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5. 거지필반-65- >
지나친 솔직함은 때론 뻔뻔해 보이기 마련이다.
지금 도훈의 모습이 딱 그러했다.
"난 여자를 많이 좋아해. 오는 여자 막지 않고, 가는 여잘 말리지도 않지. 그러다 보니 많은 여자를 동시에 만난 적도 있었어. 네가 날 감시했을 때가 아마 그럴 때였을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무슨 나쁜 짓을 한 건 아니잖아?"
"뻐, 뻔뻔한 자식 같으니! 그게 바람 피는 거랑 무슨 차인데?"
"바람이라고? 내가 누굴 사귀었나? 여자 친구가 있는데도 없다고 속였어?"
"그, 그건···."
예림의 얼굴이 새빨게졌다.
설마하니 도훈이 저렇게 뻔뻔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너 혹시 나 많이 좋아했니?"
도훈이 훅 들어오자 예림이 대번에 반박했다.
"개소리 집어치워! 나랑 한 번 잤다고 네가 뭐라도 된 것 같아? 그게 뭐라고?"
하지만 그것은 도훈의 의도적인 낚시였다.
"그래. 말 잘했네. 한 번 잤다고 그게 무슨 상관인데?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나도 그 날 일은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을 뿐이야. 젊은 남녀가 삘 받으면 원나잇 할 수도 있는 거잖아. 안 그래?"
예림은 자신이 내뱉은 말이 있었기 때문에 입이 있어도 반박할 수 없었다. 도훈이 계속 몰아붙였다.
"예림아. 난 원래 그런 사람이야. 그런 모습에 네가 실망할 수도 있다는 건 충분히 이해해. 하지만 그렇다고 나에게 이런 식으로 복수하는 건 옳지 않아."
"······."
"그 말 하려고 만나고 싶었어. 수지는 아마 신고하지 않을 거야. 동영상도 주지 않을 거고. 그러니 너도 더는 수지를 괴롭히지 않았으면 해."
"그 어린년이 그렇게 좋든?"
예림이 날 선 목소리로 물었다. 감정이 실린 말투에 도훈은 그녀가 질투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건 좋은 반응이군.’
[왜요?]
‘질투란 애증 없인 나올 수 없는 감정이거든. 아마도 오해가 풀린 예림이 다시 나에게 미련이 생긴 모양이야.’
[그럼 더 골치 아파 진 것 아닌가요? 이제부턴 맺고 끝음을 확실히 하겠다면서요.]
‘그래. 정리할 거야. 내가 벌인 일이니 내가 수습해야지.’
[결자해지인 건가요?]
‘아니. 이 경우엔 특별히 결자지해지라고 해야지.’
[결··· 뭐요?]
‘두고 봐. 전가의 보도란 이럴 때 휘두르라고 있는 것이니까.’
도훈은 착찹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닌데."
"아니긴 뭐가 아니야? 하룻밤 만에 너한테 빠져서 눈깔 뒤집고 나한테 달려들던데? 나한테 엄포까지 놓더라? 도훈이 너 건드리면 협박죄로 처넣어 버리겠다고. 나이도 어린게 바락바락 대드는데 무슨···."
예림은 아까 일이 다시 생각나는지 씩씩거렸다. 그리면서도 은근슬쩍 예림이 자신을 법적으로 처리 하려 한다는 사실을 내비쳤다.
사회적으로 명망 높은 변호사 아버지의 존재는, 협박을 할적에는 그녀를 옥죄는 훌륭한 무기였지만 막상 입장이 뒤집히자 굉장히 위협적인 방패로 다가왔다.
이성을 잃고 복수 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려들었지만, 막상 상황이 반전되고 나니 슬슬 두려워 지기 시작하는 예림이었다.
눈치 빠른 도훈이 그녀의 눈빛에서 불안한 심리를 읽었다.
‘로시, 지금이야. 마음의 소리.’
[넵. 마음의 소리 스킬이 준비되었습니다.]
{하-. 완전 코꼈네. 내가 준 몰래카메라를 이용해 도리어 나를 궁지에 몰아넣을 줄은···. 진짜로 그 아이가 날 고소하면 어떡하지? 도훈이를 무고하려 했던 것까지 까발리기라도 하는 날에는···.}
도훈이 그녀의 속마음을 읽고 생각했다.
‘수지가 큰 건을 해줬구나. 당하고만 있지 않을 거라더니 이런식으로 역공을 펼칠 줄이야. 후후, 이건 협상에 좋은 무기로 쓸 수 있겠어.’
주도권을 잡았다고 판단한 도훈이 예림을 향해 한결 나긋나긋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철없는 동생을 타이르는 말투였다.
"예림아. 난 수지를 소개팅으로 고작 하루 만난 거야. 걔가 나에게 어떤 마음을 품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니야. 그리고 걔가 너에게 무슨 말을 했건, 내가 못 하게 말릴게."
"흠···."
"너도 봤다시피, 내 말이라면 충분히 알아 들을거야. 그러니 그런 부분에 대해선 걱정하지 마. 네가 나한테 한 짓도 다 이해할게. 화가 났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 기춘의 편지만 봐선, 나 역시 같은 쓰레기처럼 여겨졌을 테니까. 하지만 난 정말 그런 사람 아니야. 우리 이쯤에서 없던 일로 하고 화해하면 안 될까? 서운하게 느낀 부분은 나도 사과할게."
도훈의 제안을 받은 예림이 입술을 깨물었다.
사실상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딜을 받지 않는다면, 수지는 분명 자신을 고소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일과 아무 관련도 없는 수지의 정체를 까발리는 것은 더이상 무의미했다.
또한 예림도 원래부터 본성이 악한 여자는 아니었기 때문에, 괜히 전도유망한 어린 애를 자기 일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각서의 여부를 떠나 실제로도 그녀는 수지에게 다신 연락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결정적인 것은 도훈의 너그러운 이해와 진심이 담긴 사과.
어쩌면 그녀는 그 말 한마디를 듣고 싶었던 걸지도 몰랐다.
성폭행 미수의 충격보다도 더 그녀를 상처받게 했던 것은, 도훈의 배신과 그의 무관심이었기 때문에.
끝내 예림이 눈시울을 붉어졌다.
갑자기 모든 게 서러웠다.
도훈은 원래 그런 사람이었고, 자신은 하필 그런 남자에게 정을 주었을 뿐이다.
혼자 상처받고, 혼자 오해하고···. 그러면서 자신의 잘난 외모만 망가뜨리고 말았다. 철벽녀라 불릴 만큼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던 자신이, 이제는 어린 여자애에게 살쪘다는 비난을 면전에서 들을 만큼 육덕으로 변한게 못내 서글펐다.
그때 도훈이 티슈를 꺼내 예림에게 건넸다.
"왜 갑자기 울고 그래. 마음 아프게."
"나, 난 정말···."
"괜찮아. 이제 오해가 풀렸으니 다 괜찮을 거야. 예쁜 얼굴 주름지겠다."
"흑. 난 이제 예쁘지 않아."
"무슨 소리야."
도훈이 정색했다.
"넌 내가 봤던 여자 중에서 제일 예쁜데."
예림은 도훈의 위로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런 위로 안해도 돼. 나도 내가 살찐거 다 아니까."
"살이야 다시 빼면 되지. 그리고 참고로 난 지금 모습도 충분히 예쁘다고 생각해."
"이렇게 살찐 여잘 누가 쳐다봐준다고?"
"남자가 마른 여자만 좋아하는 건 절대 아니야. 오히려 요즘에 적당히 살집이 있는 여자들이 더 인기라고."
"누가 그런 소릴 하는데?"
도훈의 감언이설에 예림의 마음이 조금씩 누그러들었다. 예림이 진정하는 기색을 보이자 도훈이 슬슬 발동을 걸었다.
"살이 찌면 아무래도 거기가···."
도훈의 시선이 노골적으로 가슴골로 향하자, 예림이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눈을 흘겼다.
"넌, 어쩜 이 와중에도!"
"오해는 마. 그냥 그런 걸 좋아하는 남자들이 많다는 거니까."
예림은 이제 스스로도 도훈이 미운 건지, 좋은 건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자신에게 한 짓을 생각하면 너무 화가 나다가도, 또 해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자기가 오해로 그를 함정을 빠뜨리려 했다는 게 몹시 미안해졌다.
어차피 볼장 다 본 사이.
예림도 이제 막 받아쳤다.
"네가 그렇다는 게 아니고?"
"나? 나야 뭐···."
"수지란 그 계집애 몸매 좋더라?"
"글쎄···. 솔직히 내 취향은 아니었어."
"뭐? 그럼 걔랑 왜 했는데?"
"그냥. 말했잖아. 오는 여잘 안 막는다고. 근데 하다보니 걔가 너무 느껴버렸나보더라고."
"흥! 하여간 자신감 하나는! 너 굉장히 건방져진 거 아니?"
"딱히 틀린 말도 아니잖아?"
"뭐?"
"내가 널 만났을 때만 해도 군대에서 전역한지 얼마 안 될 때였어. 군대 가기 전에는 여자도 몇 명 못 만났고. 하지만 이제 내 진가를 알아 버린 거지."
"그게 뭔데?"
"너도 알고 있는 그거."
"하-. 진짜 어이가 없어서!"
예림은 반박하고 싶었지만,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이렇게 뻔뻔한 바람둥이가 세상에 다 있을까?
하지만 그녀는 수지의 돌변한 행동과, 기춘의 전 여친이던 수아의 고백. 그리고 자신의 경험까지 헤아려 볼때 도훈이 가진 진정한 매력이 무엇인지 스스로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불쑥 화장실에서 보았던 그의 굵직한 물건이 떠오르자 숨이 가빠지며 그때 느꼈던 오르가즘이 생생하게 기억되었다.
‘하아-. 내가 왜 이러지? 만나면 패죽이고 싶을 만큼 미웠는데···. 막상 또 보니까 미운 정에 괜히···. 나쁜 자식이 그것만 커가지고는.’
예림은 그 일 이후로 한 번도 남자를 만나지 못했다.
마음의 상처도 컸지만, 스트레스를 폭식으로 푸느라 살이 찌면서 자연스럽게 외모에 자신감이 떨어진 것이다.
‘그동안 너무 굶었나봐. 아···. 짜증나. 나쁜 남자인 줄 알면서도 몸이 그립다니···.’
마음의 소리를 듣고 있던 도훈은 그녀의 속마음을 정확히 캐치했다.
‘옳거니. 떡밥이 먹혔구나. 한 번 질러 볼까?’
[어쩌시게요?]
‘어쩌긴. 좆으로 벌인 일이니 좆으로 해결해야지. 그래서 결자지해지라고 했잖아.’
[키하-. 진짜 주인님 인성···. 그냥 인연의 가위로 관계를 재설정 하거나, 아님 적당히 호감도를 회복시켜 상식개변 하는 방법도 있지 않습니까?]
'물론 쉬운길은 나도 알어.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예림이한테 도의적인 책임감을 느낀단 말이야. 그녀는 나때문에 맘고생도 심하게 하고 특히 외모에 자신감을 크게 잃고 말았어. 조금 힘들더라도 난 그걸 원상복구 시켜줄 책임이 있어.'
"난 지금 모습도 충분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너가 예전처럼 돌아가고 싶다면 내가 최대한 도와줄게."
"네가 무슨 수로 날 도울 건데?"
"다이어트 중에서도 가장 효과가 좋은 걸 알거든."
"그게 뭔데?"
"섹다이어트."
"뭐?"
예림은 순간 자기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다시 말해봐. 너 뭐라고 했어?"
"섹스는 전신 운동이거든. 그거 알아? 5분간 섹스가 100m 전력질주보다 훨씬 많은 칼로리를 태우는 거?"
"아니 진짜 이게 보자보자 하니까 아무말이나!"
"싫음 말고."
"너 내가 만만하지?"
"아니. 정말 미안해서 그래. 다시 보니까 반갑기도 하고."
"그래서 나랑 다시 하자고?"
"너만 원하면."
예림은 어쩌다 이런 대화까지 전개가 되었는지 본인도 궁금할 정도였다. 이건 마치 헤어진 연인이 떡정을 끊지 못하고 다시 만나는 사례보다 더 황당한 경우였다.
"내가 괜한 말을 꺼냈나 보다. 미안."
도훈이 쉽게 물러서자 예림은 더 조급해졌다.
그와 마주 앉아 있다보니 옛 생각이 나면서 그의 몸이 그리워진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먼저 숙이고 들어가자니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결국엔 도훈을 다시 만나고 싶어 이런 일을 꾸민 것이나 다름없게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갈등하던 예림이 작별 인사를 하고 일어서려는 도훈의 손을 붙잡았다.
"잠깐."
"응?"
"···정말 효과 좋은 거 맞지?"
예림이 얼굴이 부끄러움을 물들었다.
차마 하고 싶다는 말은 못 하고 궁색한 핑계를 대는 자신이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다시는 도훈을 못 만날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끝내 인정하기로 했다.
도훈에게 복수하고 싶었던 동기의 이면엔, 그가 자신을 봐주지 않고 다른 여자들과 놀아난 것에 대한 질투가 있었다는 것을.
"한 번에 1키로씩 빼줄 수 있어."
"그럴려면 열 번은 더 해야해."
"왜? 내가 못 할 것 같아? 나 누군지 몰라?"
"칫. 지, 진짜로 다이어트 목적이야. 다른 것은···."
"알아."
도훈이 씩 웃으며 수치사 직전의 예림을 구원했다.
***
정신을 차려보니 침대 위다.
맨정신으로 도저히 안 되겠던지, 예림은 2차로 술부터 먹자고 했고 알딸딸한 상태로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아이고, 아이템도 없이 너무 마셨나.’
적당히 흥만 내려고 했지만, 예림이 술을 계속 부어주는 바람에 상당히 취한 상태였다.
그대로 쓰러져 침대에 옷을 벗고 누워있는데 샤워를 마친 예림이 타올을 두르고 걸어나왔다.
"불 꺼줘."
"왜?"
"부끄러우니까."
나는 미약한 조명만 남기고 전체등을 소등했다.
그제야 예림은 천천히 침대로 다가왔다.
"나 진짜 살 많이 쪘어. 지금 60kg도 넘어."
"뭘 그정도 가지고."
"내 평생에 가장 많이 찐 거야. 원래 대로 돌아가려면 50kg 초반까지 낮춰야해."
"내가 빼준다니까 그래."
"칫. 그 말 거짓말이기만 해."
예림이 무드등 속에서 천천히 타올을 흘려내렸다.
‘음! 진짜 육덕이 됐군.’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예림은 모습은 늘씬하면서도 굉장히 굴곡 잡힌 체형이었다. 하지만 10kg 이상 살이 분 그녀는, 튼실한 허벅지와 약간의 뱃살, 그리고 너무 부풀어 살짝 처진 가슴으로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나 완전 돼지지."
예림이 어둠속에서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원체 본바탕이 좋았던 터라 절대 흉하거나 그런건 아니었다. 특히 안 그래도 큰 가슴에 살이 더 붙으며 풍만해진 가슴은 거유성애자들이 환장할법한 사이즈로 변해 있었다.
"아니. 떡감은 더 좋겠는데?"
"뭐야?"
"원래 살집이 좀 있어야, 박을 때 푹신한 법이야."
"와, 너 진짜!"
"잔말 말고 이리 오기나 해."
나는 머뭇거리는 예림의 손을 끌어 침대로 불러들였다.
그리고는 이미 팬티까지 홀랑 벗은 대물을 손에 쥐어 주었다.
"봐. 너 보고 벌써 이만큼이나 꼴렸잖아. 자신을 가져도 좋아."
"아···. 지, 진짜···."
예림은 오랜만에 손에 쥔 대물이 좋은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넌 진짜 나쁜 새끼야."
"왜 또 그래?"
"이걸로 여자들 꼬셔서 꼼짝 못하게 만들잖아."
"그래서? 싫어?"
"누가 싫대?"
"그럼 들어와."
나는 예림의 머리를 잡고 이불 아래로 밀어 넣었다.
얇은 이불이 유령처럼 불쑥 일어나더니 이내 밑으로 축 가라앉았다. 그리고 대물이 촉촉한 무엇인가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 605. 거지필반-65-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