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5. 아이돌 vs 돌아이-28- >
"젠장 몸 팔아 돈 번 기분이네."
입맛이 썼다.
오늘 내 행동은 창녀랑 다를 바가 없다.
[너무 자책 마십시오. 결코 돈 때문이 아니지 않습니까?]
‘창녀들도 다들 그럴싸한 핑계는 있을걸?’
[주, 주인님···.]
‘그래도 5000포인트 얻었으니 됐어. 중수가 코앞인데 아이템 살 포인트나 비축해 놔야지.’
[잘 생각하셨습니다.]
로시랑 얘기를 나누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만. 그러고 보니 차 산 돈도 AV찍고 받은 출연료 아니었던가?’
[출연료와 차기작의 계약금이죠.]
‘근데 AV배우도 몸 팔아 돈 버는 건 똑같지 않아?’
[그래도 배우라는 호칭이 붙지 않습니까? 역할은 좀 그렇지만요···.]
‘저번에 허영자한테 스폰처럼 용돈을 받은 적도 있었지.’
[그건 알바 보너스 개념으로···.]
‘아냐아냐. 생각해 보니 이제껏 한다는 짓이 넓게 보면 다 몸 팔아 돈 버는 거였네.’
따지고 보니 그랬다.
나는 알바를 했던 게 아니라 점주 허영자를 만족시키는 대학생 스폰이었다. 학생으로서 쉽게 만져볼 수 없는 1억이라는 거금 역시 AV배우를 하면서 번 돈이다. 천만원 짜리 중형급 세단을, 반값에 산 것 또한 바람기 넘치는 유부녀를 만족시키며 얻은 결과다.
"허참, 나도 호빠 애들이랑 별 다를 게 없었구나."
답답함에 창문을 내렸다. 중고차매장을 빠져나간 차는 서울 외곽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주말에는 이전등록이 안 돼 미영이 월요일 오전 중으로 처리해 주기로 했다. 한마디로 법 적으론 엄연히 남의 차를 그대로 들고나온 셈이다.
‘말 나온 김에 진짜 호빠 선수나 한번 해?’
한 달 뒤면 기말고사다.
두 달에 걸친 긴 방학이 올 것이고, 저번처럼 알바를 구해야 할지도 모른다.
1억원에 가까운 거금이 생겼지만, 돈이 있다고 흥청망청 쓰고 다닐 생각은 없다. 이건 조만간 투자처를 찾아 고이 묵혀둘 생각이다.
차량 성능도 테스트 할겸 순환도로를 빠른 속도로 내달리며 계속 고민에 빠졌다.
‘어차피 지금껏 해온 짓이 엄밀히 따지면 몸 팔아 돈 버는 거였잖아. 그럼 호빠는 또 못할 게 뭐람?’
[진심이십니까?]
‘여름 방학 때 알바 뭐할지 잠깐 고민해 봤는데, 또다시 편의점 같은 곳을 들어가고 싶진 않거든.’
물론 노동의 가치는 신성하다.
나는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을 존중하고, 그런 이들이 많아야 세상이 더 밝아질 것이라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이건 내 인생의 후반전일 뿐 아니라, 젊은 나이에 단명한 이도훈의 대리 인생이기도 하다. 겨우 얻은 인생인데 남의 밑에서 시급 7~8000원 받으며 시간을 낭비할 순 없는 일이다.
AV 출연료 지급으로 눈까지 높아진 이후라 더 그랬다.
내 몸값이 얼마나 나간다는 걸 깨달은 이상, 더 이상 푼돈 받는 일은 못할 것 같았다.
[액수가 중요한 건 아니진 않습니까?]
‘물론 그렇지. 하지만 또 그런 게 있잖아. 한 번 눈이 높아지면, 더 위를 보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라는 거. 내 능력으로 얼마든지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걸 깨달아 버린 이상,다시는 푼 돈 받은 일은 못 할 것 같아. 이건 효율성의 문제기도 해.’
[효율성이요?]
‘어차피 이도훈 아버지는 아들을 방치 플레이하고 있단 말이지. 미국에 살고 있어서 그런지 자립심을 기른다는 핑계로 최소 생활비만 붙여주고 용돈을 벌어 쓰게 하잖아.’
[그분도 나름 교육관이 있겠지요.]
‘맞어. 난 그걸 비난하자는 게 아니야. 어쨌든 그런 이유로 방학 때마다 알바를 구해야 하는데, 시급 만원도 안 되는 일에 매달려 두 달을 허송세월하는 건 시간 아깝다 이거지. 차라리 빡시게 잠깐 일하고 남는 시간에 독서실에 임용공부를 하는 게 낫다는 거지.’
[하지만 주인님껜 1억에 가까운 거금이 있지 않습니까? 그걸 대학 생활동안 아껴 쓴다면 더 이상 돈은 벌 필요가 없을 텐데요?]
‘너 부자가 어떻게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냐?’
[네? 저한테 질문하시는 겁니까?]
‘만약에, 이건 사실 말도 안 되는 가정이지만 이런 가정을 해보자고. 어느날 갑자기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재산을 분배해 주는 거야. 워렌 버핏도, 탑골 공원 장기 두는 할아버지도 모두 똑같은 재산을 받는 거지. 다 공평하게.’
[네.]
‘그렇게 되면 정말 세상이 평등해질까? 난 아니라고 봐. 1년, 아니 반년도 지나기 전에 누군가는 다시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또 다시 가난해 지는 거지.’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요컨대 부자는 태도의 문제라는 거야. 습관의 문제기도 하고.’
[습관이요?]
‘부자라고 돈을 허투루 낭비하는 게 아니야. 수중에 100억이 있는 부자도 할인 쿠폰을 챙기고, 1+1짜리 상품을 산다고.’
[에이, 그건 좀···.]
‘진짜라니까? 그런 마인드 때문에 부자가 된 거니까. 있을 때 아끼고, 벌 수 있을 때 더 벌고. 난 지금 생긴 1억을 탕진하고 싶은 생각 없어. 이건 좋은 투자처에 고이 묵혀 둘 거야. 그러니 계속 일을 해야겠지.’
[주인님이 전생에 부자로 살아간 이유가 그것이군요.]
‘당연한 말을. 내가 증명해 볼 게. 한 번 부자가 되어본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다시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걸.’
[아무튼 호빠 알바에 대해선 조금 우려스럽습니다. 괜한 짓을 했다 나중에 후회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요.]
‘물론 그렇긴 한데···.’
로시가 우려하는 부분 역시 걱정하지 않은 건 아니다.
호빠 알바를 하게 되면 분명 얼굴이 팔리게 된다. 재수 없으면 주변에 소문이 나거나 대학 생활에 큰 곤란을 겪을 수도 있다.
나중에 임용을 통과해 선생이 되려는 나에겐 엄청난 리스크를 안고 가는 셈이다.
‘지난번처럼 가면을 써보는 건···.’
[그건 나름 컨셉이었죠. 촬영이라는 핑계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기도 하구요.]
‘역시 그렇지?’
[주인님이 정 그렇게 원하신다면 방법을 알아봐 드릴 순 있습니다.]
‘방법이 있어?’
[혹시 역용술이라고 아십니까?]
‘역용? 어디서 많이 들었는데? 아! 그 무협 소설에서 얼굴 막 바꾸고 그런거 말이지? 그게 진짜 가능해?’
[천상계 기술로 불가능한 일은 없습니다. 물론 정말로 얼굴을 완전히 갈아엎거나, 남자를 여자로 바꿀 수는 없지만요.]
‘한마디로 로시 네 말은, 만약 호빠 알바를 할 거면 아이템을 통해 위장을 해라? 날 아는 사람들이 나인지 못 알아보게?’
[네. 사람은 미묘한 차이로도 전혀 다른 느낌을 줍니다.]
‘그거야 잘 알지. 여자들 화장, 아니 변장하는 거 보면 화장빨로 빻녀가 미녀 되는 건 일도 아니니까.’
[그런 원리와 비슷합니다. 주인님의 얼굴을 조금만 손보면 아마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일 겁니다. 물론 아주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들은 눈치 챌 수도 있지만요.]
‘흐음. 방법이 없지는 않다는 거구나.’
[네.]
‘그래, 알았어. 아무튼 그건 차차 생각해 볼 문제고 앞으로 남은 미션이나 정리해보자.’
1시간여를 내달린 나는 다시 집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이만하면 달리기 성능은 충분히 테스트한 셈이다.
[네,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주인님이 너무 이리저리 벌려놓은 관계로 동시 진행 중인 것이 꽤 됩니다.]
‘그래서 나도 좀 헛갈려서 말이지.’
[우선 진행 중인 업적입니다. 총 다섯 가지 직업을 가진 여성을 공략해야 하는 ‘특수직종이 더 맛있어.’는 현재, 왁싱 전문가 하나만 공략된 상태입니다.]
‘가만. 시작부터 이상한데? 제희랑 린다를 따먹은 건 어디가고?’
[두 사람은 아직 데뷔 전이기 때문에 아이돌로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아아! 그렇지?’
[따라서 현재 남은 직종은 여경, 여의사, 치어리더, 아이돌 그대롭니다. 단, 내기의 신과의 대결인 같은 걸그룹 내 4명을 공략하는 신들의 후원도 동시 진행 중입니다. 남은 기간은 2주구요.]
‘그렇다면 링링과 미소 둘 중 하나는 데뷔 후에 공략해야 맞겠군. 2주 안에 말이야.’
[네. 그렇게 되면 중수로 진급할 수 있습니다.]
‘으아, 드디어 중수라니! 하수 생활이 너무 길었다.’
[물론 주인님이 포인트 벌이를 위해 의도적으로 늦춘 부분도 있죠. 어쨌든 중수가 되고서부터 PK단의 압박이 거세질 거니까요.]
‘포인트는 좀 모였나? 나중에 아이템도 구매해야 하는데.’
[오늘 오천 포인트 더 추가되어 2만 포인트 이상이 누적되어 있습니다. 조금만 더 분발하시면 쓸만한 호신용 아이템도 장착 가능할 겁니다.]
‘좋아. 계획대로 잘 되가고 있군.’
[한데 지금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여긴 집으로 가는 방향이 아닌데요?]
‘응, 나름 내 차를 구했으니 꼭 태워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태워주고 싶은 사람요?]
***
정마담이 미영과 연락이 닿은 것은 저녁 시간이 훌쩍 지나서였다. 기진맥진한 목소리로 전화를 건 미영에게, 정마담이 다짜고짜 퍼부었다.
"야이 씨, 너 진짜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니? 아무리 친한 사이라고 해도 지킬 건 지켜야 하는 거 아니니? 내가 너한테 그동안 먹인 술이···."
"미안. 나 지금 싸울 힘도 없어."
"뭐?"
"언니. 피곤하니까 짧게 말할 게. 아까 내가 보여준 애 있지?"
정마담은 영상통화로 본 도훈을 떠 올리고 애써 화를 억눌렀다. 미영이 싸가지없게 군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 감정이 상했다간 일이 틀어질 지도 몰랐다.
"누구? 이쪽 일 해보고 싶다던 애?"
"응. 언니, 걔 꼭 잡아. 진짜 대박이야."
"무슨 소린데, 다짜고짜? 뭐가 대박이라는 건데?"
"내가 언니네 가게 애들하고 몇 번 놀아봤지만, 도훈이 걔는 진짜 비교가 안 돼."
"그래? 좀 크긴 하더라."
오전에 실망스러운 면접을 마친 터라 정마담은 도훈의 대물이 눈 앞에 아른거리는 듯 했다.
"단순히 크기가 문제가 아냐."
"그럼?"
"내가 아까 전화 끊고나서 얼마나 지났지?"
정마담이 고개를 돌려 시간을 확인했다.
"대충 6시간?"
"맞지? 나 바로 전까지 걔한테 시달렸잖아."
"뭐?"
정마담은 눈이 확 뜨이는 기분이었다.
박 팀장이 속물적이고, 이기적이긴 하지만 남자와 관련한 부분은 칼처럼 맺고 끊는 여자였다.
"무려 5번이야."
"뭐가 5번인데?"
"걔가 날 자빠뜨린 게 6시간동안 5번이라고."
"너 설마···."
"맞어. 대낮부터 지금까지 쉬지도 않고 계속했어."
"그렇게 큰 애가 정력도 좋다고?"
"좋다 마다? 테크닉도 죽여. 나 진짜 밑 빠지는 줄 알았잖아."
"혹시 지루 같은 거 아냐?"
"절대 아냐. 내가 그런 것도 못 알아 챌까 봐?"
"물건은 자기꺼 맞어? 인테리어 같은 건 없고?"
"100프로 본인 거야. 지금도 밑이 얼얼해 죽겠어. 무슨 쇠몽동이로 두들겨 맞은 기분이야."
"아···."
"나 너무 피곤해서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야. 언니, 내일 연락처 줄 테니까 걔 꼭 붙잡아. 알았지?"
미영의 얘기를 듣던 정마담이 생각했다.
‘근데 그 남자애가 그렇게 좋으면 왜 나한테 양보하는 거지? 미영이 이런 성격이 아닌데?’
"솔직히 나 혼자 갖고 싶은데 난 감당이 안 될 거 같아."
"네가 감당이 안 될 정도야?"
"어."
‘저 계집애가 다른 건 몰라도 오입질이라면 어디서 꿀릴 애가 아닌데?’
비즈니스적으로 알고 지낸 사이지만, 일하는 분야가 분야다 보니 정마담은 미영의 솜씨를 익히 알고 있었다. 그녀와 한 번 외박하고 온 소속 호빠 선수들 말이 정말 지독한 아줌마라고 학을 뗐던 것이다.
어느 정도냐면, 두 번이나 연거푸 물을 빼고도 쓰러져 자고 있는 물건을 억지로 세워 방아를 찧었다고 했다. 영계를 좋아하는 이유도 회복이 빨라서라나 뭐라나? 그런 미영이 두 손 두 발 다 들고 항복 선언을 했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었다.
"언니, 나 지금 전화기 붙잡을 힘도 없어. 아까 일 미안해서 전화한 거니까 화 좀 풀고."
"화 안 났어, 계집애야."
"그럼 나 좀 눈 좀 붙일 게."
뚝-
다시 전화가 끊겼다. 마지막 미영의 목소리는 정말 탈진할 정도 힘이 빠져 쥐어 짜낸 것 같았다.
통화를 마친 정마담이 담배를 꺼내 물었다.
필터에 끼운 담배에 불을 붙인 정마담은 턱을 괴며 생각에 잠겼다.
‘어마어마한 대물에 타고난 정력가라고? 그런 애가 잘하면 내 선수가 될 수도 있다는 거야?’
오랜만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에이스를 뺏기고 기울어 가던 가게에 마침내 구세주가 찾아 온 기분이었다.
‘마냥 죽으란 법은 없구나. 미영이를 저 정도로 보내 버릴 정력이라면 이미 검증은 끝난거나 다름없지. 무슨 일이 있어도 영입해야겠어.’
그녀는 담배를 비벼 끄고 선수들을 관리하는 김상무를 불렀다. 교도소에서 출소한 뒤 오갈 데 없이 방황할 때 손을 내밀어서인지 유독 충성심이 강한 부하직원이었다.
"부르셨습니까?"
"어, 내일 현찰 좀 두둑하게 준비해놔."
"현찰을요? 얼마 정도나···."
"돈 보는 순간 거절할 수 없을 만큼 많이."
"네, 알겠습니다. 근데 사장님. 무슨 일 때문인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저번 달 보호비는 이미 수금해 드렸는데요."
"보호비가 아냐."
"네?"
"영입비지."
김상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사이 정마담이 씩 웃었다.
잘하면 정말 제대로 된 물건이 들어 올 것 같은 기대감 때문이었다.
***
도훈은 집 앞에 차를 세우고 통화를 걸었다.
"어, 나야."
-오빠? 왠 일이세요? 전화를 다 하시고.
"잠깐 집앞으로 나올 수 있어?"
-집 앞이요?
"응. 나 지금 너네 집 앞이거든."
< 635. 아이돌 vs 돌아이-28-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