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0. 거자필반 -60- >
"보, 복수?"
달콤한 제안에 수지가 흔들렸다.
"그래. 너도 계속 당하고만 있을 생각은 아니었다며? 너랑 나랑 힘을 합치면 그 흑막인지 꼬막인지 뭔지 하는 녀석에게 제대로 한 방 먹여 줄 수 있지 않겠어?"
"흐음···."
수지가 고민하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아는지 모르지만, 그녀는 인상 쓸 때가 가장 예뻤다. 장미처럼 화사한 미모 속에 감춰진 뾰족한 가시처럼. 살짝 골이 팬 이마는 한 성깔 하는 그녀의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어때? 하나보단 둘이 낫지 않겠어?"
움찔!
그때 힘을 주어 단단해진 대물을 꾹 밀어 넣었다. 수지가 자극을 느끼는지 "흡" 하는 신음을 토하더니 나를 째려보았다.
"갑자기 뭔 짓이야!"
"왜? 동업자끼리 배꼽 인사나 나누자는 건데?"
"무슨 말도 안 되는···."
배꼽 인사라는 표현에 수지도 어처구니가 없는지 픽- 웃어 버렸다. 악수도 아니고 성기를 비비며 동맹을 확인하다니, 이 무슨 어처구니없는 발상인가.
내가 해놓고도 두고두고 회자 될 개소리임이 분명했다.
"일단 빼. 계속 이 상태로 얘기하자고?"
"아직 대답을 못 들었어."
"알았어. 할게. 하면 되잖아. 그러니까 빼라고."
"정말 빼? 이대로 빼도 괜찮겠어?"
허리를 살짝 들며 대물을 귀두 끝만 남기고 뽑아냈다.
질 안을 가득 채우던 것이 한 번에 쑥 뽑혀나가자 수지가 안타까운 신음을 토해냈다.
"하아···."
아쉬워하는 기색이 보여 재차 의사를 타진했다,
"그냥 아다도 뚫린 거 좀 더 넣고 있는 건 어때? 나도 하다가 끊는 건 아쉬운데."
"치···몰라. 멋대로 해 그럼."
수지가 얄밉게 눈을 흘겼다. 그것이 허락의 사인이라고 생각하고 귀두 끝을 걸쳐 놓았던 대물을 다시 밀어 넣었다.
"흣!!!"
"역시 박히는 쪽이 좋지?"
"저질. 그딴 식으로밖에 말 못 해?"
"글쎄. 누가 저질인지는 인스타 봐선 모르겠는데?"
"맞다. 내 인스타 계정은 어떻게 알아냈지?"
그녀의 눈이 다시 가늘어졌다. 그로 인해 흑막에게 협박을 당했으니 예민하게 따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태영이 덕에."
"태영이라니?"
"너 최근에 우리과 다니는 남자애랑 얘기한 적 있지?"
하는 수 없이 태영을 팔아야 겠다.
"체육과? 아아···."
"그래. 걔가 네 아이디를 알려줬어. 인스타에 정말 색기 쩌는 여자가 하나 있다고."
인스타 얘기를 꺼내자 수지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래서 찾아봤지. 근데 아이디가 왠지 낯익은 거야. SSG가 무슨 뜻일까? 고민하는데 갑자기 너에게서 깨톡이 온 거야. 설수지라는 이름으로."
"아!"
"그때 뭔가 딱 꽂히더라고. 설수지. SSG. 이렇게 공교로울 때가."
"그, 그치만 어떻게 이름만으로 단정할 수 있지? 송슬기. 뭐 이딴 이름도 있을 수 있잖아."
난 그녀가 급조해낸 이름에 풋- 하고 웃어 버렸다.
"물론 이니셜만 가지곤 확신할 수 없었지. 하지만 그때부터 뭔가 다르게 보이더라고. 왜, 그런 거 있잖아. 의식하지 않을 땐 신경도 안 쓰이다가도 괜히 의식하면 보이는 것들. 그러다 우연히 깨톡 앨범 사진하고 인스타에 올라온 사진과 같은 옷을 입고 있는 걸
보게 됐지. 그때부터 어쩌면 동일 인물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 그리고 아까 본 속옷이 결정적이었고."
"아···."
해명이 그럴싸했는지 수지가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쳇. 이미 다 알고 있었을 줄이야."
"그리고 어느 여자가 첫 소개팅부터 모텔에서 보자고 하겠어? 당연히 뭔가 꿍꿍이가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내가 너무 경솔했군."
"자, 그럼 이제 내가 물어볼 차례야. 흑막에 대해서 어디까지 알고 있지?"
"몰라. 젊은 여자라는 것밖에."
"본인이 여자라고 말한 건가? 남자일 가능성은?"
"통화로 목소리를 들었어. 확실한 여자였어."
"흐음."
목소리까지 들었다면 여자라는 건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누굴까? 대체.’
[이래선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겠는데요?]
‘누군지 몰라도 용의주도한 녀석이야.’
"몰래카메라는 어디서 났지?"
"받았어."
"받을 때 얼굴은 못 봤나?"
"퀵으로 받았어. 학과사무실에서."
"철저하군."
"난 그년 때문에 한동안 죽을 맛이었어. 학교까지 찾아와 협박당했다고 생각해봐. 기분이 어땠겠어?"
수지가 끔찍한 기억을 떨쳐내려는 듯 이빨을 꽉 깨물고 진저리를 쳤다.
"혹시 짐작 가는 사람은?"
"없어.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원한 질 정도로 나쁘게 살진 않았다고."
"흠."
"난 오히려 너에게 물어보려 했어. 대체 무슨 짓을 벌이고 다니면 그런 보복을 당할 수 있는지 말이야."
"나도 딱히 생각나지 않아."
"만났던 여자들을 하나씩 떠올려 보면 되잖아."
"그게···."
환생 후 지금까지 만난 여자들의 숫자가 50명이 넘는다.
나름 추려본다고 노력했지만 십여명 정도가 한계였다.
몇 명은 국적이 달라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경우도 있었고, 워낙에 짧은 순간 스쳐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뭐야? 대체 얼마나 여자를 만나고 다닌 건데? 이 바람둥이 같으니."
"미안. 전역한 지 얼마 안 될 때라 너무 막살았어."
"아까 말하던 그 편의점 녀는?"
편의점녀 전수연.
가장 먼저 정보창의 위력을 시험했던 여자다.
지금 생각하면 튜토리얼 정도의 느낌이었고, 알바가 끝나면서 자연스럽게 헤어졌다. 마지막 연락할 때도 그렇게 미운 느낌은 아니었다. 굉장히 쿨했고, 섹파 정도의 관계였다.
"아닐 거야."
"걔 말고는?"
"걔 말고는···."
편의점 알바를 할 때 실제 더 많이 공략한 사람은 편의점주인 허영자와, 그녀의 딸 박하린이었다. 젖소 부인 영자는 최초로 호감도 100을 찍었던 상대였고, 하린은 최근에도 우연히 마주친 적이 있었다.
둘 다 나를 그리워하면 했지, 억하심정을 품을 상대는 절대 아니다.
"아니야. 아무리 생각해도 편의점 알바 중 남에게 원한 살 짓을 한 적 없었어. 그냥 열심히 일만···."
아니다.
생각해보니, 그때 김기춘에게 한 방 먹여준 적이 있다.
놈은 내가 당할 뻔 한 성폭행 미수로 법적 구속이 되어 현재징역을 살고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의 복수 방식을 떠올리기엔 가장 유력한 상대다. 말그대로 눈눈이이.
‘하지만 분명 통화한 상대가 여자랬는데?’
[김기춘이 사람을 시켜 통화만 한 것일지도···.]
‘물론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그건 너무 나간 것 아닐까? 전여친하고도 헤어져서 끈이 모두 떨어진 김기춘이 감옥에서 여자를 구해 통화를 시켰다고? 또 틈날 때마다 인스타를 통해 협박하고? 그건 좀 억측이지.’
[그렇군요.]
‘가만. 그러고 보니···.’
갑자기 누군가 떠올랐다.
김기춘과 함께 엮었던 한 여자의 이름이.
‘설마···.’
***
나예림은 한동안 폐인처럼 지냈다.
발정제를 들이키고 미친 사람처럼 달려드는 기춘의 모습은 꿈에 등장할 정도로 한동안 그녀를 괴롭혔다.
그녀는 결국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한 채 히키코모리가 되었다. 학교는 병가를 이유로 휴학. 쌓인 스트레스를 음식으로 푸느라 늘씬했던 몸매도 금세 엉망이 되었다.
그녀가 폐인처럼 지낸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기춘의 전 여자친구 수아가 그녀를 불러냈다. 사건 당일 함께 있었고, 기춘과 연인관계였던 만큼 죄책감을 느꼈던 탓이다.
"언니, 많이 수척해지셨네요."
"수척은 무슨···. 돼지처럼 살만 쪘는데."
예림이 가시 돋힌 대꾸에 수아가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해요."
"니가 왜 죄송해? 잘못은 그 새끼가 다 했는데."
"그래도···."
"그 새끼랑은 헤어졌다고?"
"네. 정말 그런 사람인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수아의 진심 어린 위로에 예림의 마음도 조금은 풀어졌다.
그러던 중 예림은 뜻밖에 소식을 듣게 된다.
"제가 너무 시야가 좁았던 것 같아요. 도훈 오빠를 만나고서야 알았거든요. 세상엔 정말 괜찮은 남자가 많다는 걸요."
"도훈···오빠?"
"네. 같이 알바 한다고 데리고 왔던 오빠요."
예림이 그 이름을 모를 리 없었다. 화장실에서 떡까지 쳤던 그를 어떻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수아가 말하는 표정이 하도 수상했다. 도훈을 말할 때 살짝 붉어지는 두 볼이 두 사람의 관계를 암시하는 듯했다.
순간 예림의 눈빛이 표독스럽게 변했다.
"너 그 새끼랑 잤지."
"아···. 저 그게···."
수아는 너무 순진했다. 예림의 추궁을, 기춘이 경찰서로 끌려가자마자 바람을 피느냐는 꾸중으로 오해했다.
"그, 그치만 이미 그땐 기춘 오빠랑은 헤어지기로 마음을 굳혀서···."
"똑바로 말해. 그 날이었니?"
"네?"
"기춘이가 날 덮치던 그날이었냐고!"
"아···. 네, 그게··· 술을 좀 들어갔고, 도훈 오빠가 집까지 데려다 준 데서···."
"개새끼."
"맞아요. 제 전 남친이긴 하지만 정말 못된···."
"아니. 이도훈 말이야."
예림이 이빨을 부득 갈았다.
그날 화장실로 불러 떡 치던 도훈이, 자신이 경찰서에 끌려가 조사를 받는 동안 또 다른 여자와 뒤엉켰다는 사실에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쓰레기 같은 새끼였잖아? 그래도 괜찮은 놈이라고 생각했더니···.’
예림은 그날로 이도훈과 있었던 추억을 모두 지워버렸다.
그렇게 두 사람의 관계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지리한 재판이 어이지는 사이 검사 측에서 연락이 왔다.
상대가 합의서를 제출했는데 한 번쯤 읽어보고 고려해 보라는 내용이었다. 과거와 달리 성폭행이 민사 합의로 종결되진 않지만, 아무래도 상대의 진정성 어린 사과가 있을 경우 합의가 된 건에 대해 감형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었다.
검사 측은 합의를 않더라도 상대가 초범에 동종 전과가 없으므로 참작 사유가 많아, 합의를 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식으로 말했다.
-이런 것으로 상처가 위로되진 않겠지만, 기왕이면 돈이라도 받아 챙기는 편이 남는 장사 아니겠소?
라는 의미를 담아.
하지만 집안이 부유한 예림은 푼돈 같은 위로금엔 눈 하나 꿈쩍 안 했다. 아무리 참작을 받더라도 몇 달이라도 더 콩밥을 먹일 수 있다면 절대 합의해 주지 않을 작정이었다.
대신 정식으로 사과는 받고 싶었기에 기춘이 보낸 사과편지를 읽었다.
그는 한순간의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자신의 잘못에 대해 구구절절 용서를 빌고 있었다. 그 덕에 조금은 화가 누그러든 예림은 편지를 계속 읽어내려가다 이상한 구절을 발견했다.
-솔직히 변명할 생각은 아니지만, 그때 불미스러운 사건은 함께 있던 도훈도 일부 책임이 있으며···
‘이게 무슨 소리지?’
예림은 눈을 크게 뜨고 기춘의 항변에 주목했다.
기춘의 사과 편지엔 도훈과 사전에 어떤 식으로 말을 맞추었고, 그가 게임할 때 어떻게 밀어주기로 했다는 등, 경악할만한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물론 이것에 대해 제가 떠들어봐야 오히려 경찰에 먼저 신고한 그놈에게 죄를 덮어씌우려 한다는 핀잔을 받을 거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감옥에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건 너무 억울해서 도저히 견딜 수가···
드러나는 충격적인 진실.
사실 자신과 통했다 생각한 도훈은 몰래 기춘의 여자친구마저 건드린 호색한이고, 사건 당일 은근슬쩍 그녀를 기춘에게 밀어주는 척 동조까지 했다는 것.
예림은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성폭행의 위기에서 자신을 구출했던 도훈이, 모든 것을 알면서도 방조한 공범이나 마찬가지였다니!
예림은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 도훈이 다닌다는 학교를 무작정 찾아갔다. 그를 불러 따져봐야 발뺌할 게 뻔했으므로 변장을 한 후 미행하며 일주일간의 행적을 뒤쫓았다.
사건 이후 시간이 많이 지나기도 했고, 히키코모리 생활을 하면서 아름답던 용모도 많이 변했으므로 도훈을 그녀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일주일 동안 도훈은 여러 여자를 만났다.
그중엔 후배도 있었고, 선배도 있었고, 심지어 대학 교수도 있었다.
그는 게임 업적을 쌓듯 여자들을 쓰러뜨렸고, 금방 싫증난 것처럼 순식간에 갈아 치웠다. 마치 기억하기도 싫은 그날 자신을 화장실에서 실컷 다 먹고 수아의 자취방에서 그녀를 넘어뜨린 것처럼.
이쯤되자 예림은 도훈이 기춘을 감방에 보낸 이유가 기춘의 여친이었던 수아를 빼앗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하는 황당한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여자를 갈아치우는 그를 봤을 땐 충분히 가능했다.
‘도훈이 이런 쓰레기 자식이었다니! 하-. 난 그런 것도 모르고!’
너무 억울했다.
자신은 충격으로 학교도 휴학하고 집안에 틀어박혀 살만 띠룩띠룩 찐 폐인이 되었는데, 자신을 이렇게 만드는데 협조한, 최소 방조한 도훈은 꽃밭을 거닐며 신나게 대학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쓰레기에겐 응당 복수가 있어야 했다.
그리고 기왕이면 기춘을 보냈던 방법이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나설 순 없었다.
지금의 외모는 모자를 쓰지 않고선 밖을 못 돌아다닐 정도로 추레했으니까.
대상을 물색했다.
손에 피 묻히지 않고 이 일을 해결할 적임자를 찾아 나섰다.
처음에는 스폰서를 하는 여대생을 꾀어낼 생각이었다.
남자인 것처럼 꾸며 학교를 알아낸 뒤 협박하는 것이다.
하지만 스폰을 구하는 여대생들은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만나지 않고선 제대로 된 이름조차 알려주지 않았다.
그 다음으로 물색한 것은 인터넷 어플을 통해 섹파를 구하는 여자들이었다. 얼마나 문란한 여자인지를 주변에 알리겠다고 협박하면 여지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외로 대상을 구하기 쉽지 않았다.
어쩌다 힘들게 연결된 여자들은 인증샷을 요구했다.
특히 성기를 찍어 달라는 요구엔 예림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렇게 허송세월 시간을 보내던 예림은 우연히 섹스타그램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예림은 그곳에서 초대남을 구한다는 변녀들을 주목했다.
정체를 밝혀낼 수만 있다면, 협박하기 딱 좋은 대상이었다.
그렇게 얻어걸린 것이 바로 도훈과 같은 국성대에 재학 중인 설수지였다.
< 600. 거자필반 -60-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