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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655화 (628/2,000)

< 637. 아이돌 vs 돌아이-30- >

직감적으로 정마담임을 깨달은 도훈은 폰을 챙겨 인적이 없는 빈 강의동으로 들어갔다.

"전화 받았습니다."

-이도훈 군 번호 맞나요?

"네, 전데요."

-반가워요. 박팀장에게 소개받은 정수희라고 해요.

‘정마담이구나.’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도훈이 의자에 앉으며 본격적인 통화를 시작했다.

"네, 안녕하세요."

-일자리를 구한다고요?

"아···. 네, 뭐 그렇긴 한데 지금은 학기 중이라 아마 본격적인 시작은 방학 이후에나 가능할 것 같아요."

-방학이 언제죠?

"기말고사 끝나자 마자니까, 대충 한 달 뒤요."

-한 달? 그건 좀 곤란한데···.

도훈을 꼭 영입하고 싶은 정마담이었지만, 저자세로 나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화류계를 일을 업으로 삼다 보니 말할 때도 늘 주도권을 잡으려는 버릇이 있었다.

약할수록 강하게. 없을수록 있는 척.

허세라고 부를 수도 있지만, 사업하는 사람들이 무리해서 수입차를 끌며 비싼 동네에 주소지를 두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었다. 얕보이는 것보다, 차라리 있어 보이는 편이 훨씬 협상에 유리하기 때문.

"그래도 저한텐 수업이 더 중요하니까요."

-······.

문제는 도훈이 전혀 급할 게 없다는 점이었다.

사채를 당겨야 할 만큼 급전이 필요한 상황도 아니거니와, 미션이 발동해 꼭 수행해야 하는 업적이 걸린 것도 아니었다.

대학생치고는 실컷 쓰고도 남을만큼 자금에 여유가 있었고, 당장 처리해야 하는 일 역시 차고 넘쳤다.

걸그룹 공략처럼 시간이 한정된 것도 있었고, 학과 내에서 관리해야 할 여자들과 타과에 새로이 추가된 법대생 설수지라든가 수학과 오진아도 있었다. 게다가 며칠 전에는 오래전에 인연을 맺은 나예림의 다이어트도 시켜주기로 약조했다.

이처럼 산적한 과제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에, 도훈은 의도했건, 모르고 했건 정마담을 조바심 나게 만들었다.

정마담은 잠시 얼굴에서 핸드폰을 뗀 뒤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미영이 년이 설마 나한테 거짓말 한 거야? 차 사는 데 급전이 필요해서 당장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라지 않았나?’

마담은 뭔가 떠올랐는지 무릎을 딱 두드렸다.

‘맞네! 이년이 대물 맛을 보더니 사족을 못 쓰고 차를 헐값에 넘겨 버렸나 보네! 당장 차가 생겼으니 저 학생도 급하지 않게 된 거고.’

짐작으로 상황을 파악한 정마담이 자세를 고쳐 잡으며 다시 폰을 들었다.

상대가 갓 전역한 대학생이라기에 어리숙한 모습이 보이면 사정없이 후려칠 생각이었는데, 이제부터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가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었다.

"···그렇군요. 물론 대학생이니 수업이 더 중요하겠죠. 하지만 제 입장에선 얼굴도 잘 모르는 학생을 한 달씩이나 기다리면서 빈자릴 놔둘 수도 없는 노릇인데."

거짓말이었다.

가게에 일하는 호빠 선수만 다섯 박스다. 60명이 넘는 선수를 거느린 규모라면, 사람 한 두명이 많고 적고는 전혀 중요치 않았다. 그녀는 순전히 도훈을 끌어들이려 핑계를 대는 것 뿐이었다.

-그때 저랑 영상통화 하지 않으셨나요?

"했죠. 근데요?"

-얼굴은 그때 보셨던 것 같아서요.

"아, 화면이 흐릿해서 제대로 못 봤어요. 그리고 그때 박팀장한테 면접을 봤다는데, 나랑 박팀장은 언니 동생하는 사이일 뿐 이쪽 일과는 전혀 무관해요. 한마디로 박팀장이 오케이했다고, 이쪽에서 무조건 받아줄 순 없다는 거죠. 나도 나만의 채용기준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그럼 어떻게 하죠?

"학생이 수업 때문에 바쁘다니 당장 일을 시작하라곤 못 하겠네요. 그렇다고 빈자리를 계속 공석으로 놔둘 순 없는 노릇이니, 일단 믿고 써도 될 사람인지 얼굴 보고 얘기하는 건 어떨까요? 오늘 가능하겠어요?"

-오늘요?

"바쁘면 내가 근처로 가도 좋고. 어차피 우리 일은 밤이 시작이라 오후엔 한가하니까."

정마담을 말을 내뱉고 나서 후회했다.

마지막 말은 굳이 덧붙여도 되지 않은 사족이었다.

혹시나 도훈이 튕길까 조급한 마음에 이쪽에서 먼저 패를 까보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설마 눈치챈 건 아니겠지?’

하지만 통화를 나누던 도훈은 보통 눈치가 아니었다. 그는 곧바로 이번 협상의 주도권을 누가 쥐고 있는지 깨달았다.

‘후후-. 이것 봐라? 사장이 알바생을 찾아뵙는 면접 방식도 있나? 미영이 무슨 얘길 했는지 모르겠지만, 정마담이 몸이 바짝 단 느낌이군.’

[어쩌시려고요?]

‘나중에 하게 될지 안 할지는 모르지만, 일단 발을 걸쳐 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아. 물론 돈보다는 나중에 생길 미션 같은 걸 생각해서 말이야.’

[미션이라뇨?]

‘색다른 장소로 바뀌면 미션을 받을 확률이 올라가잖아. 호빠는 처음이니 뭔가 생기지 않겠어?’

[아, 그렇군요. 그 부분은 미처 생각 못 했습니다.]

"아닙니다. 차도 생겼으니 제가 그쪽으로 가죠. 가게가 어디 쪽이라고 하셨죠?"

-문자로 주소 찍어 남길게요.

"네. 그럼 수업 끝나는 데로 연락하고 찾아뵙겠습니다."

-그래요. 그럼 이따 봐요.

통화를 마치자 잠시 후 정마담이 주소를 전송했다. 도훈은 오늘 밤 성사된 미팅을,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고민했다.

‘가만 그때 영상통화 때 얼굴을 제대로 못 봤다 그랬지?’

[네. 분명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럼 오늘이 역용술인가 뭔가를 시도해 볼 기회 아니야?’

[아, 그렇겠군요. 직접 얼굴을 대면하는 건 처음이니까요.]

‘그렇지. 오늘 얼굴하고 나중에 한 달 뒤의 얼굴하고 생김새가 바뀌면 그것도 이상하잖아. 한 달 동안 성형이 가능한 것도 아니고 말이지.’

[맞습니다. 역시 주인님은 날카로우십니다.]

‘그 스킬은 어찌 사용하는 거야?’

[스킬이라기 보다는 변장용 아이템에 가깝습니다. 마사지 팩 형태로 10분 정도 붙였다가 떼면 보톡스를 맞은 것처럼 특정 근육을 마비시켜 얼굴 형태를 바꾸어 줍니다.]

‘그래? 디스플레이에 띄워봐.’

[넵,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마켓창에서 검색해 보여드리겠습니다.]

[페이스오프 마사지 팩], 3000p

-얼굴에 10분간 붙였다 떼면 새 얼굴로 거듭납니다.

-얼굴의 근육을 조정하는 방식이므로 10시간 뒤 본래 얼굴로 복귀할 수 있습니다.

-연속 사용은 불가능합니다. 다시 새로운 얼굴로 바꾸시려면 10시간 이후부터 가능합니다.

-총 10회분.

"헉, 삼천 포인트나 한다고?"

[그렇습니다. 본래 역용술 스킬을 이용한다면 비용이 들지 않겠지만 이 제품은 역용술을 흉내 낸 모방 기술이므로 일회성 아이템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알았어. 근데 어떤 얼굴로 바뀌는 거야? 내가 임의로 고를 수 있는 건가?’

[타고난 골격은 조절할 순 없기 때문에, 얼굴 윤곽이나 코 높이는 수정이 불가능합니다. 단 안면 근육의 일부를 마비시켜 전체적으로 느낌을 다르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결과 값은 랜덤이구요.]

‘랜덤?’

[네. 하지만 한 번 변형한 얼굴형은 계속 이용이 가능합니다. 변형된 부위를 저장할 수 있는 기능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골격은 바뀌지 않아도 얼굴은 확실히 다른 사람처럼 변한다는 거네? 그리고 한 번 이용한 얼굴은 기록이 남아서 계속 동일하게 바꿀 수 있고?’

[정확합니다.]

‘흐음. 어쨌든 이 얼굴 그대로 활동하는 건 곤란하니 만에 하나라도 호빠 선수를 해보려면 아이템은 필수겠군. 나중에 일본 가서 AV찍을 때도 활용할 수 있고 말이야.’

[그렇죠. 하지만 AV처럼 기록이 남는 영상물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예리한 PK단이 혹시라도 보게 된다면 주인님의 이능을 의심할지도 모르니까요.]

‘뭐야? PK단 놈들은 야동도 보는 거야? 웃긴 악당 놈들이네?’

[PK단이라 해봐야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입니다. 야동도 얼마든지 볼 수 있지요.]

‘하긴 플레이어언 내가 야동을 찍는 판국에, 보는 것 가지고 뭐라고 하는 것도 우습긴 하네. 알겠어. 일단 수업 마치고 다시 생각하자.’

도훈은 오후 수업을 마치고 학내에 주차된 차로 이동했다. 아직 차를 샀다는 말은 친한 선후배들에게도 소문내지 않았다. 괜히 나서서 자랑하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알게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차로 이동한 도훈은 오전에 미리 구매해둔 ‘페이스오프 마사지팩’을 한 장 꺼내 들었다. 보통 마사지 팩과 다를 바 없는 형태였다.

"이야, 이게 한 장에 300포인트 짜리라니."

도훈은 운전석 선바이져를 열고 시트를 뒤로 젖혀 얼굴을 확인했다. 매일 보는 얼굴이지만 참으로 잘생겼다. 눈에 띄는 미남까진 아니지만, 곰곰이 뜯어보면 못난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요샛말로 전형적인 훈남의 생김새였다.

"으으, 떨리는데 이 얼굴이 어떻게 바뀌게 될지."

도훈은 마스크 팩을 얼굴에 펴 바른 뒤 좌석 시트를 완전히 위로 젖혔다. 5분간 차 문을 닫고 누워있자 슬슬 갑갑함이 느껴졌다. 무더운 날씨에 차량이 열을 받아 내부온도가 너무 올라갔던 탓이다.

‘음, 안 되겠다. 에어콘이라도 틀어야지.’

도훈은 누운 채 브레이크를 밟으며 버튼식 시동키를 눌렀다. 시동이 걸리자 에어콘이 뿜어져 나오며 한결 공기가 상쾌해졌다. 그때 갑작스레 차량 안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시동을 켜는 순간 어젯밤 설정한 핸드폰이 자동 연결로 블루투스 신호를 잡은 것이었

다.

도훈은 무심결에 운전대의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야. 너 나 다이어트 시켜준다며? 말뿐이었어? 왜 연락도 없는데?"

"예림이니?"

[주, 주인님! 당장 통화를 중단 하십시요!]

‘왜?’

[역용 도중에 말을 하면 안면 근육이 뒤틀립니다!]

‘뭐? 그 중요한 사실을 왜 이제 말하는 건데!’

"너 자꾸 이런 식으로 약속 안 지키면···."

뚝-

도훈은 급히 전화를 끊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전 당연히 마스크 팩을 하고 있으니 통화를 안 하실 줄 알았습니다.]

‘아 놔. 씨, 빌어먹을 블루투스! 무의식적으로 받아 버렸네. 혹시 많이 틀어졌을까?’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영향을 받은 건 분명합니다.]

‘으윽. 젠장.’

10분이 지난 후 마스크 팩을 떼어 낸 도훈이 떨리는 눈으로 선바이저에 달린 거울로 얼굴을 확인했다.

"헉!"

얼굴이 바뀌었다.

그러나 전혀 기대하던 얼굴이 아니었다.

생전 처음 보는 추남이 눈앞에 앉아있었다.

"누, 누구냐 넌."

***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김상무가 정마담이 자리한 1번 룸으로 들어가 보고를 올렸다.

"세팅 모두 마쳤습니다. 금일 대기 선수는 52명입니다."

"수고했어. 애들 단장은 잘 하고 왔던? 저번에 보니까 미용실도 안 들르고 대충 머리만 감고 나온 애들 있던데."

"그 친구들은 단단히 주의를 주었습니다. 오늘 용모 상태는 이상 없습니다."

"그래. 내가 김상무만 믿는 거 알지?"

"네, 사장님. 전 사장님 아니었다면 지금도 취직도 못 하고 일용직이나 전전했을 사람인데요."

"호호. 말도 참 잘해. 이만 나 가봐. 참, 좀 있다가 어제 미영이가 소개해준 남자애 온다니까 오는데로 여기로 불러."

"미영이요?"

"아아, 대박 중고차 박팀장 말이야."

"아네, 박 팀장님. 알겠습니다. 박팀장님 소개로 왔다는 친구가 오면 1번 룸으로 모시겠습니다."

"후후. 오랜만에 물건 하나 들어 올 거 같으니까 기대해도 좋아."

"그렇게 대단한 친굽니까?"

"응. 내가 미영이 고년 다른 건 못 믿어도, 남자 보는 눈 하나는 믿고 있거든. 얼굴도 반반하고 크기도···. 아, 아니야. 암튼 나가봐."

"아···. 네."

정마담은 표정을 굳히며 물러서는 김상무를 미안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김상무는 정말로 잘생긴 부하직원이었다.

외모만 따지면 호빠에 있는 에이스들도 한 수 접을 만큼 뛰어난 미남. 전과자이던 그를 가게로 데려온 이유도, 여자들이 첫눈에 호감을 느낄 만큼 뛰어난 외모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에겐 한 가지 결정적인 흠결이 있었다.

바로 초등학생 정도밖에 안 되는 성기 크기.

처음에 멋모르고 선수로 내보냈다가, 단골고객들의 항의가 빗발치는 바람에 결국 짧은 선수 생활을 마감해야 했다.

정마담은 공과 사가 분명한 타입이었으므로 부하직원과 절대 동침을 안 하는 주의였는데, 그 때문에 하필 김상무가 실잦이라는 사실을 놓치고 만 것이다.

그러나 일 처리가 빠릿빠릿하고, 충성심이 유난히 강한 타입이었으므로 홀 매니저 자격으로 계속 곁에 두고있는 상황이었다. 한데 그런 아픔이 있는 김상무 앞에서 크기를 언급했으니, 아무리 충성심 강한 그라도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하여간 요 입방정···."

정마담이 머쓱 해하며 필터에 담배를 꽂았다.

그리고는 새로 영입할 에이스를 위해 준비한 돈가방을 확인했다. 일부러 많아 보이라고 만원권으로 바꾼 현금 삼천 만원. 대학생 나이에 이 정도 금액을 직접 본다면 눈이 휘둥그레질 것이다.

"세상에 돈 싫어하는 사람은 없지."

그녀는 이 돈을 계약금 조로 찔러줄 생각이었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마이깡을 핑계로 인신을 구속하는 전형적인 화류계의 수법이었다. 무이자로 큰 돈을 융통해 주는 척하면서 빚을 갚을 때까지 계속 일을 시키는 것이다.

이 방법은 두 가지에서 효과적이었는데, 돈을 못 벌면 못 버는 데로 계속 붙잡혀 있어야 했고 돈을 잘 벌어 빨리 갚아도 돈 버는 재미에 결국 일을 계속하게 만들 수 있었다.

"어쨌든 넌 내 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거지."

정마담이 돈 가방을 열어 확인하고 있는데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사장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응, 들어오라고 해."

정마담이 깊숙이 패인 드레스의 가슴을 밀어 올리며 대답했다.

< 637. 아이돌 vs 돌아이-30-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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