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9. 거자필반-9- >
***
"휴, 현미 누나랑 진짜로 소개팅했음 좆될 뻔."
소파에서 뒹굴던 태영은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위기를 모면키 위해 마음에도 없는 부탁을 한 뒤로, 지난 이주 간 얼마나 전전긍긍했는지 모른다.
"굳이 연상을 만나더라도 3학년이 낫지, 2학년은 좀 아니지."
체육과 사이에 2학년은 저주받은 학번으로 불렸다.
남녀 성비가 철저하게 무너져 버린 학번.
그마저도 홍이점인 두 여자는 외모도 변변치 못했다.
지금 학번에 유독 여학생이 많이 뽑힌 이유도, 작년에 너무 남자가 많이 뽑힌 후유증이라는 루머가 돌 지경이었다.
"학회장 선배도 키만 좀 작았으면 은근 상타치는 외몬데 말이지."
3학년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학회장인 마유미.
180에 가까운 큰 키에, 탄탄한 몸매가 매력적인 여성이다. 팔다리가 길쭉길쭉해서 모델을 보는 것 같은 시원시원한 매력이 있었다. 지난번 응원차 경기를 보러 갔을 때 핫팬츠를 입은 뒤태에 자기도 모르게 꼴리고만 태영이었다.
"겉으론 세보이는 여자들이 의외로 침대에선 고분고분하더던데···."
태영은 마유미의 얼굴을 떠올리다 자기도 모르게 바짝 꼴려버렸다. 프로 딸잡이인 그의 상상속에선 이미 학과에 있는 여자들이 수십 번도 범해진 지 오래.
마침 집도 비었겠다, 성욕이 동한 태영은 추리닝 바지 속으로 왼손을 집어넣었다. 불알 밑을 쓱 들춘 뒤 코밑으로 가져간 그는 킁킁- 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윽, 냄새 쩌내. 한 판 끝나고 샤워라도 좀 해야겠군.’
지독한 쩐내에 코가 마비될 것 같았지만, 당장 발동이 걸린 프로 딸잡이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지구상에 아무도 없었다.
‘초보들은 모르지만 딸 중의 딸은 바로 상딸이지. 내 머릿속에선 누구든 따먹을 수 있거든.’
태영이 안방에서 각티슈를 챙기며 만반의 준비를 마친 그때, 핸드폰에서 알림음이 울렸다.
깨톡 메시지와는 다른, 독특한 음향이었다.
"엇, 이 소린 설마!?"
그것은 바로 인스타의 알림음.
그가 팔로우를 맺은 이웃이 막 새로운 글을 올렸다는 사인이었다. 폰을 열어 팝업 메시지를 클릭하자 인스타 어플로 바로 연결되었다.
"대박! 이 시간에 SSG님께서!"
게시글을 올린 사람은 최근 맞팔을 맺은 SSG라는 닉네임을 가진 익명의 여성 유저였다. 태그에 온갖 변태적인 수사로 가득한 그녀는, 이따금 새벽녘 엄청난 노출 사진을 공개하는 것으로 유명한 섹스타였다.
좋아요♥ 56개
SSG1004#심심해서 #나른한 주말 #여대딩 #성욕 폭발 #유두 집게
해쉬 태그를 확인하던 태영은 ‘유두 집게’라는 단어에 고추가 발딱 섰다. 다양한 자위기구와 노출 플레이를 즐기는 SSG가 오랜만에 유두 노출을 감행한 것이었다.
‘이게 웬 떡이람. 일요일 오전에 간만에 성욕 폭발했나 보네, 나처럼.’
바로 전까지 상딸이 최고라던 태영은 어느덧 한 손엔 폰을 잡고 달아오른 잦이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예열을 위해선 시각적인 자극도 도움이 되는 법이니까. 엣헴.’
순식간에 태도를 바꾼 태영은 SSG가 올린 사진을 감상했다.
백옥처럼 새하얀 피부.
처녀가 분명한 밝은 빛깔의 유륜을 지나 바짝 곧추선 젖꼭지에는 문방구에서 파는 나무 집게가 물려있었다. 침대에 누워 찍은 듯, 옆으로 흘러내린 유방은 크기부터 모양까지 완벽에 가까웠다.
"오옷, 대꼴!"
글을 올린 지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댓글이 실시간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왕변태(230dd) : 날 가져요 섹스지님. 헉헉
-호모섹스피어(gogo78) : 오늘따라 집게가 되고 싶네요.
-섹스섹스봊이털(sexsexbo) : SSG님 초대남 필요하시지 않나요? 무료 출장 가드립니다.
태영은 초대남을 요청하는 댓글을 보고 콧방귀를 뀌었다.
"돌았네. SSG님이 너 따위한테 박히겠냐?"
지난번 야동을 보다 엄마한테 걸려 컴퓨터가 망가진 태영은, 한동안 PC방을 전전한 뒤 인스타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어느새 모바일 생태계에도 인터넷 못지 않은 야한 자료들이 넘쳐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다.
그동안 고이 모았던 수많은 AV배우들과 작별을 고하고, 유명한 섹스타들을 팔로우하며 굶주린 성욕을 채우기 시작한 것이다.
AV배우나 BJ들은 말 그대로 직업적으로만 야한 여성이다.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 옷을 벗고, 남자와 섹스를 한다.
'솔까말 걔들이 창녀랑 다를게 뭐야?'
물론 천성적으로 섹스가 좋아서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레이블을 사모으거나 별풍으로 인한 지출을 생각하면 상업적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반면 섹스타들은 전혀 달랐다.
그들은 무료였다.
그들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단지 좋아요♥ 하트 한번 날려주는 것과 댓글 몇 마디, 즉 불특정 다수의 관음이면 충분했다.
심지어 그들은 일반인이었다.
대부분 얼굴을 가리고 있지만, 분명 우리 주변에 실존하는 평범한 여성들이었다. 주체할 수 없는 성욕을 사이버 관음으로 해소하는 지독한 변녀들.
태영은 어쩌다 우연히 마주칠지도 모르는 그런 여자들의 벗은 몸을 훔쳐본다는 데 엄청난 쾌락을 느꼈다. 차라리 컴퓨터가 박살난 게 전화위복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AV배우나 BJ는 껍데기야. 진짜배기는 오로지 섹스타에만 있지.’
태영이 내린 결론이었다.
댓글을 새로 고침하고 있는데 SSG 본인이 댓글을 달았다.
-섹스섹스봊이털(sexsexbo) : SSG님 초대남 필요하시지 않나요? 무료 출장 가드립니다.
└여대딩(SSG1004) : 초대남요? 안그래도 요새 너무 꼴려서 진짜 이벤트 한 번 해볼까 생각 중이었는데. 참고로 저는 대물을 좋아한답니다.
"헐, 직접 답글까지! 근데 대물이라니···. 젠장, 나는 안되는 건가."
태영은 한 손에 꽉 쥐어지는 물건에 긴 탄식을 내뱉었다.
욕망을 주셨으면, 능력도 주셨어야지. 왜 하늘은 자신에게 어마어마한 성욕을 주시고, 이런 볼품없는 물건을 하사하셨단 말인가.
‘에이씨, 됐다. 중물은커녕 소물도 안되는 나는 그냥 상딸이나 쳐야지.’
폰을 내던진 태영은 지긋이 눈을 감으며 상상에 들어갔다.
그의 머릿속에서 새로운 평행세계가 펼쳐졌다.
평범남 태영이 우주최강 섹스타로 거듭나는 세계선 이었다. 그곳의 최강자지인 태영은 도훈 못지 않은 대물이 되어있었다.
***
헬스장 구석에 앉아 한참 폰을 뒤적이던 도훈은 10분 만에 포기를 선언했다.
‘없어.’
[없다구요?]
‘못 찾겠어. 이름검색으로 32명의 설수지를 싹 찾았는데 해당 되는 사람이 한명도 없어.’
[흐음, 어쩌면 주인님이 잘못 생각한 것일까요?]
‘모르지. 일단 이름으로 검색이 안 되는 건 확실해. 생각해보니 노출 사진을 올리는데 떡하니 실명을 걸고 하진 않을테니까.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나 봐.’
[하긴 그렇겠네요. 이름이나 본인 얼굴이 나오게 되면 어느 대학 누군지도 다 까발려질 테니까요.]
‘젠장. 시간 낭비했군. 일단 씻고 집에나 가야겠다.’
도훈은 수건을 챙겨 샤워실에 들어가려는데 아까 그 트레이너가 다시 다가왔다.
"어, 도훈씨 가시게요?"
"네."
"제 제안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보세요."
"글쎄요, 요새 공부하기만도 바빠서···."
"아뇨, 전문적인 보디빌더를 뽑는 대회가 아니에요. 요샌 대학생들만 대상으로 열리는 대회도 있거든요. 아마 입상만 해도 이력서에 큰 도움이 될 걸요?"
"알겠습니다."
자꾸 귀찮게 구는 트레이너를 물리치려는 데 트레이너가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였다.
"참고로 예전 미나 코치도 학생 때 그 대회 나갔었어요."
"정말요? 여자도 나가요?"
"네. 머슬매니아는 여성부도 있거든요. 원래 혼자 열심히 운동만 하는 타입이었는데 그 대회 떨어지고 나서는 진짜 독을 품고 열심히 했죠. 그 바람에 이쪽 진로로 튼 거구요."
"아, 그런일이···."
"요새 필라테스 학원 차려서 잘 나가잖아요. 도훈씨도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세요. 혹시 알아요? 사람 인생 모른다니까요?"
"아무튼 감사합니다."
도훈은 샤워를 하며 생각했다.
‘그나저나 미나는 잘살고 있으려나? 그때 개업식 준비할 때 본 뒤론 한 번도 못 봤네.’
[왜요? 갑자기 소식 들으니 궁금해지셨나요?]
‘그냥 뭐. 그렇게 한 번 하고 버릴 여자는 아니었으니까.’
미나의 탄력적인 몸을 떠올리자 갑자기 밑에서 신호가 왔다. 다른 사람도 몸을 씻고 있는 샤워장에서 난데없이 발기가 된 도훈은 두 손을 공손히 모아 물건을 가린 채 후다닥 탈의실로 뛰쳐나왔다.
[아니, 그렇게 느닷없이 꼴려버리시면···.]
‘내가 워낙 건강해야 말이지. 그나저나 그때 공략도 여기서부터 시작이었는데 말이야.’
헬스장 안이라는 장소 제한이 걸린 미션에서, 도훈은 수건을 안 들고 왔다는 핑계로 그녀를 유혹했다.
그리고 폭풍섹스.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자 도훈은 점점 참기가 어려워졌다. 밖으로 나가자 그녀와 함께 거쳐(?) 갔던 기구들과, 당시의 체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으으, 그때 생각하니까 존나 땡기네.’
[주인님. 만남엔 본래 헤어짐이 있는 법입니다. 회자정리라지 않습니까.]
‘하지만 헤어지면 또 만나기도 한다잖아. 거자필반 몰라?’
[지나친 욕심은 해롭습니다. 가끔은 놓을 줄도 알아야지요.]
‘계란은 한 바구니에 담으면 안 되는 거야. 올 인은 좋지 않아.’
[에휴, 그냥 마음대로 하십시오. 주인님이 맘먹고 공략하면 버텨낼 여자가 있겠습니까?]
‘그냥 연락만 해볼까 해. 일요일이니 쉬고 있지 않겠어?’
마음이 동한 도훈은 헬스장을 나서며 미나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이도훈 : 누나. 잘살고 계시죠?
답장이 빠르게 왔다.
-송미나 : 어머? 이게 누구야? 무슨 일로 연락을 다 하셨을까? ㅎㅎ
의외로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한 달 넘도록 잠수를 탄 셈인데 미나는 여전히 호의적인 반응이었다.
도훈은 자신을 잊지 않은 미나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꼈다.
-이도훈 : 오랜만에 운동 갔다가 누나 소식 들었거든요. 요새 학원 잘 된다면서요?
-송미나 : 누가 그런 소릴해?
-이도훈 : 남자 트레이너님이요.
-송미나 : 아이참, 상일 오빠도 쓸데없는 소릴. 그냥 오픈 빨이지 뭐. 예전 회원님들이 생각보다 많이 찾아주셨어.
-이도훈 : 누나가 잘 했으니까 그쪽으로 옮겼겠죠. 가끔 PT회원들하고 회식도 했었으니까.
-송미나 : 솔직히 고객관리 한 거지. 나 사실 술자리 그닥 안 좋아해.
-이도훈 : 그랬구나. 난 그날 누나가 취한 줄 알았는데. 그래서 술김에 헬스장에서···.
-송미나 : 앗, 그 얘긴 갑자기 왜 하구 그랭.
도훈이 서서히 미끼를 던졌다.
-이도훈 : 암튼 개업 직전에 보고 못 봤네요.
-송미나 : 그러니까. 나도 맨날 직원만 하다가 직접 운영하게 되니까 정신 하나도 없더라. 편하게 월급 받을때가 좋았지. 오늘도 강사반 수업 때문에 출근 했잖어.
-이도훈 : 일요일인데요?
-송미나 : 어. 토요일만 쉬고 일요일엔 자격증반 수업해. 평일엔 일반회원들만 상대하기도 벅차거든.
‘송미나가 지금 필라테스 샵에 있단 소리지?’
[네. 그렇게 들리네요.]
‘여기서 많이 멀진 않았던 것 같은데?’
-이도훈 : 그럼 지금 샵이에요?
-송미나 : 응, 왜?
-이도훈 : 저도 운동 왔다가 집으로 걸어가는 길이거든요. 올만에 얼굴이나 볼까요?
한동안 미나에게서 답장이 없었다.
도훈은 대답을 듣기도 전에 일전에 한 번 찾아가본 필라테스 샵으로 발길을 돌린 상황이었다. 시간이 지나 답장이 왔다.
-송미나 : 그래. 오전반 마감하고 밥먹으러 가려던 참인데 점심이나 같이 먹을래?
-이도훈 : 정말요? 그럼 디저트도 주시는 거에요?
-송미나 : 디저트?
-이도훈 : 네, 디저트로 누나 먹고 싶은뎅.
-송미나 : 앗! 야, 너 진짜.
-이도훈 : 거의 다 도착했어요.
-송미나 : 뭐? 진짜? 안돼에. 나 지금 샤워 중이란 말이야.
아마도 잠시 대화가 중단되었던 이유가 씻을 준비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도훈 : 거짓말. 샤워하는데 어떻게 톡을 해요?
-송미나 : 방수폰이니까. 설마 진짜 다 왔어?
-이도훈 : 네, 저 지금 건물 도착했어요. 이제 올라가요.
-송미나 : 가게 문 잠겨있어. 오전반 보내고 혼자 씻으려고 들어와서.
-이도훈 : 누나가 좀 열어줘요.
-송미나 : 안돼. 나 지금 벗고 있단 말이야.
-이도훈 : 그럼 밖에서 기다릴까요?
-송미나 : 어휴 참. 글타고 손님을 어떻게 밖에 세우니. 비번 알려 줄 테니까 열고 들어와. 1234#
전자식 도어의 비번을 확인한 도훈은 스크린에 떠오른 암호를 눌렀다. 잠시 후 띠리링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흐흐. 운이 좋군. 나이스 타이밍이구만.’
[거참, 운빨 하나는 타고 나셨군요.]
필라테스 샵은 오픈 직전 방문했기 때문에 익숙한 광경이었다.
‘샤워실이 이쪽이던가?’
도훈이 천천히 샤워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안에선 물소리가 세어나오고 있었다. 그는 탈의실을 들어가기도 전부터 바짝 꼴리기 시작했다.
‘디저트로 먹을랬는데, 이러면 에피타이저로 가야겠군.’
도훈은 소리나지 않게 조심스럽게 탈의실 문을 열었다.
탈의실 안쪽 불투명 유리엔 하얗게 김이 서려 있고, 살색의 실루엣이 어른거렸다.
-송미나 : 아직 들어온 거 아니지? 나 지금 거의 다 씻었거든? 금방 나갈게.
그러나 깨톡을 확인한 도훈은 이미 옷을 홀딱 벗은 상태였다. 그는 단단히 발기된 상태로 샤워장 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
"미나 누나. 오랜만이에요."
< 549. 거자필반-9- > 끝
ⓒ 성난불기둥