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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633화 (606/2,000)

< 615. 아이돌 vs 돌아이-8- >

처음 어깨를 어루만질 땐 조금 시원한 정도였다.

몸에 좋은 크림이 피부에 닿지 않으니 당연한 결과.

"너무 약하네. 팍팍 좀 해 줘봐요. 애무하는 것도 아니고."

"그러게 남자가 뭐 그리 힘이 없어요?"

구경하던 다른 아이돌들이 슬슬 약을 올렸다.

순진한 척 내숭 떠는 제희를 놀리기 위한 것과 동시에 남자 중에서 가장 먹음직(?)스러운 도훈을 도발하려는 의도였다.

원성을 들은 도훈이 조심스럽게 제희에게 물었다.

"여왕님, 더 세게 해드릴까요?"

‘여왕’이라는 단어에 제희가 흠칫했다.

왕 게임의 묘미는 순전히 뽑기의 결과로 기존 서열이 수직으로 재편된다는 점이다. 종전까지의 관계가 무너지고, 지배-피지배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생겨난다.

인간은 늘 권력이란 단맛에 취하기 마련.

그런 점은 제희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후훗! 나보고 여왕님이라고? 잘생긴 육노예가 하나가 얻어 걸린 기분인걸?’

"그래. 더 세게 해보렴."

어느덧 상황을 즐기게 된 제희가 자연스럽게 말을 놓았다.

게임의 재미를 위함이라는 명분이지만, 잘생긴 훈남 도훈을 마음껏 부린다는 점이 그녀의 감춰진 정복욕을 충족시켰다.

"네, 여왕님."

도훈이 공손히 대답하더니 목 뒤를 엄지로 쓰다듬기 시작했다. 경추 부근을 원을 그리며 쓸어내는 동작에, 제희는 짜릿한 충격을 받았다.

‘하아···. 뭐, 뭐지? 뭔데 이렇게 살 떨려?’

분명 단순한 동작이었다. 자연스러운 어깨 안마의 흐름이었고, 유달리 예민한 부위도 아니었다. 그러나 어깨에서 손이 목으로 올라오는 순간 제희는 찌르르한 자극에 흐느꼈다.

"흐으응!"

결국 신음을 참지 못한 제희가 나직한 숨을 토해내자, 지켜보던 린다가 빵 터지고 말았다.

"푸하! 뭐니? 쟤 방금 느낀 거 같은데?"

"제희 언닌 경추 1번이 성감대 였나봐요."

"와우!"

"아, 아니라고!"

제희가 반박했지만, 이미 표정으로 느끼고 있었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목덜미와 풀어진 동공이 그것을 증명했다.

"제가 너무 세게 했나요? 살살 할게요."

도훈이 목을 쥐던 손에 힘을 풀었다.

그러나 이미 몸에 좋은 크림이 잔뜩 묻은 이상, 만지는 구석구석이 성감대나 마찬가지. 솜털만 스치는 희미한 자극에도 제희는 몸을 비틀며 다리를 오므렸다.

‘흑, 내가 왜 이러지? 마치 혀끝으로 허벅지 안을 쓱쓱 핥아대는 기분이야.’

제희는 본디 섹스를 즐기는 여자였다.

데뷔 준비로 방탕한 생활을 중단했지만, 그녀의 몸속 깊은 곳에는 과거의 흔적들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도훈이 교묘한 자극으로 그것을 일깨우자 순식간에 몸이 달았다.

한번 걸레는 빨아도 걸레, 돌아온 탕녀는 여전히 탕녀였다.

"흐응, 흐으···."

제희가 완전히 힘이 빠진 채 소파 깊숙이 몸을 파묻었다.

유두가 바짝 서고 사타구니 안쪽이 축축해지는 기분이었다.

이대로 시간이 멈춘 채, 도훈과 단둘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불쑥 그녀의 뒤통수로 뭔가 딱딱한 게 닿았다.

단단하고, 두툼한 무엇.

‘뭐, 뭐야?’

등 뒤에 선 도훈의 키를 생각할 때 그 야무진 것의 정체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밤마다 빈 허공에 집어넣으며 갈구하던 것. 그러면서도 늘 허덕일 수밖에 없었던 바로 그것이었다.

‘이, 이 남자! 바, 발기하고 있잖아?’

제희의 몸이 더욱 뜨거워졌다.

홀로 켜진 등불은 촛농만 흘릴 뿐이다.

그러나 나란히 붙은 촛대는 서로의 몸체를 녹여 내린다.

덩달아 흥분한 도훈을 떠올리자 제희의 숨이 더욱 거칠어졌다.  이토록 단단한 물건을 품은 지 언제였던가? 보는 눈만 없다면 당장 지퍼를 내려 꺼내 빨아 재끼고 싶은 심정이었다.

"5분 끝!"

"버, 벌써?"

"봐. 내가 시간 쟀어."

린다가 얄밉게 핸드폰 스탑워치를 꺼내 보였다. 처음부터 칼같이 타이밍만 보고 있었던 것. 동시에 도훈이 몸을 물러서며 깔끔하게 손을 거두었다.

"그럼 이제 왕 끝난 거죠?"

"아···."

제희가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단순 안마였지만, 그녀는 벌거벗겨져 오일마사지를 받는 듯한 짜릿함을 만끽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났더라면 청바지 위가 오줌을 싼 것처럼 흠뻑 젖어 버렸을 것이다.

"그럼 다시 왕 뽑자."

"저, 전 잠시 화장실 좀."

"뭐야? 왕하고 도망가기야?"

"저도요! 벽 보고 서 있다가 바지에 쌀 뻔 했잖어요."

"차라리 싸질 그랬니. 좋은 구경이나 하게."

두 명이 타임을 요청하자 분위기가 일소되며 잠시 휴식이 이어졌다. 가방을 챙겨 화장실로 뛰어가는 제희를 향해 도훈이 몰래 윙크를 날렸다. 제희는 부끄러움에 눈도 못 마주치며 도망치듯 룸을 빠져나갔다.

여자 화장실 칸으로 들어간 제희가 서둘러 문을 닫았다.

바지를 내리고 팬티를 확인하는 그녀의 손이 몹시 떨렸다.

"서, 설마···."

보나마나였다.

그녀의 팬티 가운데 면 부분이 민망할 정도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오줌을 지리지 않았다면, 분명 봇물이 터진 것이다.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어깨가 아니라 가슴 주물럭을 당했더라도 이 만큼 지리진 않았을 것이다.

‘그건 뭐지?’

더욱이 끝나기 전 자신의 뒤통수에 조용히 가져다 대던 묵직한 심볼. 실수가 아니라는 건 초등학생도 눈치챌 정도였다. 특히 마지막엔 윙크를 보냄으로써 확실한 시그널까지 줬다.

의도는 명백했다.

도훈은 자신을 원하고 있었다.

휴지로 밑을 닦던 제희가 픽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순진한 척 내숭을 떨고 있었는데, 자신의 실체를 귀신같이 알아낸 그의 눈치에 놀랐다.

‘생각보다 훨씬 대범하잖아?’

처음 술자리에 끌려왔을 때만 해도 적당히 기분만 내다 몰래 클럽으로 내뺄 생각이었다. 나오기 위한 명분이 중요할 뿐 어차피 각자도생이다.

같은 그룹 멤버라고 사생활까지 공유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특히 자신처럼 애초부터 걸그룹이 아닌 솔로 가수를 꿈꿨던 그녀에겐 지금의 멤버들과 진심으로 어울리긴 쉽지 않았다. 아니, 그럴 생각조차 없었다.

발판일 뿐이니까.

그녀가 아이돌을 택한 건 솔로 가수가 살아남기 힘든 시장 때문이었다. 실력도 출중했고, 외모도 나쁘지 않았지만, 딱 그 정도였다.

비유하면 대중들은 뷔페를 원했다. 수많은 먹거리 중에 골라 먹기를 원하지, 잘 차려진 일품 식사엔 영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따라서 제희는 걸그룹 활동으로 이름을 날린 뒤 솔로로 전향한다는 플랜B를 선택했다. 플랜A에 속한 친구들과 지켜야 할 의리따윈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의리가 없기에 친구도 아니다.

친구가 아니니 도훈을 독차지하는 것도 거릴 낄 게 없다.

제희는 오늘밤 도훈을 가져야겠다고 결심했다.

그 또한 자신을 원하고 있다고 믿었다.

단단히 발기된 대물은 명백한 증거였다.

***

‘아씨 너무 힘을 줬나? 아직도 안 풀리네?’

바짝 일어선 대물을 바지 옆으로 돌리는 것도 수난이다.

테이블 밑에서 살짝살짝 밀어 보지만, 여전히 누가 보면 ‘좃끼니 진’을 입었다고 비웃을 정도로 툭 튀어나와 있었다.

[당분간 일어서지 마십시오.]

‘그래야겠어.’

"아직 애들 다 안 왔나?"

"전 왔어요."

"제희 언니 아직 안 온 것 같은데요?"

"걔는 뭐한다니? 실컷 여왕 재미만 보고. 화장실 가서 남친이랑 통화하고 있나?"

린다의 말에 미소가 깜짝 놀라 물었다.

"제희 언니 남친 있었어요?"

"아니 뭐···. 계속 안 오니까 혹시 통화하나 싶어서."

"아이돌이 남자 친구 사귈 수 있어요?"

평소보다 말이 많아진 우선이 물었다.

"아니. 하지만 예스."

"네? 그게 무슨 대답이에요?"

"공식적으론 무조건 없어야 해. 걸그룹이면 특히."

"그럼 예스는 뭔데요?"

"비공식적으론 가능하다 이거지. 몰래몰래 사귀는 사람 많다고 들었어. 사귀진 않아도 할 거 다 하는 애들도 많고."

"할 걸 다 하다뇨?"

말이 많아지니 저것도 문제군. 평소에도 순진하다고 생각했는데, 보통 사람들은 뻔히 이해하고 넘어가는 내용도 꼬치꼬치 캐묻고 있다.

나는 우선과 린다가 대화하는 틈을 타 몰래 치팅을 준비했다.

‘이걸 담배에 바르면 색이 구분된다 이거지?’

[네. 무색무취의 현광 물질입니다. 오로지 뒷패보기 렌즈를 착용한 주인님 눈에만 구분되어 보입니다.]

‘좋아. 이틈에 몰래 작업이나 해야겠다.’

"우선이라고 했던가? 너 몇 살이랬지?"

"스물하나요."

"알만한 남자가 왜 이러실까? 그건 우리 막내들도 알겠는데."

"모르니까 그러죠. 가르쳐 주세요."

우선이 끈질기게 덤볐다. 린다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담배를 만지고 있던 내 손을 불쑥 잡았다.

"최자 오빠, 오빠네 대학에선 성교육 안 해?"

조작을 하고 있던 나는 깜짝 놀라 엉겁결에 대답했다.

"서, 성교육은 실전이지!"

"뭐래?"

[주인님!]

‘읏. 밑장 빼고 있는데 손을 덜컥 잡아서 나도 모르게···.’

[어서 수습하셔야 합니다.]

"농담이야. 우선이가 순진한 편이라 그래. 근데 너도 스물 셋 아냐?"

"맞아요."

"나랑 동갑인데 왜 자꾸 오빠라고 불러?"

"원래 크면 오빠잖아. 아니었어?"

린다가 노골적으로 내 바지춤을 깔아보며 웃었다.

"키 말이야. 키. 키 크니까 오빠라고."

"괜히 나이 들어 보이니까 오빠 소린 그만하고, 최자라고 부르지도 마. 멀쩡한 이름 놔두고 왜 남의 이름으로 불러?"

"까칠하게 굴긴. 알았어 이도훈 군."

다행히 현광 물질이 잘 묻었는지 잠시 후 왼쪽 눈에 담배색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빨주노초파보백. 파랑색과 남색을 구분한 자신이 없어 무지개색 중 6개만 묻히고 나머지 하나는 묻히지 않았다.

빨간색부터 순서대로 1이며, 백색은 무조건 왕이다. 난 이제 손에 쥔 담배 색만 보고도 누가 몇 번인지 알 수 있게 되었다.

마침 제희가 돌아왔다. 들뜬 화장도 고쳤는지, 아까보다 훨씬 단정해져 있었다. 그녀는 나만 볼 수 있도록 의미심장한 웃음을 띠더니 제 자리로 앉았다.

"그럼 다시 시작해 볼까?"

왕게임은 이전 왕이 제비를 쥐고 맨 마지막에 뽑는다.

제희가 숫자가 기입 된 필터 부분을 말아쥐고 손을 내밀었다.

‘흐흐, 보인다 보여. 이번엔 내가 왕 해야지.’

하얀색 담배를 집으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나보다 먼저 하얀색 담배를 잡아채는 사람이 있었다.

‘아앗! 젠장!’

하필 처음 뽑는 사람이 바로 왕을 뽑아가 버릴 줄이야.

뒷패가 훤히 보인다고 선착순을 망각한 게 패착이다.

"아하핫! 이번엔 내가 여왕이다!"

당첨자는 린다였다.

그간 대화를 통해 드러난 그녀의 적나라한 성격을 익히 알았기에 여자고 남자고 다들 숨죽이며 처분을 기다렸다.

새로 등극 된 여왕은 여유가 있었다.

동시에 여러 명령을 시키지 않고, 순차로 여유를 두었다.

명령 5분 제한이라는 룰을 어기지 않으면서도 최대한 길게 재위를 누리려는 속셈이었다.

"자 일단은···."

두근.

‘아씨, 이게 뭐라고 떨리냐.’

[은근 좋아하는 거 아닙니까?]

‘여자랑 걸리면 좋기야 하겠지. 근데 동성끼리 걸리면 좆같단 말이야.’

모두 같은 심정일 것이다.

왕게임은 쉽게 말하자면 운빨좆망겜이다.

왕이 되어도 누가 누군질 모르는 이상 원하는 이성을 낙점할 수 없다. 또 왕이 되지 않아도 누군지도 모르는 상대와 끔찍한(?) 행위를 꼼짝없이 수행해야 한다.

"1번은···."

"아!"

제희가 탄식을 쏟아냈다.

멍청이 같으니!

저런 단순한 속임수에 속아 넘어가다니.

마사지 좀 해줬다고 몸이 붕 떠서 사지 분간을 못 하는 게 틀림없다.

"어머? 1번이 제희였니?"

"아, 아니 저는."

구체적인 명령이 떨어지기 전까지 스스로 번호를 밝히는 것은 바보짓이다. 왕이 사람을 보고 명령을 고를 수 있기 때문이다.

"1번 대가리 박아 시키려고 했는데."

"대, 대가리요?"

"언니!"

과격한 명령에 여자들이 반발했지만 린다의 표정은 단호했다.

"무엄하게! 여왕의 말이 곧 법인 거 몰라?"

게임의 룰까지 짚고 나오면, 불만이 있어도 표출해선 안 된다. 그것이 게임의 법칙.

다들 입이 튀어나온 채 입을 다물자 린다가 계속 말했다.

"알았어. 봐줄게. 1번은 지금부터 엎드려뻗쳐."

"어, 엎드려요?"

"그래. 남자들 풋샵하기 전에 하는 자세 있잖아."

"언니 제가 몸이 좀···."

"아님 대가리 박을래?"

"어, 엎드려 뻗쳐!"

제희가 울상을 짓더니 맨바닥에 복명복창 후 엎드려 뻗쳤다. 술자리에서 느닷없이 기합을 받는 그녀를 보자 다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아직 안도할 때가 아니다.

"1번은 끝났고. 그럼 어디 보자."

린다의 시선이 감시레이더처럼 좌중을 훑었다.

야릇한 커플 벌칙을 상상하던 모두는 ‘무엇이든 가능한’ 폭군의 등장에 숨을 죽이고 몸을 웅크렸다.

‘절대 티 내지 말아야지.’

아마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두 번째 유도 심문에 넘어가는 사람은 없었다.

"2번은···. 누굴 까나?"

다들 대답이 없었다. 소리 없이 이만 드러내고 웃는 이도 있었고,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무표정한 연기를 펼치는 이도 있었다. 어찌됐던 최악의 벌칙만은 피하고 싶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에이, 될 대로 되라지. 2번하고 3번은 맥주키스!"

"맥주키스요?"

"그게 뭔데요?"

"뭐긴 뭐야. 2번이 맥주 한 모금 마시고 3번한테 전달하는 거지. 단, 입술로만."

"헉!"

"벌칙이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

"미소 너 꼬우면 네가 왕 해. 그럼 되겠네."

"와, 진짜."

"얼른 2번 3번 나와. 누구야?"

우선이 조심히 손을 들었다.

"2, 2번요."

"3번은?"

구석에 있던 링링이 걸어 나왔다.

"전데요."

< 615. 아이돌 vs 돌아이-8-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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