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598화 (571/2,000)

< 580. 거자필반-40- >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왜 너희들끼리 북 치고 장구 치고야?"

"떡칠 사람은 생각 있으니, 그냥 저희랑 앞치고 뒤 치면 안 될까요?"

"얼씨구? 너 요새 랩 쓰니? 라임이 아주 그냥."

맹랑한 대꾸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고 말았다.

나연이는 입학 초만 해도 청순하고 조용조용한 이미지였는데 연두랑 자주 어울리더니 어느새 장난꾸러기가 됐다. 하긴 초록은 동색이라고 본래부터 이런 성격이었을지도 모른다. 원래 처음엔 다 내숭을 떠는 법이니.

"인싸라서 그래요, 헤."

"네가 인싸야?"

"그럼요. 저처럼 예쁜 애가 인싸가 아니면 우리 과에 누가 인싸겠어요?"

버스 타기 전 성수와 얘기하던 것이 떠올라 문득 태영에 대해 물었다.

"태영이는 어떤데?"

"예예?"

나연이 눈을 커다랗게 뜨며 과장된 리액션을 보였다.

"무슨 반응이 그러냐?"

"오빠. 태영이는요, 휴-. 오빠가 태영이랑 친해서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런데."

"태영이가 뭐?"

"걔는 절대 인싸 아니죠."

"그게 무슨 기준이 있어?"

"당연히 있지, 왜 없어요?"

"뭔데?"

"인싸는 우선 줄임말을 잘 써야 해요."

"줄임말?"

"인싸끼린 다 줄임말로 대화하거든요. 우리 세계에선 그런 말 못 알아들으면 바로 찐따 취급당한다고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예를 들어 오빠가 맥날을 갔다 쳐봐요."

"맥날?"

"하-. 이 오빠도 은근 심각하네. 맥도날도요."

"아하."

"아무튼 점원이 주문을 받잖아요. 그럼 아싸들은 이렇게 주문해요."

"뭐라고?"

"상하이 스파이스 치킨버거 콤보요."

"제대로 주문했잖아?"

"에이, 방금 제가 말했잖아요. 인싸들은 무조건 줄임말만 쓴다고요. 그렇게 주문하는 순간 알바생은 대번에 상대가 찐따라고 여기죠."

"야, 무슨 말도 안 되는···."

"인싸들은 바로 이래요. 상스치콤요."

"상스···."

"그럼 점원이 속으로 그렇겠죠? 오우, 좀 놀 줄 아는 녀석인가?"

"아니, 그게 무슨."

"쯧쯧. 오빠도 인싸 아니네. 맥날부터 못 알아듣는 거 보면."

"아니 왜 멀쩡히 있는 말을 멋대로 줄여놓고 맘대로 인싸랑 아싸를 구분하는데?"

"별로 안 어려워요. 이 기회에 몇 개 가르쳐 드릴 테니 한 번 배워보실래요?"

"됐어. 인싸고 아싸고 난 관심 없다."

내 대답을 들은 나연은 가슴 앞에 팔짱을 끼더니 한 손으로 턱을 괴었다. 게슴츠레 뜬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데, 뭔가 못마땅한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이었다.

"참, 희한하단 말이죠?"

"뭐가?"

"오빤··· 겉모습만 보면 엄청 세련되게 생겼는데, 말하는 거나 하는 행동 보면 굉장히 아재틱한 게···."

"확! 요게 어디서 오빠한테 까불어?"

나는 되바라진 나연의 머리를 맘대로 헝클어뜨렸다.

"우우! 머리 망가지잖아요!"

"망가지라고 하는 거야."

나연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진짜 몇 개만 배우시면 돼요. 제가 다 오빠 생각해서 알려드리려는 거라니까요?"

"나참. 대체 뭘 알려 줄려고?"

"음, 일단 맛집을 가잖아요? 인싸들은 인스타 같은데 긴말 안 쓰고 이런 글만 남겨요."

"뭐라고?"

"JMT."

"JMT? 무슨 뜻이지? 제이···."

아무리 생각해도 영어 약자가 팍 떠오르지 않았다. 이래 봬도 과거의 난 미국 유학생 출신이다. 어지간한 생활 약어는 대충 알고 있다. 하지만 도저히 연상되는 단어가 었다.

"뭔데 대체?"

"JMT. 존.맛.탱! 존나 맛있다는 뜻이죠."

"아니 무슨···."

듣고 보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약어였다. 나연은 오랜만에  대화가 신나는지 쉬지도 않고 계속 떠들어 댔다.

"그럼 혹시 이런 단어들은 무슨 뜻인지 알아요? 영고, 마상, 비담."

"영고는 옛날 부여의 축제잖아. 마상은··· 그러니까 말 위에서 싸우는 뭐 그런 건가? 비담은 솔직히 모르겠네."

차분히 생각해 한 대답에 나연이 빵 터졌는지 배꼽을 잡고 비웃었다.

"푸하핫! 와 이 오빠가 진짜, 갑분띠네 증말."

"갑분띠는 또 뭔데?"

"갑자기 분위기 띠용 한다고요. 하하 영고가 뭐라고요? 부여의 축제?"

"맞을걸? 아니, 옥저였나?"

"무슨 소리하세요오! 진짜, 무슨 국사 문제 푸세요? 인싸 줄임말이잖아요. 영고는 영원히 고통받는의 줄임말, 마상은 마음의 상처. 그리고 비담은 바로 저 같은 애들을 말하는 거죠."

"너 같은 애들이 뭔데?"

"음, 체육과 비쥬얼 담당이랄까?"

그러면서 꽃받침으로 자신의 턱을 괴며 눈을 반짝이는 나연이었다.

‘허-! 얘가 언제 이렇게 넉살이 늘었지?’

[은근히 뻔뻔한 성격이었군요. 스스로 비쥬얼 담당이라니···.]

‘하긴 뭐 딱히 틀린 말은 아닌데.’

나연은 어려서부터 무용을 배워 몹시 훌륭한 바디라인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얼굴도 무척 예뻤다. 아마 정음이 아니었다면 단연 체육과의 비담을 차지했을 거다.

하지만 현실은 육정음이라는 부동의 센터에 밀려 아쉽게 2인자 신세였다. 하늘 아래 최고는 두 사람이 될 수 없는 법이니까.

"너무 본인 생각을 강요하는 거 아니냐?"

"왜요? 그럼 오빠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건가요? 저 말고 예쁜 애가 또 누가 있는데요?"

솔직히 정음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괜히 시기의 대상이 될 것 같아 다른 사람을 둘러댔다.

"연두도 못지않지."

"연두···. 연두는 뭐 인정."

살짝 자존심을 긁으며 이간질을 하려 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평소에도 단짝으로 유명했는데, 생각보다 두 사람의 사이가 돈독한 모양이었다.

"근데 아까 했던 말 정말이야?"

"어떤 거요?"

"연두랑 내기했다는 거."

"아. 그거 아까 오빠랑 부학회장님이 뒤에서 따라오실 때 장난삼아 꺼낸 말이에요. 신경 쓰지 마요."

"그래? 진심이면 내가 너 밀어주려고 했는데."

"진심?"

"아니. 근데 네 말대로 연두 쪽이 비주얼이 더 좋은 것 같아서 그쪽으로 마음이 확 기우네?"

"에이, 남자가 한 입 가지고 두말하긴. 그러면 인싸 못해요."

"인싸는 잘 모르겠고 질싸는 좀 하지, 내가."

"어맛!"

이번엔 나연이 화들짝 놀랐다.

버스 안 대화라긴 너무 노골적인 단어였나 보다.

"역시 오빠는 음흉 끝판왕이시군요. 제가 깜빡 했네요."

"너희들만 하겠어?"

"저희가 뭐요?"

"둘이 요새 동거까지 한다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 그런 말을 들은 기억은 없지만, 은근히 떠본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제대로 찌른 건지 나연이 얼굴을 붉히며 다급히 둘러댔다.

"도, 동거라뇨! 그냥 저희 집에서 가끔씩 자고 가는 거예요."

"과연 둘이 잠만 잘까?"

또다시 놀리자 나연이 고개를 푹 숙였다.

"자, 잠만 자죠! 아무렴, 여자끼린데."

"에이, 내가 너희를 몰라?"

"저희에 대해 뭘 아시는 데요?"

"알만큼은 알지. 충분히."

나는 일부러 음흉하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연은 한참 우물쭈물하더니 나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솔직히···."

"솔직히?"

"연두에게 제가 맞춰주는 거 아시잖아요."

"잘 모르는데?"

"아니···. 연두 성향이 그러니까 ···좀 독특하기도 하고."

연두는 본래 레즈비언이다. 나로 인해 바이 섹슈얼로 거듭나긴 했지만, 근본적으로 여자를 더 좋아하는 건 분명하다. 나연의 말은 연두가 자신을 좋아하고, 자신 또한 연두를 친구로서 좋아하니 그녀에게 적당히 장단을 맞춘다는 소리 같았다.

"너도 이젠 즐기는 거 아냐?"

"절대 아니에요."

"그럼?"

"그냥 서로 손잡고 안아주는 정도?"

‘과연 저 말이 사실이려나?’

[모르죠. 사실 상관있나요? 업적도 다 끝난 마당에.]

‘업적만 봐선 그렇지. 캬, 나연이 자취방에서 쓰리썸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구나.’

[왜요? 갑자기 땅기시나요?]

‘아니. 그건 아니고. 남은 미션 중에 초대남 미션 생각나서.’

[이성 성욕 미션 말씀이죠?]

‘어. 그 초대남이라는 게 그럼 쓰리썸을 하라는 거야, 아님  호스트가 지켜 보는 가운데 여자랑 둘이서 하라는 거야? 그것도 아니면 그냥 관전을 하라는 거야?’

[미션의 완료는 실제 섹스를 했느냐로 결정됩니다. 정확히 말하면 사정까지 마무리하셔야 인정이죠. 앞선 낙서플과 강간플 역시 사정까지 끝낸 후에 미션 달성이 되셨구요.]

‘그럼 관전은 절대 아니겠군.’

[맞습니다. 방식이 무엇이건 초대남으로 가서 섹스와 사정까지 완성하면 됩니다.]

‘초대남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것까진 저도 모릅니다. 정보를 좀 알아보시는 게···.]

나도 듣기만 들었지, 실제 플레이에 대해 아는 것은 전무 했다. 이런 쪽으로 빠삭한 건 역시 태영인데···.

‘그나저나 우리 동방 딸잡이는 언제쯤 학교 나오려나?’

[왜요? 이제 와서 걱정되십니까?]

‘걱정은 무슨. 사내새끼가 몰리면 딸 좀 잡을 수 있지. 왠지 이런 쪽이라면 태영이가 정보가 많을 것 같아서.’

[하긴···. 태영군이 이런 쪽으론 전문가긴 하죠.]

‘나중에 한 번 술 사 준다고 위로하면서 슬쩍 물어봐야겠어.’

[좋은 생각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내 등을 떠밀었다. 어느새 버스 안은 발 디딜 틈 없이 복잡해져 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기우뚱- 쏠린 몸이 앉아있던 나연에게 향했고, 하필 사타구니가 그녀 어깨를 누르고 말았다.

"앗!"

뭔가 뭉클한 느낌에 나연이 눈을 흘겼다.

"지금 설마···."

"아니야. 뒤에서 누가 밀었어."

"아닌 거 같은데요?"

"진짜라니까. 갑자기 사람 너무 많아졌어."

"흐음."

이후로도 버스가 서다 가다 멈출 때마다 인파에 휩쓸렸고, 나의 몸은 계속 나연 쪽으로 쏠렸다. 계속되는 마찰(?)에 나연도 슬슬 달아오르는지 손을 뻗어 내 허벅지를 어루만졌다.

"뭐하냐?"

"잡을 때가 없어서요."

"앞에 잡지 않고선."

"이게 더 튼실해 보여서요."

"장난해?"

"장난 아닌데요?"

그녀의 손이 은근슬쩍 위로 올라오더니 사타구니 안쪽을 쓱 스치고 지나갔다. 농밀한 손길에 나도 모르게 슬슬 물건이 자극받기 시작했다.

"야. 공공장소다. 이러지 말자."

"왜요? 아깐 저 밀어주신다면서요?"

"연두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어."

"에헤. 연두는 오빠보다 저를 더 좋아할걸요?"

"글쎄?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니? 자신 있어?"

"···치사해!"

나연이 토라진 표정을 짓더니 느닷없이 확 불알을 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나도 모르게 신음이 터졌다.

"흐윽!"

곧 그녀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손을 떼며 과일바구니를 움켜쥐었다.

"무슨 짓이지?"

"버스가 흔들려서요."

"진짜 이런 식으로 나오겠다 이거야?"

"오빠가 제 옆에 서 있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요. 히."

요컨대 일방적으로 공격을 당할 수밖에 없는 포지션이라는 소리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내 두 팔은 천장에 매달린 손잡이를 잡고 있었고, 앞뒤로 사람들이 가득 차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아주 주인님을 가지고 노는군요.]

‘그러게. 이렇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건 열 받는데.’

하지만 도리가 없었다.

나연은 주변 눈치를 살피며 틈날 때마다 내 물건을 툭툭 건드렸다. 어쩔 수 없이 부풀기 시작한 대물이 바지춤을 부풀어 올리기 시작했다. 민망함에 자꾸 나연 쪽으로 몸을 돌릴수록 그녀의 못된 손은 멈추지 않았다.

"헤헤. 재밌네요 이거."

"너 자꾸 이러면 나중에 혼구녕 나."

"혼구녕 한 번 내주세요, 오랜만에."

다행히 복수의 기회는 금방 찾아왔다. 짐을 잔뜩 쥔 할머니 한 분이 우리가 서 있던 쪽으로 밀려 왔던것이다. 갑작스러운 급정거에 균형을 잃던 할머니를 겨우 손으로 부축하며 멈춰 세웠다.

"아이고, 총각. 고마우이."

"아니에요. 할머니. 다리 아픈데 여기 앉으세요. 나연아 뭐해, 양보해드려."

"괜찮네. 다 같이 힘들긴 마찬가진데···."

"아니에요. 저흰 곧 내리거든요. 나연아, 얼른."

자꾸 눈치를 주자 나연도 어쩔 수 없이 짐을 들고 벌떡 일어났다.

"할머니 여기 앉으세요."

"고마워."

자릴 빼앗긴 나연이 눈으로 나를 흘기며 버스 손잡이를 잡았고, 나는 그녀의 뒤에 바짝 붙으며 조용히 속삭였다.

"어때? 이제부턴 전세 역전이네?"

나연이 긴장으로 침을 삼키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

흑막으로부터 정체불명의 택배를 수령한 수지는 자기 방에 틀어박혀 인스타용 사진을 찍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몰카용 만년필의 화질이 궁금해졌다.

"이건 어느정도로 찍히는 걸까?"

포켓용 걸쇠를 딸깍 눌러 기계를 작동시킨 수지는 적당히 앵글이 잡히도록 책상 위에 고정 시킨 뒤 카메라 구멍을 쳐다보았다.

"음, 이렇게 봐선 카메라라곤 절대 의심 못 하겠는 걸. 엄청 비싼 물건 같은데···."

한참 카메라를 쳐다보던 수지는 문득 인스타에 동영상 파일을 올리는 것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얼굴을 가리기 위해 검은색 마스크와 캡모자로 변장을 시도한 뒤 천천히 옷을 벗기 시작했다.

사르륵-.

옷가지가 하나씩 벗겨 나갈수록 왠지 모르게 흥분이 되었다.카메라의 구멍이 자신을 훔쳐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아아, 찍히는 것도 나름 색다르구나. 누군가 엿보기 구멍으로 날 관음하는 것 같아.’

팬티와 브라만 남기고 모두 벗은 수지는 침대에 걸터앉은 채 서서히 가슴 위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아···, 아···."

자연스럽게 신음이 나오자, 문득 영상이 사진보다 훨씬 자극적일 수 있다는 것이 깨달았다. 수지가 서랍 안에 숨겨둔 자위 기구를 꺼내 들었다.

< 580. 거자필반-40-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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