이 바뀌자, 사람이 한순간에 다른 사람처럼 변해 버렸다.

계속 무시를 받자 도훈도 점점 오기가 솟았다.

‘와, 진짜 이렇게 대놓고 무시 받는 것도 오랜만이네. 내가 이제껏 얼굴 빨로 편하게 여자를 꼬셔왔나 보구나.’

[당연하죠. 외모가 반이니까요. 아니, 어쩌면 외모 덕에 승승장구해 온 측면도 있을 겁니다.]

‘정말로? 그럼 내가 이제껏 펼친 섹스킬은 아무 소용 없었던 거야?’

[그것도 외모가 받쳐주니까 쉽게 먹혔겠죠. 어쨌든 육체적 만족과 더불어 정서적인 교감도 중요하니까요.]

‘이건 도저히 인정하기 힘든데? 내가 이 얼굴로 저 여자 따먹으면 어쩔 건데?’

[과연 그게 쉬울까요?]

‘왜? 내가 정말 못 할 까봐? 내가 이 얼굴로 여기 에이스 되면 어쩔 건데?’

[뭘 어쩝니까? 그거야 주인님 마음이지. 하지만 저는 되도록 주인님이 편하게 업적과 미션을 달성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굳이 쉬운 길을 놔두고 왜 험한길을 자처합니까?]

‘아니지. 그건 아니지. 이건 자존심의 문제야. 이도훈은 원래부터 이렇게 생긴 놈이었어. 하지만 다시 태어난 이후론 오롯이 내 능력으로 여자들을 따먹고 다닌 거잖아. 얼굴로 여자 꼬시는 거라면 원주인도 나처럼 여자들 많이 만나고 다녔어야지.’

[그거야 모를 일이죠. 군대를 막 전역한 어린 청년이지 않았습니까?]

‘와, 진짜 내가 못 할까 봐서?’

도훈이 한참 씩씩거릴 때였다.

갑자기 띠링- 하는 소리가 들렸다.

도훈과 로시는 동시에 소리쳤다.

‘미션이다!’

[미션입니다!]

-빻은 얼굴도 할 수 있어!

*부족한 외모로 여자를 공략해 내는 미션입니다.

*일시적이거나 항구적 손상으로 평소보다 외모 지수가 급감한 상태에서만 발동됩니다.

*빻은 상태로 처음 보는 여성 5명을 공략해야 완료됩니다.

*정신 조작류 스킬, 아이템을 이용시 자동으로 미션이 소거됩니다.

*성공 보상으로 '경매 낙찰권'과 10,000포인트가 주어집니다.

*제시된 시간을 초과하면 자동으로 미션이 소거됩니다.

*남은 시간 : 2 Month

‘억! 이게 뭐야?’

[오오, 히, 히든 미션이 발동되었습니다!]

‘히든 미션이라니?’

[말 그대로 히든입니다, 주인님! 굉장히 어려운 전제 조건들을 모두 맞추어야만 발동되는 희귀한 미션요!]

‘아니, 어떻게 발동된 거지?’

[아마 주인님의 외모 손상이 결정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와중에 정마담이 자존심을 건드리자 주인님이 반발감을 갖게 되면서 미션이 완성된 것 같습니다!]

‘히든 미션은 뭐가 다른데? 만 포인트?’

[그건 보너스일 뿐입니다. 저기 보이십니까? 경매 낙찰권?]

‘저게 뭐야?’

[바로 아이템 마켓에 올라오는 경매 아이템을 우선 낙찰 받을 수 있는 엄청난 쿠폰입니다. 경매까지 올라가는 아이템은 돈주고도 구할 수 없는 보구급 아이템 위주입니다. 장차 주인님의 호신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아이템을 구하실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오오! 대박이잖아? 전에 말했던 몇 만 짜리 아이템들 말이지?’

[그렇죠. 주인님이 가진 전 포인트를 모아서도 살 수 없는 아이템을 낙찰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이야! 그래서 히든이구나.’

[대상은 다섯이지만, 기간이 제법 넉넉합니다.]

‘두 달이면 충분하지. 아무리 빻았어도 여자 다섯을 못 넘길까? 무조건 수락해.’

[넵.]

미션을 받은 도훈은 다시 의욕적으로 바뀌었다. 방금전까지 오기로 정마담과 싸우던 것이었다면, 이제는 히든 미션을 완수하기 위해 그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해진 상황이었다.

‘좋아. 여기서 자존심 한 번 굽히자.’

"사장님. 겉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건 너무 성급한 태도가 아닐까요?"

도훈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 638. 아이돌 vs 돌아이-31-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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