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6. 거자필반-26- >
***
체육교육과 2학년 실기 과목.
주로 운동장에서 진행되던 수업은, 최근 들어 날이 갑작스레 더워진 관계로 체육관으로 장소를 옮겼다. 농구코트를 중심으로 각종 운동 기구들이 즐비한 체육관에는, 체육과 학생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운동에 매진하는 중이었다.
도훈도 오랜만에 재개된 실기 수업에 열심히 참여했다. 우연히 도중에 오수정을 만나 한 발 빼고 와서인지, 몸놀림이 무척 가벼웠다. 도훈의 매트 운동 시범을 본 2학년 동기들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와, 도훈이 형은 달리기도 잘하더니 체조도 잘하네."
"하여간 난 사람이라니까?"
체육과의 실기 종목은 크게 육상, 체조, 구기로 나뉘어 있었다. 도훈은 육상에선 100M 과 신기록을, 구기에선 배구 공격수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는데, 유연성과 균형감각이 요구되는 체조 분야까지 두각을 드러내는 중이었다.
도훈은 학생들의 칭찬에도 우쭐대지 않고 겸손한 태도로 고개를 숙였다. 실은 그가 이룬 성과는 대부분 남들의 재능을 훔치거나, 아이템의 도움을 받았기에 가능했다.
‘물약 빨로 달리기 1등 먹고, 마유미의 배구 적성에 나연이의 체조 적성까지 다 가졌으니 잘할 수밖에.’
그 외에도 육정음의 태권도 능력과 송미나의 보디빌딩 지식까지 흡수했기 때문에, 지금에 이르러선 만능 스포츠맨이란 수식어가 가장 어울리는 체육인으로 거듭나 있었다. 실기를 담당하는 강사는 재능이 특출난 도훈을 특히 좋아했다.
"역시 이도훈 학생이군! 다들 저 정도만 하면 A+ 받을 수 있으니 분발하라고."
"넵!"
"그럼 개별적으로 연습할 시간 줄 테니 10분간 연습 시작."
강사는 나머지 학생들을 자체 연습 시키고 도훈에게 다가왔다.
"자네는 못 하는 운동이 없구만?"
"네? 그냥 운이 좋았습니다."
"아니야. 내가 가르쳐본 학생 중에서 가장 다재다능한 학생 같아. 이건 진심이야."
"어렸을 때 이것저것 조금씩 배워놨는데, 막상 특출나게 잘하는 건 없습니다."
"흐음. 아쉽군. 한 가지 종목에만 전념했으면 충분히 대성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일단 학생은 좀 쉬고 있어. 다른 학생들도 자네 수준에 맞춰야 하니까."
"감사합니다."
강사의 배려로 휴식을 갖게 된 도훈은 잠시 체육관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웠다. 체육관 뒤 공터는 대학 내 곳곳에 존재하는 인가되지 않은 흡연실이었다.
‘실기 과목도 A+은 확정인가.’
[대단합니다. 실습에 이어 벌써 두 과목이나 A+을 맡아 놓으셨군요. 정말로 수석 가능한 거 아닙니까?]
‘훗-. 이게 다 여학생들 덕분이야. 이쯤 되면 섹스할수록 강해져, 뭐 이런 웹소설 제목 같은 인생 아니냐?’
[주인님의 능력이 그쪽으로 특화되어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강사 말이 옳아. 한 가지만 전념했으면 충분히 대성할 수 있었다는 말. 어쩜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은 섹스라고 할 수 있지.’
[과연 대단한 자신감이로군요.]
‘이제 중수까지 남은 업적은 두 개인가?’
[네. 현재 소개팅에서 원나잇까지 업적을 진행 중이시죠.]
‘거기에 특수직업이 더 맛있어 업적도 동시 진행 중이고?’
[해당 업적은 현재 왁싱전문가 하나만 완료 상태입니다. 인종의 도가니탕이나 백마 타고 흑마 타고 역시 일정 부분 달성했고요.]
업적은 일회성으로 달성할 수 있는 종류와 긴 시간을 두고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종류가 있었다.
가령 ‘소개팅에서 원나잇까지’는 설수지 하나만 공략하면 업적이 달성되지만, ‘특수직업이 더 맛있어’ 같은 경우는 왁싱 전문가, 여경, 여의사, 치어리더, 아이돌에 이르는 다섯 대상을 공략해야 했다.
[업적 달성만을 위해서라면 ‘백마타고 흑마타고’ 쪽이 더 유력합니다. 남은 흑인 여성 한 명만 공략하면 되니까요. 아니면 소수인종을 공략하는 ‘인종의 도가니탕’도 괜찮죠. 슬라브와 라틴 계열의 여성 두 명만 확보하면 되거든요.]
‘숫자만 보면 그렇지. 문제는 위 두 업적은 모두 외국인을 대상으로 해야 한단 말이지. 사라나 료코는 우연히 국내에서 만났기 때문에 수월했지만, 지금와서 흑마를 어디서 만나겠어? 슬라브랑 라틴은 또 어떻고?’
[하긴, 외국을 한 번 다녀오시는 편이 좋겠군요.]
‘학기 중이라 당장은 무리야. 여름방학 때라면 모를까.’
[참, 최근 가시권에 든 업적이 하나 더 있습니다. 딱 한 명만 공략해도 되는.]
‘뭔데?’
[‘숨겨왔던 나의···’ 업적입니다. 지난번 마주친 육정음 양의 게이 친구가 주인님께 호감을 보이는 것 같던데요.]
‘됐어. 똥꼬를 뚫리는 것도, 똥꼬를 따는 것도 최악이야. 목숨이 경각에 달리면 한 번 쯤 생각해 보지.’
[주인님은 이성관이 너무 확고하셔서 문제입니다. 하지만 불륜 트라우마를 극복하신 것처럼 언젠가는 이 또한 넘어설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좆까! 안되는 건 절대 안 돼! 아무튼 당장은 설수지의 공략에 최선을 다해야겠어.’
마침 설수지를 떠올린 도훈은 인스타 어플을 통해 그녀를 팔로우했다. 이제부터 그녀가 올리는 모든 게시물은 실시간으로 전해질 것이다.
‘이 변녀가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 살펴봐야지.’
[소개팅 전부터 너무 열 올리시는 거 아닙니까?]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백전불태라잖아. 공략 대상에 대해 미리 조사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지..’
[역시 프로 섹서. 참, 태영 군은 어쩌시게요?]
‘태영이?’
[네. 설수지 양과 모종의 썸씽이 있는 사이 아닌가요?]
‘흠. 그러고 보니 내가 설수지를 공략하면 태영의 연애사업을 훼방 놓는 셈인가?’
도훈은 잠깐 태영의 처지를 딱히 여겼으나, 이내 머릿속에서 치워버렸다.
‘생각해 보니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무슨 상관이야? 설수지 인스타 하는 거 봐선, 그냥 인터넷 빗치 수준이더만. 걔가 태영이한테만 그럴 것 같아?’
[어쨌든 태영군이 불쌍합니다. 지난번에 료코양 때도 그렇고···. 본인이 찍은 여성은 죄다 주인님께 헌납하는 신세니까요.]
‘놈이 너무 헤퍼서 그래. 가만 보면 애가 진득하지 못하고 이 여자 저 여자 다 찔러보기만 한다니까.’
[능력 없는 사람은 어디 서러워 살겠습니까?]
‘난 뭐 날 때부터 이랬나? 나는 걔보다 더 형편없는 40년을 살았어. 태영이는 한참 멀었지.’
***
‘젠장, 좆 작은 사람은 어디 서러워 살겠냐?’
수업 시간 중 남자 화장실에 틀어박힌 태영은 죽을 맛이었다. 계속 대화를 주고받던 SSG가 불쑥 또 다른 인증사진을 요구했던 것이다. 좌변기에 앉아 손톱을 물어뜯는 태영에게 또 한 번 메시지가 날아왔다.
-SSG1004 : 뭐해? 네 거 보고 자위하려고 기다리고 있단 말이야. 빨랑 사진 좀.
문제의 발단은 사실 태영 본인에게 있었다.
SSG와 친분을 맺게 된 태영은 지속해서 노출 사진을 요구했고, 이에 호응해 SSG도 계속 사진을 건넸다. 그러던 중 스스로의 노출에 흥분한 SSG가 태영에게 또 다른 물건 사진을 보내 달라고 연락한 것이었다.
거듭되는 독촉 메시지를 덮은 태영이 자신이 양물을 움켜쥐었다. 한 손으로 잡으면 귀두가 거의 가려지는 빈약한 사이즈에 태영은 또 한 번 절규했다.
‘안 돼. 이젠 끝이야. 이걸 찍어 보냈다간 나를 좆밥 취급하고 다시는 상대 안 해 줄 거야.’
아무리 카메라 각도를 이리저리 움직여도 비엔나소시지를 핫바처럼 보이게 할 순 없었다. 태영은 자신의 소박한 사이즈에 머리를 쥐어뜯을 것처럼 움켜쥐었다.
‘설마 영상을 편집해 보낸 걸 눈치챈 걸까? 하필이면 노발기 상태로 보내달라니···.’
수지는 이번 요구는 독특했다.
발기된 것도 아닌, 노발기 상태의 직 샷을 보내달라는 것.
명목은 ‘번데기가 더 귀엽다’는 이유였다.
태영은 부랴부랴 일본원정남 시리즈를 돌려보며 노발기 상태의 대물을 찾았으나, 애초에 야동에 그런 것이 쉽게 나올 리가 없었다. 하숙집 식구들을 강간한다는 컨셉의 일본원정남 주인공은 늘 풀발기 상태였고, 그나마도 여자의 입에 물려 있거나 삽입된 상황
이었다.
단독으로 클로즈업 된 장면들은 대부분 대물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노발기에서 찍힌 장면은 단 한컷도 없었다.
다른 영상에서 사진을 찾아보려고도 했으나, 대물남의 성기는 워낙에 예쁘게 생겨서 도저히 같은 사람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태영은 급속도로 우울해졌다.
‘틀렸어. 애초에 내 것도 아닌 거로 사기치려고 했던 내 잘못이야. 내가 무슨 도훈이 형처럼 큰 것도 아니고···. 가만?’
태영에게 번뜩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아까 수업 중 우연히 2학년 선배들과 마주쳤는데, 실기 수업을 위해 체육관으로 이동한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2학년 실습이면··· 도훈이 형도 거기 있다는 소리잖아?’
태영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날씨가 더우니 실습이 끝나면 남자들은 샤워장에서 샤워를 하겠지. 도훈이 형도 분명 샤워를 할 거고··· 그렇다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태영은 갑자기 자신의 뺨을 후려쳤다.
"미쳤어. 지금 도훈이 형을 팔아 먹겠다는 소리야?"
스스로 생각해도 얼토당토않은 계획이었다.
이미 도훈이를 한 번 팔아먹었지만, 일본 원정남이 도훈인지 모르는 태영은 스스로의 도촬 계획에 죄책감을 느꼈다.
‘미친놈아. 여자 하나 먹어 보겠다고 친한 도훈이 형을 팔아? 이건 아니지.’
그러나 한편으로는 스멀스멀 다른 생각도 피어났다.
‘근데 가만. 어차피 얼굴은 안 나오는 거잖아. SSG가 노 발기 사진을 찍어 달라는 건 분명 나를 의심하고 있다는 거거든. 한마디로 이번 위기만 넘기면 분명 나를 믿어줄 거란 말이지. 그럼 나중에 또 만날 수 있고···.,’
화장실에 틀어박힌 태영은 심각하게 갈등했다.
SSG와의 만남과 친한 선배의 도촬.
그러나 이미 좆끝으로 몰린 피는 그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맞아. 도훈이형의 얼굴이라도 나온다면 모를까, 어차피 누구 좆인지도 모르는데 미안할 건 없잖아?’
그가 행복회로를 돌리기 시작했다.
‘조금 있으면 실기 수업이 끝날 거야. 샤워하는 순간을 놓쳐선 안 돼.’
태영은 바지를 추스르고 체육관으로 뛰어갔다.
자기 수업은 땡땡이를 치는 격이었으나, 이미 PC방을 가느라 몇 번 도망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체육관에 도착하자 수업이 거의 마무리 되는 중이었다. 태영은 체육관 2층의 교내 헬스장을 둘러보는 척하며 도훈의 위치를 파악했다.
‘오오, 저깄구나.’
도훈은 언제나처럼 가장 앞서 실기를 수행하며 박수를 받고 있었다. 실기 강사가 공개적으로 도훈을 극찬했다.
"역시, 이도훈이다. 다들 이렇게만 하란 말이지."
태영이 핸드폰을 움켜쥐며 기회를 노렸다. 그리고 실기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부랴부랴 샤워장으로 이동했다. 태영을 본 체육과 2학년 학생들이 의아한 눈으로 물었다.
"너 여기서 뭐하냐?"
"교수님 사정으로 수업이 일찍 끝나서 헬스 좀 하러 왔어요."
"이얼, 열심인데. 벌써 여름 대비 몸 만드는 거야?"
도훈도 태영을 보고 아는 체를 했다.
"운동하러 왔어?"
"네. 어우, 형 땀 많이 흘리셨네요."
"그러게."
"샤워나 하고 가세요. 찬물로 씻고 나면 개운해요."
"그러고 싶은데 수건을 안 챙겨와서."
오수정 덕에 떡볶이 신세가 된 도훈은 찝찝했지만, 수건을 못 챙겨와 씻을 수 없었다. 샤워 용품을 다른 사람과 나눠쓴다 하더라도 수건을 돌려쓰기는 민망했던 것이다. 도훈의 대답에 태영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아, 그럼 형 제거 쓰세요."
"너는?"
"전 스포츠 타올 한 장 더 있어요."
"미안한데···."
"에이, 형이랑 저 사이에 무슨."
"그럴까 그럼?"
도훈을 샤워장으로 유인한 태영이 득의만면한 미소를 띄웠다.
‘흐흐. 계획대로 되고 있어. 이제 음소거 된 어플로 몰카만 찍으면···.’
의도적으로 도훈과 나란히 락커를 잡은 태영이 호시탐탐 기회를 엿봤다. 그러나 도훈은 쉽사리 대물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물티슈로 깨끗이 닦아냈다 해도 여전히 흔적이 남아있을까 두려워 자꾸 손으로 가렸던 까닭이었다.
게다가 도훈의 벗은 몸을 본 남자들이 자꾸 가까이 다가와 치근덕대는 바람에 몰카를 찍기 어려웠다.
"와, 형 몸 대박."
"몰랐냐? 도훈이형 우리과 최고 몸짱이잖아."
"형 어떻게 만드신 거예요? PT하세요?"
도훈은 자꾸 들러붙는 후배들이 부담스러워 재빨리 샤워실로 들어갔다.
"야야, 좀 씻자."
기회를 놓친 태영도 후다닥 옷을 벗고 재빨리 따라 들어갔다. 도훈은 구석에서 몸을 씻고 있었다. 태영은 일부러 핸드폰이 보이게 올려놓은 뒤 도훈 옆에 나란히 섰다.
"넌 무슨 폰을 들고 들어오냐?"
"아, 이거 방수폰이요. 연락 올 데가 있어서요."
도훈이 귀를 쫑긋 세웠다.
‘연락이라면 설수지? 오호, 좋은 기회군. 설수지랑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 확인해야겠어.’
태영의 음흉한 의도를 전혀 모른 체 도훈이 스킬을 발휘했다.
[로시 마음의 소리 켜 봐.]
‘넵.’
도훈은 태영의 속내를 파악하기 위해 일부러 대화를 유도했다.
"나 샴푸 좀 빌려주라."
"네."
태영은 기회라고 여겼다. 머리를 감기 위해 눈을 감는 순간만큼 확실한 타이밍은 없었다.
"참, 너 근데 인스타 한다고 했잖아."
"네, 형."
태영이 도훈의 손에 샴푸를 듬뿍 짜주었다. 거품이 많이 나길 바라며 정량보다 훨씬 많이.
"우연히 보니까 그런데 막 야한 사진 올리는 애들 있던데, 그거 진짜 자기 사진이야?"
"네?!"
태영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주춤하고 말았다.
그때 태영의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 566. 거자필반-26-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