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9. 아이돌 vs 돌아이-22- >
[주인님이 돈을 그리 좋아하시는 줄은 몰랐군요.]
‘돈 많으면 편하긴 하지. 사실, 전생엔 죽을 때까지 돈만 벌어서 이번 생에는 돈 벌고 싶은 생각 일도 없었거든.’
[음, 죽을 때까지···.]
‘내가 그렇게 허무하게 갈 줄 알았나? 막 그런 거 있잖아. 건강 챙기면서 보약 달여먹고 꾸준히 조깅도 하면서 열심히 살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음주운전 하던 차에 치여 죽는 거야. 머리가 깨져 고인 피웅덩이에 쓰러져서 이런 후회를 하는 거지.’
[무슨 후회요?]
‘씨발, 그냥 담배나 실컷 피우다 갈 걸! 하고.’
[너무 극단적인 가정이네요.]
‘아무튼, 그 생각 때문에 이번 생에선 돈 벌고 싶은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었단 말이야. 그냥 하고 싶은 마음껏 하고 살자. 어차피 인생은 한 번 살다 가는 거. 왜 요새 유행하는 말도 있잖아. 욜로족이라고.’
[욜로하다 골로간다는 말도 있더군요.]
‘근데 이 자식이 말끝마다···.’
[참, 그럼 전생에는 재산이 얼마나 많았던 겁니까?]
왠지 불리하니까 말 돌리는 느낌이었지만, 나도 모르게 휩쓸리고 말았다.
‘내 재산?’
[네.]
‘가만있자···. 그러니까.’
전생의 난 돈 버는 재주가 좋았다.
대체로 머리 좋은 것과 돈 버는 능력 사이엔 큰 상관관계가 없다고 하지만, 내가 볼 때 그건 틀린 말이다.
머리가 아주 좋으면 돈 버는 것도 당연히 잘한다.
‘수석 연구원 당시 연봉이 대충 1억 2천 넘었을 거야. 입사할 때부터 박사 따고 와서 7천 후반이었고.’
[와, 그럼 꽤 모았겠군요.]
‘저축으로? 아냐.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하나 있어. 사실 월급은 베이스 같은 거야. 연봉이 높다고 부자가 되는게 아니라, 종잣돈을 빨리 모은다는 점에서 유리한 거지.’
[무슨 말씀인지 잘 이해가 안 됩니다.]
‘근로 소득은 절대 자산 소득의 증가 속도를 이기지 못한다고. 평생 부지런히 월급만 모아서는 부자가 될 수 없어.’
[그럼요?]
‘투자.’
[투자요?]
‘그래. 일단 종잣돈이 만들어 지면 부동산에 박아. 싸이클을 잘 타면 상승기에 엄청난 자산 증식을 이뤄내거든. 나중에 보니 내가 3년간 모은 월급보다, 그 3년 동안 오른 부동산이 더 많더라.’
[아! 그 말씀이군요.]
‘그리고 주택 하나만 가지고 하는 게 아니라, 상가든 오피스텔이든 목 좋은 곳 발품 팔아 임장다니면서 분산 투자를 해야 돼. 자기 돈만 가지고 하는 것도 아니고 은행돈 빌려서 이자보다 수익이 날 것 같으면 레버리지를 땡기는 것도 괜찮지. 그렇게 이익을 내다
보면 금세 자산이 불어. 시작이 어렵지 스노우볼이 굴러가면 금방금방 커지거든. 아마 죽기 직전까지 현금성 자산이랑 부동산 다 합치면 25억은 족히 넘지 않았을까? 잘하면 30억?’
[와···. 주인님은 정말 능력자셨군요. 다시 봤습니다.]
‘넌 상위 0.001%의 지능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마 내가 그때 안 죽고 계속 살았으면 10년 뒹 50억 부자는 됐을 거다.’
[···많이 아쉬우십니까?]
로시가 불쑥 물었다.
‘뭐가?’
[잘나가던 인생이 그렇게 허망하게 끝나버린 것이요.]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그땐 키 작고 못 생기고 좆도 작았지만, 나름 명예도 있고 풍족한 삶이었거든. 근데···.’
[근데요?]
‘나중에 죽고 나서 생각해 보니 결국엔 마누라랑 자식 새끼만 호강하는 인생이었어. 아마 늙어서 돈 다 뺏기고 누구 씨인지도 모를 딸자식에게 빨대 꼽혔겠지. 결과적으로 보면 지금이 훨씬 나은 거야.’
[그리 생각하시니 다행이군요. 저는 주인님이 미련이 남은 줄 알았습니다.]
‘흥, 미련은 미련한 사람들이나 하는 거지.’
로시가 왜 저렇게 묻는지 알고 있다.
놈은 내가 과거의 일에 집착하고 파고드는 것을 경계한다.
특히 전 와이프가 1심에서 무죄를 받았다는 소식 이후 굉장히 예민해진 상태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와이프에 대한 복수를 잊지 않았다.
물론 절대 티 내지 않는다.
내 계획을 알게 되면 로시는 분명 나를 막으려 할 것이니까.
조용하고 은밀하게.
분명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섹스만 잘해도 쉽게 돈 버는 세상이라니. 옛날엔 왜 이걸 몰랐을까?’
[세상이 많이 바뀌었으니까요. 지금이야 연예인이나 가수가 잘나간다지만 과거엔 광대 취급을 받았던 것처럼요.]
‘하긴. 음식 잘 먹는 능력 하나로 유튜브 하면서 돈 벌고, 게임 잘한다고 게임하면서 돈 벌고, 예쁘면 예쁘다고 잘생기면 잘 생겨서 돈 벌고. 시대가 정말 많이 바뀌긴 했네.’
[거기다 주인님의 섹스킬은 역대급입니다. 어쩌면 공부로 이룩했던 전생보다 현생을 더 찬란히 사실 수도 있을 겁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마음만 먹으면야 전생보다 훨씬 부자가 될 지도 모르지.’
20대 초반의 나이에 종잣돈 1억이 생겼다.
40대 이정우가 가졌던 25억의 재산보다, 어쩌면 훨씬 가치 있는 금액일지 모른다.
아까 말한 것처럼 처음 눈덩이를 만드는 게 어렵지, 일단 만들고 나면 굴러가는 건 시간 문제니까. 아마 내가 가진 과거의 금융지식과 무수한 경험을 이용하면, 나는 교사가 되어서도 월급은 용돈처럼 펑펑 쓰면서 금세 어마어마한 부자가 될 것이다.
분명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아직은 돈에 큰 미련 없다.
지금도 충분히 풍족한 삶이고, 원하면 얼마든지 벌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으니까.
‘이따금 AV 알바만 뛰어도 졸업할 때 벤츠 끄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계속 출연하실 생각입니까?]
‘뭐, 시간이 허락한다면. 대학생은 방학도 기니까 중간 중간 외국 나가기도 수월하고.’
[영상물에 흔적을 남기다 보면 신원이 노출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점을 항상 주의하셔야 합니다. PK단은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서 존재하니까요.]
‘외국에도?’
[물론이죠. 이름이 알려진 상당수의 위인들이 플레이어였습니다. 마찬가지로 PK단 역시 전세계에 퍼져있죠. 이제 중수까지 단 한 가지 업적만 남겨놓은 상황에서, 최대한 조심하시는 게 좋을겁니다.]
‘중수가 되면 곧바로 PK단의 탐지에 바로 걸리는 건가?’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플레이어 등급이 올라가게 되면 특별한 파장이 나오게 됩니다. PK단은 그것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죠.]
‘아니, 무슨 내공도 아니고···.’
[그와 비슷합니다. 플레이어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도에 반응하는 것이니까요. 가령 하수일 땐 길다가 지나쳐도 모른다면, 중수가 되었을 땐 가까이에 근접하기만 해도 곧바로 알 수가 있죠.]
‘그래서 경보장치도 구매했잖아. 가까이 오면 바로 튈 수 있게.’
[그것만으론 부족합니다. 주인님의 신체능력으론 PK단을 따돌리기 쉽지 않을 겁니다.]
‘걔들이 그렇게 세? 내가 싸워서 못 이길 정도로?’
이도훈이 가진 신체 스펙은 일반인을 훨씬 상회한다.
근력, 근지구력, 유연성, 순발력까지. 다양한 운동적성을 흡수함으로써 운동 능력만큼은 최상위 권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봐야하니까요.]
‘아니. 말이 안 되잖아. 신들의 대리자인 플레이어보다 악마를 추종하는 PK단이 더 강하다는 게.’
[꼭 그런 건 아닙니다. 주인님의 클래스가 워낙 독특해서 발생하는 문제니까요.]
‘내 클래스?’
[섹서 말입니다.]
‘섹서?’
[네. 대물 섹서. 세상에 거의 없는 특별한 클래스지요.]
‘캬, 지리네. 내가 왜 이딴 걸 받았을까?’
[그러게 왜 그런 소원을 비셨습니까?]
‘이럴 줄 알았음 검사나 법사 같은걸로 할 걸. 아니 하다 못 해 운동선수만 희망했어도 지금보단 훨씬 강할 텐데.’
[아무튼, 이미 주어진 것을 어쩔 수 없습니다. 현재 상황에 맞춰 더 경계하시고, 더 조심하셔야죠. 또한 포인트가 모이는 대로 방어용 아이템에 투자하셔야 합니다. 흔적을 감추거나, 도피용으로 적절한 아이템들요.]
‘알았어. 어쨌든 아직은 중수가 아니니까 되고 나서 생각해 보자.’
로시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중고차매장에 도착했다.
서울 외곽에 위치한 매장 주차장엔, 수백 대의 차량들이 줄 맞춰 진열되어 있었다. 정오의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차들은, 비닐하우스 바다를 보는 것처럼 눈이 부셨다.
주차장 주변으론 각종 상사들이 간판을 내걸고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고, 차량을 검수하는 이들과 차를 팔러 나온 사람들로 뒤섞여 정신없이 북적였다.
"와, 진짜 넓네. 사람도 많고."
"혹시 중고차 보러 오셨나요?"
혼자 차량을 둘러보고 있는데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응? 웬 여자지?’
그녀가 어리둥절해 하는 나를 향해 방긋 웃더니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건넸다.
"반가워요. 대박 중고차 박미영 팀장이라고 해요."
"아, 네."
여자 영맨이라고?
하긴 여자 고객들은 남자보다 여자를 더 선호할 수 도 있겠군.
요새 부쩍 성적 감수성이다 뭐다 예민해진 세상이라, 대리기사나 택시도 여자 드라이버가 흔하다. 중고차 영맨이라고 여자가 하지 말란 법은 없지. 참, 영우먼이라고 불러야 하나?
"학생이세요?"
"네. 대학생이에요."
"어머 어쩜. 우리 사촌 동생이랑 너무 닮아 깜짝 놀랬네요."
박미영 팀장이 영업하는 사람 특유의 친근감을 드러냈다.
화장이 좀 짙은 편이긴 하지만 그럭저럭 봐줄 만한 인상이다. 은근슬쩍 가슴골을 그러 낸 v넥 반탈 니트와, 무릎에 달라붙는 H라인 스커트가 잘 어울렸다. 어떻게 보면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커리어우먼 같으면서도, 옷가게를 해도 잘 어울릴 것 같은
화사함이 있었다.
왼손에 반지를 봐선 이미 결혼은 한 것 같고, 지금 나이까지 여자 영맨의 커리어를 유지한 걸 보면 제법 잘나가는 판매사원일지도 모르겠다. 하긴 이런 일은 외모가 반은 먹어주고 가니까.
"네."
어차피 사려고 온 거 대략적인 시세나 확인할 생각이었다.
"혹시 생각하신 차종은 있으세요? 대학생이면 경차?"
"제가 키가 큰 편이라 경차는 좀 그렇고···."
185가 넘어가니 경차가 비좁다. 탈수야 있지만 팔다리를 뻗기 불편하다. 최소한 중형은 가야 한다.
"혹시 국산 중형 괜찮은 모델 있을까요?"
"당연히 있죠. 이쪽으로 따라오세요."
박미영 팀장이 중형급 세단 대여섯대를 돌아가며 구경시켜 주었다. 색상과 차종이 마음에 안 드는 것을 건너뛰자 제법 괜찮은 매물이 보였다. 흰색의 중형 세단으로 5년 지난 중고차였다.
"이전 차주가 비흡연자라 실내가 무척 깔끔해요. 주기적으로 소모품도 교체했고, 일이신조라 그런지 무척 관리가 잘 된 편이고요."
"그렇군요."
내가 고개를 내밀어 차량 내부를 확인하는데 갑자기 박미영이 내 엉덩이를 슬쩍 건드렸다.
‘엉? 뭐지?’
"어머, 미안요. 실수로 손이 닿아 버렸네?"
배시시 웃으며 얼렁뚱땅 넘어가는 게 전형적인 고의성이 느껴졌다.
‘뭐지, 이 여자···.’
[왠지 수상한데요?]
‘하여간 아줌마들이 제일 응큼하다니까. 로시. 정보창 열어. 무슨 꿍꿍인지 확인해 봐야겠어.’
[넵. 박미영 팀장의 정보창을 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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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박미영 (비처녀, 24세 10개월)
나이 : 35 #자동차 판매왕 #유부녀 #바람기 가득
호감도 : 69/100
개방성 : A
성감대 : 종아리, 발목, 엉덩이.
*애무 포인트 : 그녀는 발로 남자를 만족시켜주길 좋아합니다.
성욕지수 : 높음.
공략팁
*위 대상은 당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는 잘나가는 중고차 영업 사원입니다.
-그녀의 고객은 중년의 남성들입니다.
-외모를 무기로 쉽게 호감을 얻어내는 타입이며, 슬쩍 흘리면서 남성의 지갑을 열게 합니다.
-그녀는 당신의 훤칠한 외모에 강한 호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소방공무원으로 늘 바쁘고, 지쳐 있습니다.
-가끔 잘생긴 고객을 만나면 개인적인 욕구를 풀기도 합니다.
-그녀에게 잘 보인다면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추천 멘트 : "혹시 누나 승차감은 어떤 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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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예상 대로다.
엉덩이를 슬쩍 만진 것은 명백한 고의였다.
[와, 바람기가 다분한 여성이었군요.]
‘저봐. 하여간 예쁜 여자들은 얼굴값을 한다니까? 판매왕이 된 것도 분명 꼼수가 있었을 거야.’
[그나저나 정보창은 봐서 어쩌시게요?]
‘요새 어린애들만 먹고 다녔더니 미시가 좀 땡기긴 한데···.’
[자중하십시오. 업적도 미션도 없는 대상에 쓸데없이 시간을 허비하실 생각입니까?]
띠링-
그때 갑자기 머릿속으로 알림음이 울렸다.
미션 알림이었다.
-깎을 수 있으면 깎아봐.
*성적 매력을 발산해 고가의 물건을 싸게 구매하는 미션입니다.
*판매액보다 할인을 많이 받을수록 보상은 커집니다.
-10% 할인 시 1000포인트, 이하 퍼센트당 100포인트 비례.
*정신 조작이나 호감도를 상승시키는 아이템을 사용할 경우 미션이 자동종료됩니다.
*남은 시간 : 5 hour.
‘어랍쇼? 미션 열렸네?’
[아, 이런 미션이···.]
‘할인을 많이 받을수록 포인트로 보상해 준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거참, 유부녀라는 게 좀 걸리긴 하지만···.’
[포기하실 겁니까? 미션 수락까지 1분 남았습니다.]
‘정숙한 여인도 아니고 먼저 들이대는 여잘 마다할 필욘 없지. 일단 깎고 보자.’
나는 미영을 바라보며 물었다.
"혹시, 시승 한 번 해봐도 되죠?"
< 629. 아이돌 vs 돌아이-22-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