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593화 (566/2,000)

< 575. 거자필반-35- >

***

이후 이틀은 조용히 지나갔다.

도훈은 여전히 설수지의 배후를 추적하며 관련인 들을 하나씩 조사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최종적으로 남은 후보는 아직 만나보지 못한 세 사람으로 좁혀졌다.

‘박서현, 마유미, 그리고 강경희.’

서현은 여전히 입원 중이었고, 유미는 대학리그 원정 경기로 인해 지방에 내려간 상황. 따라서 도훈이 현재 가장 빠르게 확인 수 있는 사람은 1학년 후배이자, 정음의 라이벌인 경희뿐이었다.

경희를 찾기 위해 찾아간 곳은 교내 테니스장.

평소에도 늘 테니스를 즐기는 그녀는, 매일 같이 테니스장에 출근 도장을 찍는다고 했다.

과연 도훈이 테니스장에 도착하자 힘찬 기합과 함께 연습경기를 하고 있는 경희의 모습이 보였다. 하얀 테니스 치마에 살짝 태닝한 얼굴을 한 경희는, 한 마리 야생마처럼 날뛰고 있었다.

탄탄한 하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안 그래도 뜨거운 코트를 후끈 달궜다. 기합과 함께 강력한 스트로크를 꽂아 넣는 모습, 마유미의 스파이크와 비견될 만큼 박력 넘쳤다.

[와우, 어마어마한 걸크러쉬군요!]

‘제대로 운동하는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아. 과연 정음이랑 쌍벽을 이룬다는 스포츠 걸 답네.’

체육교육과는 사범대 다른 학과와 달리 실기 시험 비율도 높고, 체육 특기생 출신에 많은 가산점을 주는 편이었다.

태권도로 국가대표 선출 전까지 나갔던 정음이나, 고교 시절 전국체전 테니스 종목에 출전했던 경희가 대표적인 인물.

때문에 이 두 사람은 입학 초부터 라이벌로 유명했다.

미모면 미모, 운동이면 운동, 무엇하나 빠지지 않는 두 사람은 늘 비교가 되었다. 이미지가 유사하다 보니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 경쟁이었다.

그러나 세간의 평이 나날이 예뻐지는 정음 쪽으로 많이 기운 상태기 때문에, 경희로선 무척 자존심이 상하는 상황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음은 소위 말해 천재과였고, 본인의 장기인 무도 종목 외에 체육 전 분야에서 그 탁월성을 입증했다. 그러나 경희는 구기를 제외하고선 압도적인 분야가 거의 없었다.

게다가 똑같이 이목구비는 예쁘게 생겼지만, 상대적으로 테니스를 오래 배워 까무잡잡하진 경희는, 얼굴이 하얀 정음에 비해 다소 저평가를 받는 입장이었다.

물론 여자를 많이 만나본 도훈은 경희의 진한 피부도 충분히 매력적이라 생각했다. 늘 하얀 피부만 접하다 보니, 구릿빛으로 태닝된 피부가 특별하게 느껴진 탓이다.

‘쩝-. 한 번 먹고 버리긴 아까운 애였는데.’

경희와는 MT 때 맺어졌다.

기합을 받다 발목을 삐어 업고 가던 중, 텐트에서 꼬셔서 따먹은 추억이 있었다. 그러나 그 뒤로 접점도 많이 없었고, 딱히 연락을 주고받거나 하지 않았기에 자연스럽게 잊혀져가는 중이었다. 아마도 설수지의 일이 아니었다면, 일부러 찾아올 일도 없었을 것이다.

경기장 밖에서 우두커니 게임을 지켜보던 도훈은 경기가 끝나자 경희를 불렀다.

"경희야."

"앗, 오빠?"

더운 날 테니스를 치느라 땀을 흘리던 경희가 목에 걸친 수건으로 땀을 훔치며 도훈을 반겼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

"그냥 지나가다가 아는 얼굴이 있길래."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테니스장의 위치는 대학 내에서도 굉장히 외진 곳이다. 특히 사범대와 체육관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라도 그곳을 지나칠 일은 거의 없었다. 경희 역시 다른 이유가 있다고 판단했는지, 파트너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고는

도훈에게 다가갔다.

"안 덥니? 이 날씨에?"

"덥죠. 그래서 요즘엔 오전 연습만 해요. 오후엔 실내 스쿼시로 몸을 풀고요."

땀이 살짝 배어난 테니스 복장은 무척 섹시해 보였다. 겨드랑이 훤히 드러난 나시티도 그렇지만, 조금만 움직여도 팬티가 보일 것 같은 테니스 치마가 특히 야했다.

‘흐음, 경희는 여전히 건강미가 넘치는 군.’

[주인님이 운동하는 여자를 유독 좋아하시긴 하죠.]

‘원래 물렁살보단 탄탄한 여자들이 맛이 좋거든.’

"언제부터 보고 계셨던 거예요?"

"한 10분 전? 드라이브 넣을 때 기합 넣는 거 되게 멋있던데."

"앗! 창피하게."

경희가 민망한지 두 볼을 감쌌다. 터프한 모습 속에 드문드문 보이는 여성미가 그녀를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했다.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확실히 체육과 흑진주라는 별명이 무척 잘 어울리는 여자였다.

"날도 더운데 너무 열심힌 거 아니야? 누가보면 선수라도 뛰는 줄 알겠어?"

"여름 방학 때 전국 대학 대회 출전하거든요. 학교 대표로요."

경희가 서운하다는 투로 투덜댔다. 도훈은 괜한 얘기를 꺼내 본전도 못 건졌다는 생각에 뒤통수를 긁적였다.

"아아, 그랬구나···. 미안. 내가 학과 소식에 좀 느린 편이라. 게다가 저번 주까지 내내 교생 실습 이었거든."

"전에도 관심 없긴 마찬가지였는데요, 뭐"

"음, 그게 중간고사도 있고, 연휴로 쉬는 날도 많았고···."

"됐어요. 굳이 저한테 변명할 필욘 없어요. 저도 저번 일로 오빠 귀찮게 굴 생각은 없으니까."

경희는 대답이 시원시원했다. 도훈과 있었던 일을 우연히 벌어진 해프닝쯤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여름 밤 바캉스에서 스쳐 지나간 인연 정도랄까?

‘흐음. 확실히 경희가 나한테 억하심정 품을 건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확인해 보셔야 합니다.]

‘그렇지.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법이니.’

그늘진 벤치로 이동한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았다.

"근데 무슨 일로 오신 거예요? 정말 지나가다 들렀을 것 같진 않고···."

"갑자기 생각나더라고. MT 이후로 좀 서먹해진 것 같기도 해서."

도훈이 핑계를 대며 슬쩍 MT 일을 들먹였다. 순간 경희의 표정이 경직되는가 싶더니, 나풀거리는 치마를 두 손으로 꾹 누르며 자세를 바로 했다. 스스로 팔짱을 낀다거나 몸을 움츠리는 동작은 방어적인 스탠스를 의미한다.

"MT 때 그 일은···."

"미안, 괜히 말했나 보다. 너가 신경 안 쓴다고 했는데."

"아니에요. 우리 이참에 확실히 하죠."

"뭘?"

"오빤 저랑 사귈 마음 없으시죠?"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도훈이 벙찐 표정 머뭇거리자 경희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허심탄회하게 심정을 밝혔다.

"사실 MT 이후론 제가 오빠를 좀 피했어요."

‘그랬나? 너무 아웃오브 안중이라···.’

"그런 일 있고나선 오빠 얼굴 다시 보기가 부끄럽고 창피하더라고요."

"그랬구나."

"솔직히 원망도 많이 했고요."

"음."

"아무리 그래도 저한테 사과는 하실 줄 알았거든요."

"미안하다."

도훈이 진심을 담아 사과했다.

효민 때부터 시작되었지만, 그는 과거의 인연들을 최대한 깔끔하게 정리하는 중이었다. 그것이 상대를 위한 일이건, 본인의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건 아무튼 꼭 필요한 절차라고 생각했다.

"이젠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저도 좋아서 한 거니까요."

"그래도 내가 선배로서 참았어야 했는데···."

도훈의 시선이 문득 경희의 겨드랑이 머물렀다. 나시티를 입어서인지 옆에서 보니 안에 받쳐 입은 스포츠 브라가 훤히 비쳤다. 보통 스포츠 브라를 하면, 일반 브래지어에 비해 가슴이 납작해지는 반면 경희는 그와 중에도 상당한 볼륨을 과시하고 있었다. 아까

연습 경기를 하고 있을 때도 묵직한 슴부먼트가 유독 인상적이긴 했다. 피부에 묻은 땀이 오일처럼 번들거리자, 도훈은 저도 모르게 헛숨을 들이킬 수밖에 없었다.

‘큭, 젠장. 이틀간 자중했더니 이 녀석이 또···.’

설수지의 배후를 찾기 위래 동분서주 하느라 이틀간 여자 맛을 보지 못했던 부작용이 슬슬 나타나고 있었다.

섹스는 일종의 마약 같아서, 맛을 들인 이상 끊어내기 쉽지 않다. 물건이 본능적으로 부풀자, 도훈이 다리를 오므리며 먼 산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모습을 예리한 경희가 놓치지 않았다.

"뭐예요? 방금 저 훔쳐보신 거예요?"

"아, 아니 훔쳐본 게 아니라···."

"거짓말 마요. 방금 제 가슴 빤히 보셨잖아요."

"···응. 그니까 대놓고 봤지."

"와-. 진짜 인성···."

사과하러 왔다면서 가슴을 훔쳐보는 도훈을 보자 경희는 속으로 어이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슬슬 잊힐 만할 때 불쑥 나타난 것부터 거슬렸는데, 그 와중에 자신의 몸을 보고 혹하는 도훈의 모습에 화가 치밀었다.

‘이 오빠가 나랑 지금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오기가 생긴 그녀는 불쑥 도훈을 골탕 먹이고 싶어졌다.

실은 이대로 곱게 물러나는 것도 여자로선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오빤 원래 여자만 보면 그래요?"

"미안, 이번엔 진짜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그때도 저 엎어주시면서 고의로 엉덩이 만지셨잖아요."

"무슨 일부로야. 우연이 손이 닿았겠지."

"어떻게 우연히 딱 거길 만져요! 솔직히 엉덩이만 만졌으면 말도 안 해. 안쪽까지···."

화를 내는 경희를 보자 도훈은 조금 난처해졌다.

‘아뿔싸. 이게 아닌데. 설수지 배후를 확인하려 왔다가 괜히 벌집만 들쑤신 꼴이군.’

[그러게 왜 그 새를 못 참고···. 쯧쯧.]

‘나라고 일부러 그랬냐? 한 번 따먹은 여자라서 자꾸 생각나는 걸 어떡해? 내가 경희 가슴을 아예 안 봤으면 모를까.’

핑계 같았지만 정말 그랬다. 아예 관계가 없었음 모를까, 한 번이라도 관계를 맺은 이상 상대와의 추억은 봄철 잔디 물오름 마냥 스멀스멀 올라오는 법이다.

더욱이 여름날 운동을 마치고 땀과 함께 뿜어 나오는 여성 특유의 체취가 도훈의 후각을 예민하게 자극하고 있었다. 문득 도훈은 경희의 겨드랑이 맺힌 땀을 혀로 핥으면 어떤 맛이 날지 궁금해졌다.

‘아아, 미친! 참아야 한다. 이러면 또···.’

하지만 반대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근데 어차피 연을 끊을 거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따먹으면 안 되나?’

[쯧쯧. 역시 주인님은 변칠 않는군요. 최근에 조금 성숙해 지셨다 싶더니만···.]

‘개가 똥을 끊겠냐? 아, 아니지. 그래 참아볼게. 이건 정말 아닌 거 같아.’

도훈도 갈팡질팡했지만, 경희 역시 도훈의 모순적인 태도에 슬슬 열이 받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도훈과 정음과의 사이를 질투했다.

학과 생활을 열심히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와 정음이 유독 친하게 지낸다는 얘기가 자주 들렸다. 경희는 괜한 심술에 둘 사이를 훼방 놓고 싶어졌다.

물론 그것이 유치한 시기심의 발로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은 본래 안다고 모두 행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가끔은 자신도 주체 못하고 마음 가는 데로 저질러 버리는 게 인간이다.

"솔직히 말해 봐요. 그 얘기만 하려고 오신 거 아니죠?"

경희가 팔짱을 끼며 스스로 가슴을 부풀렸다. 나시의 V라인 쪽으로 깊은 골짜기가 잡히며 도훈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윽. 스, 슴골이···.’

[정신 차리십시오! 주인님. 설수지의 배후를 확인하러 오신 거 아니었습니까?]

‘그, 그렇지. 유혹에 넘어가선 안 돼.’

"너한테 묻고 싶은 게 있어."

"뭔데요?"

"우리학교 법대에 아는 사람 있어?"

마음의 소리를 통해 경희의 속마음이 들렸다.

{갑자기 왠 뜬금없이 소리야?}

도훈은 이것으론 부족한지 재차 물었다.

"설수지라고, 몰라?"

"뭔 수지요?"

{설수진지 설거진지 내가 알 게 뭐람?}

‘아아! 역시 전혀 모르구나. 근데 얘는 대체 갑자기 왜 이러는 거지?’

경희가 이번엔 의도적으로 다리를 꼬았다. 짧은 테니스 치마가 위로 살짝 들리며 아슬아슬한 곳 까지 밀려 올라갔다. 노골적인 유혹의 자세였다.

"···아니야. 모르면 됐어."

"그 사람이 대체 누군데요?"

"아니 이번에 교양 수업에서 조모임 같이 하게 된 사람인데 우리 과에 테니스 치는 학생을 잘 안다고 해서. 혹시 넌가 싶었지."

"테니스 치는 분은 3학년 선배 중에 저 말고도 몇 분 더 계시긴 해요. 아무튼 전 아니에요. 생전 처음 들어본 이름이니까."

{흥. 구차하게 핑계는. 솔직히 말해 보시지? 내 몸 생각나서 왔다고.}

‘오잉? 얘는 또 뭔 소리지?’

[주인님 시선에 오해한 것 같은데요?]

‘난 전혀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그치만 느닷없이 찾아와 옛날 얘기를 하면 경희양이 착각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거참 난감하군. 지금 인연의 붉은 실 가위 못 사용하지?’

[네. 쿨타임이 일주일 단위니까요.]

‘젠장. 혹 때려 왔다가 혹 붙여가게 생겼네.’

[굳이 상대해줄 필요 있습니까? 그냥 무시하면 그만이죠.]

하지만 경희는 무시당할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그녀는 도훈을 똑바로 쳐다보며 얘기했다.

"그냥 솔직히 말해요."

"뭘?"

"내 몸 생각나서 왔다고."

"무, 무슨 소리야?

"아니면 아까부터 그건 왜 그러는 건데요?"

"···어?"

경희가 도훈의 바지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곳엔 얇은 반바지 위로 돌출된 대물이 적나라한 윤곽선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까 다리를 오므리면서 감췄다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자기도 모르게 쩍 벌려버리고 만 것이었다.

부풀어 오른 대물은 주머니에 바나나를 숨겨 놓은 것처럼 민망하게 돋아나 있었다.

"아, 아니 이건 원래···."

"거짓말 하시네? 가만 있어도 그렇게 큰 사람이 어딨어요?"

"내가 크다는 건 너도 알고 있잖아."

"흥. 저랑 내기 할래요?"

"뭘?"

"그게 안 꼴린 거라면 제가 사과할게요. 대신 꼴린거면."

"꼴린거면?"

"내가 오늘 오빠 따먹을 거예요."

< 575. 거자필반-35-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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