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628화 (601/2,000)

< 610. 아이돌 vs 돌아이-3- >

모두 기대감 가득한 표정으로 열린 문을 쳐다보았다.

누가 먼저 들어와도 대박이다. 무려 걸그룹 멤버들이 아닌가?

"저 주문은 어떻게?"

하지만 들어온 사람은 노래방 웨이터였다.

김빠지게···.

"일행 다 오면 시킨다니까요."

"아냐. 미리 시켜놓자. 여기 맥주 10병에 소주 3병만 주세요. 안주는 과일이랑 마른안주 하나씩 주시고."

"혹시 잔은 몇 개나···."

"8개요."

웨이터가 물러나가 주문을 마친 내게 우선이 물었다.

"형. 술 잘 못 드시지 않아요? 웬 술을 그렇게 많이 시켜요?"

"뭐가 많아? 해봐야 두당 한 병꼴인데?"

"폭탄주 말게요?"

"그래야지. 너 처음 본 여자애들이랑 어색하지 않게 잘 놀 자신 있냐?"

"아, 아뇨."

우선은 말투가 너무 딱딱한 게 흠이다.

나는 이번엔 미소의 사촌 오빠인 종현을 향해 물었다.

"넌 자신 있어?"

"아, 아뇨. 전 원래 여자들하고 얘기하는 게 어색해서···."

종현은 척 봐도 쑥맥이다.

본체인 이도훈 성격이 딱 저랬을 것 같은 소심쟁이다.

도훈이 이처럼 훌륭한 피지컬을 가지고도 바로 그 성격 때문에 여자를 못 만났다는 걸 생각하면, 종현은 아마 여자들 사이에서 존재감 제로가 될 가능성이 컸다.

"거봐. 그래서 술이라도 먹이고 생각해야지."

"술 먹으면 좀 나으려나요?"

"일단 우리가 취하든 상대가 취하든 둘 다 상관없지."

"왜요?"

"술을 마시면 경계심이 사라지잖아. 인간관계를 이어주는 윤활제 같은 역할이랄까?"

내 얘기를 잠자코 듣고 있던 성수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도훈이 네가 웬일이냐? 평소엔 술도 잘 안 먹던 놈이?"

"형. 제가 술을 안 마신 거지 못 마시는 건 아니거든요."

"푸하! 웃기고 있네. 네가?"

"왜요? 저 군대 다녀온 이후로 술 많이 늘었어요."

성수가 피식 웃었다.

생각해 보니 저놈은 덩치만큼 굉장한 주당이다.

이제껏 술자리에서 단 한 번도 취한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내가 너 군대가서 많이 바뀐 건 아는데, 술 늘었다는 얘긴 전혀 못 믿겠다."

"왜요?"

"너 저번에 새터 가서 사발주 먹고 뻗은 거 기억 안 나? 그때 완전히 코미디였는데."

"아, 맞다. 도훈이형 그때 기절했잖아요."

으. 팩트로 폭행하니 반박할 말이 없었다.

"그, 그땐···. 컨디션이 별로여서 그랬어요."

"그리고 너 원래부터 술 못 마시잖아. 한 잔만 마셔도 얼굴 빨개지고."

"체질이 바뀌었다니까요?"

"됐고. 다들 오버하지 말고 주량껏 마셔라. 괜히 술 취해서 추태 부리면 초대한 종현이 입장만 민망해지니까. 알았지?"

성수의 으름장에 다들 꿀 먹은 표정이 되었다.

삼촌 팬의 대명사이자 자기 여친 밖에 모르는 저 근육 돼지는 나머지 솔로들과 전혀 지향점이 다르다. 평소엔 듬직한 우군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만큼은 그의 존재가 성가시기 짝이 없었다.

‘안 되겠어. 일단 성수부터 보내야겠어.’

[성수 군을요?]

‘그래. 하는 꼴을 보니 성수 앞에선 작업 치기도 곤란할 거야. 거기다 최근엔 소개팅까지 시켜줬잖아. 수지랑 잘 되어가는 걸로 아는데 여기서 여자애들 꼬시고 있으면 나를 뭐라고 생각하겠어?’

[그야 천하의 바람둥이로···.]

‘그러니까. 최우선적으로 제거해야해.’

[하지만 무슨 수로 성수 군을 보내죠?]

‘혹시 술기운 같은 거 확 돌게 하는 비약 없을까?’

[흐음, 마켓에서 검색해 보겠습니다.]

잠시 후 검색을 마친 로시가 아이템을 알려왔다.

[취하고 싶을 땐, 드렁큰 드링크라는 제품이 있습니다.]

‘드렁큰 드링크?’

[네. 술이 쌔서 잘 취하지 못하는 플레이어를 위해 개발된 제품입니다. 술에 타 섞으면 평소보다 5배 이상 취기를 끌어 올려 줍니다.]

‘오오. 그럼 소주 한 병이 다섯 병 되는 효과인가?’

[그보다 훨씬 빠르죠.]

‘왜? 방금 5배 이상이라며?’

[인간의 알콜 분해속도는 대체로 타고납니다. 성수군이 평소 1병씩 천천히 마시며 취하는 것과, 다섯 병을 한 방에 원 샷을 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죠.]

‘아아! 그런 뜻이구나! 그럼 한잔 마시는데 다섯 잔을 연거푸 마시는 효과인 셈이네?’

[네.]

이 정도라면 제아무리 주당이라도 못 버틸 수준이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아이템을 인계받았다. 비용이 좀 들긴 했지만, 포인트에 여유가 있으니 소모성 아이템 정도는 얼마든지 사도 상관없다.

그 사이 기다리던 손님보다 술이 먼저 도착했다.

성수를 보내기 위해 내가 직접 폭탄주를 말았다.

"근데 성수 형은 취하면 어떻게 돼요?"

"취하다니? 취해본 기억이 없는데?"

"그래도 한 번쯤은 있을 거 아니에요."

"주사 말이야? 글쎄···."

성수가 기억을 더듬고 있는데 옆에 있던 우선이 말했다.

"전 말이 많아 진데요."

"말이?"

"네. 평소엔 별로 말 안 하잖아요. 근데 술 취하면 입을 쉬지 않는다고···."

"잘됐네. 과묵한 것보단 수다쟁이가 낫지. 종현이는?"

"저는···."

종현이 쑥스러운지 머리를 긁적였다.

"왜? 설마 막 울고불고하는 건 아니지?"

"아니에요. 전 취하면 필름 끊길 때까지 마셔서 잘 기억은 없어요. 근데 친구들이 다음날 하는 말이···."

"하는 말이?"

"좀 성격이 확 바뀐다고."

"그래?"

"폭력적으로?"

"막 기물파손 하는 거 아니지?"

"아, 아니에요. 암튼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 나 생각났다."

그때 성수가 다시 말했다.

"난, 집에 들어가."

"네?"

"주사가 집에 가는 거라고요?"

"어. 어렸을 때 몇 번 있었거든. 난 취하면 이상하게 그냥 집으로 택시 타고 가버려. 주변에 말도 없어."

"계산도 안 하고요?"

"먹튀 하시는 거예요?"

"아니,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 그냥 나도 모르게 집으로 가고 싶더라고. 계산이야 다음 날 계좌이체 시키지. 도훈이 넌 잠드는 거 아니냐?"

"맞아요. 전 취하면 잠드는 버릇이 있긴 했죠. 옛날에는."

"퍽이나. 또 잔뜩 마시고 뻗지 마라."

주사 얘기를 꺼내며 몰래 성수의 잔에 드렁큰 드링크를 탔다. 이제 그는 남들보다 다섯 배의 술을 마시게 될 것이다.

"자, 손님들 오기 전에 저희끼리 한 잔 하죠. 첫 잔은 원샷입니다!"

"좋지."

"종현이를 위하여!"

"건배!"

모두가 벌컥벌컥 술을 들이켰다.

난 미리 숙취 해소제를 먹었기 때문에 술이 물처럼 느껴졌다. 술을 털어 넣으면 성수를 쳐다보는데 그의 표정이 미묘했다.

‘후후. 느낌 확 올걸?’

[한잔 마시는데 한 병을 원 샷하는 기분이겠군요.]

‘아무리 말술이라도 저 속도는 감당 못 하지.’

과연 잔을 끝까지 털어낸 성수가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우아! 도훈이 너 소주 얼마나 탄 거야? 한 방에 훅 가는데?"

"한 잔씩 밖에 안 넣었는데요?"

"그래? 이상하네. 뭔가 확 오르는 거 같은데?"

"에이, 성수형 술이 많이 약해지셨네. 아까 1차때 많이 드신건 아니에요?"

"아냐아냐. 뭘 이정도 가지고. 아직 어림없다."

성수가 여전히 자신만만하게 답했다.

하지만 그는 절대 한 시간을 못 버틸 것이다.

승부는 그때부터다.

그때 마침내 종현이 초대한 걸그룹 멤버들이 도착했다.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온 꽃 같은 걸그룹 모습에 다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고 말았다.

"아, 안녕하세요!"

절로 기립하게 만드는 엄청난 미모의 여성들.

특히 선두에 선 미소라는 아이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종현 오빠 사촌 동생 미소라고 해요. 여긴 저희 큐티멤버들."

"그룹 이름이 큐티예요?"

"네. 다음 주 데뷔하면 응원 많이 해주세요!"

다들 고개를 꾸벅이며 뻘쭘하게 서 있자 도훈이 먼저 나서서 자리를 안내했다.

"이쪽에 앉으세요."

"어머, 자상하셔라."

"고마워요."

자리에 착석하고 보니 ‘ㄷ’자로 이루어진 테이블에 여자 넷이 나란히 앉고 양 끝에 남자 둘씩 앉은 형태였다. 도훈은 미소와 종현 사이에 앉으며 자연스럽게 그녀를 독대했다.

[자리를 섞지 않고 왜 나란히?]

‘일단 여자들끼리 뭉쳐 놓아야 경계심이 많이 줄어들 거야. 처음부터 짝지어 앉혔다간 괜히 반발심이 생길 수도 있거든.’

[아! 역시!]

자리 배치는 도훈의 의도였다.

숫자까지 맞춰서 1:1로 나란히 앉히면 초대된 여자들은 남자들의 저의를 의심할 것이다. 처음에는 탐색전이니만큼 적당히 거리를 두는 편이 좋았다.

[그래도 미소양 옆에 앉는 데 성공하셨군요.]

‘내가 주도 했으니까. 또 종현이도 옆에 있으니 말 걸기도 자연스럽지.’

[과연 치밀하신 분.]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8명이 뭉치니 살짝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때 성수가 나서서 술을 따랐다.

"자자, 힘들게 나오셨는데 술이나 한 잔씩 하죠."

"네, 그래요."

"소맥 괜찮을까요?"

"네!"

다들 술을 좋아하는지 소맥을 거부감 없이 받았다. 술이 한 차례 돌고 나니 끼리끼리 대화가 이어졌다.

종현은 사촌 동생 미소에게 도훈을 소개했다.

"이쪽은 우리과 도훈이 형."

"안녕하세요, 도훈 오빠라고 불러도 돼요?"

"네. 진짜로 본명이 미소에요?"

"맞아요. 이미소요."

"이름 참 예쁘네요."

"어머, 감사합니다!"

미소는 생글생글 웃는 얼굴만큼이나 성격이 쾌활한 타입같았다. 처음 보는 도훈을 보고도 금방 친화력을 발휘했다. 연예인 될 정도의 끼가 있어서인지 낯설어 하는 기색이 없었다.

도훈은 미소 옆에 여자에게도 이름을 물었다.

"실례지만 옆에 분은···."

"링링이예요."

"아! 그 중국에서 왔다던."

"네."

"한국말 엄청 잘하시네요?"

미소가 대신 말을 받았다.

"링링 한국말 잘해요. 가끔 좀 뜬금없는 소릴 할 때도 있지만."

"야아~. 내가 언제에~."

링링이 미소의 팔을 꼬집으며 애교를 부렸다.

도훈이 보니 의외로 귀여움이 많은 타입 같았다.

‘캬. 아이돌이라 그런지 하나 같이 거를 타선이 없네. 이렇게 미인들만 모아놓은 것도 오랜만이군.’

도훈의 주변엔 미인이 많은 편이었다.

특히 꽃밭이라 불리는 체육과 1학년 8선녀의 미모는 사범대 내에서도 자자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따져볼 때 현역 아이돌에 견줄 수 있는 사람은 육정음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쉽게 말해 한명 한명이 정음이 이상의 미모였다.

‘휴-. 얼굴 작고 마른 것 좀 봐. 아직 데뷔도 안 한 걸그룹이 이 정도면 탑급은 대체 어느 정도란 걸까?’

도훈은 반대편을 쳐다보며 나머지 멤버의 실물을 확인했다.

성수 옆에 앉은 긴 머리의 여자는 싱어송라이터 제희라는 여자였다. 실력파 가수라고 소개 했는데, 의외로 글래머에 청순한 여대생 느낌이었다.

‘오오. 청순 글래머!’

그리고 그 옆의 빨간 머리는 랩퍼인 린다.

말수가 없는 데다 기분이 별로 안 좋은 건지 자꾸 껌을 씹으며 팔짱을 낀 채로 앉아 있었다. 예쁜 얼굴이지만 반항기가 가득해 쉽게 접근하기가 힘들어 보이는 인상이었다.

도훈은 순간적으로 그녀가 이 모임의 오피니언 리더임을 직감했다.

‘린다를 붙잡아야 겠군.’

[네? 그게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

‘너, 단체 헌팅이 왜 쉽게 성사가 안 되는 줄 알아?’

[그야 모르죠.]

‘여자들은 남자랑 달라서 일행 중 한 명이라도 삔또가 상하면, 우르르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리는 특성이 있거든.’

[아···.]

‘딱 보니 린다는 이 자리에 오기 싫은데 마지못해 끌려온 느낌이야. 게다가 누가 말도 안 걸어 주고 방치해 버리니까 혼자서 삐져서 껌만 질겅질겅 씹고 있잖아.’

[불만 가득한 얼굴이긴 하네요.]

‘저대로 계속 두면 분명 나중에 애들 싹 데리고 나가버릴거야. 아까 프로필 보니까 나이도 이 중에서 제일 많고, 학벌도 높더라고. 분명 발언권이 세다 보니 나머지 애들도 린다의 뜻을 거스르기 힘들 거야.’

[흐음, 그렇다면 린다양을 우선적으로 커버해야 겠군요.]

‘그렇지. 그녀를 눌러 앉히지 못하면 이 모임 한 시간 안에 파토 날거야.’

도훈은 본능적으로 린다가 핵심 인물임을 직감했다.

‘린다 정보창 띄워봐.’

[정보창은 신중히 띄우셔야 합니다. 쿨타임이 시작되면 나머미 멤버들은 확인을 못하니까요.]

‘모임이 깨지면 정보창이고 뭐고 헛수고야. 일단 띄워.’

[넵.]

곧 린다의 정보창이 디스플레이에 띄워졌다.

-----------------------------

성명 : 린다 김 (비처녀, 일시 17세 5개월)

나이 : 23 #힙합스웩 #문신녀 #까칠녀

호감도 : 54/100

개방성 : A

성감대 : 젖꼭지, 클리토리스, 귓불

*애무 포인트 : 피어싱을 한 귓불을 핥아주는 걸 좋아합니다.

성욕지수 : 상.

공략팁

*위 대상은 당신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습니다.

-일찍이 미국에서 유학한 그녀는 가수가 되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힙합에 심취한 그녀는 평소에도 늘 힙합 음악을 들으며 가사를 쓰는 취미가 있습니다.

-그녀는 몸에 가득한 문신과 피어싱 때문에 실력보다 낮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버클리 음대에 들어갈 만큼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갖추고도 편견 때문에 데뷔가 늦어진 데 많은 불만이 있습니다.

-쉬는 날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던 그녀는 미소의 강권에 못 이겨 술자리로 끌려온 상황입니다.

-그녀는 미국에서 사귀던 외국 남자친구들과 비교해 한국 남자들의 성 능력이 형편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딱히 남자에게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추천행동 : 그녀가 좋아하는 힙합 음악에 대한 주제로 대화의 물꼬를 열어 보세요.

------------------------------

< 610. 아이돌 vs 돌아이-3- > 끝

ⓒ 성난불기둥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