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9. 아이돌 vs 돌아이-12- >
내가 춤꾼이라고?
그럼 나도 막 윈드밀 돌리고 나인티나인 꽂고 할 수 있단 소리야?
[주인님이 가진 재능 모방자 스킬은 상대 여성이 가진 가장 높은 레벨의 운동적성을 흡수합니다. 현재 무용전공자인 나연양의 무용 적성이 몸에 체화된 상태이기 때문에 춤도 금방 따라 하실 수 있습니다.]
‘도무지 실감이 안 나는데, 난 몸치나 마찬가지라고.’
전생에도 몸으로 하는 건 영 소질이 없었다. 신은 두 가지 재능을 한 번에 주지 않듯, 나는 게임 캐릭터로 치면 지능 몰빵 캐릭터였다.
공부는 곧 잘했지만 춤은 완전 병신 수준이랄까?
이도훈으로 환생한 후에 운동 재능을 받았지만, 운동과 춤은 엄연히 다른 분야의 재능이다. 둘 다 잘하는 사람도 간혹 있지만, 운동을 잘한다고 춤을 잘 춘다는 보장은 없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
특히 지금 내 모습을 거울로 본다면 끔찍한 안구 테러 수준이다. 춤을 못 추는 사람을 스테이지에 올려 봐야 콩 댄스밖에 더 추겠나. 한마디로 병신 육갑이다.
[주인님은 절대 몸치가 아닙니다. 못 배워서 그런 겁니다.]
‘못 배우다니?’
[시도를 안 해봤으니 재능을 못 깨달으신 거죠. 눈으로 보고 한 번 따라 해 보십시오. 안무를 따고 모사하는 능력이 무용전공자에 필적하는 수준이니까요.]
‘정말 그렇단 말이야?’
나는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자들과 달리 남자들은 몸치가 많아 춤 잘 추는 애들은 대번에 눈에 들어왔다.
‘저 스냅백 모자 스텝 좀 밟는 데?’
춤을 못 추지만 잘 추는 사람을 구분할 순 있었다.
무대 위에서 유독 반경을 넓게 사용하는 남자애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치렁치렁한 금목걸이에 힙합 모자를 눌러 쓴 스웨거. 그의 동작을 유심히 관찰하며 흉내 내자 나도 모르게 비슷한 스텝이 밟아졌다.
신기한 일이었다. 예전에는 아무리 봐도 동작이 그려지지 않았는데, 지금은 보는 순간 호흡하듯 안무가 자동으로 재생되었다.
‘이렇게 하는 건가?’
팔 동작까지 비슷하게 따라 하자 얼추 춤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리듬에 맞춰 어깨를 들썩이는데 제희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가까이 다가왔다.
"좀 추시네요?"
"그냥 흔드는 거야."
"아니에요. 느낌 있어요."
제희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뒤를 돌아 등을 부딪쳤다. 끈적한 몸 사위로 골반을 흔들며 다가오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몸이 굳고 말았다.
‘뭐야. 왜 이렇게 질척거려?’
[이게 아까 종현 군이 말한 부비부비 아닌가요?]
‘오호라. 그러니까 나랑 한번 비벼 보자는 거지?’
클럽에 온 제희는 물 만난 물고기같았다.
청순한 얼굴 뒤에 숨겨왔던 춤꾼의 본능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그녀의 긴 머리가 찰랑거리며 산뜻한 린스 향기를 뿜어나왔다.
바짝 붙은 청바지가 골반의 굴곡을 과시하며 허벅지에 달라붙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는 받아주며 호흡을 맞춰 허리를 돌렸다.
‘오호, 이렇게 하면 되는 거였어?’
[제법 잘하시는데요?]
‘다른 사람 보면서 흉내 낸 거야. 근데 정말 쉬운데?’
[주인님이라면 금방 배울거라고 했잖습니까.]
현란한 조명.
심장을 바운스 시키는 음악.
젊은 애들이 왜 그렇게 클럽을 좋아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몸이 절로 음악에 맞춰 흔들어지며 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나고 있었다.
이 흥분감.
이 고양감.
춤의 맛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이야, 나름 재밌는데?’
[춤은 인간의 본능이지요. 몸으로 하는 표현예술 중에서도 가장 극상의 것이랄까요?]
그때 엉덩이를 비비고 있던 제희가 불쑥 내 손을 잡아 자신의 허리춤에 올렸다. 그리고는 살짝 고개를 돌려 속삭였다.
"오빠, 찐하게 한 번 가보실래요?"
‘찐하게라고?’
허리를 두른 제희의 동작이 더욱 과감해졌다.
그녀는 사타구니에 엉덩이를 바짝 밀착시키더니 골짜기 사이에 대물을 끼울 것처럼 들이밀었다. 바짝 선 대물이 그녀의 엉덩이골을 들락거리며 과감한 접촉이 시작됐다.
‘으읍! 뭐, 뭐야? 완전 노골적이잖아?’
[제희양이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간 것 같군요.]
말캉한 엉덩이가 사타구니에 비벼지니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바짝 꼴린 대물을 엉덩이에 찔러댔다. 후배위를 연상시키는 동작에 나도 모르게 피스톤 질을 흉내 냈다.
‘크흑. 클럽이 이런 곳이었어? 잦이 터지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좀 더 과감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제희양이 무척 허용적이니까요.]
‘좋아, 그렇다면···.’
나는 허리에 올렸던 손을 천천히 위로 끌어 올렸다.
그렇다고 대놓고 가슴을 주무르진 못하고, 춤을 핑계 삼아 살짝살짝 가슴을 어루만졌다. 제희는 아는지 모르는지 나의 과감한 터치에도 전혀 싫은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한창 물이 올라 부비부비를 하고 있는데, 반대쪽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양손에 맥주병을 들고 흔드는 린다였다.
‘이크, 술 주문하고 우릴 찾으러 왔나보구나.’
나는 자연스럽게 제희에게 몸을 뗀 후 그녀에게 속삭였다.
"린다 씨 왔어."
"···언니가요?"
제희의 인상이 대번에 구겨졌다.
한창 분위기 좋다가 불청객의 등장에 흥이 깨진 모양이었다.
잠시 후 우릴 발견한 린다가 테이블을 쪽을 가리켰다. 입 모양을 보니 술 한 잔 하자는 소리 같았다.
"일단 가보자."
"그래요."
간만 보다 말아서인지 제희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나 역시 꼴린 물건을 티 나지 않게 정리했다.
인파를 헤치고 다시 자리로 돌아가는데 제희가 불쑥 내 손을 잡았다. 그녀는 말없이 웃으며 손바닥에 손가락을 긁어댔다.
[무슨 의밀까요?]
‘사인 주는 거 같은데? 나중에 따로 보자는.’
[부비부비에서 제대로 느꼈나 보군요.]
‘일단 제희는 거의 넘어온 거 같아. 문제는 티 안나게 따로 나갈 수 있느냐겠지.’
다시 베이스 캠프로 돌아오자 제희가 몰래 잡았던 손을 놓았다. 기다리고 있던 우선이 물었다.
"춤추다 오신 거예요?"
"어, 몸 좀 풀다 왔어. 제희씨 춤 엄청 잘 춘다."
"노래도 잘하시고 춤도 잘 추시고, 멋있어요 제희씨!"
"별말씀을!"
노랫소리에 묻혀 대화가 잘 들리지 않아 말할 때 마다 소릴 지를 수밖에 없었다. 스탠드 테이블 위에는 린다가 나온 맥주가 한가득 쌓여 있었다.
대체 돈을 얼마나 쓰고 있는 걸까?
"자! 클럽 왔으니 신나게 한 번 놀아보자! 짠!"
"네!"
다들 병 맥을 한 손에 쥐고 나발을 불었다. 안주도 없이 마시는 술이 꿀떡꿀떡 잘도 넘어갔다. 분위기에 취한다는 말처럼 클럽 안의 공기가 사람을 열광케 했다.
린다는 병나발을 불며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었다.
자연스럽게 춤에 녹아드는 모습이, 그녀 역시 타고난 춤꾼 같았다.
‘가만있자, 오늘 골든벨을 울린 건 린다고 적극적으로 대쉬 한 건 제희란 말이지.’
둘 다 매력이 있었다.
린다는 대놓고 야해서 좋았다.
힙합 특유의 허세도 밉지 않았다.
반면 제희는 내숭쟁이였다.
안 그런 척하면서 뒤로 호박씨를 까는 타입이었다.
청순한 얼굴은 순 위장이고, 실제론 발랑 까진 게 분명했다.
나는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며 누굴 먼저 데리고 나갈지 고민했다. 그때 말없이 술을 마시던 미소가 나에게 귓속말을 건넸다.
"오빠, 담배 있죠?"
"담배?"
"네. 빌릴 사람이 오빠밖에 없어서요."
가만 보니 남자 중에 흡연자는 나뿐이었다.
아마 여자들도 미소 외에는 담배를 안 피우는 것 같았다.
"알았어. 잠깐 나가자. 나 담배 좀 피우고 올 게."
나는 애들한테 말하고 클럽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미소가 몰래 뒤따라 왔다. 여전히 사촌 오빠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바깥으로 나오자 공기가 확 달랐다.
나는 재떨이가 있는 곳을 찾아 담배를 꺼내 들었다.
"여기."
"고마워요. 오빠밖에 부탁할 사람이 없어서."
"한 갑 사줄까?"
"아니에요. 가지고 있다가 매니저 오빠한테 걸림 죽어요."
"아···. 가수니까?"
"가수라서라기보단 이미지 관리죠. 담배 피우는 아이돌을 누가 좋아하겠어요?"
미소가 담배를 맛있게 피우며 말했다.
아까도 느꼈지만, 은근 꼴초였다. 손가락 사이에 끼운 모양새가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넌지시 그녀를 쳐다보는데, 미소가 웃으며 물었다. 이름처럼 남자를 홀리게 하는 눈웃음이었다.
"왜 그러세요?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아니. 예뻐서."
"풉-. 맘에도 없는 소린. 오빠 제희 언니한테 관심 있는 거 아니었어요?"
"제희라니?"
"아까 둘이서 춤추는 거 다 봤어요. 완전 합체하는 줄?"
"뭐래? 그냥 같이 어울린 거지."
"왜요? 제희 언니 별로예요?"
"아니 별로라기보단···."
‘나랑 제희랑 엮어주려는 건가?’
[주인님에게 별 관심이 없으니 다른 여자랑 밀어주나 봅니다.]
‘이건 전개상 좋지 않은데···.’
[왜요?]
‘만약 내가 여기서 다른 한 명이랑 잘 되면, 나한테 아무 기대감고 안 생길 거 아냐? 그럼 나중에 꼬시기 너무 힘들지.’
[하긴 그렇군요. 동료애도 있으니 다른 동료의 남자를 유혹하지도 않을 거고요.]
‘안 되겠어. 당장 오늘 밤은 아니더라도 미소한테 어필을 좀 해놔야겠어.’
[어필이라뇨?]
‘쟤 이상형이 나쁜 남자라고 했잖아. 한번 싸가지없게 굴어 봐야지.’
나는 이 사이로 침을 찍- 내뱉었다.
양아치들이나 할 법한 히드라 침뱉기 수법이었다.
[오오! 방금 좀 쌩양아치 같았습니다.]
‘좀 비슷했냐?’
"···순해 빠져 보이잖아."
"네?"
나는 일부러 건들거리며 말했다.
"난 순진한 애들은 별로야. 유치해서."
"아···."
미소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껏 매너 좋게 행동하던 대학생 오빠의 이미지와 많이 상충되었던 모양이다.
"오빠 술 많이 드셨어요?"
"아니? 왜? 취해 보여?"
"아뇨. 그냥 좀···."
"한 대 더 필래? 들어가면 못 피니까."
"그러죠, 뭐."
나는 담배와 함께 라이터도 건넸다. 미소가 불을 붙이자 담배를 입에 물고 그녀 앞으로 내밀었다.
"나도 붙여줘."
"네."
미소가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종현 오빠한테 듣던 거랑 살짝 다른 느낌이네요."
"뭐가?"
"오빠가 그랬거든요. 체육과에 엄청 훈남 오빠 있다면서. 매너도 좋은."
"그게 나였어?"
"네. 제가 다른 멤버들도 데려가니까 잘생긴 오빠들 많이 데려오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종현 오빠가 그러더라고요. 자기과 에이스 오빠 데려간다고."
"에이스는 무슨. 그리고 나 별로 매너 안 좋아."
"그래요?"
"그냥···. 뭐 이미지 관리지. 실은 양아치야."
"양아치 같아 보이진 않은데요?"
"왜?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전분 거 같아?"
일부러 도발적인 멘트를 날렸다.
그것은 미소를 저격한 질문이기도 했다.
겉으론 멀쩡한 아이돌이지만, 어렸을 때 사고를 쳐 미혼모가 된 너야말로 겉과 속이 전혀 다른 인물이 아니냐면서.
미소가 살짝 찔렸는지 주춤하며 대답했다.
"맞아요. 사람, 겉모습만으론 알 수 없죠."
"넌 혹시 마음에 드는 애 있어?"
"누구요?"
"아니 여기."
"없어요."
"그래? 다들 좀 찐따 같나?"
"꼭 그런 게 아니라···. 오늘은 종현 오빠 군대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배웅하러 온 거잖아요."
"종현이랑 많이 친했어?"
"네. 어렸을 때부터 큰삼촌네랑 자주 어울렸어요."
"종현이네 아버지가 큰 삼촌이야?"
"명절에 그 집에서 자주 모였어요. 할머니를 모셔서. 그래서 종현 오빠랑은 어렸을 때부터 잘 알고 지냈어요. 친척끼리 놀러 자주 다니고."
"신기하네. 종현이랑 정 반대 성격 같은데."
"제가요?"
"종현인 솔직히···. 좀 많이 순진하잖아."
"맞아요."
"넌 전혀 아닌 거 같고."
"절 아세요?"
미소가 공격적으로 대응했다.
오늘 처음 본 사이에 뭘 안다고 함부로 떠드냐고 따지는 모습이었다.
"그닥, 순진한 타입은 아닌 거 같아서."
"흥, 별소릴 다 듣겠네."
미소가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비벼 끄더니 쌩하고 클럽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마저 담배를 피우며 생각했다.
‘인상 좀 남겼겠지?’
[그냥 재수 없어 보이던데요?]
‘그랬으면 다행이지.’
[네?]
‘일부러 그런 거라고. 재수 없게. 최대한 싸가지없어 보여야 관심을 끌 꺼 아냐?’
[나쁜 남자를 좋아한다고 했지, 나쁜 놈을 좋아한다는 말은 아닌거 같은데요.]
‘아냐. 내 말 믿어봐. 속으로 짜증 좀 났겠지만, 확실하게 각인이 되었을 거야. 이도훈은 왕싸가지, 이런 식으로.’
[그게 도움이 될까요?]
‘나쁜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려면 일단 나쁜 놈이어야 해. 그리고 딱 한 번만 잘해주면 그걸로 평가를 반전시킬 수 있거든. 일단 밑밥을 깔아 뒀다고 봐야지.’
***
도훈의 생각대로였다.
클럽으로 들어온 미소는 짜증을 부리며 여자 화장실로 향했다.
‘재수 없어. 지깟게 뭔데 날 함부로 평가해?’
그녀 역시 빽에서 화장품을 꺼내 화장을 새로 고쳤다.
‘종현 오빠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해서 좋게 봤더니만, 완전 양아치 새끼잖아?’
생각하면 할수록 분했다.
아이돌인 자신을 얕잡아본다고 생각했다.
‘데뷔하고 나면 쳐다도 못 볼 사람이면서···. 흥!’
그녀는 도훈의 말처럼 자신도 모르게 계속 그를 의식했다. 관심도 없던 그가 점점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그때 여자 화장실에서 나온 린다가 그녀를 발견하고 옆으로 다가왔다.
"미소, 여깄었니?"
"언니."
린다가 손을 씻으며 미소에게 물었다.
"나 오늘 숙소 안 들어갈 것 같은데, 아침에 매니저 오빠보면 잘 좀 말해줄래?"
"네? 숙소를 안 들어간다고요?"
< 619. 아이돌 vs 돌아이-12-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